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1 14:17

오호(五胡)의 쟁패 21 - 一人之下萬人之上 역사

360년대의 중국은 옛부터 천하 쟁란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하는 정족지세(鼎足之勢)가 구축되어 있었다.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솥발처럼 늘어선 천하의 모습을 화북, 강동, 촉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 천하삼분지계의 원조는 항우와 유방이 서로 싸우던 시기에 고안된 것이다. 관중, 관동, 하남(강남)으로 분열된 것이 그 원래 형태로, 인구나 생산력 등을 비교해 볼 때 가장 이상적인 형세이다. (연의의 천하삼분지계는 화북에 너무 많은 힘이 쏠려 있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360년대의 형세도 이와 같았다. 회수와 한수 일대를 경계로 하여 남쪽에 웅거한 동진, 낙양 동쪽에 자리잡은 연, 관중을 장악한 진. 이 가운데 국력 면에서 가장 충실했던 것은 역시 모용씨의 연이다. 유주 지역의 튼튼한 배후지를 갖추고 있으며, 화북의 가장 비옥하고 인구도 많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에는 360년에 병사한 모용준의 뒤를 이어 나이 어린 모용위(慕容暐)가 옥좌에 올라 있었다. 모용위는 11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연을 통치하고 있던 것은 모용준의 동생 모용각(慕容恪)이었다. 이미 모용준 시기부터 활약하고 있던 모용각은 모용씨 왕가의 큰어른으로 태재(太宰)에 임명되어 있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이다. 모용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동진 조정에서는 중원을 도모해볼 수 있을까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러나 환온은 오히려 이렇게 평했다.

모용각이 아직 살아있으니, 걱정거리가 바야흐로 커졌을 뿐이다.
慕容恪尙存,所憂方爲大耳。


모용각의 통치 아래 연은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모용각은 모용준 사후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동진에 출병하는 한편 내치를 다졌다. 362년에는 동진이 점령하고 있던 낙양을 공략하기 시작하여 치열한 공방전 끝에 365년에 함락하였다. 그 과정에서 동진은 하남 일대의 광대한 영역을 상실하였으며, 환온은 합비(合肥)에 주둔하였다. 하남의 광대한 영역을 개척하고, 내치도 튼튼하게 하면서 연의 세력은 급격하게 성장한다.

그러나 367년, 모용각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연의 정세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모용각의 뒤를 이어 태재가 된 모용평(慕容評)은 시기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모용각은 동생 모용수(慕容垂)를 추천하여 정치를 바로하려 하였으나, 모용평은 모용수를 배제하고 연의 정치를 전횡하기 시작한다.


한편, 폭군 부생을 폐위시키고 천왕(天王)에 즉위한 부견은 20대의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그를 보좌하는 왕맹은 30대로,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렇다고 만인지상의 지위에는 어울릴 만한 나이도 아니었다. 게다가 왕맹은 진 조정에서는 신참에 속했다. 건국 공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씨 일족도, 저족 출신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요장이나 장평처럼 뒤를 받쳐주는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군주의 총애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한족 출신의 서생일 뿐이었다.

부견의 총애를 받았다고 해도 아무런 배경도 없는 신참자가 재상으로 임명될 수는 없는 노릇. 왕맹은 중서시랑의 직위에서 업무를 시작하였다. 직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을지 몰라도, 군주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으니 부여된 권한을 뛰어넘는 전횡이 없을리가 없다. 게다가 종친이나 공신들을 상대하는 왕맹의 성격 자체도 그렇게 유들유들하지는 못했다. 다음의 일화가 왕맹의 괴팍한 성격을 잘 말해준다.

사건은 건국공신인 고장후 번세(樊世)가 왕맹에게 농담처럼 한 말에서 시작된다.

"우리들은 밭을 갈고 그대는 이를 먹는군요."

내용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말이었지만, 까칠남 왕맹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가시돋친 대답을 한다.

"그대에게 밭을 갈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장차 그대에게 밥을 짓게 하겠소."

