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3 15:10

오호망양(五胡望洋) 9 - 북위의 건국 역사

385년 무렵, 막북에서 패자로 군림하고 있던 사람은 유두권(劉頭眷)이었다. 유고인이 어이없이 암살되고 난 후에 동생인 유두권이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이후부터 세력을 크게 확대하여 하란부(賀蘭部)를 격파하고 유연을 공격하는 등 막북의 패자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외부의 적들과 열심히 싸우는 동안 내부에서 성장한 병폐가 유두권을 잡아먹고 말았다. 조카 유현이 유두권을 살해하고 세력을 탈취한 것이다.


유현은 선대 유고인의 아들이다. 어떻게 보자면 유두권보다 더 정당한 계승자였다. (물론 막북의 종족들은 부자 상속보다는 형제 상속이 더 일반적이었으므로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유현은 북방의 세력을 잡은 뒤 "진짜 적통"이라고 할 수 있는 탁발규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

탁발십익건의 손자 탁발규는 부견이 탁발부를 멸망시킬 당시(376년)에 고작 5살의 어린애였다. 385년 현재에도 14세. 성인의 기준이 낮았던 당시에도 어린아이로 분류될 나이이다. 탁발부가 멸망한 이후 탁발규는 북방의 지배자로 임명된 유고인에게 보호를 받고 있었다. 유고인에서 유두권으로 이어지는 동안 근근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탁발규에게 드디어 위협이 다가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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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구름에 가려져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깊은 밤, 한 천막의 틈새로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온다. 천막 안에는 중년의 두 여인이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섭규는 우리 탁발씨의 마지막 남은 희망이네. 반드시 살려야 해."

"알려주어서 고맙습니다."

"더 도움을 주고 싶은데 이것 밖에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유항니의 부인 탁발씨와 탁발규의 어머니 하란씨의 대화였다. 유항니는 유현의 동생, 이 덕분에 탁발규의 고모였던 탁발씨는 유현이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각, 다른 천막 안에서도 은밀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네들이 섭규를 도망칠 수 있게 도와줘야겠네."

"저희들이 움직이면 대인께서 의심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목숭. 자네에게 내 부인과 말을 맡기겠네."

"대인! 목숨을 버리려 하십니까? 차라리 저희와 함께 하십시오."

"아니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 죽고 싶지 않네. 더 좋은 방법이 있어. 잘 듣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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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하란씨가 아니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소?"

"우리 섭규가 잡아온 뱀으로 좋은 술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대선우께 한 잔 올리려고 이렇게 찾아왔지요."

"하하하. 섭규 녀석이 꼬마 아이인줄 알았는데 제법이군."

"아직 많이 부족한 아이입니다. 선우께서 많이 가르쳐 주세요."

"흠. 그건 그렇고, 술이나 따라 보게나."

탁발규의 어머니 하란씨가 유현에게 술을 권하던 그 시각, 탁발규는 눈물을 머금고 말을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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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을 어디다 숨겨놓았느냐! 네놈들이 죽인 게지? 누가 죽였느냐!"

숙취로 아픈 머리 속으로 앙칼진 외침 소리가 울렸다.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난 유현은 시종을 불러 무슨 일인지 물었다.

"하란씨가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왜?"

"저희들이 섭규를 죽였다고 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통 모르겠습니다."

아직 탁발규를 죽이라 명하기 전인데 하란씨는 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그것은 비밀이지 않은가?

"섭규를 찾아보았는가?"

"어미가 저 난리를 피우는 것을 보니 아들이 사라진 모양입니다."

"이런... 도망을 친 모양이군."

어제 밤에 하란씨가 찾아온 것을 먼저 의심했어야 했다. 저 여자가 무슨 꿍꿍이로 찾아왔는지 의심도 하지 않고 웃고 즐기다니. 어리석은 짓을 했다. 누가 비밀을 누설한 것일까. 아니다. 일단 뒤를 쫒는 것이 우선이다.

"어서 추격군을 파견해라."

"저... 그것이...."

