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21 01:26

오호망양(五胡望洋) 23 - 가화만사성 역사

부견의 몰락 이후 10여 년, 이 격동의 세월을 헤쳐나왔던 난세의 영웅 모용수와 요장이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후계자들이 있다. 이 후계자들은 모두 걸출한 아버지를 둔, 어찌보자면 불쌍한(?) 남자들이다. 사사건건 아버지와 비교될 것이 분명할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 후계자들이 10여 년이 걸려 쌓아올린 금자탑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 결과는 서로 정 반대의 극단을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주변 각국들과의 관계, 정권이 가진 특수성이나 한계가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적으로 눈에 확 들어오는 두 후계자의 차이야말로 내가 보기에는 진짜 원인이다. 어쨌거나, 이 시대는 왕의 능력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던 시대였으니까.


후진 정권을 세운 요장의 후계자 요흥(姚興). 그가 황제에 즉위하여 나라를 이끌게 된 때는 28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질풍노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직 원숙하다 이르기에는 조금 모자란 나이다. 아니, 원숙하다거나 중후하다는 것은 인생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무엇이든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넘칠 나이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건국한지 10년 밖에 되지 않은 신생국가. 건국의 원훈이라 할만한 권위와 실력을 갖춘 공신들이 넘쳐났을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런 나라에 28세의 혈기왕성한 군주가 즉위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하지 않은가?

그러나 요흥은 달랐다. 젊은 혈기로 쓸데없는 개혁을 하려 들지도 않았고, 공신들을 무시하거나 숙청하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당시 진 정권에는 두 명의 유력한 원로(?)가 있었다. 요흥의 숙부인 요서(姚緖)와 요석덕(姚碩德). 후일의 활약상으로 보건대 요서는 주로 내정 전반에 힘을 가지고 있었고, 요석덕은 강력한 군권을 가졌던 것 같다. 국가를 꾸려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힘을 나눠가진 셈이다. 평범한 후계자였다면, 이들이 가진 권력을 견제하고 빼앗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테지만, 요흥은 달랐다. 그는 두 숙부를 깍듯이 예의로 모시면서 정무의 전반에 걸쳐서 이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들에게는 집안에서 하는 예의를 다했다고 할 정도였다.

군주 자신도 범상치 않은 인재인데다 권위와 실력을 갖춘 원로와의 관계도 원만하니 국가가 발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394년에 부등을 멸망시킨 진 정권은 사실상 관중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워낙에 오랫동안 처절한 전쟁을 벌인 터라 나라 꼴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부등 멸망 이후에 거의 5년 동안이나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은 점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변두리의 지방 정권이라면 중요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기록이 적을 수 있지만, 장안을 차지하고 있는 진 정권의 기록이 이렇게나 적다는 것은, 내치에 온 힘을 쏟았다는 반증이 분명하다.

이렇게 내치에 힘을 쏟았다는 것도 요흥의 남다른 점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젊고 혈기왕성한 군주가 힘을 분출하지 않고 내치에 힘을 쏟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다못해 문약한 군주라면 모를까, 요흥은 문약한 인재도 아니다.

어쨌든 이렇게 나이 답지 않은 애늙은이 요흥의 치세에서 진 정권의 국력은 날로 충실해져갔다. 그리고 그렇게 충실해진 힘을 바탕으로 차근 차근히 확장을 해 나간다.

