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4 11:01

취리산 감상문 雜想

초록불 님의 신작 취리산을 지난 월요일에 배송받았습니다. 나홀로 렛츠리뷰에는 실패했지만 그 즉시로 사서 월요일에 받았지요.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절반, 집에 들어와 밥먹고 다시 나머지 절반을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몇몇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취리산에는 원작이 있지요. ㅎㅎ 초록불 님의 단편집인 <다정>이 취리산의 원작(?)이 됩니다. <다정>을 재작년에 얻어 읽어보았던지라 취리산을 읽으면서 계속 데자뷰를 느꼈다는.... 아무래도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다보니...

여하튼 짧게 감상을 긁적여 보겠습니다.


초록불 님의 역사소설 시리즈(?) 세 권을 모두 읽어본 사람으로서의 감상은, 일단 로맨스가 아주 약하다는 느낌입니다. 전작인 숙세가, 자명고가 모두 로맨스에 중심이 맞춰져 있던 것에 비해 이번 취리산은 로맨스 보다는 역사에 더욱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게다가 이야기가 대부분 주인공 사충 한 사람의 시점으로만 서술되어 로맨스의 상대역인 보주의 감정·심리를 관찰자의 관점으로밖에 알 수 없어서 더욱 약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실상 1인칭 시점이다보니 약한 로맨스가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맨스를 다룬 분량이 상대적으로 아주 적은데도 불구하고 시점의 차이로 상대역의 심리를 추측밖에 할 수 없었기에 적은 분량에서도 절절한 감정들이 살아나더군요.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소설 속의 설정된 나이로 보자면 사충과 보주는 나이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원조교제 필이 있다는..... 아무래도 나 변태인 듯...


역사의 격랑을 헤쳐 나가는 사충의 활약과 백제부흥운동의 여러 사정들은 실제 역사와 소설적 상상력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이어졌습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그분을 사충이 암살한 것으로 설정한 상상력에는 그저 입만 쩍 벌어진다는...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구요.. 뭐 그것이 소설가의 상상력이니까 괜찮겠죠. ㅎㅎ 지못미 유승호

저는 개인적으로 비극을 선호합니다. 아무래도 취리산은 眞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사건과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손에 땀을 쥐고 볼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실패한 사건을 다루고 있기에 비장함과 비극미(?)가 충분히 남아 있어 더욱 흥미진진 했지요.


시간의 이동이 뒤죽박죽이었던 점은 조금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사건이 서술되고, 그 사이의 사건은 과거 회상처럼 서술되다가 어느새 현재의 사건처럼 서술되는 등, 시간의 이동이 매끄럽지 못했던 느낌이 조금 듭니다. 이영도의 그림자 자국만큼 시간 이동이 뒤죽박죽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작들에 비해서는 조금 혼란스러웠지요.

또 한가지 단점이라면, 전작과 달리 왕을 시호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전작에서는 백제나 고구려 특유의 왕호를 사용해서 사실감을 높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태종무열왕, 문무왕, 고종 등 시호나 묘호로 왕을 지칭하고 있어 약간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역사를 배우고 아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 것이겠지요.



총평이라면, 삼국통일기의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의 활약을 느껴볼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전작에 비해 역사적 사건의 비중이 아주 컸고,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유명한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녹아들어가 역사 소설을 읽는 재미가 배가된 것 같네요. 다만 역사에 흥미가 없는 분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이상 감상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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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초록불 2009/12/24 11:06 # 답글

    왕의 시호 문제가 매우 마음에 걸렸는데 역시 지적이 나왔네요. 처음에는 그냥 이름으로 표기를 햇습니다. 춘추, 법민... 그러다 보니까 법민이 왕이 된 부분에서 읽는데 혼동이 온다는 지적이 생기고...

    역사 소설에서 이런 부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 더 고민을 해보아야하겠습니다. 첫 감상평이네요. 더구나 구매독자의...ㅠ.ㅠ (감격의 눈물)

    말씀하신 바를 새겨서 다음 작 <가인>에 충실히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12/24 16: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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