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7 23:25

오호망양(五胡望洋) 4 - 업 공방전 역사

" 모용수가 황하를 건넜다!"

충격적인 소식은 순식간에 업 성내에 퍼져나갔다. 과연 그럴 줄 알았다는 사람, 말도 안되는 말이라 부정하는 사람, 드디어 연(燕)이 부활하게 되었다고 속으로 좋아하는 사람 등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업의 성주였던 부비는 첫 번째 부류였다. 두려움 반, 걱정 반으로 사지로 내몬 것이 자신이었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부비에게는 황하를 건넌 모용수보다는  열인(列人)에서 속속 모여들고 있는 모용농의 병력이 더 큰 위협이었다.

각지의 토호들이 모용농의 깃발 아래 모여들고 있었다. 부비는 일단 멀리서 오고 있는 모용수는 제쳐두고 모용농을 먼저 쳐부수기로 결정했다. 부견이 부비를 보좌하도록 믿고 맡긴 맹장 석월(石越)이 보기 1만의 병력을 이끌고 열인으로 향했다. 이 소식을 들은 모용농은 웃음부터 터뜨렸다.

"석월은 지략과 용맹으로 명성을 얻은 자인데, 어째서 남쪽의 대군을 막지 않고 이리로 오는 것인가? 이는 필시 대왕의 병력은 두려워하고 우리를 능멸하는 것이니, 반드시 방비도 세우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군대를 이기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지."

모용농의 호언장담에도 안심하지 못한 주위에서 열인성을 수리할 것을 청하자 모용농은 성에 의지하면 이길 수 없다고 답한다. 사실, 성을 수리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모용농이 열인으로 도망친 것이 383년 12월 그믐이었고, 석월의 토벌군이 열인에 도착한 것이 384년 정월 신묘일(7일)이었으니, 고작 8일 만에 거병하고, 병사를 모은 것이다. 모용농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실제 모용농의 군대는 형편없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는 석월의 병력과 대치한 모용농의 대처에서도 드러난다.

선봉군을 일단 들이쳐 격파하는데 성공한 모용농의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석월의 본진을 칠 것을 청하였는데, 모용농은 아군의 사기는 높지만 무장이 빈약하니 낮에 싸우면 안된다 말하며 진지를 엄하게 지키도록 명하였다. 그 말대로 모용농의 병력은 상당히 열악했을 것이 분명하다.

한편 이에 맞서는 석월은 진지에 목책까지 설치하면서 정석대로 포진하였다. 모용농군이 응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한눈에 파악했을 것이다.

"석월이 막 도착한 기세를 타 공격하지 않고 목책이나 세우고 있으니, 저 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놈이로구나."

모용농은 여전히 허풍이 잔뜩 들어간 호언장담만 하고 있었다. 사기가 떨어질지도 모를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만큼 압도적인 열세였다.

그리고 밤이 되었다.

잡병들을 앞에 두고도 고지식하게 목책까지 세울 정도로 FM인 석월이다. 야습에 대한 대비도 철저했을 것이 분명하다. 모용농도 애초에 야습은 포기했던 모양이다. 진지에서 공격을 위해 출발할 때도 요란하게 북을 울리고 함성까지 질렀으니, 지금 공격하러 가겠다고 친절하게 알려준 꼴이다.


누가 보아도 결과가 뻔한 전투였다.


그러나 믿을 수 없게도 모용농이 승리한다. 야습도 아니고, 병력의 질도 확연하게 차이가 났으며, 목책까지 갖춰진 튼튼한 진지를 공격한,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전투였는데 승리를 거둔 것이다. 역시, 진(秦)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부견이 맏아들을 맡겼던 명장 석월은 이렇게 어이없는 최후를 맞고 만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투에서 승리했고,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하북 각지의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모용수의 20만 대군도 드디어 업에 모습을 드러냈다. 384년 정월 경술일(26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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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은 능히 고칠 수가 있으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고(孤)는 주상에게서 세상에 드문 두터운 은혜를 입었소. 그러니 장락공(長樂公 : 부비)을 온전히 장안으로 보내 드리리다. 그런 다음에 국가의 대업을 수복하고 진나라와 더불어 좋은 이웃이 되겠소. 이미 기회와 시운이 다한 것을 아직도 모르시겠소? 그래도 업성을 돌려주지 않겠다면 일전을 불사할 수 밖에."

