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3 15:01

족보에 대한 잡상 (2) 雜想

(3)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시조나 조상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물론 전적으로 내 망상)

첫째, 그냥 닥치고 위대하다고 우긴다.

이런 사고방식의 전형은 우리들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아빠 졸라 짱 쎄다!", "우리 아빠 돈 무지 많다!",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구!" 등등. 어린 시절 우리가 본능적으로 자행했던 날조의 낯뜨거운 현장이 되시겠다. 조금 더 고등한 수준으로는 신분세탁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물론 북조의 장군님 드립이나 허본좌처럼 개콘 뺨치는 행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는 태백교주 님의 날조도 같은 범주다.

굳이 족보에만 적용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형태의 '조상 포장'은 족보보다 큰 범주의 역사에서도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삼국의 시조 설화라던가 단군신화, 가깝게는 북조의 축지법 쓰시는 장군님처럼. 현대 역사학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조상 포장'을 해석하여 당시 사회상을 밝혀보려 노력하고 있다. 환웅은 천신족, 웅녀는 지신족 하는 식으로.
 
사실 알게 뭐냐. 평범하게 태어나서 잘 살다가 어느날 왕이 된 다음에, "나 이런 놈이야"하고 포장한 것일지, 아니면 한 3대 쯤 되는 왕이 "우리 할아버지 이런 사람이야" 하고 꾸며댄 것일지. 어떤 유명인이 길을 가다가 바위에 앉아서 잠깐 쉬다 갔던 것 뿐인데, 어느샌가 바위 위에 앉아서 그 마을의 송사를 모조리 처리해주고 떠났다는 전설이 생겨나는 경우라든가, 아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식의 신화창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상당수의 시조 설화도 이 범주에 해당한다. 지자체 단위로 많이 편찬되는 <군지(郡志)>나 <시지(市志)>에서 이러한 지방 토성의 설화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조금 소박한 부류의 시조 설화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유형이다. (물론 통계 집계, 근거 같은 건 없다. 그냥 내 마음대로 일반적)

어릴 적부터 신동 소리를 듣고 살던 아무개 씨. 어느날 귀신(또는 산신령, 조금 규모가 크다 싶으면 용)이 도움을 청하고, 비범한 능력을 뽐내면서 그들을 도와준다. 귀신 왈 "도와줘서 ㄳ. 니네 가문 조낸 번창할거임." 그리고 장성한 아무개 씨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시조가 되었다는. 해피엔드 해피엔드.

어떤 의미로 보자면 눈물나게 소박하다. 신화를 분석하고 말고 할 건덕지가 없다. 그냥 관직에 오르고 사성을 받았다는 스토리를 조금 소박하게 부풀린 정도라는 거 너무 뻔하다. 조금 더 쳐 준다면, 어릴 때 있었던 소박한 모험담이 부풀려져서 귀신 도와준 이야기로 변했다는 정도?? 이렇게 소박한 시조 설화는 딱 보아도 사실과 부풀리기의 경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또한 소박한 설화일수록 연한도 상당히 늦다. 삼국시대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높이 올라가봤자 고려 초기다.

조금 거창하다 싶으면 천지창조나 판타지 수준의 족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삼국의 건국신화도 거창한 시조 드립이지 뭐. 그리고, 거창하면 거창할수록 믿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무협지 뺨치는 화려한 시조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한들 근거가 없고 교차검증이 어렵다면 그걸 어찌 믿을꼬.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의혹. 거창하다 싶은 시조 설화의 주인공이 유명인이라면?????????? 이게 시조 드립의 두 번째 유형 되시겠다.

다음 편에 계속..

덧글

  • Allenait 2009/09/23 15:24 # 답글

    ...뭐 제 성씨의 시조라면 무려 알에서 태어나서 한 나라의 시초가 되었던 분이니..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지 않나 싶군요
  • 야스페르츠 2009/09/23 18:45 #

    한 번 잔인해져 볼까요.... 여러 사람 다칠지도... ㅎㄷㄷ
  • 빼뽀네 2009/09/23 15:41 # 답글

    다음 편에서는 시조 설화에 대한 분석이 이어지는건가요? ^^ 기대하겠습니다

    ~
  • 야스페르츠 2009/09/23 18:46 #

    분석이랄게 있나요. 그냥 회사에서 심심해서 뇌내망상을 펼치는 중입니다.
  • asianote 2009/09/23 18:45 # 답글

    아악, 자치통감을 연재하는 야스페르츠님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1인. 물론 지금 족보 내용도 좋습니다만 자치통감 연재기를 더 선호합니다.
  • 야스페르츠 2009/09/23 18:46 #

    아직 연재를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이 글들도 그냥 뇌내망상... ㅡㅡ;;
  • 2009/09/23 20:3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09/24 11:26 #

    연관이야 당연히 있겠지요. 저는 비겁한지라 그렇게 직접적으로 까발리지는 않을 겁니다. ㅡㅡ;;
  • 亞羅彌秀泰鹵 2009/09/24 19:42 # 삭제 답글

    저도 집안 족보에 회의적입니다만, 아직 족보검증은 못해봤어요.
    한문을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라서.

    하지만, 진짜든 가짜든 별 타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저를 시조로 하는 새 양식의 족보를 만들 생각입니다;;;

    근데 대성(大姓)이 아닌 희성으로 갈수록 족보가 진짜일 확률이 높나요?
    (제가 썩 희성도 아닙니다만)
  • 야스페르츠 2009/09/24 21:04 #

    저도 아직 제 족보도 독파하지 못한 잔챙입니다.

    희성은 제 생각에 둘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진짜거나, 아니면 거창하게 꾸며낸 생판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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