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7 00:10

오호망양(五胡望洋) 13 - 소년 늑대의 성장 역사

386년, 북방의 선비족 탁발부는 두 세력으로 나뉘어 치열한 대립을 계속하고 있었다. 15세의 어린 군주 탁발규가 이끄는 신흥세력 대(代) 정권과 구세력 유현. 양대 세력을 축으로 북방의 여러 부락들은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되풀이하였다. 탁발규가 일어선 초기에는 유현의 세력이 혼란에 빠져 열세였지만, 곧 확고한 부동의 세력을 갖춘 유현에게 세력의 추가 기울어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탁발규의 진영은 조금씩 와해되어 가고 있었다.

특히 가을 무렵에 유현이 정통성까지 획득하게 되면서 탁발규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다. 원래 북방 유목민족의 패자는 대 정권을 40년 동안이나 유지하였던 탁발십익건이었다. 탁발십익건의 정식 후계자는 그의 손자인 탁발규였고, 유현의 선대인 유고인, 유두권 등도 탁발규의 후견인 자격으로 북방의 패권을 잡고 있었다. 탁발규가 유현에게서 자립한 이래 전통의 강자 유현에게 정통성을 가진 탁발규가 대항하는 형태가 막북의 세력구도였는데, 이 균형을 유현이 깨버린 것이다.

이야기는 대 정권이 부견에게 와해되었던 3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탁발십익건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탁발굴돌(拓拔窟咄). 당시에 장성한 아이라고 기록되었던 것으로 보아 10대 후반 정도로 추정된다. 그는 장안으로 끌려갔는데, 후에 서연(西燕)의 모용영을 따라 산서 지방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모용영의 휘하에서 복무하고 있었는데, 유현이 그를 발견한 것이다. 유현은 동생 유항니를 파견해서 탁발굴돌을 영접한다. 실권이야 쥐어주지 않았을게 뻔하다. 하지만 정통성 면에서 탁발규에 대항할 수 있는 카드를 얻은 것이다.


여파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여러 부락들이 놀라고 동요하는 가운데 탁발규의 측근들이 배반을 모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자 탁발규는 열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탁발규에게 장점이 하나 있다면, 부하들의 배신에도 관대했다는 것이다. 정통성은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10년 가까이 북방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유현에게 맞서 싸우고 있었으니 막하의 세력들도 원래는 유현의 휘하에 있었던 것이 사실. 그러다보니 유현이 세력을 회복하면서부터 점차 탁발규의 막하 부락들은 하나 둘씩 유현에게 마음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탁발규는 이러한 부락들의 행보에 대해서 이렇게 대한다.

"후진 등은 여러 대에 걸쳐서 (우리에게) 복역했으니 죄를 지었어도 당연히 참아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국가의 초창기여서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았으니, 어리석은 자들은 본디 나아갔다 물러갔다 하니 쫓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侯辰等累世服役,有罪且當忍之。方今國家草創,人情未壹,愚者固宜前卻,不足追也!


어떤 면에서 보자면 대인배라고나 할까?? 어차피 나중에 다 내것이 될테니 지금 갈팡질팡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다는 놀라운 생각이다. 탁발굴돌의 등장으로 최측근의 모반 사건까지 벌어졌건만, 탁발규는 주동자 5명만 죽였을 뿐 탁발굴돌과 왕래한 것이 밝혀진 다른 이들은 모두 용서한다. 어떤 면에서는 부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한다............


탁발굴돌이 이끄는 군대가 대 정권의 남쪽 변경을 위협하자 탁발규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음산을 넘어 북방의 하란부로 피신한다. 그리고 모용수의 후연으로 구원군을 청한다. 모용수는 모용린을 파견하여 탁발규를 지원하도록 하였는데, 모용린이 도착하기도 전에 탁발굴돌의 압박이 거세졌다. 또한 하란부 가운데서도 유현을 따르던 하염간의 세력이 북쪽에서 압박해 들어왔다.

위기 일발의 순간, 모용린의 군대가 근접해온 것이 알려지면서 동요한 군대가 진정되고, 뒤이어 모용린과 힘을 합친 탁발규는 탁발굴돌의 군대를 고류(高柳)에서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패배한 탁발굴돌은 황하 건너의 세력인 유위진에게 도망쳤다가 살해되었고, 탁발규는 정통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세력을 키우기 시작한다.



한 해가 지나고, 탁발굴돌을 잃은 유현은 내분에 빠져들게 된다. 탁발규는 유현을 멸망시킬 심산으로 다시 모용수에게 원병을 청한다. 마침 유현은 모용수에게로 향하던 조공을 약탈하여 모용수의 분노를 사고 있었기에, 모용수는 모용린 뿐 아니라 모용해까지 파견해서 유현을 격파해 버린다. 뒤이어 모용린과 합류한 탁발규는 유현 세력의 완전히 패멸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이로써 유현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드디어 탁발부가 통일된 것이다.



탁발부를 통일한 탁발규는 뒤이어 막북과 북방의 세력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다. 가장 거대한 적은 서부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유위진이었다.

