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6 15:56

오호(五胡)의 쟁패 23 - 사냥개를 삶다 역사

환온의 북벌군이 일패도지함으로써 "토끼 사냥"은 끝났다. 사냥개를 삶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사냥꾼 모용평에게는 두 마리의 사냥개가 있었다. 하나는 언제든지 삶아 먹을 수 있는 손 안의 개였지만,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 비싼 대여료를 약속하고 빌려온 개였다. 빌려온 개를 삶아 먹을 수는 없으니,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냥개부터 삶아야 한다.

모용평의 사냥개 모용수는 어떤 인물인가. 연의 건국자 모용황의 다섯 째 아들이며, 뛰어난 재능으로 모용황의 총애를 받았다. 모용황은 모용수(당시 이름은 패覇)를 세자로 삼으려 했다고 한다. 신하들의 반대로 인해 모용수를 세자로 삼는 것은 그만두었지만, 총애하는 것은 예전보다 더해서 세자 모용준보다도 더 우대했다고 한다. 당연히, 경쟁자(?) 모용준에게 모용수는 눈에 가시였다. 覇라는 이름도 보통 이름은 아니다. 모용수는 모용준의 시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이름을 수(垂)로 바꾸기도 했다.

모용준이 연왕에 즉위하자 모용수에게 온갖 핍박이 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모용준이 화북을 정벌하여 계에 수도를 두었을 때에도 모용수는 구도 용성에 사실상 쫒겨가서 살았다. 물론 뛰어난 재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으니, 모용수는 용성에서 정치를 바로잡아 동북지역에서 명성을 떨쳤고, 그 때문에 다시 수도로 불려오기도 했다.

게다가 모용수의 부인 단씨(段氏)도 모용준의 부인, 즉 황후 가족혼씨(可足渾氏)와 불화가 있어 도매급으로 모용수까지 황후에게 미움을 샀다. 결국 단씨는 죄를 뒤집어 쓰고 고문에 시달리다가 죽었고, 모용수는 황후의 동생을 부인으로 맞아야 했다. 당연히 부인과의 사이가 좋을리가 없다. 동생이 총애를 받지 못하니 황후는 모용수를 더욱 더 싫어하게 되었다.

360년, 모용준이 세상을 떠나면서 모용수는 겨우 압박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모용각이 연의 정권을 잡으면서, 모용수는 모용각에게 협력하여 연의 세력 확대에 많은 공을 세웠다. 흔히 모용수를 뛰어난 인물로 평가하지만, 가정불화(?)에 시달리는 모습도 그렇고, 이런 모용수를 데려다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모용각이야말로 더 뛰어난 인물인 것 같다.


어쨌거나 모용각의 막하에서 한껏 날개를 펼치던 능력자 모용수도 모용각이 죽고 나자 다시 날개를 접어야 했다. 무사안일주의를 국시로 채택(?)한 모용평의 집권 속에서는 모용수의 화려한 능력도 빛을 바랠 수 밖에 없었다. 적극적인 확장을 주장하는 모용수에게 모용평은 언제나 신중론을 가장한 무사안일주의로 대응할 뿐이었다. 게다가, 모용평과 함께 국가를 좌지우지하기 시작한 태후 가족혼씨도 모용수에게는 커다란 장애였다.

가족혼씨가 모용수를 싫어하는 것과는 별도로, 모용평에게 모용수는 어디까지나 필요할 때 써먹기 좋은 사냥개였다. 그러나 북벌군을 물리치면서 최대의 전공을 세운 모용수는 순식간에 주인(?)을 위협하는 사냥개로 성장하였다. 사냥이 끝났으니 주인에게 이빨을 들이댈지도 모르는 사냥개는 삶아 먹어야 하는 법. 태후 가족혼씨와 모용평이 야합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태후와 모용평이 모용수를 제거하기 위해 모의하고 있다는 것은 곧 모용수에게도 알려졌다. 주변에서는 선수를 쳐서 정권을 장악할 것을 권하지만 모용수는 국가에 혼란을 일으킬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목숨은 보전해야 하는 법이다. 모용수는 용성으로 달아나 목숨을 부지하려고 마음먹었다. 용성에서 황제 모용위가 장성하여 선정을 펼치기를 기다리거나, 여의치 않으면 요동과 요서를 장악하고 자립하려 한 것이다. (정권을 탈취하는 것하고 대체 뭐가 다른거냐...ㅡㅡ;)

사냥을 핑계로 업에서 빠져나온 모용수는 곧 의도가 발각되어 추격대에 쫒기게 되었다. 동북방으로 탈출하려는 의도가 발각된 이상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할 필요가 있다. 모용수는 결국 서쪽으로 망명을 택했다. 진의 부견에게 투항한 것이다. 부견은 모용수가 망명해왔다는 소식을 듣고 친히 성 밖으로까지 마중을 나온다. 두손을 꼭 잡고 부견은 모용수를 성대하게 환영하였다. 왕맹은 모용수가 위험한 인물이라 여겨 제거할 것을 권하였으나 부견은 이를 거부하고 모용수를 중용하였다.


