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0 00:25

대당고김씨부인묘지명의 번역 전문 역사

재당(在唐) 신라인의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

투후 떡밥과 관련하여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던 터에 moduru 님의 블로그에서 막 발견한 따끈따끈한 번역 전문입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은 역시 투후와 관련된 부분. 특히 투후의 후손이 어떻게 신라로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漢)이 덕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난리가 나서 괴로움을 겪게 되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은 멀리 떨어진 요동(遼東)에 숨어 살게 되었다. 문선왕(文宣王.공자의 시호)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에는 성실함과 신의가 있어야 하고 행동에는 독실하고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비록 오랑캐 모습을 했으나 그 도(道)를 역시 행하니, 지금 다시 우리 집안은 요동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듯 번성했다.


연합뉴스에서는 이 구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지요.


보통 요동이라면 고구려 영역이자 지금의 만주 일대를 말하지만, 묘지명의 문맥으로 보건대 신라를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아가 그 시기는 묘지명에 정확한 언급이 없지만, 한서 김일제 열전에는 그의 7대 후손에 와서 왕망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저도 이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고 봅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 비문은 투후의 후손이 "어떤 과정으로 신라로 오게 되었는가", "정말 투후의 후손인가"에 대한 해답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투후의 후손이 신라로 오게된 과정 자체를 매우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실제 후손"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해준다고 봅니다.


투후의 행적은 상당히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투후의 후손이 어떻게 이주해 왔는가는 사실상 생략하고 있으며, 더불어 "요동에서 번성한 모습"에 대한 묘사마저 완전히 생략한 점은 매우 이채롭습니다. 말 그대로 신라의 왕족으로 엄청나게 번성을 누린 것을 모두 생략한 채 "중국과의 연관성"만 열심히 찬양하는 점은 대단히 기형적으로 느껴집니다.


제 생각에 이 비문의 내용은 순수한 "신라인의 시조 의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재당 신라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김씨부인이 신라보다는 중국과의 혈통적 연관성을 더 중요시했던 인식의 발현이라고 봅니다. 물론 저러한 인식 자체는 신라인, 신라 왕실에서 했던 것이겠지만, 이정도로 기형적인 인식은 재당 신라인의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신라 왕실 자체에서도 이와 같은 "소호금천씨 - 투후 김일제"로 이어지는 시조 의식은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특별히 강조했던 것일 뿐, 근본적인 신라 왕실의 시조 의식은 아니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문무왕릉비문에서 강조되는 조상은 성한이지 투후가 아니니까요.


앞으로 더 귀추를 주목해 봐야 겠습니다.


덧글

  • 초록불 2009/05/20 00:41 # 답글

    김일제가 소호금천씨의 후예라는 것부터 에러인 것을...
  • 야스페르츠 2009/05/20 09:05 #

    쿨럭... 그렇군요. 사실 문무왕릉비의 화관지후(신농)도 흉노와 별 관련이 없을 듯...
  • 을파소 2009/05/20 00:43 # 답글

    갑제옹은 이 떡밥에 아골타 신라왕족 후손 떡밥에 훈족의 이동까지 아울러 '세계를 주름잡은 김씨'라는 떡밥으로 집대성하시더군요.
  • 야스페르츠 2009/05/20 09:05 #

    갑제 옹이 하루 이틀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뭘.
  • 매식자붙이 2009/05/20 01:59 # 답글

    하지만 덕선생께선 곧 '옳거니M선생의주장이타당함이입증되었다' 라며 내면의 공고화를 이룰 듯
  • 야스페르츠 2009/05/20 09:06 #

    그거쓴 설마 저 김씨부인이 김해 김씨라는???? (퍽!)
  • 들꽃향기 2009/05/20 02:41 # 답글

    사실 김일제는 무제가 곽광과 함께 소제를 부탁한 탁고지신 중의 하나로, 그들은 역사적으로 '어린 군주를 보좌하여 국정을 바르게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실제 행적은 그런거 같지도 않지만-_-;)

    즉 당시 김씨부인을 매장하고 묘비명을 지은 이들이 야스페르츠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중국인들과의 관계를 의식하여, "너희가 오랑캐라고 불러도, 우리가 이와 같이 인의가 있는 분의 자손이야 뿌우~'ㅅ'"라고 주장하기 위한 수사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문맥에서 '요동에 있음에도 인의를 지켜'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죠....
  • 야스페르츠 2009/05/20 09:07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오랑캐라고 차별을 받으니까 "우리도 성현의 자손임 뿌우" 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 海凡申九™ 2009/05/20 05:52 # 답글

    차라리 사로6촌의 소벌공이 김씨라하지...;;;;
  • 야스페르츠 2009/05/20 09:07 #

    그런 거 모름. ㄲㄲ
  • 아야소피아 2009/05/20 07:36 # 답글

    참 연구거리가 많은 주제네요. 근데 설마 "신라는 요동에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 생기진 않겠죠?
  • 한단인 2009/05/20 08:46 #

    이미 만주신라설 운운하는 무리들은 예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임승국부터 그 얘기를 해왔는걸요.
  • 야스페르츠 2009/05/20 09:08 #

    신라는 요서에 있었다능. 경주를 낙랑이라고 불렀는데 낙랑은 요서에... (퍽!)
  • azusa 2009/05/20 09:04 # 답글

    우리 아골쨩의 김(金)나라 무시하나요 ㅋㅋㅋ



    죄송합니다;;
  • 야스페르츠 2009/05/20 09:09 #

    김에 밥 싸먹으면 맛있다능. (응?)
  • 사다리 2015/01/22 00:11 # 삭제 답글

    투후가 소호씨의 후예라는 것이 에러라는 지적이 에러같습니다.
    화관지후는 특정인이라기 보다는 고대에 불을 맡은 직책으로 주로 쇠를 다루는 일을 했을테지요.
    그러니 불임금으로 이름했으며, 불을 관직이름으로 삼은 최초의 인물이 '신농임금'이니 마땅히 신라의 선조는 신농씨로 거슬러 올라갈 밖에...

    【火官】古官名. 五行官之一, 卽火正. 禮月令: 「孟夏之月, 其帝炎帝, 其神祝融」
    注 :「祝融, 顓頊氏之子曰黎爲火官」

    댓글을 보니 고대 역사와 한자에 대해서 신라인의 선조보다 더 잘 아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문무왕이나 비문을 찬한 분들이 여기 댓글을 보시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참으로 궁금하네. ㅎㅎ
  • 사다리 2015/01/22 00:11 # 삭제 답글

    투후가 소호씨의 후예라는 것이 에러라는 지적이 에러같습니다.
    화관지후는 특정인이라기 보다는 고대에 불을 맡은 직책으로 주로 쇠를 다루는 일을 했을테지요.
    그러니 불임금으로 이름했으며, 불을 관직이름으로 삼은 최초의 인물이 '신농임금'이니 마땅히 신라의 선조는 신농씨로 거슬러 올라갈 밖에...

    【火官】古官名. 五行官之一, 卽火正. 禮月令: 「孟夏之月, 其帝炎帝, 其神祝融」
    注 :「祝融, 顓頊氏之子曰黎爲火官」

    댓글을 보니 고대 역사와 한자에 대해서 신라인의 선조보다 더 잘 아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문무왕이나 비문을 찬한 분들이 여기 댓글을 보시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참으로 궁금하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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