2010/01/02 09:51

오호망양(五胡望洋) 32 - 3일 천하 역사

한식산(寒食散)의 처방은 비록 한(漢)대에 나왔지만 쓰는 사람이 적었으며 거의 전하지 않았다. 위(魏 : 曺魏)의 상서 하안(晏)이 처음 신비한 약효를 얻자, 이로 말미암아 세상에 크게 유행하였고 복용자들이 서로 찾았다.
寒食散之方, 雖出漢代, 而用之者寡, 靡有
傳焉, 魏尙書何晏首獲神效, 由是大行於世, 服者相尋也.
秦承祖, <寒食散論>


위진시대에는 한식산 또는 오석산(五石散)이라는 약물이 유행하였다. 한식산은 복용하게 되면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하며, 위진시대의 청담사상과 어우러져 풍류의 도구이자 신선이 되는 비방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식산의 주 성분은 다음과 같았다.

단사(丹砂), 웅황(雄黃, 또는 유황), 백반(白礬), 증청(曾靑), 자석(慈石), 석영, 종유석(鍾乳石) 등

단사는 수은 화합물로 이루어진 광석이며, 다른 성분들도 대부분 위험천만한 중금속이나 독성 물질이다. 이런 물질들을 합하고 정제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한식산이다. 한마디로, 독약이다.

한식산을 복용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병증이 완화되고 환각 증세가 있어 고통이 줄어드는 등의 효능이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당연히 치명적인 중독성, 중금속 중독으로 인한 정신착란, 통증 등이었다. 어쩌다가 이런 맹독성, 중독성 약물이 유행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분석하는 것은 추후의 과제로 남겨두고, 이 한식산이 불러 일으킨 한가지 사건에 주목해 보자.


10대 후반, 어린 나이에 군주가 되어 막북과 화북을 평정하였던 걸물 탁발규. 이제 그의 나이도 이제 3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언제부터 탁발규가 한식산을 복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새부터인가 한식산의 부작용이 탁발규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성격이 조급하고 어수선하게 되었으며, 화를 내는 것이 일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증상이 심각해지면서부터는 재이(災異)가 자주 보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헛것을 본다는 말이렸다. 탁발규는 근심하고 번민하고 불안해하고, 혹은 여러 날을 먹지 않고, 혹은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며, 혼잣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차라리 낫다. 그러나 저 혼잣말이 불러온 파장은 심각했다.

미친 놈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이야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 혼잣말의 주제는 범상치 않았다. 평생토록 자신이 일구어온 성패와 득실을 혼잣말로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기억력이 비상했던 것인지, 아니면 정신착란으로 인해 과거의 기억이 덮쳐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끝도 없이 되뇌인 결과, 그는 주변의 신하들을 하나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의심병이 생긴 것이다.


여러 신하들과 주의의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여 믿지 못하고, 매번 백관들이 주청할 일로 그 앞에 도착하면 그 옛날의 악한 것들을 미루어 기억하여 갑자기 그를 죽였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혹 안색이 변하거나, 혹은 코로 숨 쉬는 것이 고르지 않거나, 혹은 걸음을 걷다가 절도를 잃거나, 혹은 말이 어긋나 틀리기라도 하면 모두가 마음 속에 악을 품은 것이 밖으로 형태가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하여 때때로 손으로 그들을 쳐 죽이기도 하고, 죽은 사람들을 모두 천안전(天安殿) 앞에 늘어놓기도 하였다.


탁발규의 광증으로 인해 북위의 정치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지방에 도적이 창궐하고, 민호가 혼란에 빠져들었지만, 조정의 백관들은 탁발규의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십중팔구가 죽어나가니 감히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오직 최호(崔浩)만이 탁발규를 시중들고 보위했다고 한다. 최호와 그의 아버지 최굉은 탁발규를 보위하는데 아무런 잘못도 한 것이 없어 무사했다고 한다.


탁발규의 광증은 혈육이라고 해서 넘어가지 않았다. 탁발규는 아들인 탁발사(拓拔詞)를 태자로 삼았는데,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 그의 어머니인 유귀인(劉貴人)을 죽였다. 탁발사는 어머니가 죽은 것을 슬퍼하여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고 한다. 탁발규는 이런 탁발사의 모습에 분노해서 탁발사를 불러들였다. 탁발사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 따라 탁발규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도성을 떠나 숨었다. 또한 또다른 아들인 탁발소(拓拔紹)는 평소 잔혹한 짓을 많이 하여 분노를 샀는데, 탁발규는 아들을 잡아다가 우물에 거꾸로 매달아 넣어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409년 10월 무진일(13일), 탁발규는 후궁들 가운데 한 명인 하부인(賀夫人)의 트집을 잡아 그를 하옥시켰다. 그리고 죽이려고 하였지만, 마침 해가 저물어 다음으로 미루었다. 하부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은 바로 탁발소. 일전에 우물에 거꾸로 매달렸던 바로 그 아들이다.

