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04 23:30

오호망양(五胡望洋) 26 - 용호상박 역사

오르도스.

많은 유목민족들의 터전이자 한족 왕조들이 유목민족들을 경영하였던 땅이다. 오호십육국 시대의 혼란기 속에서 오르도스 지방에는 흉노 철불부의 유위진(劉衛辰)이 세력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탁발부가 흥성하면서 철불부를 멸망시켰고 오르도스를 삼켜버렸다. 이로써 탁발부의 위와 강족의 후진 정권은 오르도스 사막을 경계로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위와 후진, 용과 호랑이의 첫 대결은 바로 이 오르도스 평원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탁발부와 후진 정권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탁발규는 후진 정권과 선린을 위해 혼인 동맹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흥은 탁발규가 모용씨를 이미 왕후로 세웠다는 사실을 알고 혼인 동맹을 파탄냈고, 탁발규는 보복으로 402년 초부터 오르도스 일대를 공격한다.

오르도스 지역에는 고평을 지키는 몰혁간(沒奕干) 외에도 출불(黜弗), 소고연(素古延) 등의 유목 부락들이 후진 정권에 복속해 있었다. 탁발규는 군소 부락들을 습격하는 한편 고평을 공격하여 몰혁간을 패주시켰다. 한편으로 병주의 평양에서도 하동 일대를 공격하는 등 국경 전체에 걸친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북위의 공격으로 관중의 여러 성들이 동요했다. 낮에도 성문을 걸어 잠글 정도였다.

요흥은 위를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402년 여름이 되자 요흥은 대규모 군대를 발동해서 위 정권의 지배하에 있는 병주를 향해 출병하였다. 선봉으로 요평(姚平)이 이끄는 4만 명이 나서고 요흥은 4만 7천 명의 본군을 이끌고 뒤따랐다. 일찍 출발한 선봉 요평은 위의 건성(乾城)을 60여 일 동안 공격한 끝에 함락하고 더 앞으로 나아가서 시벽(柴壁)에 이르렀다.


이에 맞서는 위의 진용은 탁발순, 장손비 등이 이끄는 선봉대와 탁발규가 직접 이끄는 본대였다. 탁발규가 영안(永安)에 도착하자 요평은 2백의 기병을 보내 척후를 시켰다. 그러나 척후병은 장손비에게 걸려 오히려 사로잡혔고, 요평은 일단 물러서 시벽을 지켰다.

탁발규는 시평을 포위하고 분수(汾水)를 막아 요흥의 진로를 차단하려고 하였다. 요흥은 시벽의 맞은편인 천도(天渡)를 점거하여 시벽의 포위를 뚫고 보급로를 이으려고 하였는데, 탁발규는 이러한 의도를 파악하고 분수에 부교를 설치하여 천도까지 점거해 버린다. 요흥은 포판에 발이 묶여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여름을 고스란히 보내고 가을이 되어서야 요흥은 포판을 나와 진격하였다. 탁발규는 3만의 병력으로 길목인 몽갱(蒙坑)에서 요흥과 맞붙었다. 전투 결과 요흥은 1000여 명의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으며, 탁발규는 길목들을 틀어쥐고 시벽에 대한 포위를 더욱 강화한다.

요흥은 분수의 서쪽에서 지형에 의지해 대치했다. 탁발규의 군대는 분수의 서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부교만 파괴할 수 있다면 탁발규는 고립되고 만다. 요흥은 분수 상류로 유격병을 보내서 나무를 베어 강물에 떠내려 보내 부교를 파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위군 역시 바보는 아니었기에, 떠내려 오는 나무들은 모두 물 밖으로 끌어내져 땔감이 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겨울이 되었다. 보급이 끊겨 고통받고 있던 요평은 마침내 최후의 힘을 끌어모아 포위망 돌파를 시도하였다. 요흥도 이를 보고 강 건너편에서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격려하였는데 그것 말고 실질적인 도움은 불가능했다. 힘이 다한 요평은 분수로 뛰어들어 자살했고, 요평 휘하의 4만여 군대는 모두 위군의 포로가 되고 만다.

