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8 15:21

발해의 연호 1 역사

일전에 "족보에 대한 잡상"이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쓰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첫 번째 원인은 발해의 연호 때문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위키백과에서 혼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바로 중국의 연호 프로젝트. 2000년에 달하는 중국의 연호를 모조리 정리하겠다는 헛된 망상을 품고 심심풀이 삼아서 진행하던 프로젝트였는데, 약 1년 동안 수나라까지의 연호를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블로그에서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가장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5호16국 연재도 이 프로젝트의 중간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수나라의 연호를 완성한 이후부터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중국의 연호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중국 말고 다른 곳의 연호도 함께 정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신라나 일본, 심지어 저 멀리 고창국이나 대리의 연호도 함께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일단 우리나라의 연호 상황이 어떠한가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신라에서 사용된 연호와 고구려의 연호로 알려져 있는 몇몇 연호들에 대해서 정리를 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 타자로 발해의 연호를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콱 막히고 말았다.


일단 공식적인 사료에 기록된 발해의 첫 연호는 무왕 대무예가 사용한 "인안(仁安)"이다. <신당서>의 기록에 따르면 대무예가 즉위하고 나서 사사로이 연호를 고쳐 인안으로 했다고 하는데, 저 "개년(改年)"이라는 단어에서 "고왕의 연호"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유추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일정한 추론을 전개한 것도 보기는 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공식적인 사료"에는 인안 이전의 연호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각종 백과사전에서 발해 고왕 대조영을 검색해보면, 당당하게 적혀 있는 발해 고왕의 연호를 찾을 수 있다.


천통(天統).


아놔..... <단기고사>가 여기서 튀어나오는 거냐........... ㅡㅡ;;;;


일단 현재까지 찾아본 바로는 저 천통이라는 연호는 <단기고사>와 <환단고기>, <규원사화>에만 등장한다. 그나마 <규원사화>에 등장하는 천통은 이해할 만한데, <단기고사>의 천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단기고사> 서문에 따르면, <단기고사>는 대야발이 천통 31년에 <단기고사>를 지었다고 한다................... 천통이 고왕의 연호라면 천통 31년은 729년인데, 이때는 무려 고왕이 죽은지 10년이나 지난 시점이며 당시 발해는 인안 10년을 연호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건 뭐.......... <환단고기>의 광무 15년은 <단기고사>에 대한 오마쥬였던 것이냐.


아무튼, 이들 3대 민족사서가 전부 위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니, 당연히 천통이라는 연호도 살펴볼 필요도 없는 거짓.

그런데 여기에 복병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협계 태씨 족보다.


협계 태씨 족보에 천통이 발해 고왕의 연호로 당당하게 적혀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 공황상태에 빠져서 백과사전에 찌질대기도 했지만, 족보에 대한 연재를 진행하면서 점차 정리가 되어간 듯 하다. 어쨌거나 태씨가 대조영을 시조로 내세우고 있으며, 그 족보에서 발해의 상세한 역사를 전하고 있다고 해봤자 역사적으로는 참고자료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조금 더 악랄하게 말해 보자면, 대조영이 그들의 시조가 맞긴 한 것인지.... 알게 뭐냐.

게다가 조금 더 자료를 찾아본 바, 유득공의 <발해고>에도 태씨 족보가 인용서목에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족보를 살펴보고 서술한 발해고에는 천통이라는 연호 같은 것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태씨 족보에는 최소한 19세기 이후에 천통 연호를 포함한 가필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겠다.

유득공 브라보!



아무튼 (2), 천통 같은 사이비 연호는 스킵하고 다시 발해의 연호 항목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또 다시 벽에 부닥쳤다.


다음 편에 계속...

덧글

  • Allenait 2009/10/28 15:36 # 답글

    브라보!(...)
  • 야스페르츠 2009/10/28 15:59 #

    두계 마왕님의 돌보심이 함께하심이라.
  • 초록불 2009/10/28 15:39 # 답글

    유득공 만세...
  • 야스페르츠 2009/10/28 16:00 #

    실학의 시대는 진정 위대한 시대였습니다. (응?)
  • 前유사매식자 2009/10/28 16:17 # 답글

    삼일신고 봉장기 모르삼. 만악의 근원은 대종교 (...)
  • 2009/10/28 18:41 #

    왜 인지 계속 공부하다보니 그런 생각에 빠지고 있습니다 ㅋㅋ;;
  • 야스페르츠 2009/10/28 18:53 #

    봉장기에 천통이 나오나요? 찾아보니 없던데... ▶◀대종교 지못미.
  • 前유사매식자 2009/10/28 19:05 #

    아, 찾아보니 봉장기가 아니라 序와 贊 인듯.
  • 어릿광대 2009/10/28 16:50 # 답글

    유득공 지못미군요.. 이럴줄 몰랐습니다 OTL;;
  • 야스페르츠 2009/10/28 18:53 #

    유득공께서 한 집안의 역사를 말살하신겝니다. (도주)
  • 아야소피아 2009/10/28 17:29 # 답글

    저 "개년(改年)"이라는 문구를 대무예가 즉위 당시에는 당 연호쓰다가 나중에 갑자기 바꾼 것으로 해석할 여지는 없는건가요? (아닌것 같지만..)
    덧. 역시 족보란 믿을게 못되는군요..
  • 야스페르츠 2009/10/28 18:54 #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단 5호16국시대의 역사를 읽어보면 연호를 처음 칭하면서도 개년, 개원 운운하는게 많기 때문에... 그런데 왠지 학계에서는 "고왕 때도 연호가 있었을 거라능!" 하고 있다는... ㅡㅡ;;;
  • 근위연대 2009/10/28 17:52 # 답글

    지금도 많은 어르신들께서 도서관에서 자신의 조상을 찾고 계십니다. ;;;
  • 야스페르츠 2009/10/28 18:55 #

    그래서 수천년 만에 잃어버린 시조의 무덤을 발견(....)하기도 하더군요. ㅠㅠ
  • 2009/10/28 18:42 # 답글

    쩝. 오마쥬 확정;;;
  • 야스페르츠 2009/10/28 18:56 #

    한암당이 오마쥬를 헌정한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죠.
  • 前유사매식자 2009/10/28 20:22 # 답글

    http://historykr.com/bbs/zboard.php?id=blog&no=309

    개인적으론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것의 발단은 삼일신고.
  • 야스페르츠 2009/10/28 22:46 #

    삼일신고는 생각지 못했네요. ^^;;;
  • 들꽃향기 2009/10/28 21:32 # 답글

    같은 족보를 살펴보고 서술한 발해고에는 천통이라는 연호 같은 것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승리의 유득공입죠. ㄷㄷ 역시나 19세기 말~20세기에 대동보 단계에서 집안 내력을 상술하기 위해 이것저것 가져다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10/28 22:48 #

    승리의 유득공! 진리의 실학. ^^
  • 발해고 2014/07/01 19:21 # 삭제

    집에 있는 발해고를 찾아보니 인용족보가 협계태씨가 아니라 영순태씨 족보네요.
  • 만도귀 2009/10/29 00:52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야스페르츠님, 글 잘봤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협계태씨족보에서 발해 역사까지 기술하고 있는 걸 어디서 찾으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발해사 참고자료로 애타게 찾고 있는데, 야스페르츠님이 읽으셨다고 하셔서 도움 부탁드립니다.:-)
  • 야스페르츠 2009/10/29 10:10 #

    아... 저도 협계 태씨 족보를 읽어본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등장한다는 사실만 찾은 것이죠. 족보는 국립중앙도서관이나 정독도서관에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 번 찾아가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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