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 우리 아빠가 누... 누군지 알아!?!?
시조나 조상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방법 두 번째.
조낸 위대한 사람을 조상이라고 우긴다.
이런 사고방식의 유형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라는 소심한 위협이 가장 원초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 위협의 이면에는 아빠의 정체가 어떻든 간에 아빠가 대단한 사람일 것이라고 상대방이 믿어주길 바라는 소심한 희망이 담겨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구체화되면 "우리 아빠가 경찰이야. 까불지 마."라는 형태로 발전한다. 저런 위협 하는 놈 치고 진짜 아빠가 경찰인 사람 못봤다... ㅡㅡ;;
소위 시조드립에서도 이러한 방법은 아주 애용된다. 특히 주로 애용되는 "유명인"은 중국인이다.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중국 유명인 드립의 대표적인 예는 역시 고려 태조 왕건의 조상이 되겠다.
(당나라) 숙종은 두 처녀를 보고 기뻐하여 자기의 옷 터진 것을 꿰매달라고 하였다. 보육은 그가 중국의 귀인인 줄 알고 과연 술사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곧 맏딸을 들여보냈더니 겨우 문지방을 넘자마자 코피가 터져서 되돌아 나오고 대신 진의를 들여보내 모시게 했다. 숙종은 머무른 지 한 달 만에 진의에게 태기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별할 때에 자기는 당나라 귀족이라는 것을 밝히고 진의에게 활과 화살을 주면서 만일 생남을 하거든 이것을 주라고 하였다. 그 후 과연 생남을 하였는데 그의 이름을 작제건(作帝建)이라고 했다. <고려사> 중

무려 당나라 황제(물론 당시에는 황제가 되기 전 왕자 신분이었지만)를 시조로 가져다 붙인 게다. ㅎㄷㄷ.... 사실 여부를 놓고 실제 역사 속에서도 반론(숙종이 거길 왜가냐??)과 실드드립(헐... 실수했쩌염. 숙종 말고 선종.)의 향연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저 전설은 문제점이 많다. 게다가 이 전설은 자체적으로도 모순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별할 때에 자기는 당나라 귀족이라는 것을 밝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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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대로라면 저 사람이 숙종인지 선종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거냐?? 자기는 그냥 "당나라 귀족이다"라는 말 밖에 안했는데?? 게다가 이후에 이어지는 전설에서도 끝끝내 저 "당나라 귀족"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하다못해 유리왕은 주몽을 직접 만나서 핏줄을 확인이라도 했는데 말이지.
저 전설을 그대로 믿어 준다고 쳤을 때, 가능한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역시 "지나가던 당나라 사람(귀족일 수도 있고 아닐지도...)의 핏줄"이라는 것이 한계다. 이 이상의 해석은 모두 과장과 추측에 불과하다.
통계 같은 것을 동원할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성씨의 대부분은 중국인을 먼 시조로 두고 있다. 그나마 양심적인 대다수의 성씨들은 성씨 자체의 직접적인 시조를 중국인 & 유명인으로 하지는 않지만, 직접적인 시조의 조상으로는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 법한 유명인을 끌어댄다. 가끔은 유명인 자체를 시조로 우기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예는 드문 편이다. (뻥도 적당히 쳐야지 통하는 법이니까.) 대체로 유명인의 후손 중 하나가 한국으로 건너와 시조가 된다는 유형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도래인 전설"은 족보를 제외하면 증거가 전무하다. 일부 시조드립에서는 이렇게 도래한 중국인이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대부분 증거는 족보 말고는 없다.
일반화시킨 예를 들어 보자.
아무개는 저 유명한 거시기의 후손으로 신라 하대의 혼란기 때 중국에서 건너왔다. 건너와서는 은둔하면서 살았는데, 그 명성을 들은 왕/호족이 가끔 찾아와 지혜를 구하기도 했다. 아무개의 후손이 우리 성씨의 시조 혹은 중시조가 되시겠다. (거시기의 정체는 유명한 인물에서부터, 심한 경우는 삼황오제까지 올라가기도 함)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도래해 온 시조 이후의 세계(世系)는 전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몇 대 손이라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다다. 즉, 도래인 시조 ----(생략)---- 중시조 가 되시겠다. 심한 경우 몇 대 손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그 연대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연대인 경우도 있다. (5대손이라고 하는데 그 사이 연대가 고작 50년이라던가... ㅎㄷㄷ)
이렇게 정리해 보면, 시조드립의 실체가 눈에 뻔히 보인다. 앞서 "시조를 위대하다고 포장시킨 드립"과 비슷하다. 도래인 시조 운운은 모두 과대포장에 불과하고, 알맹이는 "중시조"다. 즉, 중시조가 진짜 그네들의 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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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뇌입원 지식즐에 이런 고민(?)이 올라오곤 한다.
아놔! 우리 집 족보를 봤는데 우리집안이 중국에서 건너온 짱꼴라라네요? 진짜 우리집 짱깨 맞아요? 그럼 나는 한민족 아닌 거임?? ㅠㅠ
특히 어린 아해들은 단일민족 떡밥에 민족주의 양념이 쳐지게 되면서 "난 한민족 아님? ㅠㅠ"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사실 단일민족 운운하면서 현존 성씨의 대부분이 중국인을 시조로 하고 있다는 모순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는게 더 웃기는 일이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중국인을 시조로 하는 족보를 놓아둔 채로 단일민족이니 민족주의니 하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은 참 뒷골 땡길 일이다.
앞뒤도 안맞는 소리는 그만 하자. 단일민족 운운도 격퇴해야 할 대상이지만, 단일민족 떡밥과 어우러져 많은 아해들을 자괴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시조 드립도 격퇴 대상 중 하나다.
너네 집안의 먼 시조. 그거 너랑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다음 편에 계속..









덧글
→ㅋㅋㅋ 이부분에서 미치도록 공감했습니다 ㅋㅋ
우리 집안도 족보가 있는데 시조가 고려중순에 사신으로 왔다가 고려가 살기 좋아서 눌러 산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됩니까. 중국에서 사신으로 올 정도면 중국에서 나름 높은 관직일텐데 대체 뭐가 아쉬워서 말도 안통하는 고려에 눌러 삽니까 ㅋㅋ
근데 제가 초딩때 할아버지로부터 그 족보 내력 처음 듣고 정체성혼란에 빠졌죠.
"아 그럼 우리집안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 떼놈들인건가" 하고 말이죠
그 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역사시간에 대부분의 족보가 위조된 거라는 걸 알았지만 말이죠 ㅋㅋ
(어라? 우리 족보에도 매우 똑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뭐지?? 이 찝찝한 기분은??)
마지막 문장이 확 와 닿네요. ^^ 잘 보고 갑니다.
다음 편은 어떤 내용일까요? ^^
글 재미있게 쓰시네요. 한가위 잘 보내세요. ^^
게다가 성이 '宣'씨라서 몽골이나 그 비슷한 계통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음
자기가 지금 뭘 하는가가 중요한 거죠
따라서 한반도과 중국을 일통하여 통치할 자격은 나 한 사람에게만 존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