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3 22:43

오호(五胡)의 쟁패 27 - 비수대전(淝水大戰) 역사

383년 7월, 부견은 동진 원정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대규모 징발을 개시한다. 장정 10명 당 1명을 징집하여 보병 60만, 기병 27만의 대군을 구성한 것이다.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엄청난 대군이었다. 여기에 서역으로 원정을 떠난 10만 명, 기타 수비군들까지 합치면 100만을 훌쩍 넘는 경이적인 군대다. 이렇게 엄청난 대군이니 전선의 규모도 압도적이었다.

부견의 본군이 형주와 예주로 진격하고, 촉과 한중의 군사는 각기 장강과 한수를 따라 내려온다. 하북에서 징집된 군대는 연주와 서주로 진격하여 팽성(彭城)으로 향하는 가운데 머나먼 양주(凉州)에서 출발한 군사는 이제 겨우 함양(咸陽)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동진과의 국경 전체 1만여 리에 걸쳐서 뭍과 물로 압박해 들어갔던 것이다. 부융(苻融)과 모용수가 이끄는 선봉군의 규모만 30만에 이르렀으니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에 맞서는 동진의 포진은 크게 두 방면에 나뉘어 있었다. 환온의 동생 환충(桓沖)이 지휘하는 서부는 형주 지역을 방어하였으며, 사안(謝安)이 지휘하는 북부는 서주와 양주(揚州)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환충이 주로 상대하게 될 적은 모용수의 선봉군과 촉·한중의 군대였고, 사안은 부융의 선봉군과 부견의 본군, 하북군을 상대해야 했다. 말 그대로 풍전등화. 언제 꺼질지 모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사안은 이 시대, 청류파의 모습이라도 보이려는 듯이 태연함을 가장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반면 이들을 공격하는 부견은 자신만만했다. 출정하기도 전에 당시 동진의 황제 사마창명과 환충, 사안을 잡아와 살게 할 저택을 짓게 하고, 미리 관직까지 내려놓았을 정도이니 얼마나 기고만장했을까. 어떻게 보자면 적을 얕보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100만에 가까운 대군을 동원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전선을 전개하는 것은 적을 얕보는 사람의 작전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자만과 자신감의 미묘한 경계라고나 할까.


마침내 10월, 부융이 이끄는 선봉군이 비수(淝水) 서쪽의 수양(壽陽)을 점령하여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모용수도 운성(鄖城)을 점령하여 환충을 압박했다. 환충의 전략적 위치는 컸지만, 어쨌거나 전쟁의 핵심은 수도 건강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회수 방면이었다. 그러다보니 모용수는 운성 점령을 끝으로 특별한 군사 활동은 보이지 않고 환충을 압박하는데 전념한다. 반면 전쟁의 중심이 되는 회수 방면에서는 연일 치열한 격전이 계속되었다.

※ 병력 배치도

수양을 교두보로 하여 부융은 협석(硤石)을 포위하였고, 양성(梁成)은 낙간(洛澗)에 목책을 설치하고 구원군의 진격을 막았다. 동진의 사석(謝石)과 사현(謝玄)은 양성과 대치하면서 진격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협석에서 포위당한 호빈(胡彬)은 양식이 다 떨어져 사석에게 구원을 청하는 밀사를 파견하였는데, 이 밀사가 도중에 부융의 군대에게 포획되고 말았다.

밀사를 통해 동진 군의 포진을 알게 된 부융은 부견에게 사신을 보내 신속하게 적을 격파할 것을 청하였다. 부견 역시 속전속결로 끝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주력군을 뒤로 한채 경기병 8천과 함께 밤낮으로 말을 달려 수양으로 향했다.

부견이 수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석은 지구전을 펼치려고 하였는데, 마침 바로 그때 부견이 파견한 사신이 진중에 찾아왔다. 사신으로 온 사람은 주서(朱序), 과거 양양 공방전에서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웠던 사람이다. 주서는 일단 부견의 말을 전했다.

