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3 20:18

대중화제국 황제의 열등감 雜想

발해 황후 묘지명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

트랙백 한 저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인류 역사상 황제를 "자칭"한 대중소 국가들은 수두룩했다. 그런 그들을 모두 황제라고 불러주는 것도 우습지만, 그런 것을 가지고 자랑스러워한다 하는 것도 사실은 열등감의 소치.

그런데, 사실 중국의 역사서를 읽다보면 저것과 똑 같은 열등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유교적 위계 의식이 팽배했던 시대에 쓰여진 역사서는 읽으면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놀라운 열등감을 보여준다.


최근 연재 때문에 미친듯이 독파하고 있는 <자치통감>을 펼쳐보자..........

아무래도 중국의 정통 황제가 아닌 여러 황제가 난립했던 시대를 살펴본다면, 해당하는 장면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오호십육국시대는 여기에 딱 어울리는 시대. ^^;;;;;

오호십육국시대의 <자치통감>을 읽어보면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황제는 당시의 정통을 자처하던 남쪽의 동진 정권 뿐이다. 고로 단순히 "帝"로 호칭되거나 "我"로 호칭되거나, 심지어는 주어가 없이 이어지는 말은 모조리 다 동진 정권, 동진 황제를 주체로 삼는 사건들이다.

뭐, 사실 여기까지는 딱히 열등감이라 말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박은 동진을 제외한 다른 국가를 표현하는데 있다.


예를 들어보자.

저족의 부건은 초창기에 진을 건국하고 천왕(天王)을 자칭했다. 이때 부건의 호칭은 진왕(秦王) 부건, 혹은 진왕 건이다. 그런데 부건이 황제를 칭하는 순간 호칭은 이렇게 바뀐다.

진주(秦主) 부건.

........ 같은 나라, 같은 사람이라도 "왕"을 칭할 때는 순순히 왕으로 불러주다가, "황제"를 칭하면 순식간에 "主"로 강등(?)되는 거다.

물론 황제를 칭하다가 다시 왕을 칭하면 또 진왕이 된다.....

그래서 부견은 황제가 아닌 천왕을 칭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진왕으로 호칭된다. 그리고 부견이 죽고 부비가 황제에 즉위하자 다시 진주로 강등....

................

오호십육국시대야 워낙에 이민족이 설치던 시대니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같은 한족이 나뉘어 있던 시대에는???

우리의 귀 큰 영웅 유비.

한중왕 시절에는 멀쩡하게 한중왕이라 불러주는데, 황제로 즉위하자 한주(漢主)....


물론 이런 행태는 중국 사서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서에서도 이런 "열등감"은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방금 조선왕조실록에서 "후금(後金)"으로 검색해서 찾아낸 알흠다운 구절.

〈전교하기를,

“진주문(陳奏文) 중에 후금 칸(後金汗)의 인보(印寶)를 후금 황제라고 진주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비변사로 하여금 전교에 따라 〈자세히 살펴 아뢰게 하라.〉”

하니, 회계하기를,
 
“노추 서신 가운데 인보 글씨는 전자(篆字)를 아는 신여도(申汝櫂) 및 몽학 통사(蒙學通事)에게 풀어보라고 하였더니, 전자 모양의 번자(番字)는 모두가 후금천명황제(後金天命皇帝)라는 일곱 글자였다고 하므로 진주문 중에 이 뜻을 갖추어 써넣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상의 하교를 받고 다시 생각해 보니, 굳이 이처럼 번역하여 풀 것이 아니라 범연하게 알아볼 수 없다는 뜻으로 삭제하고 고치는 것이 합당할 것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 광해 139권, 11년(1619 기미 / 명 만력(萬曆) 47년) 4월 19일(임신) 1번째기사

 
발번역 :
"오랑캐 놈들 도장에 황제라고 써 있는데 이거 괜찮을까?"
"아놔, 그거 못알아보겠다고 개드립칠께염."



그분들의 알흠다운 역사소설 <환단고기>에서도 이런 열등감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북부여 시조 단군 해모수 계미 22년 창해역사 여홍성이 한나라 사람 장량과 함께 진왕 정을 박랑사 가운데서 저격하였으나 빗나가 부차를 박살냈다.

북부여 4세 단군 고우루 계유 13년, 한의 유철이 평나를 노략질하여.....



아놔.... 그냥 남의 나라 호칭 좀 똑바로 써주면 어디 덧나냐....


남의 나라에서 황제라고 쇼를 하건 말건, 그것 하나 대인배스럽게 인정해주지 못하는 것도 열등감이 아닐까 생각하며 뻘 포스팅을 마친다.


덧글

  • 2009/10/23 20: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10/24 11:43 #

    그냥 속편하게 덴노라고 불러주면... ^^
  • matercide 2010/09/13 00:10 #

    속편하게 "스메로키"나 "스메라미코토"라 불러주면...^^(무슨 뜻이냐고요. 덴노를 뜻하는 옛말입니다.) "오호키미"(옛 표기법에 따라)는 별칭이면서 덴노의 3세 이하 황족의 칭호입니다.
  • Allenait 2009/10/23 20:54 # 답글

    못알아보겠다라(...) 과연 저게 먹혀들기나 헀을까 모르겠군요
  • 야스페르츠 2009/10/24 11:44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 前유사매식자 2009/10/23 21:07 # 답글

    우리나라에서 일본천황을 천황이라고 못 부르는 이유를 생각해보셈.

