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7 17:36

오호(五胡)의 쟁패 19 - 엄친아, 등극하다. 역사

부견(苻堅)은 338년에 저족의 수장 포홍의 막내아들 부웅(苻雄)과 구씨(苟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위대한 이의 출생이 항상 그러하듯 꿈에서 신령님 하나 쯤 나타나 주시고, 12개월 씩이나 뱃속에서 어머니 자양분을 빨아 먹으며 찬란한 광채와 함께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의 모 인물을 연상케 하는 체형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팔의 길이가 무릎까지 닿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등에는 붉은 색으로 글씨가 써 있었다고 하는데, 이 글씨 때문에 포홍은 성을 바꾸기도 했다.

엄친아스럽게도 부견은 역시나 어릴때부터 총명해서 이쁨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저족의 포홍 가문에서는 사실상 막내 손자라고 볼 수 있었으니, 부견이 출생했을 무렵 이미 50세를 훌쩍 넘긴 포홍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자였을 것이다. 부홍이 350년에 사망하고, 뒤를 이은 부건(苻健)이 입관하여 갖은 고생을 하고 있을 무렵, 부견은 아직 꼬꼬마 어린애였다. 부건이 관중을 평정했을 무렵의 나이가 17세. 아버지 부웅이 전쟁에서 전사하여 어린 나이로 작위를 잇게 된 부견은 아직까지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다.

355년 6월, 부건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관중을 통일한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부건이 원래 태자로 세워 두었던 부장(苻萇)은 환온의 1차 북벌 때 입은 부상으로 작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새로운 태자 부생(苻生)이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부생은 선천적으로 한쪽 눈이 불구였다. 게다가 성격도 사이코패스의 수준이라서, 할아버지인 부홍이 눈이 하나인 것을 가지고 "눈물도 한쪽으로만 흘리느냐"라 농담을 하자, 홧김에 칼로 불구인 눈을 찔러 피눈물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이 정도로 성격이 개차반이니 후계자 감으로는 별로였을 텐데, 부생은 도참 때문에 태자에 임명된다. 당시 횡행하던 도참서에 삼양오안(三羊五眼)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양 세 마리에 눈은 5개라고 하니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애꾸라는 말이 된다. 이러한 도참에 따라 부생은 태자로 임명되었다. 성을 도참에 따라 부씨로 바꾼 것도 그렇고, 이 무렵 관중, 특히 진의 부씨 일가는 도참에 너무 많이 휘둘리는 감이 있었다.

어쨌거나 황제로 즉위한 부생은 사이코패스의 신기원을 이룩한다. 원래 잔혹한 성품이었던 데다가, 아버지 부건의 유언이 그를 더욱 부채질했다. 부건이 사망하기 며칠 전, 조카였던 부청(苻菁)이 모반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참살당했는데, 이 사건 때문이었는지 부건은 부생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6이(夷)의 우두머리와 대신으로 권력을 잡은 자가 만약 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마땅히 점차 그들을 제거해야 하느니라.
六夷酋師及大臣執權者,若不從汝命,宜漸除之。


부건의 유언 자체만 놓고 보자면, 명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조심스럽게" 제거하라는 뉘앙스가 있지만, 사이코패스 부생은 유언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버린다.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명령에 반대한 부하를 참살한 것을 시작으로 갖가지 잔혹한 방법으로 눈에 거슬리는 족족 사람을 죽였다. 즉위한지 1년이 지나 내린 교서를 읽고 있노라면, 이런 개망나니가 따로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이다.

(전략)... 죽인 것이 1천 명에 불과한데 이를 잔학하다고 하는가! 다니는 사람의 어깨가 나란하니 아직은 드물지 않다. 바야흐로 마땅히 형벌을 엄히 극한까지 내려야 할 것이니 다시 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殺不過千,而謂之殘虐!行者比肩,未足為希。方當峻刑極罰,復如朕何!


의역 :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데 내가 뭘 얼마나 죽였다고 그 난리셈?? 아직 시작도 안했다능. 기대하시라능.

귀축 석호도 저리가라 할 이 살인귀가 제위에 있으니 나라 꼴이 엉망진창이었다. 신하들은 죽을까봐 두려워하고, 차라리 수도를 떠나서 지방으로 보내달라는 신하는 불러다가 농담 따먹기나 하다가 오히려 높은 관직에 임명한다. 그 관직은 부생이 얼마 전에 죽인 신하의 관직이니, 공포에 질린 신하는 스스로 목을 매단다. 자신을 칭송하는 신하는 아부한다고 죽이고, 이를 보고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는 비방한다고 죽이니, 신하들에게는 피로 물든 하루가 10년 같았다고 한다.