"장군은 가문과 나라에서 쫒겨나 성조(聖祖)에 목숨을 던졌는데 어찌 연나라의 한 자 땅덩이라도 장군의 몫이 있단 말이오? 주상과 장군은 고향과 종족을 떠나 친지보다도 더 친밀하고 총애를 하였건만, 왕의 군사가 조금 패했다고 해서 이렇게 다른 뜻을 가지다니! 섬동(陝東)의 땅은 장락공께서 주상에게 책임을 받은 땅이니 장군에게 한 치도 내어줄 수 없소. 장군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소이다. 애석하게도 세상에 드높은 충신이 반역의 귀신이 되겠구려."

"… …."

"폐하! 저놈의 목을 당장 베겠습니다!"

"돌아가게 내버려 두어라. 그도 그 주인을 위한 일일 뿐이니 무슨 죄가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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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외교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임자일(28일)부터 참혹한 포위전이 시작되었다. 첫날의 전투로 업의 외성은 함락되었으나 부비는 중성(中城)을 지키면서 버텼다. 병력의 차이는 압도적. 부비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포위 공격이 시작된지 한 달이 다되도록 견고한 업은 함락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모용수는 공격을 늦추고 업 인근에 신흥성(新興城)을 쌓고 임시 수도로 삼았다. 하북 각지의 토호들도 모용수에게 속속 항복해 들어왔다. 포위는 계속되고, 물을 끌어들여 수공까지 펼치는데도 부비의 농성은 굳게 이어졌다. 간간히 성 밖으로 나와 두들기는 타격도 날카로웠다. 한 번은 반격에 말려들어 모용수가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북 각지는 부비의 굳건한 농성과는 달리 차례 차례 모용수의 손으로 떨어졌다. 모용수 자신은 업을 포위하는 주 전장에서 붙어 있었지만, 모용수의 아들과 조카들은 하북 각지를 차례로 점령하고 있었다. 상황은 점차 절망적이 되었다. 그러나, 뜻밖의 구원군이 나타났다. 그것도 모용수의 진중에서.


모용수는 일전에 낙양에서 정령족 적빈의 군사를 흡수한 일이 있다. 정령족 병력 자체도 막강한 수준이었고, 모용수가 거병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계기를 만든 "건국공신"이었으니 적빈의 콧대가 높은 것은 당연했다. 모용수에게 오만방자하게 갖가지 요구를 하면서 뒷구멍으로는 부비와 내통을 하였던 것이다. 가을이 되도록 공성전이 길어지자 두 마음을 품게 되었으니, 모용수의 포위군을 반대로 궤멸시키기 위해 업으로 향해 있던 수공을 포위군으로 돌리려고 획책하였다. 다행히 중도에 발각을 당해 적빈은 죽고 적빈의 조카 적진(翟眞)이 부족을 이끌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막강했던 정령족의 병력이 사라졌으니, 모용수의 포위군에도 구멍이 뚫렸다. 게다가 적진은 부비와 안팎에서 호응해서 역포위를 기도하기도 하였으니 모용수의 포위 형세도 위기에 빠진 셈이다. 다행히 적진의 역포위 기도는 중도에 차단되었지만 사실상 무인 지경으로 하북을 평정해 나가던 모용수의 기세에 첫번째 태클이 들어오게 되었다. 결국, 모용수는 업의 포위를 풀기로 결정한다.