"왜 그러느냐?"

"하란씨가 난리를 피우는 통에 말들이 모두 놀라서 흩어졌습니다. 말을 잡으러 다들 나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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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안으로 양육권이 들어섰다. 유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의 부하들 중에 사라진 이들이 있더군."

"부하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 처와 아끼던 말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 빼돌린 것은 아니고?"

"저를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사라진 자네 부하들이 섭규와 함께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부하들은 도망친 섭규와 함께 있고, 말과 아내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누구나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야."

".... 제 처를 빼돌렸다고 생각하겠지요."

"너도 인정을 하는게냐?"

"저라도 그렇게 의심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억울합니다."

"글쎄..."

갑자기 천막 밖에서 요란한 발굽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급보라면서 서찰을 든 간자가 들어섰다. 유현은 서찰을 받아들고 재빨리 훑어보았다. 양육권은 그런 유현의 앞에서 태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서찰을 다 읽은 유현은 무표정했다.

"무슨 서찰입니까?"

"사라졌다는 자네의 부하 말일세."

"네. 그놈들이 보낸 것입니까?"

"직접 읽어보게."

양육권은 서찰을 받아들었다. 서찰에는 목숭이 선포했다는 내용이 요약되어 적혀 있었다.

"양육권은 대왕(代王)의 유지를 잇기는 커녕 은혜와 의리를 돌아보지 않고 역적 유현을 도와 역적질을 하고 있다. 그러니 그의 처와 말을 빼앗아 양육권을 응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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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탁발규는 외삼촌 하란눌이 지배하는 하란부로 향했다. 적통이었던 탁발규가 자립의 기치를 세우자 유현의 강력한 세력에도 삽시간에 균열이 생겼다. 하란부가 떨어져 나가고, 곧이어 유현의 진영에서도 혼란이 일어나 탁발규의 모친 하란씨도 탈출하여 탁발규에게 돌아갔다.

점차 세력을 키워가면서 탁발규는 여러 부락의 대인들에게 추대를 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386년 정월, 탁발규는 대왕(代王)에 즉위하여 나라를 세운다. 훗날의 북위가 될 초석이 처음으로 놓인 것이다.


덧글

  • 한단인 2009/06/13 15:18 # 답글

    '유고인'이 누구였더라? 때문에 http://xakyntos.egloos.com/2320336 뒤져본 1인
  • 야스페르츠 2009/06/13 22:09 #

    유고인은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
  • 海凡申九™ 2009/06/13 17:05 # 답글

    북위가 무조건 킹왕짱이란 소리를 듣기 전의 모습은 비참했도다~!!!
  • 야스페르츠 2009/06/13 22:10 #

    비참할 것까지야... 유목민족 킹왕짱들은 원래 이렇게 가정 불화도 겪고 하는 것임. (응?)
  • paro1923 2009/06/13 19:48 # 삭제 답글

    뭐어, 징기스칸도 그 시작은 아버지 죽고 부족에게 버림받고 마누라 NTR당하고...
    결국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랄까요...
    북위라는 '어린애'의 첫 발걸음은 이랬군요. 그러나, 이제 장성하면...
  • 야스페르츠 2009/06/13 22:10 #

    확실히 징기스칸과 비슷한 점이 많지요.
  • 천지화랑 2009/06/13 22:31 # 답글

    눈물의 스타트
  • 야스페르츠 2009/06/13 23:55 #

    초창기 탁발규는 상당히 안습하지요. ㅡㅡ;
  • 대한민국 성골 2009/06/13 23:07 # 삭제 답글

    떡밥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떡밥은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아무도 안 보여주고 저만 볼거에욧!!!
  • 야스페르츠 2009/06/13 23:55 #

    돌려 보기도 하시고 그러세요. ^^ 2호도 조만간... ㅡㅡ;
  • 들꽃향기 2009/06/14 03:35 # 답글

    어흑흑 시작은 미약하나...ㅠㅠ
  • 야스페르츠 2009/06/14 08:43 #

    끝은 과연 창대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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