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8 23:45

오호망양(五胡望洋) 29 - 용오름 역사

때는 391년, 탁발부의 군대가 오르도스의 흉노 부락을 급습하였던 때의 일이다. 새외를 동서로 나누어 서쪽 절반을 다스리던 유위진(劉衛辰)의 세력이 탁발부의 기습으로 어이없이 무너졌던 그날, 유위진의 일족은 모두 차디찬 시체가 되어 황하에 버려졌다. 유일하게 살아서 도망칠 수 있었던 이는 유위진의 막내아들 유발발 한 사람 뿐이었다. 탁발규의 추격을 피해 초원을 정처 없이 떠돌던 유발발은 몇몇 뜻있는 인사들의 도움으로 당시 진 정권의 영향권에 있던 몰혁간의 부락으로 망명할 수 있었다.

몰혁간은 유발발에게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다. 요흥은 유발발의 능력을 높이 사서 그를 장군으로 삼아 오르도스 방면의 수비대장으로 임명하려고 하였는데, 그의 동생인 요옹(姚邕)이 반대하였다.

"유발발은 윗사람을 받드는 것이 게으르고,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은 잔혹하며, 욕심이 많고 교활하고 어질지 않고 거취를 가벼이 합니다. 그를 총애하는 것이 분수를 넘어서 끝내 변경에서의 걱정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

요흥은 이에 따라 유발발의 기용을 그만두었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유발발을 기용하였다. 삭방(朔方) 일대의 2만여 락(落)을 배속하여 오르도스 일대의 위 세력과 대치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갔다.

애초에 진 정권과 위 정권은 적대 관계였다. 그러나 시벽에서의 결전이 무승부로 끝이 난 뒤에는 암묵적인 평화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407년 여름, 두 정권은 암묵적인 평화를 조금 더 전진시키기로 결정한다. 서로 억류하고 있던 포로를 교환하고 양 정권 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꼴이 유발발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탁발부는 유발발에게 불구대천의 원수다. 게다가 야망에 불타는 그에게 두 정권의 화해는 득 될 것이 없다.

407년 6월, 유발발은 마침내 진 정권에 반기를 들고 오르도스에서 거병한다. 자신의 장인인 몰혁간을 습격하여 죽인 유발발은 그의 무리를 병합하여 세력을 키우고 대하천왕(大夏天王) 대선우(大單于)를 자칭, 연호를 용승(龍昇)이라 정한다. 오호십육국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건설된 나라, 호하(胡夏)의 등장이다.


"나의 대업이 처음 시작되어 병사의 무리가 아직 많지 않고, 요흥 역시 한 시대의 영웅이기에 관중은 아직 도모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오로지 한 개의 성만을 견고하게 지킨다면, 그는 반드시 힘을 합쳐서 나에게 대항할 것이고, 무리로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니 망하는 것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용맹스런 기병으로 바람 같이 내달려서 그들이 예기치 못한 곳으로 나와 앞을 구원하러 오면 뒤를 치고, 뒤를 구원하면 앞을 공격하여 그들을 피로하게 하고 우리는 떠돌아다니면서 태연자약한 것만 못하다. 10년이 되지 않아 영북(嶺北)과 하동(河東)은 모두 우리의 소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요흥이 죽기를 기다리면 그의 후계자는 어리석고 나약하니 천천히 장안을 빼앗는 것이 다 나의 계획 속에 있다."

유발발의 이와 같은 계획은 유목민족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전쟁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호언장담처럼 근거지를 갖지 않고 철저한 유목민족의 전략으로 일관한 그의 군대에 진 정권은 속수무책이었다. 위수 북쪽은 유발발의 신출귀몰한 습격으로 낮에도 성문을 닫아 걸어야 할 정도로 위축되었고, 요흥은 동생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할 뿐이었다. 유목민족에게 특화된 유격전을 벌였기 때문에 유발발의 활동 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장안의 코 앞에서 싸우는가 하면 멀리 양주의 독발부를 공격하기도 하였으니 관중의 북부 지역을 모조리 휩쓸고 다닌 셈이다.