강약의 기세가 다르니 빨리 항복하는 것만 못하다.
强弱異勢,不如速降。


일단 임무를 마친 주서는 즉각 옛 조국이었던 동진의 신하로 돌아섰다. 부견이 본군을 후방에 남겨두고 빠르게 말을 달려 전선으로 나온 것을 밝히고, 본군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선봉을 격파하는 것이 낫다고 고한 것이다. 사석은 급히 작전을 바꾸어 신속히 유뇌지(劉牢之)를 보내 양성의 봉쇄군을 공격하게 하였다. 유뇌지는 열세한 병력을 가지고도 저돌적으로 공격하였다. 병력도 압도적이었고, 도하를 저지하는 입장에 서 있었던 양성이었지만 저돌적인 유뇌지의 공격은 전략·전술적인 법칙을 깨부셔버렸다. 양성을 비롯하여 여러 장수들이 죽거나 포로로 잡히고, 진의 군대는 1만 5천 명의 인명피해를 입은 채 패주하고 말았다.

사방에서 압박을 당하고 있던 동진군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희망적인 승전보였다. 부견은 승승장구하던 기세를 꺾였고, 사안은 봉쇄를 뚫고 진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석은 유뇌지를 협석으로 보내 지원하도록 하고 자신은 본군을 이끌고 수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사석의 군세는 8만, 아직 부견의 본군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병력 면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인 열세였다. 그러나 최초의 승리로 격하게 고무된 사석의 군사는 거리낌없이 진격했다. 마침내 비수의 동쪽, 팔공산(八公山)에 이르러 군사를 포진한다.

부견과 부융은 수양성에서 동진의 군세를 살펴보았다. 풀숲이 울창한 팔공산에 포진한 동진군의 수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산을 뒤덮고 있는 숲 속에 얼마나 많은 군사가 있을까? 숲의 나무들이 모두 적군으로 보일 정도로 부견은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괜히 애꿎은 부융에게 호통을 칠 뿐이었다.

이 또한 강한 적인데, 어찌 약하다고 했는가!
此亦勁敵,何謂弱也!


※비수전투 상세도

부견은 비수를 사이에 두고 널리 포진했다. 지난 전투에서 도하하는 적에게 격파당하는 수모를 겪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전술적으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했다. 사석 역시 도박은 한 번으로 족했다. 강을 건너다가 공격이라도 받았다가는 일패도지하는 수 밖에는 없다. 사석은 적의 진중으로 사절을 보냈다.

그대의 현군(懸軍)이 깊이 들어왔는데 물에 가까이 진지를 치니, 이는 곧 지구전의 계책이고 빨리 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군요. 만약 진지를 옮겨 조금 물러나면 진(晉)의 병사가 건널 수 있게 되니, 이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것이 역시 좋지 않겠습니까?
君懸軍深入,而置陳逼水,此乃持久之計,非欲速戰者也。若移陣小却,使晉兵得渡,以決勝負,不亦善乎!


공격해 들어온 적이 지구전을 펼치고 수비하는 측이 전면전을 요구하고 있으니 주객이 전도된 꼴이었다. 엄친아 부견에게는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여러 장수들이 계속 막고 있을 것을 주청하였지만, 부견에게는 한수 위의 계책이 있었다. 군사를 물려 적이 도하하도록 한 후에 절반 쯤 건너왔을 때 들이치려 한 것이다. 기책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무랄데 없는 전술이었다.

