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3 22:12

오호망양(五胡望洋) 30 -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역사

409년의 새해가 밝았다. 남연의 궁궐에서 신년을 여는 조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번의 조회는 무엇인가 허전했다. 황실의 위엄에 걸맞는 웅장한 태악이 울려 퍼져야 했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어설픈 풍악 뿐이었다. 요흥의 진 정권에 태악의 악기와 악공들을 모두 바쳤기 때문이다. 남연 정권의 황제 모용초는 잃어버린 태악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마음 먹었다. 남쪽의 동진 정권을 공격해서 악공들을 약탈해 오겠다는 심산이다.

"돌아가신 황제께서는 옛 도읍이 기울어져 전복되었으므로 삼제(三齊 : 산동성 지역)에서 날개를 움츠렸습니다. 폐하께서는 군사를 양성하고 백성들을 쉬게 하며 위의 틈을 살펴서 선대의 대업을 회복하여야 하는데 반대로 남쪽의 이웃을 침략하여서 원수를 넓히려고 하니 옳습니까?"

주위에서 반대가 빗발쳤다. 하지만 이미 독재 체제를 구축한 모용초와 그의 친우 공손오루에게 있어서 주위의 반대는 귀찮은 벌레의 날갯짓 소리에 불과했다. 결국 어렵사리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동진 정권에 대해서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회수 북쪽이 약탈당하고, 수천 명의 백성들이 끌려갔다.


모용초. 그는 장안에서 요흥의 막하에 어렵게 살아가고 있을 때부터 총명한 인재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진 정권에 채용될 것을 두려워하여 미친척하면서 모습을 감췄지만 그를 알아보고 경계하는 눈초리가 많았다. 그러나 그의 재기는 황제로 즉위하고 난 뒤 엉뚱한 방향으로 발휘되었다.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폭정을 행하는데 골몰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정치에 반발해서 일어난 대대적인 반란을 단숨에 진압해 버린 것으로 볼 때, 모용초의 재능은 분명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걸(桀)이나 주(紂)와 같았을 뿐.

사치와 폭압으로 얼룩진 모용초의 치세는 한때 밝게 빛나던 그의 재능도 점차 바래게 했다. 남연 정권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던 공손오루도 모용초의 재능을 가리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공손오루를 통해 매관매직이 이어졌고 남연의 정치는 날로 혼미해져 갔다.


난데없이 약탈을 당한 동진 정권은 즉각 복수전을 준비했다. 이 복수전은 동진의 정권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유유에게도 기회였다. 이미 재조지공(再造之公)으로 최고의 권위와 권력을 가진 유유였지만, 외정의 성과까지 가지게 되면 그 힘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409년 4월 기사일(11일), 유유는 동진의 수도 건강을 떠나 생애 최초의 북벌에 나섰다.

"연인(燕人)이 만약 대현(大峴)의 험한 곳을 막거나, 혹은 성벽을 견고히 하고 청야(淸野) 작전을 펼치면 대군이 깊이 들어가도 공로를 세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차 돌아 나오지도 못할 것이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이것을 깊이 생각하였소. 선비족은 탐욕이 많아 원대한 계획을 알지 못하며, 나아갈 때에는 노획한 것을 탐하고 물러날 때는 벼의 싹도 아까워하오. 그들은 우리의 외로운 군대가 멀리 들어와 오랫 동안 유지하지 못한다 생각할 것이요. 그들이 나아간다 해도 임구(臨朐)를 점거하고, 물러난다 하여도 광고(廣固)를 지키는데 불과할 것이니 험난한 곳을 지키거나 청야 작전을 펼칠리가 없소. 감히 여러분에게 이를 보장하겠소이다."

북벌군의 진중에서 이런 의견이 오가고 있을 무렵, 남연의 조정에서도 격론이 벌어졌다.

"의당 대현을 점거하여 들어올 수 없도록 하고 날짜를 보내며 기다려 그 날카로운 기운을 저지하여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정예의 기병을 동쪽으로 보내 그 양도를 끊고 태산의 서쪽에서 압박하여 앞뒤로 그들을 치는 것이 최상의 계책입니다.
각 수재(守宰)에게 명하여 험한 곳에 의지하여 스스로 지키고 청야작전을 펼쳐 적이 물자를 얻지 못하도록 하면 저들은 먹을 것이 없는데다 싸우고자 하여도 싸울 수 없으므로 몇달 안에 제압할 수 있으니 이것이 중급의 계책입니다.
도적들을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어 대현을 지나 성 앞까지 들어오게 하고 맞서 싸우는 것이 하급의 계책입니다."

"올해는 별이 제(齊)에 머물고 있어 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이기게 된다. 저들은 멀리서 와서 피폐하여 그 기세가 오래 갈 수 없다. 어찌 어린 싹을 베고 백성들을 옮겨 우리 무리가 피폐해 지도록 하겠는가? 저들이 대현으로 들어오고 난 뒤 정예의 기병으로 그들을 유린하는 것만 못하다. 어찌 이기지 못할까 염려하는가!"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용초는 유유가 예상한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북벌군이 대현을 지나 임구에 이르기까지 변변한 저항 한 번 없었다.


