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4 18:42

오호(五胡)의 쟁패 22 - 북벌 No. 3 역사

356년에 요양을 물리치고 낙양 일대를 장악하였던 2차 북벌 이후, 환온은 10년이 넘도록 북벌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모용각이 이끄는 연군과 치열하게 싸운 끝에 365년, 낙양과 하남 일대의 광대한 영토를 상실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모용각이 357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환온과 동진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연에서 권력을 잡은 모용평은 소극적인 정책을 펼쳤고, 진의 부견 역시 368년에 일어난 대규모 반란으로 인해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환온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3차 북벌을 시작했다.

369년 봄, 환온은 보기 5만의 병력을 이끌고 출정하였다. 1차 북벌 때 보급 문제로 퇴각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만큼 환온은 나름대로 보급에 신경을 기울인 것 같다. 회대 지역에서 화북으로 수송하는데 중요한 조운수로였던 변수(汴水)와 청수(淸水 : 濟水)를 통해서 황하로 군량을 공급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참군 치초(郗超)는 이러한 보급 계획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계속 지적하였다. 물론 환온은 그러한 지적은 깔끔하게 무시한다. 성한 공략이나 1차 북벌도 그렇고, 환온은 전반적으로 보급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다지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어쨌거나, 기세등등하게 출정한 북벌군은 연주(兗州)를 가로질러 황하로 들어섰다. 배가 수백리에 걸쳐서 이어져 북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치초는 다시 보급 계획의 문제에 대하여 진언한다. 그리고 두 가지 작전을 제시하였다. 성한 공략 때처럼 전군을 이끌고 적의 수도 업으로 밀고 들어가서 속전속결로 결판을 내는 작전과, 황하를 지키고 버티면서 병력과 보급을 확충하고 천천히 진격하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환온은 두 작전을 모두 기각하고, 계속 진격할 것을 명하였다. 보급도 불안정한 상태에서 천천히 지역을 제압하며 북상하였던 것이다. 아직 보급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환온의 북벌군은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다.

연의 수비군들이 곳곳에서 패배를 거듭하는 가운데 시간은 살 같이 흘러 가을이 되었다. 환온은 황하를 건너 방두(枋頭)에 주둔하였다. 연의 수도 업(鄴)은 방두에서 직선거리로 100K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황제 모용위와 태재 모용평은 북쪽으로 달아날 궁리를 하고 있는 가운데 모용수(慕容垂)가 해결사로 나섰다.

신이 청컨데 이들을 치게  하여주십시오. 만약에 그리하고도 이기지 못하면 달아나도 늦지 않습니다.
臣請擊之, 若其不捷,走未晚也。


모용수가 5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환온에 맞서는 한편, 모용위는 관중의 진으로 사신을 파견하였다. 군사를 보내주면 호뢰관(虎牢關) 서쪽의 땅을 할양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호뢰관 서쪽이라면 사실상 사주(司州) 전체에 달하는 영역이다. 부견은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의논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환온의 1차 북벌때도 나몰라라 했던 연을 구원해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왕맹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연은 비록 강하고 크지만 모용평은 환온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만약 환온이 산동을 다 들어내고 나아가서 낙읍에 주둔하고, 유·기주의 군사를 거두고 병주·예주의 곡식을 끌어 효산과 면지를 넘본다면 폐하의 대사(大事)는 끝장입니다. 지금 연과 함께 군사를 합쳐서 환온을 물리치는 것만 못하며, 환온을 물리치면 연 역시 병들었으니 그런 다음에 우리는 그들의 지친 틈을 이어받아서 빼앗는다면 역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燕雖強大,慕容評非溫敵也。若溫舉山東,進屯洛邑,收幽、冀之兵,引並、豫之粟,觀兵崤、澠,則陛下大事去矣。今不如與燕合兵以退溫;溫退,燕亦病矣,然後我承其弊而取之,不亦善乎!