사석이 이 기본적인 계책을 깨닫지 못했을까? 아무리 초전의 승리로 고무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오히려 전면전을 펼치려는 것은 무엇인가 이상하다. 부견의 본군이 합류하러 올지도 모르니 빨리 전투를 벌여야할 이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도박적인 전투는 무모한 것이었다. 어느모로 보나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부견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 나는 부견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거나, 알았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것이 엄친아, 이상주의자의 사고방식이다. 게다가 열세한 적에게 우세한 아군이 "꼬랑지를 말고 있느냐? 한 판 붙자!"고 도발을 당한 셈이니, 감정적인 격양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쨌거나 부견은 작전대로 군대를 후퇴시킨다. 그리고 후퇴와 함께 동진군의 도하도 시작되었다. 이것은 추측이지만, 동진군의 도하 속도도 예상보다 훨씬 빨랐을 것이다. 승세를 타고 저돌맹진하는 군대에게 강 하나 쯤 건너는 것은 일도 아니다. 여기에 더해서 사석의 계책이 작렬했다.













진(秦)의 군사가 패했다!
秦兵敗矣!


부견의 군대로 돌아와있던 주서가 부견군의 배후에서 크게 소리치며 군대를 선동한 것이다. 주서와 사석의 모의는 사료에는 기록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부견군이 군대를 물리자 마자 주서가 소리친 것이나, 어이없는 패배로 미루어 보건대, 주서와 사석은 낙간에서 만났을 때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런 모의가 있었기에 사석은 적은 군세로도 과감하게 정면 승부를 걸었던 것이리라.

거짓 후퇴를 하고 있던 부견군은 순식간에 전면 도주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붕괴였다. 전쟁에서 숫자의 폭력보다 무서운 것이 군대의 기세다. 압도적인 대군이 주서의 세 치 혀에 농락당해 통제불능으로 도주하게 된 것이다. 부융이 말을 달려 후퇴를 막아보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진군의 맹추격까지 이어졌다. 부융은 혼란 속에서 낙마한 후에 적의 창에 꿰여 절명하고 말았다. 혼란을 안간힘을 쓰며 막던 대장까지 떨어지고 나자 군대는 완전히 붕괴해 버렸다.

각지에서 격전을 치르고 있던 군사들도 패주의 소식을 듣고 순식간에 패주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전장에서, 그것도 국왕이 직접 참여한 전선이 무너졌으니 다른 전선이 무사할리가 없다. 이럴 때에 침착한 지휘관이라면 궤멸은 막을 수 있었겠지만, 부견군은 지휘관도 부족했고 군사들도 이런 상황에서 침착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베테랑은 아니었다. 무사히 퇴각에 성공한 부대는 모용수가 이끄는 3만 명의 군대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전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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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은 통 속의 바둑돌을 만지작거렸다. 손님이 둘 차례였다. 바로 그때 파발마가 사안의 집 안으로 날듯이 달려 들어왔다.

"무슨 소란이냐."

전령이 화급히 올리는 서신을 받아든 사안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신을 책상 위에 내려 놓았다. 사안이 둘 차례였다. 바둑판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으니 손님이 물었다.

"무슨 편지입니까?"

"어린 아이들이 적을 물리친 모양입니다."

마치 어린 손자가 문 밖에서 뛰어노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바둑돌을 내려놓는 손길은 떨리고 있었다.

"악수(惡手)로군요."

"허허. 이런 소식에 동요하다니, 이 늙은이가 주책입니다."

애써 태연을 가장했지만, 문지방에 신발이 부딪혀 굽이 부러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흥분해 있던 사안이었다.


※동산보첩도(東山報捷圖) : 사안이 바둑을 두고 있고 멀리서 파발마가 달려오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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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하는 군대 사이로 화살에 부상을 입은 채 홀로 말을 달리는 부견. 유일하게 온전한 군대를 가진 모용수. 그리고 제각기 난세의 꿈을 품은 영웅들. 오호의 쟁패는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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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을파소 2009/04/13 22:52 # 답글