번세는

"내가 네놈의 머리를 장안의 성문에 걸어놓지 못하면 살아있지 않겠다."

라고 노발대발한다. 여기서 적당히 무마하고 끝났으면 좋으련만, 왕맹은 이 사건을 그대로 부견에게 보고해 버린다.

이미 왕맹의 포로(?)가 되어 있던 부견은 번세를 죽여버리겠다고 별렀고, 마침 왕맹의 뒤를 따라 번세가 들어와 왕맹과 논쟁을 벌였다. 왕맹의 성격과 화법으로 추측해 보건대, 왕맹은 조용조용하게 비꼬면서 번세의 화를 북돋았을 것이다. 결국 화를 참다 못한 번세는 부견의 앞에서 왕맹을 후려치려고 일어섰다. 감히 주군의 앞에서 화를 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총신에게 폭력을 가하려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분노한 부견은 단칼에 번세를 베어 버린다.

건국공신을 단칼에 베어버릴 정도로 왕맹에 대한 부견의 총애는 절대적이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왕맹은 고속승진을 거듭하였는데, 1년 동안에 5번이나 승진했을 정도였다. 젊고 총명한 군주가 현명한 재상과 함께 나라를 통치하고 있으니 진의 국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게다가 부견은 전쟁을 삼가고 내치에 주력하였다. 후조의 치세부터 시작해서 수십 년 동안 병란에 시달려온 관중은 부견의 치세에 비로소 안정을 되찾아갔다.

이렇게 10년 가까이 내치를 다지면서 국력을 회복한 진은 366년부터 서서히 외부로의 확장을 시작한다. 동진의 형주를 공격한 것으로 시작하여 367년에는 농서의 이엄을 정벌하였다. 연의 모용각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부견은 연을 도모해보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여 상황을 엿보도록 하였는데, 되돌아온 사신들은 연의 기강이 흐트러져 있다고 보고한다.

267년 말, 진의 왕족들 몇몇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장안을 제외한 관중 전체가 조각조각으로 분열될 정도로 위협적이었던 반란이었다. 경쟁 상대였던 연에게 있어서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여러 중신들이 내란에 개입해서 이득을 취할 것을 주청하는 가운데, 전권을 쥐고 있던 모용평은 이에 반대하였다. 적국이 자중지란에 빠져 있으니 약간의 노력만 투자해도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지만, 소극적이었던 모용평은

"우리들의 지략은 태재(太宰 : 모용각)에 비할 것이 못된다. 다만 관문을 닫아걸고 경계를 보존하면 충분하고, 진(秦)을 평정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

라고 말할 뿐이었다.

부견은 등극 이래 최대의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반란을 차근차근히 평정해 나간다. 368년 한 해를 꼬박 반란 진압에 사용한 것이다. 연의 개입이 없었기에 부견의 반란 평정은 어렵지 않게 성공하였다. 반면 하늘이 준 기회를 차버린 연에게는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369년, 10년이 넘도록 조용하던 환온이 연을 목표로 세 번째 북벌을 시작한 것이다. 솥발처럼 늘어선 천하가 다시 진동하기 시작한다.

덧글

  • azusa 2009/04/01 14:42 # 답글

    잘 봤습니다. 날아다니는군요 부견. 그러나 교만을 이길 장사는 없는걸까요 허허허;;
  • 야스페르츠 2009/04/01 16:00 #

    ㅎㅎ 근데 교만이라는 건 누구를 말하시는지...??
  • paro1923 2009/04/02 22:12 # 삭제

    훗날 비수대전 때의 부견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요.
    왕맹의 유언도 무시했죠, 아마...
  • 子聞之曰是禮也 2009/04/01 16:06 # 답글

    농사 짓는 놈 따로 있고 밥지어 먹는 놈 따로 있는 법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올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4/02 10:52 #

    까칠남 왕맹님하는 밥도 지어달라는 거임. 츤츤.
  • 에로거북이 2009/04/01 18:23 # 답글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관중 관동 강남 구분이 재미있군요. 풍운아 한신도 떠오르고요.
  • 야스페르츠 2009/04/02 10:53 #