    저처럼 학술용어·공식호칭 무시하고 무조건 비칭(卑稱)으로 부르는 것이 제일 공평합니다. (응?)
  • 야스페르츠 2009/10/24 11:44 #

    오옷! 역시 전직 매식자 답습니다.
  • matercide 2010/09/13 00:10 #

    매식자가 무슨 뜻?
  • BigTrain 2009/10/23 21:21 # 답글

    뭐 지금도 일본 천황을 일왕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요.

    마지막 문장에 동의합니다.
  • 야스페르츠 2009/10/24 11:44 #

    그냥 덴노라고 부르는게 속편합니다.
  • matercide 2010/09/13 00:11 #

    그냥 왜왕이라고 부르는 게 속편합니다. 아니면 사람 주제에 신이라고 뺑끼치는 사기꾼이라 부르든가
    (히로히토 때 신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아들은 즉위하면서 다시 신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출처는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에서 인용한 [아사히신문]입니다.)
  • 아야소피아 2009/10/23 22:52 # 답글

    불평불만이 많을수록 오히려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컴플렉스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소인배처럼 국가원수 칭호나 따지는 저들의 '(억지)사고방식'을 따르자면 :

    영국 총리=독일 총리=캐나다 총리(..)<대한민국 대통령<태국 왕=영국 왕=일왕("천황"이 아니더라도 우리 대통령보다 격이 높은 셈;;)

    ...즈음 되겠군요. 이건 뭐...
  • rumic71 2009/10/24 01:06 #

    아니 영국은 여왕이 있고 독일은 대통령이 따로 있으니...(캐나다는 영국 여왕을 모시고 아무 일도 안 하는 총독이 따로 있지만)
  • 야스페르츠 2009/10/24 11:45 #

    흠 좀 무.
  • 눈팅족 2009/10/23 23:56 # 삭제 답글

    저기... 얍삽폐기처분자님, 아니 야스페레츠님ㅋㅋ 질문있는데, 삼국사기 편찬자들은 북위 황제를 위주라고 하고 당황제를 당주라고 했는데,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표기한 것일까요? ^^;
  • 아야소피아 2009/10/24 09:00 #

    <삼국사기> 원문을 쭉 검색해봤는데, 저는 당 황제를 "唐主"로 표기한 부분을 찾지 못했습니다.(제가 설마 놓친건;;) 다만 성덕왕 32년 겨울 12월 기사에 "聖主之恩"식의 표현이 있는데 이는 문맥상 "성스러운 임금(즉, 당 현종 찬양 中)의 은혜"라는 식의 의미인 듯합니다. 그냥 일반적인 표현이죠.

    북위의 경우는.... 야만스러운 오랑캐 정권이라서 그렇게 표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농담)
  • 야스페르츠 2009/10/24 11:45 #

    북위는 자치통감을 따라했을 가능성이 높지요. 당주라는 표현은 저도 금시초문입니다만...
  • 들꽃향기 2009/10/24 12:49 #

    눈팅족// 당주이니 하는 표현을 쓰는건 삼국사기가 아니라 이덕일의 '오국사기'류입죠.
  • 눈팅족 2009/10/24 15:41 # 삭제

    삼국사기 이병도 역주를 봤습니다만...^^;; 원문을 보니 당주라는 표현은 없군요.^^;
  • ... 2009/10/24 02:06 # 삭제 답글

    옛날하고 지금하고는 동아시아에서 '황제'라는 호칭의 무게가 다른 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영어로 유일한 'Emperor'네 뭐네 하고 일본인들이 정신승리할 때마다,황제국이랍시고 나댄 종자들을 모두 쳐발랐으면서도 여전히 Queen을 칭하는 영국인들이 그 Emperor에 얼마만큼의 경의를 담겠느냐 싶은 시니컬한 심정이[....]
  • 야스페르츠 2009/10/24 11:46 #

    황제라는 호칭의 무게감은 오히려 근대에서 지금까지가 더 높습니다. 정작 시황제 이후 명대까지는 개나 소나 황제였다니깐요....
  • matercide 2010/09/13 00:13 #

    역설적이네요. 근대부터 전근대의 호칭인 황제가 더 존엄해지다니.
  • Esperos 2009/10/24 02:38 # 답글

    사실 조선의 의례도 군주들에게 묘호를 붙이고, 종묘, 사직에 대뢰를 바치던 데에서도 나름대로 황제 의식이 있었다고 할 수 있죠. 물론 공식적으로는 못하지만....
  • 야스페르츠 2009/10/24 11:47 #

