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28 00:30

오호망양(五胡望洋) 12 - 죽어야만 쉴 것이다 역사

때는 386년 7월, 농서 지역에는 친 전진계 군벌들이 할거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적은 동쪽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강족의 후진. 그러나 군벌들은 그들 사이에도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후진에 비해 턱없이 미약한 세력이었다. 그런 고만고만한 세력들 가운데 하나, 위평이 이끄는 부한(枹罕)의 저족들이 지금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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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며칠째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서 결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위공(衛公)을 따르는 부족들은 너무나도 강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위공께서 물러나셔야지요. 늙어서 이빨이 다 빠진 호랑이가 강대한 부족의 발목을 잡고 있는 꼴이잖습니까."

"허나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겠습니까?"


논의는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늙고 쇠약하여 소극적으로 변한 위평을 폐하고 적극적으로 세력 확대를 꿈꾸는 신진 세력들의 모의였다. 새롭게 추대할 대장도 내정해 놓은 상태였지만, 아직까지 세력이 약한 그들이 부족의 영걸 위평을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모인 사람들 모두 서로의 눈을 피한 채 먼산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한 사나이가 나섰다. 담청(啖靑)이었다.

"제가 일을 맡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다만 위공을 청하여 모임을 만들어 주기만 하십시오."


칠월 칠석, 부중에서 큰 잔치가 열렸다. 여러 부족들이 모여 먹고 마시며 즐기고, 부족의 유력자들도 모두 모였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담청은 칼을 빼들고 하늘을 찌를듯이 들며 외쳤다.

"지금 천하는 크게 혼란하여 근심이 가득한 이때에 그대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가!"

달아오른 분위기가 물을 뿌린 것처럼 급격하게 식었다. 사방에서 낮은 수근거림이 들러오는 가운데 담청의 외침 소리가 이어졌다.

"천하가 어지러우니 현명한 군주가 아니면 큰일을 해결해 나갈 수 없습니다. 늙으신 위공께서 이 혼란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의당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 현인이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피해주셔야 합니다."

"위공께서 물러나면 누가 우리를 이끈단 말이오?"

"황실의 먼 친척인 부등(苻登)은 뜻과 지략이 웅대하고 명석하니 우리를 이끌기에 충분합니다."


주변의 분위기를 압도하려는듯, 담청은 칼을 위협적으로 흔들면서 다시 외쳤다.

"여러분 가운데 저와 같은 뜻이 아닌 사람이 있으면 바로 다른 의견을 내십시오!"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나서는 날에는 그대로 목을 날려버릴 기세다. 좌중을 압도하는 담청의 기세에 다른 뜻을 품은 사람은 나설 수도 없었다.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위평은 낮은 신음 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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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부등이 사지절·도독농우제군사·무군대장군·옹하이주목·약양공(略陽公)을 자칭하면서 무리를 이끌게 되었다. 부등은 5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동진하여 남안(南安)을 격파하고 부비와 연락을 취했다. 부비는 부등을 남안왕(南安王)으로 책봉하고, 곧이어 요장의 후진에 대한 대포위망을 발동시키기 위해 출정하였다.

그러나, 그 포위망은 채 펼쳐지기도 전에 무너져 버렸다. 요장이 선제공격에 나서 진주자사 왕통이 요장에게 항복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부비도 모용영에게 패하고 낙양에서 전사했고, 전진의 세력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상, 부등이 유일한 전진의 희망이었다. 내분의 위험마저 감수하면서 지도자로 추대되었던 부등, 그가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까?

마침내 부등은 요장이 점령한 진주(秦州) 공략에 나섰다. 치열한 격전 끝에 부등은 크게 승리하였고, 요장은 화살을 맞고 큰 상처까지 입었다. 항상 수세에 몰리던 전진 세력이 거둔 값진 승리였다.

뒤이어 부등은 부비의 전사 소식을 듣고 386년 11월, 농동(隴東)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 부등의 즉위식은 비장하고 처절했을 것이다. 부비의 발상과 황제 즉위를 마친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요장에 대한 군사 행동을 시작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부비의 군대 역시 비장함이 넘치는 군대였다. 세조 부견의 위패를 실을 수레를 앞세우고 모든 일을 그 신주에 아뢰면서 실행했다고 하며, 병사들의 창과 갑옷에 사(死)휴(休)의 두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죽은 뒤에나 쉴 것이며, 살아서는 복수할 때까지 쉬지 않겠다는 처절한 각오였다.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군대, 게다가 이들은 복수심 덕분에 정예 중의 정예로 거듭난 군대였다. 지휘부는 부견의 위패를 실은 수레를 중심으로 확고하게 서 있었고, 강력한 진형을 갖추고 군사의 보충과 분배도 철두철미하게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막강한 진용, 그들이 가는 곳에는 앞에 아무것도 없는 듯 하였다고 할 정도다.



부등은 얼마 남지도 않은 각지의 전진계 세력들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장안의 동쪽, 행성(杏城)을 점거하고 있던 부찬이 부등의 명을 받자, 인근의 여러 부족들이 부찬에게 귀부하여 10만의 무리가 부찬을 따르게 되었다. 게다가 부등은 과거의 반란세력이나 자립세력까지 포섭하는데 성공하였다. 후구지 정권의 양정, 걸복부 정권의 걸복국인 등이 부등과 함께 대(對) 후진 포위망에 가담하면서 요장은 점차 수세로 몰리기 시작한다.

