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1 11:56

족보에 대한 잡상 (3) 雜想

(4) 우, 우리 아빠가 누... 누군지 알아!?!?

시조나 조상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방법 두 번째.

조낸 위대한 사람을 조상이라고 우긴다.


이런 사고방식의 유형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라는 소심한 위협이 가장 원초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 위협의 이면에는 아빠의 정체가 어떻든 간에 아빠가 대단한 사람일 것이라고 상대방이 믿어주길 바라는 소심한 희망이 담겨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구체화되면 "우리 아빠가 경찰이야. 까불지 마."라는 형태로 발전한다. 저런 위협 하는 놈 치고 진짜 아빠가 경찰인 사람 못봤다... ㅡㅡ;;


소위 시조드립에서도 이러한 방법은 아주 애용된다. 특히 주로 애용되는 "유명인"은 중국인이다.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중국 유명인 드립의 대표적인 예는 역시 고려 태조 왕건의 조상이 되겠다.

(당나라) 숙종은 두 처녀를 보고 기뻐하여 자기의 옷 터진 것을 꿰매달라고 하였다. 보육은 그가 중국의 귀인인 줄 알고 과연 술사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곧 맏딸을 들여보냈더니 겨우 문지방을 넘자마자 코피가 터져서 되돌아 나오고 대신 진의를 들여보내 모시게 했다. 숙종은 머무른 지 한 달 만에 진의에게 태기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별할 때에 자기는 당나라 귀족이라는 것을 밝히고 진의에게 활과 화살을 주면서 만일 생남을 하거든 이것을 주라고 하였다. 그 후 과연 생남을 하였는데 그의 이름을 작제건(作帝建)이라고 했다. <고려사> 중


나 짱깨인 거임?? ㅠㅠ



무려 당나라 황제(물론 당시에는 황제가 되기 전 왕자 신분이었지만)를 시조로 가져다 붙인 게다. ㅎㄷㄷ.... 사실 여부를 놓고 실제 역사 속에서도 반론(숙종이 거길 왜가냐??)과 실드드립(헐... 실수했쩌염. 숙종 말고 선종.)의 향연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저 전설은 문제점이 많다. 게다가 이 전설은 자체적으로도 모순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별할 때에 자기는 당나라 귀족이라는 것을 밝히고....

...............

기록대로라면 저 사람이 숙종인지 선종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거냐?? 자기는 그냥 "당나라 귀족이다"라는 말 밖에 안했는데?? 게다가 이후에 이어지는 전설에서도 끝끝내 저 "당나라 귀족"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하다못해 유리왕은 주몽을 직접 만나서 핏줄을 확인이라도 했는데 말이지.

저 전설을 그대로 믿어 준다고 쳤을 때, 가능한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역시 "지나가던 당나라 사람(귀족일 수도 있고 아닐지도...)의 핏줄"이라는 것이 한계다. 이 이상의 해석은 모두 과장과 추측에 불과하다.



통계 같은 것을 동원할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성씨의 대부분은 중국인을 먼 시조로 두고 있다. 그나마 양심적인 대다수의 성씨들은 성씨 자체의 직접적인 시조를 중국인 & 유명인으로 하지는 않지만, 직접적인 시조의 조상으로는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 법한 유명인을 끌어댄다. 가끔은 유명인 자체를 시조로 우기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예는 드문 편이다. (뻥도 적당히 쳐야지 통하는 법이니까.) 대체로 유명인의 후손 중 하나가 한국으로 건너와 시조가 된다는 유형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도래인 전설"은 족보를 제외하면 증거가 전무하다. 일부 시조드립에서는 이렇게 도래한 중국인이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대부분 증거는 족보 말고는 없다.

일반화시킨 예를 들어 보자.

아무개는 저 유명한 거시기의 후손으로 신라 하대의 혼란기 때 중국에서 건너왔다. 건너와서는 은둔하면서 살았는데, 그 명성을 들은 왕/호족이 가끔 찾아와 지혜를 구하기도 했다. 아무개의 후손이 우리 성씨의 시조 혹은 중시조가 되시겠다. (거시기의 정체는 유명한 인물에서부터, 심한 경우는 삼황오제까지 올라가기도 함)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도래해 온 시조 이후의 세계(世系)는 전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몇 대 손이라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다다. 즉, 도래인 시조 ----(생략)---- 중시조 가 되시겠다. 심한 경우 몇 대 손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그 연대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연대인 경우도 있다. (5대손이라고 하는데 그 사이 연대가 고작 50년이라던가... ㅎㄷㄷ)



이렇게 정리해 보면, 시조드립의 실체가 눈에 뻔히 보인다. 앞서 "시조를 위대하다고 포장시킨 드립"과 비슷하다. 도래인 시조 운운은 모두 과대포장에 불과하고, 알맹이는 "중시조"다. 즉, 중시조가 진짜 그네들의 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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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뇌입원 지식즐에 이런 고민(?)이 올라오곤 한다.