    하긴... 묘호를 쓴다는 것부터가 이미 대단하죠.
  • 2323 2009/10/24 08:19 # 삭제 답글

    일왕이라는 칭호는 상당부분 부합하죠 일본에서는 천황=일왕이었으니 그래서 막부 장군들중 왕이라는 칭호는
    외교문서에 써보지 못했습니다. 조선에서 그렇게 격을 맞추라 난리 쳐댔지만 말입니다. 왕에대한 칭호가 천황에대한 참칭이 되기 떄문이라는 이유였으니....
  • 야스페르츠 2009/10/24 11:48 #

    따지고보면 일본이야말로 진짜 위계질서가 철저했던 것 같네요. 천황을 제외하고는 아예 왕호도 못쓸 정도였으면...
  • matercide 2010/09/13 00:16 #

    예외는 있습니다. 무로마치 막부 제3대 정이대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치(足利義滿).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 문서에 "신臣 왜국왕倭國王 미나모토 노 요시미치源義滿"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존왕파는 무로마치 막부를 아주 심하게 깝니다.

    참고 : 왜 성이 아시카가라는 묘지(관형격조사가 안 붙는 성)인데 미나모토라는 우지(관형격조사를 붙이는 성)를 썼냐고요? 아시카가가 미나모토노아소미源朝臣에서 갈라진 묘지니까요.
  • 我幸行 2009/10/24 09:10 # 답글

    50여개국의 번방을 거느린 대영제국 여제폐하조차도 영국여왕으로 깔아뭉게는 것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 천지화랑 2009/10/24 11:02 #

    인도 떨어져 나간 이후로 영국 국왕의 '인도황제' 직함은 떨어져나갔습니다만?
  • 야스페르츠 2009/10/24 11:49 #

    뭐 그렇게 따지면 맨 섬의 영주 같은 마이너 직함도 모두 챙겨서 불러줘야하는 비효율적인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냥 속편하게 여왕으로.... ^^;;
  • 我幸行 2009/10/24 18:14 #

    천지화랑님/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이 영연방이 아닌지요?
  • ㅂㄱㄷㄹ 2009/10/24 09:54 # 삭제 답글

    영국의 경우는 <대영帝국>이란 이름은 우리말(정확히는 일본이 먼저겠지만)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게 아닌가요? 그쪽 체제는 어디까지나 Kingdom 곧, 왕국이니까요. 물론 과거 영국의 국력이나 식민지등을 보면 제국을 칭하기엔 모자람이 없었으니, 대영제국이란 말이 어색하진 않지만, 칭호로 보면 어디까지나 영국군주는 왕이죠. 다만, 영국이 인도를 거느렸을 때, 인도무굴제국의 황제를 겸칭했기 때문에, (청나라 황제가
    몽골 칸과 티벳 라마등 복속한 나라의 최고직위를 모두 이어받는 것같은) 그것이 대영제국호칭을 뒷받침한다는 견해도 있긴 하더군요.
  • 야스페르츠 2009/10/24 11:51 #

    그레이트브리튼 + 제국이 아닐까 하는 망상도 해봅니다.
  • 하늘나늬 2009/10/24 11:53 # 삭제 답글

    대영제국이야 한글로 번역하면서 그렇게 불리는거지요. 식민지 놀음으로 워낙 많이 집어먹어서...
    하지만 왕국. 빅토리아 여왕때 인도 황제를 겸하면서 황제의 감투를 쓰기는 합니다.

    유럽의 황제는 로마제국을 이어받았다는 표시가 나야 하거든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러시아 황제, 나폴레옹의 프랑스 황제, 독일제국의 황제, 나름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거든요. - 우기기 비슷한거라도 말이죠.

    그런데 영국은... 우길 건덕지가 없...;;;
  • Allenait 2009/10/24 11:57 #

    어떤 분 글을 보니까,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를 폐위시키고 나서 그걸 먹었다- 라고 써놓았더군요
  • matercide 2010/09/13 00:18 # 답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 제정帝政과 제국帝國은 아주 다른 개념입니다. 유사사학자들은 이것을 헷갈립니다. 영국은 국가원수가 왕이지만 제국이라 불리고 러시아는 국가원수가 황제이지만 제국이 아니라 제정 러시아로 불렸던걸 알아두세요.
  • 파랑나리 2010/11/14 13:57 # 답글

    천황이라는 호칭을 한국인이 그대로 쓰기 부담스러운게 "천황"이란 호칭은 일제강점기 때 한국인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던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천황"의 이름으로 고통을 겪은 한국인들이 "천황"이란 호칭을 "대인배"스럽게 그대로 말해줄 수 있는 건 "천황제"가 폐지된 뒤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 파랑나리 2011/01/19 17:11 # 답글

    그런데 왜 전근대의 칭호인 황제가 근대에 들어서 더 존엄해졌을까요?
  • 야스페르츠 2011/01/19 19:48 #

    그다지... 황제를 지금에 와서 존엄하다 생각하는 지식인은 없을텐데요. 그저 세간에서 왕보다 황제가 높다는 막연한 인식 때문에 황제라는 칭호를 경외하는 것일 뿐.
  • 파랑나리 2011/01/19 21:07 #

    그 세간의 막연한 인식이 오히려 현대에 철저해진 듯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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