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3 22:43

오호망양(五胡望洋) 28 - 호랑이, 이빨이 빠지다. 역사

405년 여름, 장안의 궁정에 유유의 사신이 찾아왔다. 사신은 진 정권과 평화조약을 맺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 조건이 참으로 기묘했다. 남향(南鄕)을 비롯한 12개 군의 할양을 요구했던 것이다. 6년 전, 진 정권이 낙양을 점령했을 당시 회수와 한수 이북의 여러 지역이 진 정권에 투항했던 일이 있다. 이들 지역 대부분에 해당하는 12개 군을 평화의 대가로 내놓으라는 기묘한 이야기이다.

"천하의 좋은 일이란 한 가지인 것이다. 유유가 미천한 출신에서 일어나 진 왕실을 구했으니, 내가 어찌 몇 개의 군을 아깝다고 여겨 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天下之善一也,劉裕拔萃起微,匡輔晉室,吾何惜數郡而不成其美乎!


요흥은 신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낙양 동쪽의 12개 군을 동진에 반납(?)한다.

상식적인 선에서 보자면, 이런 조건은 내치는 것이 정상이다. 어쨌거나 내 땅인데, 그것을 세치 혀와 종이 몇 장으로 내놓으라는 것이 말이 되나. 저런 조건을 내거는 것은 최소한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위협을 가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땅을 내놓고 평화를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짓밟힐 것이냐. 사료에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지만, 유유의 위세에 진 정권 요흥이 허리를 숙였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료에 겨우 몇 줄 기록되어 있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진 정권은 서서히 몰락해가기 시작한다.


진 정권의 대들보는 천왕 요흥을 중심으로 내치를 다지는 요서, 군사를 책임지는 요석덕의 3인이었다. 요흥이야 이제 겨우 3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두 숙부는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요흥이 요장의 뒤를 이은지 10년, 진 정권의 부흥을 이끌었던 요서와 요석덕도 무대에서 퇴장할 때가 된 것이다. 두 사람의 기록은 406년을 끝으로 사라진다. 406년의 기록 또한 서방의 군진에서 머물고 있던 요석덕이 조현한 기록으로, 이 무렵에 이미 두 사람은 나이가 많아 현역으로 활약하지 못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 두 사람의 사망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대략 이 무렵부터 요석덕과 요서는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 것으로 보인다.

나라를 지탱하던 대들보가 사라진 진 정권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머나먼 서쪽, 양주의 양 시리즈들이 조심스러운 독자 행보를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진 정권에 속해 있던 여러 군소 세력들에 대한 통제력이 조금씩 약화되었던 것이다.

사실, 관중은 관동과 달리 지방 세력이 전통적(?)으로 강했다. 강, 저, 흉노, 선비 등 여러 이민족들이 뒤섞여 살았고, 이들은 모두 독자적인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 진 정권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들 지방 세력들을 통제했지만, 이들을 완전히 제압해서 흡수해 버리지는 못하였다. 양성(楊盛)의 구지(仇池), 걸복건귀의 걸복부, 몰혁간(沒奕干) 등 여러 세력들이 진 정권의 기치 아래서 반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양주의 남, 북, 서량 정권은 사실상의 독립 국가이기도 했다.

이들 군소 세력들이 서로 군사적 충돌을 벌이기 시작하자 요흥도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였다. 특히 머나먼 양주 지역의 상황은 심각했던 것 같다. 저거몽손의 북량과 독발녹단의 남량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흥은 독발녹단이 3천 필의 말과 양 3만 마리를 바치자, 이를 치하하는 한편 그를 달래기 위해서 독발녹단을 양주자사로 삼고 양주의 중심 고장에 진수하도록 한다. 양주 통치의 중핵인 고장을 독발녹단에게 줘 버린 것이다.

즉각 신료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요흥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고 일을 무르기 위해 고장과 악도(樂都 : 남량의 수도)로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독발녹단은 어렵사리 얻게 된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고장은 거의 점령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점거되었고, 고장을 통치하고 있던 왕상은 장안으로 쫒겨났다. 사실상 양주를 상실한 셈이다.