하부인은 옥중에서 사람을 보내 탁발소에게 구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안그래도 흉폭한 성품에 탁발규에게 앙심을 가지고 있었던 탁발소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안전으로 달려가 탁발규를 시해한다. 향년 39세. 참으로 허망한 최후였다.


기사일(14일)의 아침이 밝았다. 탁발소는 조서를 꾸며 백관들을 조정으로 모이게 한 뒤, 대전의 기둥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백관들에게 물었다.

"나에게는 숙부도 있고 또한 형도 있소. 공경들은 누구를 좇으실 것이오?"

치열한 정치판에서 살아가는 공경대부들은 눈치가 백단이다. 상황파악은 이 한마디로 족했다. 장손숭이 먼저 낌새를 알아차리고 외쳤다.

"왕을 좇겠나이다!"

대소 신료들이 16세의 탁발소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아직 대세는 결정되지 않았다. 조회가 파하자 신료들은 즉각 어디에 붙어야 할지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봉화가 오르고 도성 외곽에 군대가 모여들었다. 탁발소는 신료들을 회유하고 위로하기 위해 포백(布帛)을 풀었다. 그러나 흉흉한 분위기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편, 탁발규를 피해 숨어 있던 탁발사도 곧 소식을 접했다. 탁발사는 즉각 도성으로 돌아와 경오일(15일) 밤을 틈타 성 안으로 숨어들었다. 탁발소는 탁발사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체포하기 위해 사람을 파견했으나 오히려 길을 안내하던 숙손준 등에게 속아 죽임을 당했다. 탁발사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고, 신미일(16일) 밤이 되자 성 밖에 주둔한 군대들도 탁발사를 지지한다고 밝혀 왔다. 대세는 드디어 결정되었다. 탁발소는 그날 밤으로 곧 사로잡혔고, 탁발사는 탁발소의 측근 10여 명만 처형하고 나머지는 모두 용서하였다. 탁발소의 3일 천하였다.

409년 10월 임신일(17일), 탁발사가 황제에 즉위하였다. 그의 나이 19세 때의 일이다. 탁발규의 광증으로 혼란에 빠졌던 위 정권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10/01/02 10:00 # 답글

    아편 중독이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아편은 적어도 사람을 이런 싟으로 미치게 만들지는 않으니까요-_-;;;
  • 야스페르츠 2010/01/03 22:02 #

    아편도 만만치는 않지 않나요? ㅎㅎㅎ
  • 슈타인호프 2010/01/04 01:26 #

    아편은 사람을 나테하게 만들고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잃게 만드니까요. 아마 아편중독이 됐으면 남들을 죽이기보다 폐인이 된 군주를 얕본 신하들의 반란 쪽이 가능성이 높지 싶습니다--;;
  • dunkbear 2010/01/02 10:32 # 답글

    기가막힌 최후네요.
    하여튼 정체불명의 약 (이라고 쓰고 건겅보조제라고 읽음)은 먹지 않는게 최고.
  • 야스페르츠 2010/01/03 22:05 #

    꺼진 약도 다시 먹자. (응?)
  • Allenait 2010/01/02 10:44 # 답글

    참. 저런 독약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저 사상이 희한함을 넘어서 해괴하군요
  • 야스페르츠 2010/01/03 22:05 #

    저도 이해가 안돼요. ㅎㅎ
  • 천하귀남 2010/01/02 10:57 # 답글

    아스피린조차 화학적인 약리작용이 알려진것이 오래되지 않았으니 그 이전의 약물들이야 그저 먹어보고 알뿐이니 오죽 할려구요.
  • 야스페르츠 2010/01/03 22:06 #

    한식산의 부작용도 알려져 있었던 거 같던데 알고도 먹던 것을 보면 참 이해가 안돼요.
  • 른밸 2010/01/02 11:09 # 답글

    한식산의 주성분으로 쓰이는 성분들은 동의학에서 한약성분으로 쓰이는 것들이네요. 주사 같은 경우 강심약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도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 성분들은 가열할 경우 나쁜 성분 - 예를 들어 주사의 수은- 들이 분리되며 독성을 띄게 된다는 것이죠..오석산의 복용법은 뜨거운 술에 타서 마시는 것이니 말 다했죠 뭐-_-

    사실 이 때만 하더라도 귀족층 사이에서 돌고 돌아서 막장 귀족들을 양산하는데에 그쳤지만 결정적인 사건은 송나라 때 발생하죠. 무려 소동파(!!)가 이 오석산을 정말 좋은 약(!!!!)이라고 추천하자 이름있는 의원들이 의서에 정식으로 등록(!!!!!!!!)시켜버린 것...결과는 말 다했죠;;
  • 야스페르츠 2010/01/03 22:06 #

    헐... 소동파가...
  • asianote 2010/01/02 12:14 # 답글

    약물 중독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음을 증명하는 일화군요. 그리고 언제나 최신 과학기술의 피해자는 높으신 분들.
  • 야스페르츠 2010/01/03 22:09 #

