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9 23:55

오호망양(五胡望洋) 14 - 두 개의 연, 두 개의 진 역사

390년대 초, 화북의 판도는 아주 기묘했다. 후연(後燕)과 서연(西燕), 전진(前秦)과 후진(後秦), 관동과 관중에 각각 같은 국호를 가진 국가가 둘 씩 들어서 있는 형국이다. 후대에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들로서는 간단하게 전, 후로 구분하거나 방위로 구분해서 부르면 간단한 일이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기묘한 느낌이었을까.

물론 이보다 수십 년 전, 같은 국호를 가진 국가가 동시에 존재했던 일이 있기는 했다. 전조와 후조. 저 시기에도 상당히 헷갈렸을텐데, 390년대의 화북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막장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대.


일단 그나마 약간 안정적이던 관동의 상황을 살펴보자.

관동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것은 모용수의 후연이다. 부비가 이끄는 전진 정권과 치열하게 투쟁하면서 관동은 황폐화되었지만, 모용수의 여러 아들, 일족들은 유랑하는 백성들을 잘 보듬어 주면서 점차 나라를 안정시켜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 전연이나 전진 시기의 부강했던 화북과는 상황이 달랐다. 특히 부견이 억지로 통합시키고 부족들을 각지로 이주시켜 놓은 부작용이 너무 컸다. 내부적으로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장성 인근과 너머에서 계속되는 유목 부족의 혼란과 침탈도 치명적이었다. 당시의 기록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내부를 간신히 안정시켜 놓아도 막북에서 계속해서 분란이 전파되어 온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혼란으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도 심각했던 것 같다. 직접적으로 당시의 인구 규모를 알려주는 기록은 많지 않지만, 392년 적위 정권을 멸망시켰을 당시의 인구 상황(7개 군 3만 호)이나 서연이 멸망했을 때의 인구 상황(8개 군 7만 호)을 통해 추산해보면 당시 관동(157개 군, 전연 멸망 당시의 상황)의 호구수는 약 100만 호 정도. 전연 멸망 때 전진에 편입된 수가 246만 호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인구 감소다. 물론 혼란으로 인해 국가가 파악하지 못한 인구도 많았을테고 편입된 지역의 인구 상황이 특수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인구 감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후연의 기록을 살펴보면 유랑하는 백성들을 모아서 이주시키는 모습도 많이 보이고, 심지어 막북의 부족들을 정벌한 후에 그들을 화북으로 강제로 이식시키기도 한다.유랑민이나 새외의 백성들을 강제로 통합해 놓았으니 잡음이 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일까, 후연 정권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반란에 많이 시달렸다.

내부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후연 정권은 관동에서 가장 강력한 정권이었다. 비수대전 이후 동진이 간신히 황하 일대까지 세력을 뻗었는데, 후연이 흥기하면서 어렵게 이룬 성과가 다시 밀려나기 시작한다. 후연과 동진이 주로 맞붙었던 지역은 산동성 지역으로 당시의 이 지역 상황은 상당히 특수했다. 산동성 서부 지역은 정령족 적위 정권이 존재했고, 태산 동쪽에서 주로 싸움이 벌어졌는데, 후연이나 동진이나 이 지역을 확고하게 장악할 힘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산동의 각 지방은 후연과 동진의 힘겨루기를 지켜보면서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를 반복했다. 392년에 적위 정권을 멸망시키면서 후연이 태산 서쪽을 장악하기는 했지만, 380년대 말부터 동진과 후연의 상황은 소강상태였다.


태행산맥 서쪽, 지금의 산서성 중남부 일대에서 나라를 일으켰던 모용영의 서연 정권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사실, 서연 정권은 386년에 장자(長子)를 수도로 나라의 기틀을 잡은 이후 기록 자체가 거의 전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동진이 점령하고 있던 낙양 일대를 몇차례 침범했던 기록, 그리고 후진을 공격하려다 패배한 기록이 다다. 그나마 모용수의 후연과 가끔 외교 관계를 가지기는 했지만, 워낙에 마이너 국가인지라.... 서연의 기록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느껴지는 것은.... 잉여 인생이 관심을 구걸하고 다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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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막장의 끝을 달리는 관중의 두 진나라를 살펴볼 때다.

부등이 이끄는 저족의 전진과 요장이 이끄는 강족의 후진이 피로 피를 씻는 투쟁을 벌였던 사건은 이전 포스팅에서 다룬 바 있다. 그 이후로도 양대 세력은 그야말로 처절하게 싸워댔는데, 싸움의 양상 속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부등이나 요장 모두 국가를 수립하고 황제라는 타이틀은 가지고 있었지만, 나라를 제대로 꾸려 보기도 전에 극한의 전쟁 상황에 내몰리다보니 두 나라는 모두 국가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양측의 영토가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했던 것은 일전의 포스팅에 안습한 지도를 통해서 보여드린 바 있다. 그러나 더 골때리는 것은, 영토 자체가 너덜너덜하다보니 양측은 전선이라는 것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사방팔방에서 난타전을 벌였다는 점이다. 부등의 본군이 후진의 중심지 안정 근방에서 싸우는 동안 후진의 군대가 부등의 배후지를 공략하고, 전진측 세력이 뜬금없이 장안 동쪽에서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또한, 전진이나 후진 모두 국체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난타전을 벌이다보니 각지의 독자적인 군단들이 이합집산하는 경향도 강했다. 특히 전진 측 세력이 이런 경향이 컸다. 군대와 백성을 이끌고 후진에 항복했다가, 전진이 쳐들어오자 이에 호응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쳐들어온 군대가 패퇴하자 다시 후진 항복하는 상황. 어제의 주군이 오늘은 적이되고 내일은 다시 주군이 되는 기묘한 상황인데, 배신을 당하는 부등이야 그렇다고 쳐도 배신을 거듭하는데도 계속 받아들이는 요장도 웃지 못할 모습이다.