한편 농서 지역에서 진 정권을 위해 보위하고 있던 걸복건귀의 세력 확대도 눈에 띈다. 요흥은 걸복건귀의 힘이 너무 강한 것을 경계하여, 그가 장안으로 조회하러 오자 곁에 남겨두기 위해 중앙 관직에 임명한다. 걸복부는 걸복건귀의 세자 걸복치반(乞伏熾磐)이 대신 다스리게 되었다. 저족의 구지 정권은 한중을 점거하고 동진 정권의 책봉을 받아 사실상 독립한다. 진 정권의 변방 지역들이 차근 차근히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리고 407년 여름, 흉노의 유발발(劉勃勃)이 오르도스 일대에서 자립함으로써 진 정권의 본격적인 몰락이 시작된다.





덧글

  • 라라 2009/12/13 22:47 # 답글

    부견의 후예가 못한 일이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이뤄지는군요
  • 야스페르츠 2009/12/14 09:57 #

    멸망은 필연입니다. ㅎㅎ
  • asianote 2009/12/13 22:48 # 답글

    그 유명한 통만성 이야기도 나오겠네요. 화살로 갑옷을 뚫지 못하면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죽이고 갑옷이 뚫리면 갑옷 만드는 장인을 죽였으며 통만성을 지으면서 한치라도 칼 끝이 들어가면 담당자를 죽였다는 그 하드코어한 이야기.
  • 야스페르츠 2009/12/14 09:57 #

    귀축 시리즈 시즌2 시작입니다. ㅎㅎㅎ
  • 2009/12/13 22: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12/14 09:58 #

    아직 제주도도 못가봤다능.
  • Allenait 2009/12/13 23:40 # 답글

    진짜 너무 쉽게 넘겨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야스페르츠 2009/12/14 09:59 #

    무엇인가 위협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냥 내줄 이유가 없죠. 자기가 무슨 제환공도 아니고서야.
  • 남연아~ 2009/12/14 17:17 # 삭제 답글

    후진은 친족 보정(?!)이 떨어지니까 정말 볼품이 없네요. 요흥이 내공이 부족했나?
  • 야스페르츠 2009/12/15 12:47 #

    요흥은 부견 같은 천재형 군주는 아니었나봅니다. ㅎㅎ
  • 의문점 2009/12/14 20:34 # 삭제 답글

    이 당시의 혼란도 수나라 말기의 혼란이랑 맞먹을텐데 당나라는 굳건히 세워지고 이들은 계속 단명왕조인가

    요? 뛰어난 영걸이 없어서 그런건가..
  • 야스페르츠 2009/12/15 12:47 #

    그걸 제가 알면 여기 있겠습니까? ㅎㅎ
  • 세계사는내친구 2009/12/15 15:38 # 삭제 답글

    야스페르츠님! 뒷북치는것 같아서 미안한데요 26편 용호상박에서 나왔던 後蜀이라는 나라 말인데요,후일 5대10국시대에 등장하는 전촉, 후촉과는 다른 나라입니까?
  • 들꽃향기 2009/12/15 15:41 #

    5대 10국의 후촉은 후당 장종의 명을 받고 전촉을 멸망시키러 갔던 장군인 맹지상이 자립하여 세운 나라로, 남북조시기의 후촉과는 다른 나라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12/15 15:50 #

    당연히 5대10국시대와는 다른 나라이지요. 5호16국시대의 후촉은 한족 출신의 초종이라는 사람이 세운 나라입니다. 혼란기를 틈타서 잠깐 일어섰다가 망해버린 나라라서 16국에 끼지 못하는 비운의 국가이지요.
  • 들꽃향기 2009/12/15 15:42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일전에 이런 내역을 몰랐을때에는 서역과 남연을 굴복시킨 후진정권이 갑작스럽게 유유와 혁련발발에게 무너졌던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이러한 내부사정이 있었군요.
  • 야스페르츠 2009/12/15 15:51 #

    정리하는 저도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아주 흥미진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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