관중 곳곳에서 연일 전투가 이어졌다. 부등의 동맹군들이 각지에서 요장을 몰아붙이는 가운데 일진 일퇴의 공방전이 계속된다. 관중의 진주와 옹주 사이가 양대 세력의 경계라고 할 수 있었는데, 장안의 동쪽에서 칼을 세우고 있던 부찬은 요장에게는 목에 걸린 가시 같았을 것이다. 387년 8월, 부찬의 세력이 내분에 빠지면서 요장은 그 세력을 일소하고 마침내 가시를 뽑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양측의 공방전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388년 가을이 되어서야 양군은 대치를 풀고 각자의 본거지로 돌아갔다.

양쪽 모두 특별한 성과는 없이 잠깐의 휴전이 이루어졌지만, 한창 수세에 있던 부등이 요장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는 사실은 관중의 여러 세력들에게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상대적으로 요장은 수세로 바뀐 셈이니 대차대조표를 따져보면 부등 쪽이 더 수익률이 높다. 관서 지역의 여러 군벌들이 부등에게 급격하게 기울어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요장이 얼마나 수세에 몰렸는가를 알게 해주는 엉뚱한 에피소드가 있다. 요장은 일찌기 부견을 살해하고 그 시신을 훼손하기까지 하는 등 부견을 심하게 대우한 바 있다. 그러나 부등이 계속해서 압박해오자 요장은 부견의 귀신이 부등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고, 부견의 형상을 군중에 만들어 세운다.

"신(臣)의 형 요양이 신에게 복수해달라 훈계하였으니, 신평에서 폐하를 죽인 것은 요양의 명령을 따른 것이지 신의 죄가 아닙니다. 부등은 폐하의 먼 친척인데도 복수를 맹세하였는데, 신이 어찌 형님의 뜻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폐하께서는 신에게 용양장군으로서 대업을 세우라고 명령하셨으니, 신이 감히 그 말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이제 폐하를 위하여 형상을 세웠으니 폐하께서는 신의 허물을 뒤쫓아서 헤아리지 마십시오."

그야말로 코메디 같은 상황이었다. 부견을 죽인 것이 형이 시킨 것일 뿐 자신의 죄가 아니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부견이 시킨 것(http://xakyntos.egloos.com/2365505 참조)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으니... 다행히 부견의 형상은 요장을 도와주거나 용서해주기는 커녕 진중을 다니는 병사들을 밤마다 놀래키기나 했다. 요장은 결국 부견상의 목을 베어서 부등에게 보냈다고 한다.


389년 3월, 부등은 대계(大界)에 치중을 두고 요장에 대한 맹공을 개시했다. 후진군은 각지에서 패배를 거듭하면서 수도 안정마저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8월이 되자 안정을 직접 압박하기에 이르렀는데, 요장은 그때까지도 결전을 회피할 뿐이었다. 제장들이 결전을 치를 것을 권해도 요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궁지에 몰린 도적과 더불어 승리를 다투는 일은 병가에서 기피하는 것이다. 내가 장차 계책으로써 이를 잡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것이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뒷부분의 호언장담은 즉각 실행으로 옮기는 요장이었다. 안정에는 소수의 수비군만 남겨두고, 밤을 틈타 기병을 이끌고 적진을 우회하여 부등의 치중이 있는 대계를 습격한 것이다. 습격은 대성공이었다. 부등의 황후인 모씨(毛氏)와 여러 장수들을 포로로 획득했고, 5만 명의 민호까지 노략질하였을 정도의 대승리였다.

부등에게는 뼈아픈 타격이었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니 더욱 아쉬웠을 것이다. 이 승리로 말미암아 요장은 열세에 빠졌던 세력을 만회했고, 부등은 다시금 열세에 빠져 기나긴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던 것이다.

아직 부등과 요장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덧글

  • 海凡申九™ 2009/06/28 00:34 # 답글

    그래봤자 남조의 패륜에 비하면 뭐.....;;;;
  • 야스페르츠 2009/06/28 07:36 #

    패륜이 뭘 어쨌다고?? ㅡㅡ;
  • 海凡申九™ 2009/06/29 18:10 #

    그니께.... 요장이 불충했던 거 사죄한다믄서 동상 세우고 쑈하다가
    다시 목자르는 썡쑈는 남조의 패륜에 비해 거시기 허다 이말이제....
  • 라라 2009/06/28 00:41 # 답글

    저 정도 대규모 기병 움직임도 포착하기 어려운 모양이죠? 정찰병을 두엇을것 같은데
  • 야스페르츠 2009/06/28 07:37 #

    요장이 어떻게 잘 처리했겠죠. 자세한 건 책에 안나온다능...ㅡㅡ;
  • 른밸 2009/06/28 01:57 # 답글

    전진은 부비 사망 후 흔적없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역시 역사는 제대로 배워야 하는거(...)
  • 야스페르츠 2009/06/28 07:37 #

    ^^ 전진은 엄친아 나라라서 망해도 10년은 간다능.
  • 하늘나늬 2009/06/28 02:18 # 삭제 답글

    죽은 뒤에나 쉴 것이며... 에서 300의 필이나는군요.
    그럼 요장은 관대하씨?!
  • 야스페르츠 2009/06/28 07:38 #

    This is 엄친아!! (응?)
  • Allenait 2009/06/28 02:20 # 답글

    허... 기병 야습에 당했군요
  • 야스페르츠 2009/06/28 07:38 #

    야습은 진리라능.
  • 解鳥語 2009/06/28 14:26 # 답글

    책으로 엮으시길 강추합니다 ^^
  • 야스페르츠 2009/06/28 20:40 #

    이런 쪼렙의 글을 누가 책으로 내주겠습니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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