    높으신 분들만 당하는 더러운 세상. (응?)
  • 행인1 2010/01/02 13:02 # 답글

    중금속 중독으로 막장으로 치달은 제왕이라니...;;;
  • 야스페르츠 2010/01/03 22:09 #

    ㅎㅎ 왕님들이 단명한 것도 다 이것 때문일지도...
  • tloen 2010/01/02 13:05 # 답글

    성균관대 출판부에서 나온 독약은 입에 쓰다라는 책이 한식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목 센스는 좀 별로지만 내용은 좋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1/03 22:09 #

    오... 좋은 책입니다. 꼭 읽어볼께요.
  • 옛날이야기 2010/01/02 18:34 # 삭제 답글

    음...대단한 건 아니지만 잘못 쓰시고 있는 용어가 있어서 사족한번 달아봅니다.

    탁발부는 이때까지 '막북'을 평정한 적은 없습니다. 탁발부가 평정한 곳은 '막남' 이죠.

    장강 남쪽이 '강남', 장강 북쪽이 '강북'
    황하 남쪽이 '하남', 황하 북쪽이 '하북'
    마찬가지로 고비사막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이 '막남', 고비사막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이 '막북'입니다.

    자세하게 따지면 복잡하지만, 대~~강 살피자면 '지금' 중국 땅인 유목지대가 막남이고, '지금' 몽고 땅이나 러시아 땅인 유목지대가 막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직접 지도를 그리셨으니 아시겠지만 탁발부가 평정한 곳은 막남이죠.
  • ㅠㅠ 2010/01/02 22:39 # 삭제

    그러게요. 야스페르츠님.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이 때 쯤 막북은 유연이 확고히 장악하고 도리어 탁발씨들이 이들을 방어하는데 급급했었는데.
  • 야스페르츠 2010/01/03 22:12 #

    막북 문제는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북위 초창기에는 유연을 격파한 기록도 많이 나오고 북방을 점령한 기록이 있거든요. 근데 어느새 그 땅에 유연이 자리를 잡지요. 상당히 애매해요.

    그래서 지도에서도 북방 경계선은 도저히 표시를 못하고 있습니다. ㅡㅡ;;
  • 흑접시 2010/01/02 21:09 # 삭제 답글

    탁발소가 안됐군요.
    부친까지 시해하고도 제위에 못올랐으니..
    수양제는 성공했는데...
  • 야스페르츠 2010/01/03 22:12 #

    16살 짜리가 뭘 알았겠습니까...
  • 지나가던 손경수 2010/01/02 22:12 # 삭제 답글

    약물 하나때문에 인생을 망치다니…
    역시 인생은 허망한 것이군요…
  • 야스페르츠 2010/01/03 22:13 #

    약물 중독은 주의해야 돼요. ㅎㅎ
  • paro1923 2010/01/03 00:50 # 삭제 답글

    [ 또한 또다른 아들인 탁발소(拓拔紹)는 평소 잔혹한 짓을 많이 하여 분노를 샀는데... ]

    ...약도 약이지만, 탁발소부터가 애초에 왕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한 녀석이었군요.
    차라리 제 주제를 알고 형을 옹립하는 선에서 만족했으면 좋았을 것을, 과욕을 부리다...
  • 야스페르츠 2010/01/03 22:15 #

    그냥 개망나니죠 뭐...
  • 海凡申九™ 2010/01/03 03:06 # 답글

    白礬!!!!!!!!!!!!!!!!!


    ㄷㄷㄷ

    그거 황산 화합물 아닙니까? oTL
  • 야스페르츠 2010/01/03 22:15 #

    헐...
  • 2010/01/03 16: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1/03 22:16 #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
  • 2010/01/03 22: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1/04 14:02 #

    호적에서 팠다능. ㅋㅋㅋ
  • 들꽃향기 2010/01/03 23:17 # 답글

    3무 1종의 탄압 중 하나로 불리는 불교탄압도 설마 마약증상 때문이었을까요 -_-;;
  • paro1923 2010/01/04 11:15 # 삭제

    뭐어, 그건 그래도 국력 증진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긴 했지만요...
  • 들꽃향기 2010/01/04 14:00 #

    paro1923 님// "불교를 탄압하면 키가 크고(?), 전세가 늘고 화폐량이 증가한다."가 중국 왕조의 정통적인 페턴-_-;; 이긴 했죠 ㄷㄷ
  • 야스페르츠 2010/01/04 14:02 #

    3무는 태무제라능. 도무제가 아니에요. ㅎㅎ
  • 들꽃향기 2010/01/04 18:14 #

    야스페르츠님// 앗 그렇군요. 착각했습니다. 저도 햇갈렸네요. 저도 오석산을 먹었나 봅니다. (얼버무린다.)
  • 똥개 2010/01/08 00:22 # 삭제 답글

    탁발소는 그 당시 청하왕이라는군요. 근대 탁발소는 죽었습니까?
  • 야스페르츠 2010/01/08 09:40 #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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