아놔! 우리 집 족보를 봤는데 우리집안이 중국에서 건너온 짱꼴라라네요? 진짜 우리집 짱깨 맞아요? 그럼 나는 한민족 아닌 거임?? ㅠㅠ

특히 어린 아해들은 단일민족 떡밥에 민족주의 양념이 쳐지게 되면서 "난 한민족 아님? ㅠㅠ"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사실 단일민족 운운하면서 현존 성씨의 대부분이 중국인을 시조로 하고 있다는 모순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는게 더 웃기는 일이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중국인을 시조로 하는 족보를 놓아둔 채로 단일민족이니 민족주의니 하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은 참 뒷골 땡길 일이다.


앞뒤도 안맞는 소리는 그만 하자. 단일민족 운운도 격퇴해야 할 대상이지만, 단일민족 떡밥과 어우러져 많은 아해들을 자괴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시조 드립도 격퇴 대상 중 하나다.


너네 집안의 먼 시조. 그거 너랑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다음 편에 계속..


덧글

  • 自重自愛 2009/10/01 12:01 # 답글

    그런데 저 사진은 <태조 왕건>때가 아닌 <대조영>때의 사진.....
  • 야스페르츠 2009/10/01 12:07 #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최수종이면 되는 거죠. ㅋㅋ
  • Allenait 2009/10/01 12:13 # 답글

    ..참 별 해괴한게 많이 퍼져있군요
  • 야스페르츠 2009/10/01 17:25 #

    ??? 무엇이 해괴하다는 말씀이신지요???
  • Allenait 2009/10/01 17:34 #

    단일민족 떡밥 + 민족주의 양념 + 시조 드립.. 이죠
  • 초록불 2009/10/01 12:24 # 답글

    같은 의미로 일본 족보에 도래인 많다고 자위하는 것도 웃기죠...
  • 야스페르츠 2009/10/01 17:25 #

    그렇지요. 어차피 도래인이건 뭐건 우리가 아닌 저들인 것을.
  • 소나무 2009/10/01 12:51 # 답글

    아놔 우리 집 족보를 봤는데 우리집안이 중국에서 건너온 짱꼴라라네요? 진짜 우리집 짱깨 맞아요? 그럼 나는 한민족 아닌 거임? ㅠㅠ

    →ㅋㅋㅋ 이부분에서 미치도록 공감했습니다 ㅋㅋ
    우리 집안도 족보가 있는데 시조가 고려중순에 사신으로 왔다가 고려가 살기 좋아서 눌러 산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됩니까. 중국에서 사신으로 올 정도면 중국에서 나름 높은 관직일텐데 대체 뭐가 아쉬워서 말도 안통하는 고려에 눌러 삽니까 ㅋㅋ

    근데 제가 초딩때 할아버지로부터 그 족보 내력 처음 듣고 정체성혼란에 빠졌죠.
    "아 그럼 우리집안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 떼놈들인건가" 하고 말이죠

    그 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역사시간에 대부분의 족보가 위조된 거라는 걸 알았지만 말이죠 ㅋㅋ
  • 야스페르츠 2009/10/01 17:26 #

    ㅎㅎㅎ 뇌입원 지식즐에서 자주 봐오던 장면입니다.
  • organizer™ 2009/10/01 13:02 # 답글

    일반화시킨 예

    (어라? 우리 족보에도 매우 똑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뭐지?? 이 찝찝한 기분은??)
  • 야스페르츠 2009/10/01 17:26 #

    찝찝하실 것까지야... 우리 족보도 비슷한 구성이랍니다.
  • 빼뽀네 2009/10/01 13:47 # 답글

    '너네 집안의 먼 시조. 그거 너랑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마지막 문장이 확 와 닿네요. ^^ 잘 보고 갑니다.
    다음 편은 어떤 내용일까요? ^^
  • 야스페르츠 2009/10/01 17:26 #

    그것은 비밀입니다. 사실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도 안했습니다. ㅡㅡ;;
  • BigTrain 2009/10/01 14:31 # 답글

    저희 성씨도 신라말기 도래인 시조더군요. 뭔가 좀 대가리 커져가면서 믿지는 않았습니다만.
  • 야스페르츠 2009/10/01 17:27 #

    구체적으로 통계를 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거의 대부분이 비슷할 겁니다. 신라말에 건너온 중국인이라는 게
  • 말타의매 2009/10/01 17:04 # 삭제 답글