    한신이 참 대단한 사람이죠. ^^
  • 들꽃향기 2009/04/01 18:51 # 답글

    에잉 까칠 시크한 왕맹형~♡

    그래도 모용평은 사료만 보면 자신의 주제(?)를 아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 ㄷㄷ;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로 보이는 당시의 전진을 정벌하게 될 경우 그로써 군사권을 휘어잡거나 공을 세움으로서 자신의 정적이 될 수도 있는 인물(특히 모용수)이 등장하는 것을 경계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정벌에 직접적으로 나서면 중앙 정계를 비워둬야 하니 그건 싫을테고 ㄷㄷ
  • 야스페르츠 2009/04/02 10:56 #

    날카로운 분석입니다. 모용수 같은 인물들은 정벌하자고 계속 난리를 쳤어요.
  • 自重自愛 2009/04/01 22:12 # 답글

    "所憂方爲大耳" => '걱정거리가 바야흐로 큰 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귀 큰 사나이 황숙 유비 현덕 모용각이 후한 헌제 모용위를 보좌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도주)
  • 야스페르츠 2009/04/02 10:57 #

    이거슨 후삼국찌??? (추격!)
  • 른밸 2009/04/01 22:46 # 답글

    모용평이 상승일로였던 전연의 기세를 꺾어버리고 멸망에 이르게 한 인물임은 틀림없지만, 좀 의문인게 모용준-모용각이 집권할 당시 연의 지도층에 있었던 다른 인물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요? 모용평의 능력이 떨어지고 모용수의 인물됨이 남달랐음을 분명히 알았을텐데 적극적인 행동을 펼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렇게 보면 모용평도 생각보다 머리회전이 빠른 인물이지 않을까 싶네요.
  • 야스페르츠 2009/04/02 10:58 #

    모용평과 같은 인물형은 의외로 유능한 것 같습니다. 자기 자리를 찾아먹고 정적을 제거하는 능력으로는요.
  • 사불상 2009/04/01 23:18 # 삭제 답글

    한중일 삼국에 관서와 관동이 있군요. 이리저리 찾아보니 재밌군요.
    하지만 관중은 중국에만 있군요. 역시 대륙(?)
  • 야스페르츠 2009/04/02 10:59 #

    한국에도 관중이 있어요. 대관령 길 위가 관중...(퍽!)
  • 子聞之曰是禮也 2009/04/02 12:58 # 답글

    장안을 중심으로 하는 위수(渭水) 가의 분지를 관중(關中)이라 하다더이다.
    위수 분지를 관중이라함은 동쪽으로는 함곡관(函谷關), 남쪽으로는 무관(武關)과 산관(散關), 서쪽은 소관(蕭關)이라는 요새가 있음에 연유한다 하더이다.
    즉 관중은 함곡관 무관 산관 소관의 안쪽이라는 말이라더이다.

    함곡관 이동을 관동이라고도 하고, 함곡관이 효산에 있어 효산동쪽이라는 의미로 산동이라고도 한다 하더이다.
  • paro1923 2009/04/02 22:10 # 삭제 답글

    왕맹도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한 인물이군요. 약올리기 스킬 만렙인가...
    어쩌면 모용평은 단순히 소극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못할 바엔, 다른 사람도 공을 못 세우게 할테다" 하는,
    2중으로 쪼잔함을 보인 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해 봅니다.
  • 다복솔군 2010/01/28 00:56 # 답글

    모용각은 연나라판 주공이로군요 =_=ㅋ
  • blue 2010/03/29 04:19 # 답글

    괴통이 한신에게 제3세력으로 남을 것을 진언한 것을 말씀하시는가 보군요. 확실히 그 당시 유방은 관중, 항우는 팽성(서주 지방)을 중심으로 한 강남지방을 근거로 하고 있었고, 한신은 제나라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죠. 근거지로만 본다면야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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