모용초는 임구성을 뒤로 하고 평원에 내려와 5만의 병력으로 북벌군과 정면으로 맞서려 하였다. 적군을 고스란히 영토 안으로 모셔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홈그라운드의 이점마저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다. 6월 기사일(12일) 마침내 전투가 벌어졌다.

양군의 전투는 해가 기울도록 계속 이어졌다. 막상 막하의 승부였다. 그러나 한 발 더 멀리 내딛은 것은 유유였다. 유유는 과거 한신(韓信)의 고사를 재현할 계획이었다. 예비대가 전장을 우회하여 남연군의 근거지인 임구를 점거해 버린 것이다. 배후의 성에서 적군의 깃발이 휘날리고 함성이 터져 나오자 남연군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모용초는 단기 필마로 수도 광고로 퇴각했다.


병자일(19일), 북벌군은 광고성을 공격하여 외성(外城)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모용초는 내성(內城)을 간신히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모용초는 자신의 상국(上國)이었던 진 정권에 원군을 청한다. 그러나 진 정권은 모용초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 유발발의 반란으로 신나게 후장을 털리고 있었으니. 요흥은 유유에게 사신을 보내 위협을 했지만, 유유는 진 정권의 정황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으니 위협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진 정권에 원군을 청하러 갔던 사신들까지 유유에게 체포되어 광고성 앞에 공개되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모용초와 남연군의 농성전은 가히 영웅적이었다. 한줌도 되지 않는 군사로 반년 가까이 버틴 끝에 410년 2월 정해일(5일), 마침내 성이 떨어졌다.

모용초는 동진 정권에 연줄이 닿아 있던 부하 유경선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유유에게 체포되었다. 13년 동안 2명의 황제가 다스렸던 나라, 남연 정권의 멸망이다.





덧글

  • 른밸 2009/12/23 22:19 # 답글

    저 먼길을 가는동안 요격 한 번 안하고 유유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니-_-;; 이래서 재능이 있는 것보다 재능을 어디로 쓰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12/24 09:40 #

    어찌보자면 재능이 넘쳐서 자만했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ㅎㅎ
  • 라라 2009/12/23 23:44 # 답글

    신하 상대로 한 재능이 외적에겐 발휘 안된 모양,,

    그 잘난 친우는 어찌 됐는지요?
  • 야스페르츠 2009/12/24 09:41 #

    공손오루는 첫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 도망쳐 버렸습지요.
  • Allenait 2009/12/24 01:43 # 답글

    결국 모용초는 유유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꼴이군요
  • 야스페르츠 2009/12/24 09:41 #

    유유가 진짜 인물입니다. ㅎㅎ
  • 들꽃향기 2009/12/24 13:20 # 답글

    그래도 효자는 효자군요 -.- 확실히 산동반도에서 유일한 지형적 장애인 태산산맥의 대현을 포기하다니 모용초도 참 안목이 없습니다 ㄷㄷ

    아니면 모용초 스스로가 독재정권을 펼침으로서 견벽청야를 시행할 경우에 이반할 수 있는 민심의 불안이 있었고, 그에 따라 견벽청야나, 대현을 통한 장기수비를 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요 ㄷㄷ
  • 야스페르츠 2009/12/24 16:15 #

    흠... 사료의 이면을 살펴보자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려요~
  • 지나가던 손경수 2009/12/25 15:23 # 삭제 답글

    고우영 화백의 십팔사략에서는 유유가 후연을 멸망시켰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지금 남연의 멸망과 딱 들어맞네요. 고우영 화백이 아마도 후연과 남연을 혼동하신듯...
  • 야스페르츠 2009/12/26 00:30 #

    헐... 고우영 화백이 실수한 게 좀 많네요.
  • paro1923 2010/01/01 09:56 # 삭제

    사실 십팔사략은 양반입니다. 그나마 오류가 '적은' 편이지요.
    조선왕조사를 야사 형태로 다룬 '수레바퀴' 등을 생각하면... 으음......;;;;
  • 한단인 2009/12/25 18:28 # 답글

    헐퀴.. 악사 몇 납치하려고 전쟁을 벌이다가 쪽박을 차다니.. ㄷㄷㄷ
  • 야스페르츠 2009/12/26 00:31 #

    난 시크한 선비 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라는 느낌..
  • 흑접시 2009/12/26 10:42 # 삭제 답글

    모용덕이 뼈빠지게 고생해서 세운나라 남연이 저렇게 허무하게 무너졌군요. 사람이 재주만 믿고 교만하면 결국 패가망신하게 된단걸 역사가 잘 말해주는듯...
  • 야스페르츠 2009/12/28 11:57 #

    너무 허무하게 무너졌죠. ㅜㅜ
  • 똥개 2010/01/08 00:15 # 삭제 답글

    유유가 모용초를 죽였나요? 그의 최후는? ㄷㄷ
  • 야스페르츠 2010/01/08 09:40 #

    모용초는 건강으로 끌려가서 처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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