"부비가 궁지에 몰리기는 했으나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물러나 신흥성에 주둔하고 부비가 서쪽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주는 편이 낫겠구나. 진왕(秦王)의 옛 은덕을 사례하고 적진을 토벌할 수도 있으니 가장 좋은 계책이다."

식량이 다 떨어져 소나무 껍질을 깎아 먹을 정도였던 부비에게는 천운이었다. 적진의 정령족을 비롯하여, 아직 모용수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은 유주와 병주의 병력들이 연결되면서 부비는 오히려 모용수를 포위하는 커다란 덫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유주와 병주는 탁발부의 지원을 얻는데 성공하여 승승장구하는 모용수의 확장을 적절하게 막고 있었다. 처절하게 싸우던 지난 7개월 동안의 설움에서 벗어나 오히려 모용수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10월에 이르러 부비는 모용수를 본격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용수는 재빠르게 병력을 움직여 오히려 압박하는 병력을 각개격파해 버렸으니, 가까스로 얻은 승기는 순식간에 뒤집히고 말았다. 게다가 유주와 병주를 지원하던 탁발부의 수장 유고인이 인질로 잡아두고 있던 모용씨 일족에게 암살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일어났다. 그야말로 하늘이 진나라를 버린 것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좌절스러운 상황에서도 한 줄기 빛이 다가왔다. 문제는, 그 빛이 과연 구원의 불빛인지 악마의 유혹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동진의 군대가 하남 지역을 모두 평정하고 업 인근에까지 진출한 것이다. 그러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니 어쩔 수 없다. 부비는 동진의 사현에게 원군을 부탁하였다. 사현에게 향하던 부비의 사신들은 원군을 확실하게 받아내기 위해 서찰을 고쳐 동진에 복속하겠다는 내용으로 바꾼다. 이런 서찰을 받았으니 사현도 흔쾌히 원군을 보내줄 수 있었다. 유뢰지, 등념지 등이 황하를 건너 부비를 지원하고 군량도 공급해 주었다. 모용수도 다시 업에 대해 포위망을 구축하는 가운데 동진, 부비, 모용수의 3대 세력은 업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 385년의 해가 밝았다. 이때 3대 세력의 균형(?)에 미묘한 금이 가기 시작한다. 부비가 사신들의 사기 행각을 알고 사신들을 모조리 처형한 것이다. 동진의 장수들은 부비를 향해 경계망을 펴기 시작한다. 그래도 어쨌거나 표면적으로는 부비와 동진은 협력하는 사이였으니, 업과 그 인근에서 모용수군을 협공하면서 지속적으로 압박이 들어간다. 그러나 모용수도 효과적으로 양면의 압박을 막아내고 있었다. 업의 포위망도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4월, 동진의 유뢰지는 군사를 업으로 진격시켜 포위망을 직접 공격하였다. 모용수는 크게 패배하고 신흥성으로 퇴각하였는데, 유뢰지는 부비를 내버려두고 모용수를 급하게 추격한다. 부비도 급히 유뢰지를 뒤따랐는데, 마침 유뢰지는 모용수의 반격으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당하였으니 부비는 유뢰지를 구출하여 돌아왔다.

모용수가 잠시 물러나게 되자 진(秦)과 진(晉)은 서로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부비가 일단 군량을 얻고자 동진군의 주둔지인 방두로 향한 사이, 유뢰지는 업으로 들어가 패잔병을 모았다. 상황이 기묘하게 변한 것이다. 마침내 부비와 동진군은 업을 놓고 서로 싸우게 되었으며, 동진군은 패배하여 업을 빼앗기고 만다.

업을 되찾은 부비였지만, 이미 폐허가 되버린 업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성이었다. 결국 부비는 업을 버리고 장안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유주를 빼앗기고 호관에 주둔 중이던 유주자사 왕영도 부비를 초청하였고, 부비는 마침내 업을 떠나 진양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진양에서 부비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부견의 사망 소식이었다.