부견은 왕맹의 의견을 채택하여 2만의 군사를 파견, 낙양을 거쳐 영천(穎川)으로 진출하고 연에 사신을 보내 구원군 파견 사실을 알렸다. 아직 북벌군과 교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배후를 위협당하게 되었으니 환온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모용수가 이끄는 연군은 환온이 가진 한계를 정확하게 꿰뚤어보고 있었다. 환온이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진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면서 권세를 부린지 10여 년이 흘렀다. 그러니 중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북방에서도 환온의 신경은 온통 동진 조정에 쏠려 있을 것이다. 환온의 전횡을 못마땅해하는 조정 대신들이 뒤에서 무슨 협잡을 부릴지 예의주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환온의 당시 생각은 아래와 같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연을 멸망시키고 커다란 전공을 세우는 것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적당히 싸우다가 퇴각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1차 북벌 때와 마찬가지로 환온은 적의 수도를 코앞에 두고도 진격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운이 좋아 연의 지휘부가 자중지란을 일으켜 주면 어부지리를 얻는 것이고, 아니라면 적당히 싸우다가 퇴각할 심산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런 환온의 눈치작전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불안정한 보급. 보급을 확고하게 하고 무력시위를 곁들여 기회를 엿보았다면 모르겠지만, 보급이 불안한 상황에서 환온의 작전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진의 군대가 배후를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 3차 북벌 과정



이미 눈치작전에 돌입하여 초반의 기세를 스스로 꺾어버린 환온군은 모용수군에 의해 곳곳에서 패배하면서 전선이 밀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가뜩이나 불안한 보급선을 확충하기 위해 파견한 부대들이 끝내 보급선을 확보하지 못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은 계속 흘러 9월,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연의 모용덕(慕容德) 등이 북벌군의 배후로 돌아들어가 마침내 보급선을 끊는데 성공하였다. 진의 구원군도 가까이 다가왔고, 보급이 끊긴데다가 곳곳에서 패배를 거듭하면서 북벌군은 궤멸될 위기에 처했다. 마침내, 환온은 9월 19일, 퇴각을 결심한다. 무기와 치중까지 모두 버려두고 급하게 퇴각하는 북벌군을 모용수는 느긋하게 뒤쫓았다. 퇴각하는 적을 급히 들이쳐서 깨부술 수도 있었지만, 모용수는 신중하게 진격하였다. 쫓기는 입장이었던 북벌군은 밤낮으로 피로에 찌들어가면서 힘겹게 퇴각해야 했지만 쫓는 입장에서는 놓치지만 않는다면 느긋하게 힘을 비축하면서 진격할 수 있다.

며칠이 지나 북벌군이 완전히 지쳤을 때 쯤, 모용수는 8천의 기병을 이끌고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섰다. 양읍(襄邑)에서 따라잡은 모용수는 병력을 절반으로 나누어 매복·협격을 통해서 북벌군을 격파한다. 참수한 수급이 3만. 뒤이어 진의 구원군이 패주하는 환온을 공격하여 1만여 명을 죽였다. 완벽한 승리였다.

환온은 산양(山陽)에 주둔하였다. 출정할 때는 5만을 헤아리던 대군이었지만,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고 돌아온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실각할 수도 있는 위기였지만, 환온은 이번 위기도 슬기롭게(?) 헤쳐나간다. 보급로를 확보하지 못한 부하 장수 원진(袁眞)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분노한 원진은 수춘을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켰고, 동진과 환온은 북방은 커녕 바로 코앞에서 일어난 반란을 수습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위협적인 북벌을 물리치는데 일등 공신이 된 모용수, 연을 도와 큰 빚을 지게 만든 진, 그리고 이런 상황이 못마땅한 모용평. 3대 세력은 이제 북방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기 시작한다.


핑백

덧글

  • 子聞之曰是禮也 2009/04/04 19:47 # 답글

    환온에게 로마군은 병참으로 이겼다는 것을 가르쳐 줬어야 할 상황이군요.

