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30 22:54

오호망양(五胡望洋) 25 - 양, 양, 양, 그리고 양 역사

1. 나쁜 凉

한때 양주(凉州)를 완전히 장악하고 황하 너머 걸복부 정권까지 넘보던 후량 정권. 한 번 삐끗 했다가 밑천까지 날릴 뻔 했고, 겨우 본전은 건져서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안심도 잠시, 남북에서 번갈아 가면서 털어대는 통에 정신도 못차리겠는데, 천왕 여광이 399년 말에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태자(嫡子)는 형(序子) 여찬(呂纂)에게 밀려 쫒겨나 자결하고 만다.

그렇게 후량의 천왕이 된 여찬은 호전적인 성격대로 남북의 우환거리를 해결하겠다고 좌충우돌하는데, 정작 북쪽으로 공격하러 가면 남쪽에서 빈집털이, 남쪽을 털러 가면 북쪽에서 분탕질. 차라리 빈집털이를 당할지언정 한쪽이라도 확실하게 밀어 버렸으면 나을 텐데, 그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으니... 지키고 있어도 부족할 마당에 싸우겠다고 설치는 꼴이 얼마나 엉망일까.

결국 내부 반란으로 여찬은 죽고, 여륭(呂隆)이 뒤를 이었다.(401년) 후량 정권이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는 소식은 멀리 황하를 건너 후진 정권의 농서공 요석덕(姚碩德)에게까지 전해졌고, 요석덕은 6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장(姑臧)으로 밀고 들어왔다. 오랜 농성 끝에 결국 항복한 여륭은 양주자사에 책봉되어 간신히 영지를 보전한다.


2. 좋은 凉

청해성 동북부에서 거병한 독발부의 남량 정권. 주변의 여러 이민족들을 포섭해가면서 영남(嶺南 : 기련산맥 이남) 지역 대부분을 장악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양(凉)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남량 정권은 특이하게도 형제 상속을 거듭했는데, 이는 형제들의 아버지 독발사복건이 막내아들인 독발녹단(禿髮傉檀)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즉, 독발사복건의 뒤를 이은 독발오고, 그리고 그의 뒤를 이은 독발이녹고(禿髮利鹿孤)가 모두 독발녹단에게 왕위가 돌아가도록 형제 상속을 계속했다는 의미가 된다.

어쨌든, 독발오고(397~399), 독발이녹고(399~402), 독발녹단(402~...)을 거쳐가면서 남량 정권의 국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성장했다고 해도 관중의 초강대국 후진 정권과는 상대도 되지 않을 일. 401년에 요석덕이 고장으로 쳐들어오자 독발부는 감히 그들과 맞서지 못하고 얌전히 꼬리를 말았다. 특별히 복속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위세에 눌려 숨을 죽인 채 후량 정권이 항복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았던 것이다.

요석덕이 물러가고 난 뒤, 독발부는 다시 후량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다. 때로는 북쪽과 힘을 합치기도 하고, 때로는 북쪽과 다투기도 했지만, 어쨌든 주 공격 목표는 후량의 고장이었다. 거세게 몰아치는 독발부의 공격이 가능했던 요인은 무엇보다 관중의 패자 후진 정권이 탁발부의 북위 정권과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402년 봄에 독발이녹고의 뒤를 이은 독발녹단은 양왕(凉王)이라 자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발부에게는 안타깝게도 후진과 북위의 전쟁은 금방 결판이 났고, 뒤이어 남북에서의 협공을 견디다 못한 후량 정권이 요흥에게 아예 나라를 통째로 넘겨 버림으로써, (403년) 고장은 후진 정권의 직할령이 되고 독발부의 모험도 끝이 난다. 독발부는 후진 정권에 의해 광무공(廣武公)에 책봉되었고 비록 명목상이긴 했지만 후진의 속령이 되어야만 했다.


3. 이상한 凉

양주 서북부의 금싸라기 땅에서 나라를 일으킨 단업의 북량 정권. 사실상 양주를 둘로 나누어 놓고 있는 길목 하서회랑의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북량 정권은 가장 외진 땅에 있었던 관계로 외부의 위협이 사실상 없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아주 커다란 위협 요소가 있었다.

분명 북량 정권의 군주는 한족인 단업이었는데, 정작 정권의 권력 대부분은 두 명의 흉노족 저거남성과 저거몽손에게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돈황 서쪽에서 반란이 일어나 옥문관(玉門關) 서쪽이 아예 판도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북량 정권은 더 쪼그라들고 만다.