한편, 개를 빌려주었던 부견은 대여료를 받아 챙길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양국의 사신들은 빈번하게 오가면서 부업인 첩보 업무도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러나 사신들이 열심히 상대방의 동정을 파헤쳐서 알려준다고 해도 실권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부견은 연의 내정을 충실하게 탐지하여 차근차근히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모용평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진의 동정을 알려주는 사신들의 말을 모두 무시한다.

부견은 대여료로 약속받은 호뢰관 서쪽의 땅에 대해서 오랫동안 무시하는듯한 태도를 보인다. 모용평으로서는 껄끄럽기는 하지만 상대방이 신경을 쓰지 않으니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모용평은 양국 사이에 우호관계가 잘 맺어졌다고 자평하면서 부견의 전쟁 준비를 착착 알려오는 사신들의 의견은 묵살해 버렸다. 심지어 황제 모용위의 귀에까지 들어간 위기론을 일축하면서, 자꾸 이런 말이 나오면 부견이 열받아서 쳐들어 올지도 모르니까 가만히 있는 부견 건드리지 마셈하고 어이를 회쳐먹을 대답까지 한다.

대책없는 낙관론을 펴고 있는 모용평의 바램과 달리, 부견은 계속해서 전쟁을 준비했다. 여기에 모용수까지 망명해오면서 부견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1년 동안 전쟁 준비를 착실하게 수행한 부견은 369년 12월, 마침내 북핵핵폭탄을 터뜨린다.

호뢰관 서쪽 왜 안주냐능.


덧글

  • 윙후사르 2009/04/06 16:04 # 삭제 답글

    이제 과연 어찌 될 지 궁금하네요. 준다면 명분은 없어지지만 대신에 참 기름진 땅을 잃을 테고, 그렇다고 안 주자니 바로 전쟁이 터질텐데...
  • 야스페르츠 2009/04/06 17:23 #

    이런 건 정답이 정해져 있지요. 줘도 전쟁 납니다. 힡을러 옹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지효. ^^
  • 들꽃향기 2009/04/06 16:09 # 답글

    애시당초 갚지못할 부도수표를 끓는게 아니었다는 ㄷㄷ
  • 야스페르츠 2009/04/06 17:24 #

    그나마도 부도수표 끊어서 대출해온 것이 그렇게 필수적이지도 않았다는 게 더 안습하지요. ㅡㅡ; 사실상 모용수 혼자서 다 해결했으니...
  • 2009/04/06 16: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카구츠치 2009/04/06 16:53 # 답글

    흥미진진합니다.
  • 야스페르츠 2009/04/06 17:25 #

    감사합니다. ^^
  • keyne 2009/04/06 17:26 # 답글

    공수표도 상대 봐가면서 끊어야 한다능;;
  • 야스페르츠 2009/04/06 18:05 #

    상대가 엄친아라능...;;
  • 海凡申九™ 2009/04/06 17:27 # 답글

    내놓으센... 내껑미... 란 전개라....


    하악 모용평.... 넌 내껑미... 하악...
    근데 고구려로 뜬금없이 가서 목이 베임...ㅠㅠ... 지못미.
  • 야스페르츠 2009/04/06 18:05 #

    ????? 헨타이??? (응?)
  • 子聞之曰是禮也 2009/04/06 19:45 # 답글

    댓가를 주고 평화를 구걸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전조약이 영원하리라 믿는 자도 반드시 망하고요.
  • 야스페르츠 2009/04/07 00:43 #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금언도 있지요...
  • 사불상 2009/04/06 22:25 # 삭제 답글

    호뢰관 서쪽은 원금, 화북은 이자...
    사채업자 부견님은 대박을 터트립니다. (응?)
  • 야스페르츠 2009/04/07 00:43 #

    헐... 대체 얼마나 폭리를 취한 겁니까... ㅎㅎ
  • asianote 2009/04/06 22:40 # 삭제 답글

    제갈량의 말을 무시한 부견의 최후가 다시 생각나는군요. 동진과 전쟁하지 마라는 말도 무시해서 나라 망하고, 모용수 투항 받아줘서 나중에 배신당하고.
  • 야스페르츠 2009/04/07 00:44 #

    쉿! 스포일러는 금지라능.
  • paro1923 2009/04/07 10:13 # 삭제 답글

    개도 능력이 되어야 잡아먹죠. 안 그러면 오히려 말 그대로 '개밥'(?)이 된다능...
  • 야스페르츠 2009/04/07 11:37 #

    개밥...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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