    역시 뒷통수가 근질거리면 싸우기 힘들다는 거군요.
  • 야스페르츠 2009/04/14 09:10 #

    자나깨나 뒤통수 조심 ^^
  • asianote 2009/04/13 22:52 # 삭제 답글

    부견이 삽질하니 사안이 한족을 지켰도다! 새 한족이 나올 때까지 남조는 중화를 자랑하리!
  • 야스페르츠 2009/04/14 09:11 #

    16년 동안 삽질만 해오신 무덤 김병만 선생님을...
  • 른밸 2009/04/13 23:13 # 답글

    비수대전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어이없이 질 수 있는지...저족의 장수들이 그렇게 만만한 사람들도 아니고, 유뇌지에게 기습을 당했다고 해도 그래봤자 1% 피해를 본 것 뿐인데 말이죠. 부융이 일단 퇴각한 뒤 군사를 수습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좌우지간 이제 모용수의 시대가 오는거군요. 그리고 탁발씨까지- 오호십육국 시대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여서 기대됩니다 +_+
  • 야스페르츠 2009/04/14 09:12 #

    정리하는 사람은 죽어난다능. ㅠㅠ 진짜 복잡한 시대가 시작된다구요.
  • 한단인 2009/04/13 23:28 # 답글

    음.. 그러고 보니 서역으로 원정을 갔던 10만 대군의 행방은 다음에 나오는 건가요? 거기서 눌러 앉은 정권이 무슨 양나라인지 얼핏 들은거 같기도 하고..
  • 야스페르츠 2009/04/14 09:12 #

    서역으로 정벌을 가서 알렉산드로스를 만났다는... (퍽!)
  • 윙후사르 2009/04/14 00:03 # 삭제 답글

    이제 다시 중원은 걸레조각으로...
  • 야스페르츠 2009/04/14 09:13 #

    산산조각이 나지요. ㅡㅡ;
  • 악희惡戱 2009/04/14 00:08 # 답글

    이건 뭐...
  • 야스페르츠 2009/04/14 09:13 #

    한마디로 삽질이지요.
  • paro1923 2009/04/14 04:02 # 삭제 답글

    저 패전 자체만이었다면 적벽대전과 비슷한 양상 정도로 끝났겠습니다만,
    이후 부견의 일련의 '관대한' 정책과 최악의 방향으로 맞물린 점이 클테지요.
    결국, '혼일사해의 꿈은 비수도 못 넘고'...
  • 야스페르츠 2009/04/14 09:14 #

    확실히 패전 후에 수습만 제대로 했다면 아직 젊은 부견이니 재기가 가능했겠지요. 수습하기 어렵긴 했습니다만. ^^
  • FELIX 2009/04/14 06:50 # 답글

    비수 전투는 이리보고 저리봐도 미스테리에요.
  • 야스페르츠 2009/04/14 09:15 #

    못믿으시겠습니까? 믿으세요. (믿거나 말거나 버젼)
  • paro1923 2009/04/14 22:58 # 삭제

    한국 버젼으로 "명량해전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미스테리에요"가 있습... (뚜둑)
  • 사불상 2009/04/14 11:06 # 삭제 답글

    이건 뭐... 암릿처도 아니고 불리할 것도 없는 싸움에서 쳐발렸으니
    쪽수만 많았지 지휘가 안된거 같군요.

    그냥 숫자로 밀어도 될거 같은데 관대하씨 ㅠㅠ
  • 야스페르츠 2009/04/14 13:19 #

    관대하씨 하니까 왠지 300이 생각나는군요. 300명한테 발린 것도 참... ^^
  • azusa 2009/04/14 11:48 # 답글

    뭐 결국 부견은 천하를 담기에는 모자랐던 그릇이었다는 이야기. 인가요?^^
  • 야스페르츠 2009/04/14 13:23 #

    ㅎㅎ 그럴지도요. ㅎㅎ
  • Silverfang 2009/04/14 13:19 # 답글

    모용수의 30만이 '건재하다!'

    악재는 원래 한꺼번에 밀려드는 것이고
    꺾인 군세는 수이 오르는 것이 아닐진저.
    그렇다면 이때 두어야 모용수의 바둑알은...