승기를 탄 탁발규는 요흥을 거세게 공격하였고 요흥은 포판까지 퇴각한다. 포판에는 후진 정권의 살림꾼 요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요서는 싸우지 않고 포판을 굳게 지킨다.

※ 405년 경의 세력판도



포판에서의 대치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후진 정권과 우호 관계에 있던 북방의 유연(柔然)이 위의 본토를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탁발규는 미련없이 군사를 되돌렸고, 이로써 용과 호랑이의 싸움은 사실상 무승부로 마무리되었다. 후진 정권은 위 정권을 선공하였다가 주요 장수를 잃고 4만에 달하는 군대를 상실했고, 위 정권은 후진 정권의 침공을 성공리에 방어하고 반격까지 한 셈이다. 전체적으로는 위 정권의 우세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특별한 결과는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진과 위 양대 정권은 이때의 결전을 끝으로 내부 안정화에 주력한다. 위 정권은 북방의 유연과 오랜 전쟁에 접어들었고, 진 정권은 서쪽으로 시선을 돌려 후량 정권을 흡수하고 남, 북, 서량을 속국화하는 등 내부적으로 안정을 꾀하였다. 그리하여 이 결전 이후 405년 경까지 진 정권은 오랫동안 평화를 누렸으며, 위 정권 역시 북방의 소란을 제외하면 평화로운 시기였다.

이러한 평화가 가능했던 원인은 무엇보다 남쪽의 동진 정권이 격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에 있다. 당시 동진은 내란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환현(桓玄)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온 나라가 휘청대고 있었다. 각지에서 내란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 혼란 통에 한수와 회수 이북의 10여 개 군이 후진 정권에 항복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405년에 환현이 유유(劉裕)에게 패하여 축출되었을 무렵이 되면 환현의 세력권이던 형주 일대가 혼란해지면서 촉 땅에서 독립국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역사상 후촉(後蜀)이라 불리는 정권의 탄생이다.

그러나 이런 혼란도 유유라는 걸출한 인물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종식되고, 강남과 화북, 파촉까지 진동시킬 대 사건이 가까워온다. 다시 북벌이 시작되려는 것이다.




덧글

  • 自重自愛 2009/12/05 00:09 # 답글

    용호상박이라. 좌청룡 우백호이니 북위가 용이고 후진이 호랑이군요. (의미불명)
  • 야스페르츠 2009/12/05 11:53 #

    그럼 주작과 현무는 누규?? (도주)
  • 自重自愛 2009/12/05 13:20 #

    현무와 주작은 당연히 유연과 동진..... (맞는다.)
  • 들꽃향기 2009/12/05 00:16 # 답글

    드디어 진정한 갑툭튀 유유의 출현이 나오는.... ㄷㄷ

    그나저나 강 건너에서 4만의 군대가 괴멸당하는 것을 지켜본 요흥의 속은 꽤나 쓰렸을 듯 하군요. 오뎅국물이라도 부어주고 싶은 심정 ㄷㄷ
  • 야스페르츠 2009/12/05 11:54 #

    기록에는 군대가 통곡하는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고 하네요. ㅠㅠ
  • Allenait 2009/12/05 00:18 # 답글

    오르도스라면 모 게임에 나오는 가문이군요(!?)

  • 소시민 2009/12/05 09:41 #

    우주로 뻗어나간 유목민족입니다.

    은하유목민족설(응?)
  • 야스페르츠 2009/12/05 11:54 #

    은하유목전설인가요? ㅋㅋ
  • 소하 2009/12/05 01:56 # 답글

    이제 본격적으로 북위와 유유의 시대가 오는 건가요?
  • 야스페르츠 2009/12/05 11:54 #

    그렇지요. 하지만 북위와 유유는 이 연재에서 메인이 아니라는...
  • 한단인 2009/12/05 03:55 # 답글

    ㅎㅎ 웬지 유연과 북연의 경계선도 보고 싶은 1인(도주한다)
  • 야스페르츠 2009/12/05 11:55 #

    그런 거 모른다능. ㅋㅋ
  • 기병 2009/12/05 14:55 # 삭제 답글

    근데 저 지도상의 후촉이라는 나라는 뭔가요?
  • 야스페르츠 2009/12/05 18:09 #

    본문 중에 살짝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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