부견도 왕족이기는 했지만 결코 안전하지는 못했다. 결국 부견은 살아남기 위해 반정을 계획하였다. 이때 부견 파의 신하 여파루가 왕맹(王猛)을 부견에게 추천하였다. 부견이 왕맹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의 비범함을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진서> 재기에는 두 사람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한 번 보았는데 평생을 (본 것처럼) 편안하였고, 말이 폐하고 흥하는 큰 일에 미치자 부(符)와 다르고 계(契)와 같아 현덕(玄德)이 공명(孔明)을 만난 것과 같았다.
一見便若平生,語及廢興大事,異符同契,若玄德之遇孔明也。


※ 개인적으로 부견과 왕맹은 유비·제갈량 커플보다는 금발의 애송이와 붉은털의 젊은이가 더 어울리는 듯. (이미지 출처 : http://ledoz.egloos.com/1418657)

마침내 천하의 명재상을 얻은 부견은 357년, 반정을 일으켜 부생을 폐위, 살해하고 진의 지배자가 된다. 5호16국 시대 최강의 엄친아가 등극한 것이다. 이때 부견의 나이 20세, 왕맹의 나이 3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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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푸른별빛 2009/03/27 17:40 # 답글

    드디어 부견과 왕맹의 크로스! 다음 회는 흥미진진할 듯 +_+ 그나저나 그렇게 총명한 부견이 나중에 그런 삽질을 하다니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군요..
  • 야스페르츠 2009/03/27 17:54 #

    사실 부견이야말로 진정한 엄친아지요. 부견의 삽질도 엄친아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뭔소리야! 퍽!)
  • 초록불 2009/03/27 17:59 #

    현덕과 공명도... 현덕의 삽질로 끝나죠...^^
  • 自重自愛 2009/03/27 17:41 # 답글

    "현덕(玄德)이 공명(孔明)을 만난 것과 같았다." => 차이점은 왕맹이 연상남이라는 사실. -_-
  • 야스페르츠 2009/03/27 17:54 #

    설마... 현덕이 왕맹이고 공명이 부견?? (도주)
  • 한단인 2009/03/27 18:08 # 답글

    아아아아아.. 드디어 비수전의 개삽질이 머지않은겝니까?
  • 야스페르츠 2009/03/27 23:56 #

    사실... 아직 멀었습니다. 왤케 연재가 지지부진한지... ㅡㅡ;
  • 들꽃향기 2009/03/27 18:16 # 답글

    "죽인 것이 1천 명에 불과한데 "......-_-;; 뭐 인정해야합니다. -_-;; 콧수염 총통과 강철의 대원수에 비하자면 그렇다는거지요. (도주)
  • 야스페르츠 2009/03/27 23:57 #

    하하... 그런 대인배들과 비교하면 안됩니다.
  • asianote 2009/03/27 18:33 # 삭제 답글

    동진빠돌이 왕맹은 공명만 못하다고 하면 누가 화낼까요? (도주)
  • 야스페르츠 2009/03/27 23:58 #

    그럴리가요. 공명은 끝내 통일을 못시켰지만 왕맹은 화북이라도 통일했잖습니까. ^^
  • 子聞之曰是禮也 2009/03/27 19:32 # 답글

    죽인 것이 1천 명에 불과한데 이를 잔학하다고 하는가!

    대인배..........
  • 야스페르츠 2009/03/27 23:58 #

    대인배지요.
  • dunkbear 2009/03/27 20:45 # 답글

    팔의 길이가 무릎까지 닿고 -> 이건 아무리 봐도 유비 (아니면 케로로??)
  • 야스페르츠 2009/03/27 23:58 #

    헐... 케로로를 생각 못했다능.
  • 사불상 2009/03/27 22:10 # 삭제 답글

    황제 앞에선 천명정도야 껌일테죠.
    역적으로 9족을 멸하면 한가문당 100명씩은 나올텐데...
    명태조 홍무제도 꽤나 많이 죽였을텐데 말입니다.
    거긴 만단위... 덜덜덜
  • 야스페르츠 2009/03/27 23:59 #

    문제는 그 천명을 죄로 죽인 게 아니라 그냥 심심해서 죽였다는 거죠. ㅡㅡ;
  • 윙후사르 2009/03/27 23:33 # 삭제 답글

    1천명 죽이고 이거 안 잔학하다니.. 덜덜덜.. 놔두었으면 강철의 대원수나 콧수염 총통됬을듯
  • 야스페르츠 2009/03/27 23:59 #

    3년 만에 쫒겨난 게 다행일지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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