    누군가의 머리를 향하겠지요. 아아... 슬픈 배신의 난세여.
  • 야스페르츠 2009/04/14 13:26 #

    의외로 모용수와 부견은 배신으로 얽힌 관계는 아닙니다. 거의 낭만주의적이라고 할 정도로 서로를 아끼는지라...(응?)
  • Silverfang 2009/04/14 14:30 #

    확실히 배신의 칼을 바로 뽑지는 않았군요.
    하지만 강족과 저족같은, 등 뒤의 적을 두고 '돌격 앞으로'를 외친 부견의 의견에 유일하게 찬성한 모용수의 행동이 자꾸만 의심스러운 점은 어쩔 수 없습니다요;
  • ♡영혼의새♡ 2009/04/14 18:02 # 답글

    100만 대군이 아니라 그 10분의 1인 10만을 동원했더라면 오히려 승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만...

    세치 혀놀림에 쉽사리 무너지는 군대에 통제할 중간지휘관도 제대로 없었다는 것을 보면 진의 인재 풀은 예전부터 말라붙었는데 왕씨 아저씨 때문에 드러나 보이지 않았는지도.
  • 야스페르츠 2009/04/14 18:49 #

    그저... 삽질이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지요.
  • 子聞之曰是禮也 2009/04/14 21:18 # 답글

    이렇게 지기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야스페르츠 2009/04/15 00:19 #

    이거쓴 프리메이슨의 음모로써 왈왈왈... (퍽!)
  • keyne 2009/04/15 00:52 # 답글

    차라리 모용수를 비수 쪽으로 보냈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야스페르츠 2009/04/15 09:11 #

    역사에 if는 없지요. ^^;;
  • crator 2009/05/01 05:02 # 삭제 답글

    동원군사는 100만이지만 실제 전면전에 투입된 전력은 30만 안팎이군요. 그런데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그 상황은 부견의 입장에서는 고려해볼만한 일입니다. 소수인 동진으로는 대회전 한방으로 승패를 가를 수 있어서 좋지만, 부견의 입장에서는 100만명이나 되는 입을 먹이기 위한 병참이 과연 얼마나 풍족한지 생각해봐야 했겠지요.

    이미 떠나기 전에 혼자 지랄맞은 짓을 한 걸보면 단기간안에 평정되리라고 생각했을테니 지원할 수 있는 국고의 소모도 그리 길지 않을게다...라고 생각하고 원정을 나섰을 것 같습니다. 의외로 서전에서 동진이 강하게 나왔으니 단판승부를 지을 생각을 한 것은 흐름상 맥락이 닿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때 전투에서 이겼어도 통일이 지속되었을까 싶네요. 왕맹이 유언한 걸로 보아 전투에서 지는 것보다 통치의 어려움을 호소한 것 같은데 말이죠. 사마염이 5호를 13주 영내 안에서 사는 것을 허락함으로서 이후 대혼란의 근간을 제공하는 것처럼 각지의 민족들이 힘을 쥐고 있으면 집권하기가 어려웠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 야스페르츠 2009/05/01 22:46 #

    ^^ 사실 병참 문제도 상당했을 것 같은데 기록이 없어서 참 그렇지요. 환온이 북벌할 때는 병참 이야기를 그렇게 하더니만 부견 때는 아무런 말이 없으니...
  • blue 2010/03/29 04:54 # 답글

    예전에 비수의 대전에 관한 글을 읽었을 때 백만의 대군이 겨우 몇 사람이 선동한 것에 넘어간 것에 상당히 의아해서 야사(野史)의 기록인가 했지만, 그게 자치통감의 기록이었군요. 병력이 아무리 많아도 계통이 다른 혼성군이었으니 이런 혼선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합니다. 압도적인 수로 밀어붙이는 것도 좋은 전술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그것을 누가 지휘하느냐가 문제겠지요.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라고 유방에게 말한 한신과 같은 사람이 그렇게 흔치는 않을테니까요.
  • 잉간 2013/11/05 00:01 # 삭제 답글

    아마도 왕맹이 그 동안 메꾸던 역할이 왕맹 사후에 드러난 단적인 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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