401년, 저거몽손은 저거남성을 참소해서 단업에게 죽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모반을 일으켜 단업을 죽이고 스스로 북량의 지배자가 된다. 그래봤자 금싸라기 땅인 옥문관 서쪽의 서역을 거의 다 상실한 북량 정권은 별볼일 없는 정권이었다. 후진 정권이 후량을 복속시킨 뒤 저거몽손도 명목상의 속국으로 삼았는데, 공(公)에 책봉된 독발부 정권과 달리 저거몽손은 서해후(西海侯)에 책봉되었을 뿐이다. 그만큼 세력이 미약했던 것이다.


4. 알 수 없는 凉

400년, 북량의 사주(沙州 : 감숙성 서북부, 전량 시기에 설치된 주로 실제로는 몇 개 군 정도밖에 안되는 지역이다.)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 한족 출신의 이고(李暠)가 돈황태수로 추대되었다. 양주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돈황 일대이다. 서역 경영의 중심지였던 돈황, 고창을 장악한 것이다. 이고가 세운 정권은 서량(西凉)이라 불렸다.

서량 정권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그러나 변방 중의 변방 양주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진짜 변방에 자리잡고 있었던 만큼, 그 역사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저 변방에서 한족의 문화를 꽃피운 나라라고 전해질 뿐이다.




덧글

  • asianote 2009/11/30 22:58 # 답글

    그리고 불교국가 남조 양나라도 있지요.
  • 야스페르츠 2009/11/30 22:59 #

    그나라는 한자가 다르다능. ㅎㅎ
  • 른밸 2009/11/30 23:00 # 답글

    마지막 서량은 정말 미스테리군요- 그 때의 돈황이라면 서역으로 가는 금싸라기 땅이었지만, 중원이 혼돈한 시절에 서역교역이 그렇게 활발했을까 싶기도 하고...
  • 야스페르츠 2009/12/01 09:53 #

    미스테리라고 할 정도로 기록이 전무한 것은 아닙니다만...

    딱히 그렇다고 연재하기 귀찮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능. (응?)
  • Allenait 2009/12/01 00:14 # 답글

    서량은 정말 미스테리네요. 그래도 어딘가에 기록이 더 있을법도 한데.. 말이죠
  • 야스페르츠 2009/12/01 09:53 #

    ↑상동이라능. ^^
  • 소하 2009/12/01 01:59 # 답글

    오량 드랍인가요? 한냥이 없군요!
  • 야스페르츠 2009/12/01 09:54 #

    이미 멸망한 전량까지 포함하면 오량이 됩니다. ㅎㅎ
  • 들꽃향기 2009/12/01 10:08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전조정권 이후로는 흉노족의 건국은 왠지 선비족의 건국에 비해서 힘이 좀 빠져보인다는....ㄷㄷ;

    그러고보니 돈황지역은 묘하게 이민족 지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족 정권에 의해서 중원이 초토화되는 와중에도 틈틈히 한족 지도자를 배출해내는 지역인 것 같습니다. 이미 전에 나왔던 장궤의 전량정권이나, 이고의 서량정권, 후에는 송대에는 장씨의 군벌정권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 야스페르츠 2009/12/01 13:07 #

    오랑캐의 중심에서 한족을 외치다.
  • 옛날이야기 2009/12/03 16:10 # 삭제

    저긴 어차피 유목을 할 땅도 아니긴 마찬가지라서 아닐까요?
    돈황은 한족이 보기에만 이족지역인게 아니라 흉노나 선비가 보기에도 이족지역이긴 마찬가지일 거 같습니다만....초원도 고원도 아니죠
  • FELIX 2009/12/01 13:01 # 답글

    이건 뭐 춘추시대 수많은 듣보잡 나라 역사를 보는 느낌.
  • 야스페르츠 2009/12/01 13:07 #

    그, 그래도 춘추시대보다는 좀 낫다능. ㅡㅡ;;
  • 남연아~ 2009/12/01 15:20 # 삭제 답글

    양~양~야아앙 하고 놀아도 고만고만한 달동네(?!)

    후진 아찌가 와서 단숨에 왕초 먹었다네~~
  • 야스페르츠 2009/12/01 21:41 #

    바람잘 날 없는 강호에서 후진 아찌의 왕초도 한 순간일 뿐입지요. 후후
  • 아아 2009/12/01 21:43 # 삭제 답글

    동량이 없어 아쉽네요. 무적의 전후동서남북량이 탄생할 수 있....
  • 11 2012/03/13 14:52 # 삭제 답글

    글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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