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2 20:44

오호(五胡)의 쟁패 26 - 나는 관대하다. 역사

375년, 왕맹이 세상을 떠났다. 엄친아 부견을 폭주하지 않도록 견제하며 패자의 길로 인도하던 길잡이가 사라진 것이다. 왕맹은 저세상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부견과 진 정권의 안위를 걱정하여 "동진을 도모하지 말고 선비와 강족을 제거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러나, 부견은 끝내 그의 유언을 따르지 않는다.

왕맹 사후의 부견은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지고 광채를 잃어버린 보석 같은 느낌이다. 엄친아만이 가능한 폭주 상태라고나 할까? 조금 모자란 제왕이었다면 적당한 부하에게 적당히 일을 위임하고 함께 천하를 다스려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엄친아 부견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재상을 잃고 나자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려 하였다. 그러나 패업의 힘겨운 현실 앞에서 부견은 피로를 토로하기도 한다.

짐이 듣건대 제왕 된 사람은 어진 사람을 구하는 데에 수고하지만, 선비를 얻고 나면 편안하다고 하니 이 말이 얼마나 맞는 말인가! 과거에 승상(왕맹)을 얻고 나서 항상 제왕노릇하기 쉽다고 생각하였다. 승상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는 귀밑머리가 반이나 하얗게 세었고, 매번 일을 할 때마다 그를 생각하게 되니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괴롭고 서럽구나.
朕聞王者勞於求賢,逸於得士,斯言何其驗也!往得丞相,常謂帝王易為。自丞相違世,鬚髮中白,每一念之,不覺酸慟。


말 그대로 폭주 모드에 들어선 것 같은 부견은 376년 한 해 동안 양 정권과 탁발부를 멸망시켜 화북을 평정하였다. 378년에는 동진의 양양(襄陽)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1년에 걸친 포위 끝에 점령하였으며, 회수 방면으로도 군사를 풀었다. 왕맹이 살아 있을 때는 무리한 전쟁을 삼가고 위험한 모험은 하지 않았지만, 왕맹을 잃고 폭주하는 부견은 전쟁으로 한 해를 시작하여 전쟁으로 날이 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부견은 엄청난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 반란을 일으킨 친족에게도 서신을 보내 직분을 다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를 거부하고 토벌대에 사로잡혔어도 끝내 죽이지 못하고 귀양만 보내고 만다. 또한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관대한 정책들을 수없이 시행하였다. 차라리 관대하기만 하면 다행이련만, 부견의 기묘한 이상주의는 균형을 위해 미묘한 정책을 남발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의아한 정책은 바로 대대적인 사민 정책이었다.

이 시대에는 인구가 곧 국력이다. 그러므로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백성들을 강제로 모아 이주·정착시키는 사민 정책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정책이었다. 그리고 대체로 이 시대의 사민이라 하는 것은 적국을 공격하여 민호를 약탈하거나 멸망시킨 국가의 민호를 옮기는 것이었다. 주로 수도 인근의 땅으로 사민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러다보니 과거 후조 정권에서는 저족과 강족이 중원에서 살도록 하기도 하였다.

부견 역시 정복한 국가의 백성들을 대대적으로 수도 장안 근방으로 옮겨 살도록 하였다. 그런데, 부견은 엉뚱하게도 진 정권의 핵심 민족이던 저족을 반대로 관동으로 옮겨 살도록 하였다. 즉, 정복당한 적국의 백성들은 수도에 살고, 정복한 본국의 백성들은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도록 한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이었다.


왕맹이 죽은 이후 관대한 부견의 치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378년 양양이 함락되던 때에, 배반하고 성문을 열어 함락의 단초를 열었던 이백호는 처형되었는데,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켰던 주서(朱序)는 용서받고 벼슬까지 하사받는다. 왕맹의 치세였다면 이러한 인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배반자는 아군이 힘과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면 다시 배신하지 않겠지만, 지조를 지킨 적국의 충신은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부견의 인덕에 감복하여 만고의 충신이 될 것인가, 뱃속에 칼날을 숨기고 살아갈 것인가.

382년, 부견은 마침내 동진을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할 뜻을 공표한다. 수많은 신료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엄친아에 이상주의자이기까지 한 부견은 꼴통처럼 자신의 의견만 그대로 밀어붙인다. 심지어 부견의 후궁과 꼬꼬마 막내 아들까지 반대하는데도 요지부동이었다. 부견의 동진 정벌에 찬성한 사람은 극소수였는데, 그 가운데 돋보이는 인물이 있었다. 모용수. 과거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아 부견에게 도망쳐왔던 모용수는 부견의 의견에 찬성하면서, 오히려 반대하는 다른 이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부견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383년, 운명의 해가 밝았다. 부견은 동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는 한편, 서역을 평정하기 위해 여광(呂光)에게 10만의 군사를 주어 서쪽으로 떠나게 하였다. 천하 통일과 함께 서역까지 도모하려 하는 것은 역시 이상주의자다운 사고방식이다. 부견의 전쟁 준비가 이어지는 가운데 5월에는 동진의 환충(桓沖)이 양양과 촉을 공격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부견의 주전론에 적국이 한층 힘을 실어준 셈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8월, 부견은 드디어 출정을 개시한다. 천하의 운명을 건 최대의 혈전이 시작된 것이다.