409년의 새해가 밝자 요흥은 유발발의 위협에 진지하게 대응하기로 한다. 동생 요충(姚沖)에게 4만 명을 주어 먼저 출정시키고 자신도 그 뒤를 따른다. 그러나 상황은 요흥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달았다. 농서 일대에서 세력을 갖추고 있던 걸복부가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선봉으로 출정한 요충은 반란을 모의하는 등 내우외환이 잇따른 것이다. 요흥을 따라 출정하였던 걸복건귀는 진영을 탈주하여 걸복부로 도망쳤고, 이로써 걸복부는 사실상 진 정권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되었다. 요충의 반란도 시작되기 전에 요충의 목을 베어 무마하기는 했지만, 요흥의 작전은 이미 꼬일대로 꼬인 뒤였다.

409년 초부터 장장 9개월에 걸쳐 요흥과 유발발은 쫓고 쫒기는 추격과 전투를 벌였던 것 같다. 그러나 유격전에 특화된 유발발의 군단과 정규군인 요흥의 군단은 애초부터 서로 싸움이 되질 않았다. 보급도 여의치 않고 유격전에 시달린 끝에 요흥은 크게 패배하였고, 만신창이가 된 군대를 이끌고 장안으로 귀환하였다.

이로써 사실상 장안의 영향권에 있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관중의 북쪽 지역은 모두 유발발의 세력이 장악하게 되었다. 유목국가였던 하 정권은 전쟁을 하면 할수록 세력이 충실해지고 부유해졌지만, 정주국가였던 진 정권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피폐해진다. 게다가 서쪽에서 독립한 걸복부 정권의 공격도 이어지고, 동쪽에서는 동진 정권의 압력도 점점 심해져 간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태였다. 반면 하 정권은 계속해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하 정권의 급성장이 가능했던 배경 가운데 기이한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국경을 접하고 있던 탁발부의 위 정권과 특별한 대립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더 애매모호한 문제는 하 정권이 성장하면서 차지하였던 지역이 과거 위 정권이 차지한 오르도스 지역이라는 점이다. 하 정권과 위 정권이 서로 싸우지도 않았는데, 하 정권은 어느새 위 정권의 영토였던 오르도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당시 위 정권은 탁발규가 젊은 나이로 죽고 탁발사가 어렵사리 즉위하는 혼란의 와중에 있었던 만큼 하 정권을 공격하는 등의 활동은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위 정권도 이 무렵까지는 유목국가에 가까운 체제를 갖추고 있었던 만큼, 광활한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오르도스 평원에는 사실상 국경이라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기록만 놓고 보자면 하 정권이 오르도스를 정복하는 적극적인 군사 활동은 없었던 만큼, 하 정권의 힘이 강대해 지면서 자연스럽게 오르도스 평원 지역이 탁발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하 정권 아래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자세한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413년 무렵에 유발발의 하 정권은 오르도스 평원 대부분을 지배하는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도성을 쌓는 대역사에 돌입한다.

"짐은 바야흐로 "천하를 통일하여 만방을 군림할 것(統一天下,君臨萬邦)"이므로 의당 새로운 도성에 통만(統萬)이라 이름을 붙이겠다."

통만성의 축성은 엄청난 역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축성 책임자로 임명되었던 질간아리는 매우 잔혹한 인물이었다. 성을 쌓은 재료는 흙이었는데, 이 흙을 쪄서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질간아리는 송곳을 가지고 다니면서 찐 흙을 찔러서 일촌(一寸)이라도 들어가면 그 인부를 죽여 그 시체를 함께 쌓았다고 한다. 주1) 얼마나 많은 시체가 함께 성벽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게 완성된 통만성은 견고하기가 천하 제일이었다. 황량한 초원 한 가운데에 하얗게 빛나는 성이 세워진 것이다.

※통만성의 현재 모습 (출처 : http://shaanxi.cctv.com/20090429/109823.shtml)


413년 3월, 유발발은 통만성에 수도를 정하였다. 그리고 성씨를 고쳐 혁련씨(赫連氏)라 하였다. 오호십육국시대 최강의 폭군 중 하나로 꼽히는 혁련발발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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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통만성의 축성 시에 벌어진 이 잔혹한 일이 혁련발발의 위업(?)이라고 세간에 잘못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이 일은 혁련발발이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부하 질간아리가 한 일이다. 물론 혁련발발은 질간아리의 이 행동을 보고 충성스러운 부하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그의 위업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덧글

  • Allenait 2009/12/18 23:50 # 답글

    ....어이쿠야 이거 잔인한 인물이었군요(...) 그나저나 흙을 어떻게 찌면 송곳이 안 들어가는 겁니까
  • 야스페르츠 2009/12/18 23:51 #

    맛있게요... (도주)
  • 海凡申九™ 2009/12/22 00:08 #

    석회 어쩌고 하던데 기억이 안 나서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전한대의 장성 건축 양식을 도입한 걸로 보임미다