이 당시 전진과 후진의 전쟁 양상은 대체로 전진 측이 공(攻)이고 후진 측이 수(守)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시 양 측의 국가 상황을 살펴보면 공격하는 측보다 지키는 쪽이 더 안정적이다. 공세를 늦추지 않는 전진에서는 끊임없이 후진 쪽으로 투항하는 군단이 나타난다. (물론 이렇게 투항해 놓고서 뒤통수를 치긴 하지만...) 그런데 요장 측은 투항자가 뒤통수를 때리는 일은 있어도 핵심적인 지역은 배반하는 일 없이 안정적이었다.

사실 부등의 전진 세력은 그야말로 막장 그 자체였다. 전진이나 후진이나 영토가 너덜너덜했던 것은 마찬가지지만, 전진의 경우는 그 경향이 더 심했다. 요장의 후진은 일족들이 각지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토 자체는 걸레짝이라도 튼튼하게 통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지만, 부등의 전진은 각지의 세력이 너무 독자적이었다. 금성(金城) 지역의 걸복부 정권, 양정(楊政)의 구지 정권 등은 아예 독립국가라고 보아도 무방한 세력들이었고, 원래 부등의 세력 근거지였던 진주(秦州) 지역에서도 두충이나 양해 등이 독자적으로 왕을 자칭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니. 부서질 정도로 금이 간 도자기를 억지로 붙여놓은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후진을 몰아쳐대는 전진을 대단하다고 평가해야 하는 걸까?? 후진을 몰아치느라 나라 꼴이 엉망이 된 것일까?? 양쪽 모두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공격을 늦추지 않는 전진의 세력은 점점 피폐해져가고, 지키기에 급급한 후진의 세력은 점점 더 공고해져 가는 것이 이 당시 관중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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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93년 말, 관중과 관동은 각기 통합을 향한 행진을 시작한다. 그것도 동시에.






덧글

  • 들꽃향기 2009/10/20 00:11 # 답글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사실 포스팅을 읽다보니 느끼는 것이지만 전진의 부등세력은 그래도 일종의 '부흥운동'세력으로서의 끗발 하나는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진의 부활과 역적(요장)의 척결을 목표로 하는 만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공세를 한시라도 늦춘다면 스스로의 집단이 가지는 단결성과 명분이 희석되는 일이었으므로, 더욱 공세에 미친듯이 집착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10/20 11:46 #

    제가 생각 못했던 부분이네요. 상당히 합리적인 추측인 것 같습니다.
  • Allenait 2009/10/20 01:06 # 답글

    ..그때는 정말 마구 꼬인 상태였군요.
  • 야스페르츠 2009/10/20 11:46 #

    당시를 살아가던 민중에게 삼가 조의를...
  • 말타의매 2009/10/20 01:12 # 삭제 답글

    아주 좋은 글 이네요.국내에 나온 일반적인 역사서들은 이렇게 자세하게 5호16국시대를 다루지 않은게 많아서 아쉬웠는데 야스페르츠님이 수고를 해주시니 언제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10/20 11:46 #

    과찬이십니다. ^^
  • ... 2009/10/20 01:26 # 삭제 답글

    위치로 보나 활동으로 보나 서연은 전국시대 중산국을 연상시키는군요.
  • 야스페르츠 2009/10/20 11:46 #

    중산은 후연의 수도..(퍽!)
  • ... 2009/10/20 19:00 # 삭제

    호옹이!!!
  • 前유사매식자 2009/10/20 17:45 # 답글

    백제 ! 백제 ! 백제 !
  • 야스페르츠 2009/10/20 18:09 #

    배째라는 말씀이시죠? ㅋㅋㅋ
  • 前유사매식자 2009/10/20 18:21 #

    고기 !
  • 현암 2009/10/21 22:32 # 답글

    으음 역시 역사는 아스트랄한 점이 많아서 재밌군요 쿨럭
  • 야스페르츠 2009/10/22 00:40 #

    아슷흐랄...
  • 윙후사르 2009/10/21 23:37 # 삭제 답글

    정말 걸레짝이 따로 없군요.

    추신: 이 글 다음토탈워에서도 연재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 야스페르츠 2009/10/22 00:40 #

    서쪽의 상황은 그야말로 걸레짝....

    ps. 다음같이 고렙들이 노는 동네는 좀 무섭다능...
  • 윙후사르 2009/10/22 18:56 # 삭제

    고렙 무섭다는 고렙은 처음 봅니다. 이 수준이면 바로 개인게시판 콜하면서 학생님, 앨런비님, 야거님과 동급 되실텐데요.
  • 야스페르츠 2009/10/23 00:31 #

    저는 쪼렙이라능. 굽신굽신.
  • 功名誰復論 2009/10/22 05:11 # 답글

    세력들이 치고 박고 하는 게 웬만한 군웅류 소설들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역시 현실은 소설을 능가하는 거려나요.
  • 야스페르츠 2009/10/22 14:30 #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2009/10/24 20:32 # 답글

    守가 어색한 건 왜 일까요. 受가 익숙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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