    무한경쟁 경제전쟁 시대에 우리나라도 경제의 병참선인 물류(Logistics)를 위해 운하를 파야한다고 강력히 주장~~~~~~~~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네요)
  • 야스페르츠 2009/04/04 23:58 #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환온은 실제로 병참선 끌고 가려고 운하를 파기도 했죠. ㅡㅡ;
  • 한단인 2009/04/04 20:08 # 답글

    호오.. 정말 3대 세력이 되어버렸군요. 쪼다 모용평..
  • 야스페르츠 2009/04/04 23:59 #

    하지만 3대 세력 중에 제일 먼저 망하는 것은 모용평이 아니라능. 모용평 = 트류니하트
  • 海凡申九™ 2009/04/04 20:18 # 답글

    지못미 모용평
  • 야스페르츠 2009/04/04 23:59 #

    모용평이야말로 진정한 트류니하트라능
  • 自重自愛 2009/04/04 22:03 # 답글

    1. 왕맹의 발언으로부터 유추해 보건대

    "유·기주의 군사를 거두고" => 유주와 기주에는 양질의 병력이 있고
    "병주·예주의 곡식을 끌어" => 병주와 예주에서는 곡식이 많이 난다.

    2. "연의 모용덕(慕容德) 등이 연의 배후로 돌아들어가" => 진의 배후 아닌가요?
  • 야스페르츠 2009/04/05 00:00 #

    1. 뭘 그런걸 분석하시고 그러십니까... (응?)

    2. 제가 오타를... 연이 아니라 북벌군의 배후였다능. ㅡㅡ;
  • 사불상 2009/04/04 23:19 # 삭제 답글

    호뢰관이면 유관장 형제가 여포와 싸우던... 곳이 맞을려나
  • 야스페르츠 2009/04/05 00:00 #

    네. 거기가 맞습니다 사수관인가 호뢰관인가 (어차피 둘 다 같은 곳이라니깐 상관없지만요. ^^)
  • dunkbear 2009/04/05 00:22 # 답글

    무슨 대학입학 원서제출 시즌도 아닌데 눈치작전들이 왜 이렇게 빈발한지... ^^;;;
  • 야스페르츠 2009/04/05 00:28 #

    세상은 소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능.. (응?)
  • 海凡申九™ 2009/04/05 03:55 # 답글

    모용평, 오 나의 세이밥~

    모용평 까면 지못미 밖에 안 되는 거임? ㅠㅠ

    그러나 모용평은 뜬금없이 고구려에서 목이 베여 죽었츰...
    엉어어어ㅏ어ㅏ어어엉
  • 윙후사르 2009/04/05 08:49 # 삭제 답글

    그냥 업을 공격했으면 자기도 공적 세워서 좋고 유사시 거기를 기반으로 삼을 수도 있었거늘...
  • 야스페르츠 2009/04/05 19:31 #

    그러게요. 환온이 젊을 때는 도박적인 원정도 하더니만, 늙어서는 너무 우유부단한 것 같습니다.
  • 들꽃향기 2009/04/05 15:42 # 답글

    읽고 갑니다. ^^ 저 역시 환온의 내심은 야스페르츠님께서 제시하신 바와 같았으으리라 봅니다. 더군다나 표면상으로는 중원회복을 내세우고 있던 당시 동진 조정에 면피용으로 내세울 만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지도요...
  • 야스페르츠 2009/04/05 19:32 #

    대체로 환온의 북벌은 그런 인식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1차 북벌도 그렇게 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1차 북벌은 그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2010/04/23 15:23 # 답글

    이제서야 읽고 있습니다. 재미있군요.

    후한말때도 그렇고 나중에 송대에 들어서도 그렇고. 저 수춘성은 정말 온갖 풍운이 끊이질 않는군요. 참 기구한 동네입니다. 이게 다 원술 때문인...가?
  • 에드워디안 2010/04/23 16:12 #

    이미 전국시대 말기부터 역사에 '이름'을 남긴 고장이었죠. 초나라가 마지막으로 도읍했던 곳인데(BC. 241), 회수 유역에 위치한 강북과 강남의 경계인 만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였다네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유사역사학 방지

얼마블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