요석덕은 농서왕에 책봉되었으며 요서는 진왕(晉王)에 책봉되었다. 책봉명은 곧 이 두 사람이 주로 활약하게 되는 무대를 말해 준다. 요석덕은 서쪽의 진주(秦州 : 감숙성 동부), 양주(凉州 : 감숙성 중서부) 일대를 무대로 활약했고, 요서는 동쪽, 그 중에서도 장안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하동(河東 : 산서성 남서부)가 무대였다. 그 중에서도 주로 군사 활동을 보여준 것은 요석덕이고, 요서는 포판(蒲阪)을 점령하여 장안의 입구를 틀어막는 정도에서 머물렀다. 대신 요서는 직위가 승상에 이를 정도로 진 정권의 내정 전반에 걸쳐서 많은 일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석덕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96년 말, 부등을 멸망시킨 것이 394년의 일이니 2년이 넘도록 진 정권이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요석덕의 첫 정복지가 부등 세력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상규(上邽)였으니, 부등을 멸망시키고도 그 핵심 영토를 취하지 않고 내정에만 매달렸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주변의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던 것 같다. 295년에는 연 정권과 화친을 맺었고, 탁발부 정권과도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포판을 점령한 것도, 특별히 주변 국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그쳤다. 심지어 연 정권이 탁발부에게 털리면서 원군을 요청했는데도 움직이지 않았을 정도였다.

동방에서는 단숨에 수천리를 달려 뺏고 빼앗기는 각축을 벌였건만, 서방의 진 정권은 포판과 상규를 차지한 후에도 별다른 확장세를 보이지 않는다. 397년 말에 동진이 차지하고 있던 낙양 일대를 공격해서 일부를 점령하고 낙양을 한 차례 포위했던 사건이 하나 있을 뿐이고, 398년에는 아예 기록조차 없다.

399년 6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 정권의 대규모 군사 활동이 나타난다. 그 목표는 바로 낙양. 당시 동진 정권은 내분으로 인해서 기둥뿌리까지 휘청거리고 있던 터라 낙양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이었다. 낙양의 수비군은 위 정권에 원군을 청해 보기도 했으나, 원군이 도착하지 않고 100여 일을 농성한 끝에 결국은 함락되고 말았다. 384년에 낙양을 회복한 이래 15년 만에 다시 구도 낙양을 빼앗긴 것이다.

동진 정권이 휘청거리고 있는데다 어렵사리 되찾았던 낙양을 빼앗겼으니 낙양의 영향권에 있던 지역들이 동요하는 것도 당연하다. 과연 어느 정도 선까지 신뢰해야 할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기록에 따르면 한수와 회수 이북의 지역 대부분이 후진의 세력에 복속되었다고 한다. 황하 이북은 어차피 동진의 세력권이 아니었으니, 회수 하류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수에서 회수 상류까지 길쭉하게 튀어나온 모습이 된다. 이런 영토가 과연 유지가 가능했을런지, 좀 의문스럽기는 하다. 일부 세력권은 남연 정권과 겹친다.


어쨌든 낙양을 점령하는 기염을 토한 진 정권은 이후 세력을 급속도로 확대하기 시작한다. 400년에는 요석덕이 서진(西秦)의 걸복국인을 정벌하여 멸망시켰고, 401년에는 양주로 진격하여 후량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고 양주의 양 시리즈들을 복속시켰다. 이로써 진 정권은 서토를 완전히(?) 평정하였다.

내부의 우환이라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하였으니 이제 외부로 힘을 뻗을 때가 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북방의 위 정권과 분쟁이 생기면서, 화북의 양대 세력은 맞붙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덧글

  • 2009/11/21 01: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11/22 00:21 #

    너 같은 아들 둔 적 없다. (퍽!) ㅋㅋㅋㅋㅋㅋ 오랜만입니다..
  • 海凡申九™ 2009/11/22 00:35 #

    각설하고 흥미로운 걸 발견해서 올립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9&aid=0001982429

    KBS 역사추적 '영산강 아파트형 고분의 미스터리' 관련 기사입니다.
    ----
    나주 영동리 고분은 지난 2005년 밭을 개간하는 과정 중
    석실과 인골이 노출되면서 빛을 보게 됐다.
    이 중 인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은 6세기 것으로,
    석실이 6개, 7개씩 붙어있는 형태의 아파트형 고분.
    이 인골의 DNA를 분석한 결과 신라, 가야인과 차이를 보였고 조선인과도 차이가 있었다.
    놀랍게도 인골은 현대 일본인과 가장 가까웠다.
  • 야스페르츠 2009/11/23 09:52 #

