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6 12:14

오호망양(五胡望洋) 7 - 중산 정도(定都) 역사

모용수가 나라를 일으킨 이래, 하북 각지에서 전진 측 세력과 후연 측 세력은 치열한 공방을 계속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후연 측의 우세가 두드러졌지만, 전진 측의 반격도 만만치는 않았다. 여기에 기회주의적인 독립세력으로 정령족 적진(翟眞)·적요(翟遼) 등도 하북 각지를 전전하며 치열한 전투를 계속했다. 1년에 걸친 참혹한 공방전 때문에, 하북은 황폐화되고 있었다.

"연과 진이 서로 버티며 1년을 지냈는데 유주와 기주에 크게 기근이 들어서 사람이 서로 잡아먹으니 읍과 촌락이 쓸쓸해졌다."
                                                                        <자치통감> 권106

전쟁으로 유랑하는 백성들이 많아지면서 하북 각지는 황폐해져 갔지만, 반대로 유랑하는 백성들을 보듬어 정착시킬 수만 있다면 상대적으로 상대편보다 강해 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모용수의 여러 아들들은 돋보이는 업적을 쌓았다.

모용린, 모용농, 모용온 등 모용수의 아들들은 하북 각지에서 전진의 잔존 세력들과 각축을 벌이는 한편 흩어진 민호들을 수습하여 안정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모용농과 모용온은 중산 일대에서 적진의 세력과 대치하면서 민호를 수습하는데 주력하였는데, 적진을 격파하고 난 후에는 모용수에게 군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배후지가 되었다.

한편, 북방으로 진격을 거듭하던 모용린·모용좌 등은 유주를 격파하여 북방의 전진 세력을 일소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틈을 타서 고구려가 요동과 현도를 공격·점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장군 여암(餘巖)이 반란을 일으켜 요서 지역을 장악하면서 애써 점령한 유주 지역이 반토막 날 지경이 되었다. 이에 모용수는 모용농을 파견하여 여암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하였다. 하북에 도착한 모용농은 여암의 반란군을 단숨에 격파하고 나아가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요동과 현도도 단숨에 무너지고, 결국 모용농은 옛 전연의 근거지를 모두 회복하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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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수가 하북 각지를  평정해 나갈 무렵, 업을 버리고 떠난 부비는 진양에 이르러 부견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부견은 비명에 세상을 떠났고, 관중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관중 너머 진주 지역에는 여전히 전진의 세력들이 건재했지만,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상 병주 지역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부비 휘하의 세력들이 전진 최후의 세력이었다.

부비는 마침내 385년 8월 말, 진양에서 황제에 즉위한다. 한때 천하 통일을 꿈꾸었던 전진이었건만, 겨우 2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완전히 몰락하여 궁벽한 진양 땅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부비가 황제에 즉위했다는 것만 보아도 전진의 몰락은 분명했다. 부견의 장자이기는 했지만, 적자가 아니라 서자였기 때문이다. 서자가 궁벽한 시골에서 왕위를 계승해야 했을 정도로 전진은 급격하게 쇠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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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하북 일대를 거의 평정한 모용수는 마침내 중산을 도읍으로 정하고 황제에 즉위한다. 386년, 그의 나이 61세 때의 일이다.

덧글

  • 카구츠치 2009/06/06 12:16 # 답글

    그러고 보니 신 시리즈는 첨부된 지도가 없었네요. 뭔가 다른데..하고 생각하다가...^^;
  • 야스페르츠 2009/06/06 13:03 #

    ㅎㅎ 없는 건 아닙니다. 매편마다 그릴 필요는 없잖아요. ^^ 필요할 때는 나옵니다.
  • 海凡申九™ 2009/06/06 15:41 # 답글

    이제 북위에 까일 날이 멀지 않겠죠? ㅠㅠ
  • 야스페르츠 2009/06/07 00:06 #

    북위는 아직 꼬꼬마라능.
  • 을파소 2009/06/06 15:50 # 답글

    후연에 몰입하니 고구려의 치사한 오랑캐로 보이는....

    후연에서는 실제 그 정도로 생각햇을테죠?
  • 야스페르츠 2009/06/07 00:07 #

    후연에 그렇게 몰입하시다니... 역시 의리의 모용수는 예사 인물이 아니란 말인가!!(퍽!)
  • 라라 2009/06/06 16:55 # 답글

    가정인데 왕맹 말데로 햇다면 어덯게 됏을가요?
  • 야스페르츠 2009/06/07 00:08 #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남북조 시대가 50년 정도 더 먼저 시작되었으려나요...
  • paro1923 2009/06/06 19:18 # 삭제 답글

    아아, 모용씨... 고구려와의 길고 긴 악연...
  • 야스페르츠 2009/06/07 00:08 #

    하긴, 모용외 때부터 치자면 진짜 길긴 합니다...
  • 2009/06/06 22:14 # 답글

    황제 너무 많네요.ㅎ
  • 야스페르츠 2009/06/07 00:09 #

    상황이 너무 개판입니다. 그래도 동쪽은 좀 덜한 편이지요. 서쪽은 그야말로 ㅎㄷㄷ
  • 사불상 2009/06/06 23:40 # 삭제 답글

    고구려 털렸군요. ㅠㅠ
    호태왕이 나오기전까지 버로우.
  • 야스페르츠 2009/06/07 00:09 #

    고구려와 싸우는 것을 좀 더 자세하게 쓰고 싶은데, 정말 한 두 줄로 끝나버리는지라...ㅡㅡ;
  • 함부르거 2009/06/07 01:10 #

    모용씨랑 그렇게 죽어라 싸웠으면서도 고구려 쪽에도 기록이 많지 않지요.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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