    즉, 석회를 통한 화학적 변이로서 강화를 하고 전한대의 장성건축 기술을 도입,
    압착식 건축을 통해 쌓고 빻고 압축한 뒤 또 그것을 반복해 도성을 건축했겠죠...
  • 들꽃향기 2009/12/18 23:52 # 답글

    유발발은 윗사람을 받드는 것이 게으르고" -> 왠지 제 얘기 같기도 하군요. ㄷㄷ

    사실 위 정권이야 결국 본인들이 발원한 기원지 인근조차도 유연이 세력을 넓히게 했으니, 말씀하신대로 아직 이 시기의 북위정권은 국경이 확정되지 않거나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편은 이제 계속해서 하드코어 고어물이 이어지겠군요. (묵념)
  • 야스페르츠 2009/12/20 07:23 #

    또 다른 귀축. ㅎㅎ
  • 을파소 2009/12/18 23:54 # 답글

    이 시대는 "저 색히 기용하지 마요."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따르는 게 이로울 거 같군요.
  • 야스페르츠 2009/12/20 07:23 #

    그러다가 왕맹 같은 기재를 놓치는 일이 또 있습니다. ㅎㅎ
  • 현암 2009/12/19 00:00 # 답글

    역시 사람은 잘 봐야 하는 거였군요. 그나저나 그 흙은 참 잘 구웠네요
  • 야스페르츠 2009/12/20 07:23 #

    맛있게 잘 구웠습니다. (도주)
  • 2009/12/19 00: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12/20 07:24 #

    이번에는 아쉬웠어요. 다음 기회를...
  • 한단인 2009/12/19 00:44 # 답글

    오호.. 그래서 혁련발발이군요.
  • 야스페르츠 2009/12/20 07:24 #

    가끔 무협지를 보면 혁련씨가 많이 나오죠. 그 혁련이 이 혁련이라능. ㅎㅎ
  • 아브공군 2009/12/19 08:44 # 답글

    폭군이라... 악희님 포스팅만큼 잔인한 인물이 나올 것 같은....
  • 야스페르츠 2009/12/20 07:25 #

    하지만 저는 악희님처럼 포스 있게 쓸 수가 ㅇ벗다능.
  • asianote 2009/12/19 10:20 # 답글

    이거 성을 통째로 쪘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한제 교수님이 쓴 책에 나와 있더군요.
  • 야스페르츠 2009/12/20 07:25 #

    헉. 성을 통째로 쪄요? 책을 읽은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 我幸行 2009/12/19 12:50 # 답글

    황토로 빚어 잘 말린 흙벽돌이라면 송곳으로 찔러도 한치(1寸 3cm)는 들어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12/20 07:25 #

    이, 이런 냉혈한.... (응?)
  • hyjoon 2009/12/19 15:09 # 답글

    고조선의 준왕과 위만 비슷한 스토리가 이쪽에도 있군요...ㅎㅎ
    서로가 서로를 배우고 닮는 아름다운(?) 역사의 반복이랄까.......(퍽!)
  • 야스페르츠 2009/12/20 07:25 #

    역사는 원래 반복되는 것입니다아아아
  • dsd 2009/12/20 17:43 # 삭제 답글

    오호망양이 무슨뜻인가요?
  • 야스페르츠 2009/12/20 21:45 #

    오호십육국의 오호와 望洋을 합쳐서 제가 만든 겁니다. 멀리 바라다 본다는 뜻인데, "역사의 흐름"을 바다나 강으로 연상을 해서, 너른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로 향해간다는 의미로 같다 붙여 봤습니다. ㅎㅎ
  • paro1923 2009/12/20 23:24 # 삭제 답글

    뭐랄까... 필승테크든 막장테크든 수천 년 전부터 다 정석(?)이 있음에도
    흥하는 자 따로, 망하는 자 따로인 걸 보면 참 알다가도 모를 게 역사의 흐름 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12/21 09:52 #

    天命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
  • Reset04 2009/12/21 02:06 # 답글

    胡夏라는 국호는 후대에 3대의 夏와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인가요?
  • 야스페르츠 2009/12/21 09:53 #

    넵. 혁련하라고도 부르지요. 3대의 하나 송나라 시기의 서하와 구분하기 위해서 붙인 것 같습니다.
  • 2009/12/22 00: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12/22 09:11 #

    토닥토닥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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