유위진은 흉노 철불부(鐵弗部)의 지도자로, 오르도스 일대에서 지난 수십년간 할거하였던 세력이다. 부견 시절에는 부견의 힘을 등에 업고 대 정권과 대립하였는데, 대 정권이 멸망한 이후 황하 서쪽 지역의 패권을 위임받아 오르도스 지방에서 막강한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유위진과 탁발규는 점차 대립각을 세워갔는데, 탁발규가 북방의 여러 세력들을 하나 둘씩 합병해 나가면서 세력을 확대하자 위기감을 느낀 유위진은 391년, 8~9만에 이르는 대군을 보내 대 정권을 공격하였다.

탁발규는 이에 맞서 철기산 남쪽에서 유위진의 대군을 격파하고 그 기세를 타고 추격을 개시했다. 전투가 벌어진지 겨우 6일만에 황하를 건너고 3일 뒤에는 유위진의 거점 열발성(悅拔城)을 들이쳤으니 정말 전광석화와 같은 기습이었다. 그토록 강대했던 유위진도 이런 기습에는 어쩔 수 없었다. 도망치던 아들 유직력제는 체포되고 유위진은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391년 11월 임진일(23일)의 일이다.

12월, 탁발규는 유위진의 일족 5천 여 명을 모두 처형하고 황하로 던져버렸다. 이 전쟁으로 획득한 말이 30여만 필, 소와 양이 400여만 두였으니, 이 약탈품으로 나라의 씀씀이(國用)이 풍부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북방의 야만족 정권의 검소한(?) 경제력과 소박한(?) 행복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위진의 세력을 무너뜨림으로써 탁발규의 대 정권은 북방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경제력이라던가 기타 많은 면에서 화북의 강대한 정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세력이었지만, 대 정권에는 그러한 열세를 극복하고도 남을 열정과 야성이 넘쳐 흘렀다. 모용부나 탁발부 모두 같은 "야만족"이지만, 이미 장성 이남에서 길들여진 소위 숙번(熟蕃)과 막북에서 자연과 싸우며 살아가던 생번(生蕃)의 차이는 분명했다.

건국 초기의 탁발규는 사실상 모용수에게 복속해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는데, 북방의 패권을 장악해 가면서 점차 후연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움직임을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모용수 역시 이러한 탁발규의 세력 확대를 경계하면서 점차 대립각을 세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한 판 승부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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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리셨습니다................ ㅠㅠ

다시 시작입니닷!!!!!!!!!!!!!!!!!!!!!!!!!!!!!!



ps. 오랜만에 양질의 포스팅이니 팝스나 한 번....... 굽신굽신...





덧글

  • asianote 2009/10/16 23:34 # 답글

    푸하하. 결국 부활하셨군요. 이제 탁발부가 싹쓸이하는것만 보면 되는군요.
  • 야스페르츠 2009/10/17 11:23 #

    탁발부는 치트키 썼다능.
  • 들꽃향기 2009/10/16 23:48 # 답글

    북위빠(?)인 저로서야 탁발규 형님과 야스페르츠님의 동시부활을 기뻐할 따름입니다. 굽신굽신.... _OYL


    탁발규의 관대한(?) 대우는 지금 봐도 참 대인배스러운것 같습니다. 더욱이 화북을 재패한 광무제나 조조와 같이 여유가 있는 상황도 아니라 위기상황이었음에도 말이죠. ㄷㄷ
  • 야스페르츠 2009/10/17 11:23 #

    확실히 위기 상황에서도 관대한 건 초큼 대단하죠... 대인배.
  • 악희惡戱 2009/10/16 23:55 # 답글

    오옷! 연재 재개!!!!!
  • 야스페르츠 2009/10/17 11:24 #

    그 동안 힘들었어효. 크흙...
  • 른밸 2009/10/17 00:25 # 답글

    선리플...이거 얼마만에 쓰신겁니까 -ㅁ-
  • 야스페르츠 2009/10/17 11:24 #

    그 동안 힘들었어효. 크흙... (2)
  • 한단인 2009/10/17 03:04 # 답글

    우화하하하하핫 연재 재개로군요.
  • 야스페르츠 2009/10/17 11:24 #

    그 동안 힘들었어효. 크흙... (3)
  • 2009/10/17 08:18 # 답글

    바로 연재 시작이시군요 ㅋ 그런데 말이 30만필 노획이면 살림살이 많이 나아 졌을 듯 ㅋㅋ
  • 야스페르츠 2009/10/17 11:24 #

    정말 눈물겨운 국가재정이 눈에 보이잖습니까... ㅋㅋ
  • 我幸行 2009/10/17 08:49 # 답글

    잘 읽었읍니다.
  • 야스페르츠 2009/10/17 11:24 #

    감사합니다. ^^
  • 말타의매 2009/10/19 02:51 # 삭제 답글

    오리 기다린 오호망양 12편이네요.^^
    감사드립니다.
  • 야스페르츠 2009/10/19 10:07 #

    ^^ 이제 끝을 향해 질주해야지요.
  • 우후후~ 2009/10/22 09:37 # 삭제 답글

    연재 재개!! 오옷!! 감사합니당~~

    그나저나 탁발씨 고생고생해서 드디어 대량 득템?ㅋㅋㅋ
  • 야스페르츠 2009/10/22 14:31 #

    탁발씨는 먼치킨이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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