덧글

  • 海凡申九™ 2009/04/12 20:45 # 답글

    비수 전투 짤은 없나염?
    요장 그 찢어죽일 놈은 생각할 수록 배반자 당첨인 놈임.


    어헝헝 지못미 부견...
  • 야스페르츠 2009/04/12 23:13 #

    원래 난세에는 배반하고 배반당하는 법이지요.
  • TSUNAMI 2009/04/12 20:52 # 삭제 답글

    <<아틀라스 중국사>>집필진이 성공했다면 '한족이라는 이름은 중국역사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던 빅 매치편 돌입인가효?
  • 야스페르츠 2009/04/12 23:13 #

    빅매치 시작입니다. ^^
  • 사불상 2009/04/12 20:55 # 삭제 답글

    페르시아 황금 공장장 관대하씨?

    중국에서 환생해서 기억을 되찾고는 중국을 점령하고 서역 원정을 거쳐서 그리스까지 털어먹을 관대하씨입니다.

    썰렁하군요. ;;;;;;;;;
  • 야스페르츠 2009/04/12 23:13 #

    나는 관대하다. ㅎㅎ
  • 한단인 2009/04/12 21:08 # 답글

    어허.. 서역원정까지 계획했다는 것은 처음 들었군요. 그런 일이..

    그러면 만약 동진 원정이 성공했다면 이 양반.. 고구려 원정까지 계획했을지도..ㄷㄷㄷ


    덧. 저족을 수도에서 다른 곳으로 사민시킨 건 어쩌면 황권에 저항하던 저족 기득권층을 겨냥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역시 이상주의자라서 그랬나봅니다. 이해는 가지만 시간이 너무 이른 듯..
  • 야스페르츠 2009/04/12 23:14 #

    괜히 엄친아가 아니지요. 후후.

    어떤 면에서는 양면전쟁을 벌이는 무모함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 paro1923 2009/04/12 21:28 # 삭제 답글

    얼씨구... 정말 나사가 빠져도 단단히 빠졌군요.
    나중에 저승에서 왕맹한테 조낸 갈굼당해도 쌀 짓들만 골라서...
    부견이 엄친아라기보단, 왕맹의 오오라 빨이 좋았던 것 뿐인 것 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4/12 23:14 #

    ^^ 진짜 저승에서 왕맹에게 제대로 갈굼 당했을 거 같네요.
  • 子聞之曰是禮也 2009/04/12 21:35 # 답글

    군주는 신하의 능력이 자신의 능력인줄 착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이녀석은 모용수에게 녹았군요.

  • 야스페르츠 2009/04/12 23:15 #

    최후의 승자는 모용수! (응?)
  • 맹꽁이서당 2009/04/12 23:02 # 답글

    오... 드디어! 다음화가 기대되는군요. ^^
  • 야스페르츠 2009/04/12 23:16 #

    ^^ 다음화가 이번 연재에서 가장 부담되는 부분입니다. ㅎㄷㄷ
  • 함부르거 2009/04/12 23:07 # 답글

    저족을 관동으로 옮긴 것은 어쩌면 식민을 통해 지방의 안정을 노린 정책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평화시였다면 유효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난세에... -_-;;;
  • 야스페르츠 2009/04/12 23:17 #

    사실 왕맹의 조언처럼 동진을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난세였다고 해도 성공했을 정책이긴 합니다. 문제는 저놈의 천하통일. ㅎㄷㄷ
  • 海凡申九™ 2009/04/12 23:22 # 답글

    (환온)<부견<모용수<(왕맹)<<<<<"탁발X"

    진정한 승자는 북위!
  • 른밸 2009/04/13 02:28 # 답글

    드디어 비수대전이 왔군요 ㄷㄷㄷ 이 부분은 <대륙의 한>에 꽤 괜찮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거기에 나온대로 모용수가 선비족을 부흥시킬 생각을 이 때부터 했던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 야스페르츠 2009/04/13 09:09 #

    커밍 수운~
  • asianote 2009/04/13 09:18 # 삭제 답글

    늑대들이 부견을 노리니 부견 목숨 부지할길 없어라!
  • 야스페르츠 2009/04/13 09:21 #

    ㅎㅎ 이미 말씀드렸지만, 엄친아에게 늑대 같은 건 우걱우걱이라능. ^^
  • 윙후사르 2009/04/13 16:02 # 삭제 답글

    유비도 저리 관대하지 않거늘... 부견의 관대함은 한비자를 인용하면 "너무 자비로워서 나라가 망할 지경" 이군요.
  • 야스페르츠 2009/04/13 16:08 #

    그런 부견의 명재상이 마키아벨리스트라는 것도 참 아이러니죠.
  • keyne 2009/04/13 17:07 # 답글

    역시.. 왕맹이 살아있을 때 모용수랑 요장을 죽였어야..
    다음화가 정말 기대되는군요..
  • 야스페르츠 2009/04/13 21:27 #

    커밍 수운~
  • azusa 2009/04/14 11:44 # 답글

    뭐 장江이 장河였으면 이겼을지도 ㅋ;
  • blue 2010/03/29 04:45 # 답글

    "충신은 양날의 검이다." 주서의 경우는 확실히 그러하네요. 관대함을 보인 쪽에서는 그가 제환공의 관중이나 당태종의 위징이 되어주길 바랬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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