    그, 그런거 모른다능. 매식자는 그런거 무시해야 하는 거라능. ㅡㅡ;;
  • 카구츠치 2009/11/21 02:10 # 답글

    이번엔 지도가 없군요. 아쉽습니다(?).
    그리고 별 건 아니지만 396년말에 394년인 건가요?
  • 야스페르츠 2009/11/22 00:22 #

    394년에 부등을 멸망시키고, 396년 말에 상규를 접수했다는 의미입니다. 2년 동안 상규 일대에는 독립 세력이 존재했죠.
  • Allenait 2009/11/21 05:00 # 답글

    정말 가화만사성이군요
  • 야스페르츠 2009/11/22 00:23 #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 른밸 2009/11/21 09:56 # 답글

    오..전 후진쪽은 전혀 모르고, 오호십육국에 약간 관심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연-위쪽에 집중하는데(고구려의 영향이겠죠?) 서쪽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군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11/22 00:23 #

    ^^ 감사합니다.
  • asianote 2009/11/21 10:02 # 답글

    하지만 결국 북방일통의 꿈을 이룬건... 북위지요. 그리고 중국의 천하통일을 이루어낸 곳은 수지만, 동아시아 고대 세계를 완성한 것은 당이고요.
  • 야스페르츠 2009/11/22 00:23 #

    쉿! 네타 금지입니다. 강퇴
  • 들꽃향기 2009/11/21 14:15 # 답글

    요흥과 북위가 서로 부딪치면서 화북의 패자가 되려는 순간.........


    ....이 되기전에 왠 갑툭튀 하나가 화북을 리셋시키는 상황이 곧 되겠군요...=_=;;

    야스페르츠님 글 덕분에 잘 모르던 후진정권의 내부안정화 노력을 잘 보고 갑니다.^^ 하긴 이런 노력이 있었으니 구마라습이 장안으로 와서 불법을 전파할 여유와 시간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ㄷㄷ
  • 야스페르츠 2009/11/22 00:24 #

    갑툭튀라면... ㅠㅠ를 말하시는 것인지요? 아니면 ㅎㄹㅂㅂ??
  • 들꽃향기 2009/11/22 04:32 #

    아무래도 ㅠㅠ 를 염두에 둔지라 ㄷㄷ
  • 야스페르츠 2009/11/23 09:53 #

    ㅠㅠ라면... 악희님 포스팅을 참조하셔요. ^^;;
  • 른밸 2009/11/22 01:04 # 답글

    갑툭튀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넘...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11/23 09:53 #

    아, 알고 있어요. ^^
  • 功名誰復論 2009/11/22 15:59 # 답글

    보면 볼수록 이 시기도 삼국지 게임처럼 만들면 재밌을 거 같다 싶은데, 그래도 게임 만들어 주는 회사는 없을 거 같으니 아쉽습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니, 전국란스니 대악사니 귀축왕란스니 같은 식으로 성인게임으로 만들면 시장성도 있고 재미도 있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09/11/23 09:53 #

    본격 오호십육국 미연시......... 쿨럭.
  • 들꽃향기 2009/11/23 09:57 #

    커헉...왠지 그럴싸한데요 ㄷㄷ
  • 남연아~ 2009/11/23 20:33 # 삭제 답글

    허억... 그렇다면 <일기당천> 식으로 모두 ㅇㅊㅎ하며느~~~은?
  • 세계사는내친구 2009/11/24 10:39 # 삭제 답글

    세계사 특히 중국 중심의 동양 왕조사에 관심이 많은 52세의 공무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5호16국의 복잡한 역사에 거의 질려(?) 있었는데 야스페르츠님의 친절하고도 상세한 해설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11/24 18:13 #

    안녕하세요. 과찬이십니다. ^^ 즐겁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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