    배꼽빠지게 웃고 갑니다.
    글 재미있게 쓰시네요. 한가위 잘 보내세요. ^^
  • 야스페르츠 2009/10/01 17:27 #

    ^^;;
  • 윤현철 2009/10/01 17:19 # 삭제 답글

    외가쪽도 고려말에 사신으로 와서는 살기 좋다고 눌러않은 경우입니다. 시기상으로 대충 원말명초라서 지금까지 진짜로 알고있었는데, 뻥이었을 까요?
    게다가 성이 '宣'씨라서 몽골이나 그 비슷한 계통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음
  • 야스페르츠 2009/10/01 17:28 #

    고려 말의 경우는 조금 애매하긴 하네요. 그 시점에는 실제 도래인(?)도 여럿 알려져 있고, 사실일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릅니다.
  • 미래전사. 2009/10/01 19:25 # 삭제 답글

    제 조상은 버려진 아이임.. 바위에서 아이우는 소리가 들려 마침 놀러온 왕이 돌함 속에 아이가 있었다고.. 소위말하는 고아에 업동이..
  • 야스페르츠 2009/10/02 20:20 #

    돌에서 태어나셨군요. (응?)
  • Esperos 2009/10/01 22:13 # 답글

    제 외가의 시조 어른은 고려 때 노국공주를 따라 수행 온 중국인이라고 하지요. 친가의 시조 어른은 고려 때 관리였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시조로부터 중시조까지의 계보는 불확실하다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____) 중시조가 진짜 시조임이 분명하지요.
  • 야스페르츠 2009/10/02 20:20 #

    고려말의 도래인(?)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Esperos님은 짱ㄲ..(퍽!)
  • 셰이크 2009/10/02 00:20 # 답글

    제 시조는 천추태후에서 대대적으로 까인 김심언, 어차피 무신정변때 멸족은둔크리를 겪었기 때문에(김보당의 난) 조선개국과 함께 복권될 당시에도 족보가 좀 불분명했으니 근대로 올것도 없음.

    자기가 지금 뭘 하는가가 중요한 거죠
  • 야스페르츠 2009/10/02 20:22 #

    조상에 기대어 자위하는 것보다는 지금의 제 모습이 더 소중합니다. ^^
  • 을파소 2009/10/02 00:59 # 답글

    문중을 연 분이 중시조인이고, 문중 외에서 사실로 인정하는 곳은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시조는 중국인이 아니라 신숭겸 장군이죠. 이 정도는 소박한(?) 편인가요?
  • 야스페르츠 2009/10/02 20:23 #

    무려 신숭겸 장군을 조상이라 하시니 어찌 소박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뻥을 치려면 제대로 쳐야지요. 저희 가문은 무려 황제 헌원의 후예라는... ㅡㅡ;;
  • 亞羅彌秀泰鹵 2009/10/02 01:28 # 삭제 답글

    성씨제도 자체가 중국에서 들어온거니까요. 삼국 시대에는 일반인들은 물론 귀족들도 성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터키나 이란, 인도네시아, 미얀마 같이 근대이전 또는 지금도 성이 없는 나라들이 있으니까 뭐...
  • 야스페르츠 2009/10/02 20:24 #

    뭐, 1편에서도 말했다시피 100년 전까지도 성이 없던 사람이 태반이었을텐데요 뭐.
  • 아야소피아 2009/10/02 08:01 # 답글

    고대왕국 ㅅㄹ의 왕족 성씨 ㄱ씨는 사실 ㅎㄴ족의 유명한 ㄱㅇㅈ에게서 왔다능... 걔네 좀 짱이라능... 그러므로 우리도 짱이라능...
  • 야스페르츠 2009/10/02 20:24 #

    ㄱㅇㅈ 떡밥은 그만... 마이 무따 아입니꺼.
  • ㅇㄴㄹ 2009/10/02 08:58 # 삭제 답글

    나는 중국 문명의 선구 은나라 왕족 기자의 후손이며, 더불어 마한왕 우량의 후손임.

    따라서 한반도과 중국을 일통하여 통치할 자격은 나 한 사람에게만 존재함.
  • 야스페르츠 2009/10/02 20:25 #

    ... ㅡㅡ;; 저기... 님네 가문 사람들한테도 모두 똑같은 자격 있는 거 아님?? ㅋㅋ
  • 2009/11/19 15: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11/20 10:23 #

    오오 동이족의 후예시군요. 반갑습니다. ^^
  • 소하 2009/11/20 16:09 # 답글

    저의 시조도 중국에서 왔습니다. 무려 "제갈공명"의 후손. ㄷㄷㄷ
  • 야스페르츠 2009/11/21 01:32 #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무려 황제 헌원의 후손이라는... ㄷㄷㄷ
  • 소하 2009/11/21 03:58 #

    꾸벅~
  • 크큭 2010/09/17 16:59 # 삭제 답글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들조상은 아프리카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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