덧글

  • 초록불 2009/05/27 23:31 # 답글

    잘 보았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5/28 09:47 #

    감사합니다. ^^
  • 한단인 2009/05/27 23:35 # 답글

    그래도 꽤나 버티긴 했군요.
  • 야스페르츠 2009/05/28 09:48 #

    1년이 넘게 버텼으니 대단한 것이죠.
  • 海凡申九™ 2009/05/27 23:43 # 답글

    "고지식한 사람에게 자식 맡기면 인생 종친다"던
    중학교 떄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국어 선생님이셨나? 흐음....
  • 야스페르츠 2009/05/28 09:48 #

    그래도 막돼먹은 사람보다야 낫겠지요.
  • 을파소 2009/05/27 23:45 # 답글

    저승에서 엄친아를 배알한 왕맹은 매우 안타까워했겠군요.
  • 야스페르츠 2009/05/28 09:49 #

    왕맹 지못미.
  • asianote 2009/05/28 06:17 # 삭제 답글

    당도고의 활약은 언제 시작됩니까?
  • 야스페르츠 2009/05/28 09:49 #

    조만간....등장하겠지요. ㅎㅎ
  • 自重自愛 2009/05/28 08:47 # 답글

    이런 사례를 보면 모용수에 대한 그간의 평가도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 야스페르츠 2009/05/28 09:51 #

    저도 자치통감을 읽으면 읽을수록 모용수가 대체 어디가 뛰어나다는 것인지 의심이 됩니다. 젊었을 때는 가정불화에 시달려, 툭하면 아들을 잡아 죽이고, 모용평 따위한테 쫒겨나기도 하고. ㅡㅡ;
  • 2009/05/28 09:05 # 답글

    부비의 행적이 마치 원소의 장수 심배와 겹쳐뵈는군요
  • 야스페르츠 2009/05/28 09:51 #

    흠. 심배가 저러했던가요?
  • 2009/05/28 14:54 #

    삽질(후계자싸움이어서 좀 다르지만)로 원가에 큰 타격을 입혔지만 결국 충을 위해 죽는다.란 결말?이 좀 닮았어요 ㅋ
  • paro1923 2009/05/28 09:14 # 삭제 답글

    일을 꾸미는 건 사람, 그러나 그게 되느냐 마느냐는 하늘에... 였던가요?
    아직 초반이라 뭐라 말하기 힘든 혼란한 상황이군요.
  • 야스페르츠 2009/05/28 09:52 #

    결과를 모두 아는 자의 만행이지요. ^^
  • 2009/05/28 14:53 #

    謀事在人成事在天
  • 들꽃향기 2009/05/28 13:29 # 답글

    탁발부가 유주와 병주의 전진세력을 후원했던 것은 확실히 장기적인 안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진세력이야 결국 이정도의 혼란이 있으면 유주와 병주는 커녕 관중을 지키기도 버겨운 지경이었으니간요.

    실제로 이 사건 이후 탁발부가 유주와 병주의 상당수를 공백상태에서 접수하여 자신들의 세력권에 넣을 수 있었으니...가히 대업의 기초라 할만한 것 같네요.
  • 야스페르츠 2009/05/28 22:10 #

    흠... 하지만 아직 탁발규는 꼬꼬마 어린애라는... 탁발부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요.
  • 解鳥語 2009/05/28 14:52 # 답글

    ^^ 잘보았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5/28 22:10 #

    감사합니다. ^^
  • 윙후사르 2009/05/28 17:02 # 삭제 답글

    너무 허무한 석월의 최후군요. 그건 그렇고 하북도 요지경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05/28 22:11 #

    그래도 관중보다는 낫지요. 관중은 그야말로 산산조각...
  • 사불상 2009/05/29 07:09 # 삭제 답글

    아직까지 답이 안나오는 상황이군요.
  • 야스페르츠 2009/05/30 00:17 #

    부견 이후의 오호십육국은 확실히 답이 없는 진짜배기 혼란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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