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4 22:00

오호(五胡)의 쟁패 18 - 관동의 패자 역사

연의 모용준이 염위를 멸망시킴으로써 화북의 동쪽, 즉 관동 지역의 패권은 연에게 넘어갔다. 고만고만한 세력들이 아직 곳곳에서 준동하고 있었지만, 관동에서 연보다 강력한 세력은 없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해서 모용준은 352년 11월에 황제에 즉위하였다. 모용준이 남정(南征)을 개시하기 전인 349년, 동진은 모용준의 칭왕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연왕(燕王)에 책봉하였는데, 4년이 지난 뒤 모용준은 동진 조정의 사자에게 다음과 같은 전언을 남겼다.

나는 (중국을 지배할) 사람이 없는 것을 이어받아 중국 사람들의 추천하는 바 이미 황제가 되었도다.
我承人之乏,為中國所推,已為帝矣。


진 왕조가 화북을 포기한지 이미 50년 가까이 지난 상황. 모용준은 동진의 현실을 아프게 꼬집은 셈이었다. 동진과 연 사이에는 황하와 크고 작은 군벌 세력들이 가로 놓여 있었다. 일부 군벌들이 동진에 복속을 표명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독립성을 인정해 줄 때나 인정될 뿐이라는 것은 은호의 북벌에서 여실하게 증명되었다.

후조와 염위의 잔재인 군벌들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은 병주의 장평(張平)과 청주의 단감(段龕)이었다. 이들을 포함해서 여러 군벌 세력들은 생존과 어부지리를 위해 진(秦), 동진, 연의 3대 세력을 저울질해가며 박쥐처럼 계속해서 소속을 바꿨다. 생존을 위해서 이리 저리 고개를 숙이는 군소 군벌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장평이나 단감과 같은 대군벌들은 생존 보다는 이득을 위해서 판을 갈아치우는 것이 분명했다.

장평만 해도, 351년에 진에 항복한 이후 연과 진으로 번갈아 편을 바꾸다가 357년에는 동진에 항복하였다. 그야말로 병주라는 커다란 땅을 가지고 세 나라를 가지고 논 셈이다. 이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장평은 마침내 독립을 선포한다. 단감 역시 동진과 연 사이에서 미묘하게 편가르기를 하며 독립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355년, 단감은 모용준이 황제를 칭한 것을 비난하는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장평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세력에 자신감을 가진 것이리라.

모용준은 당장 모용각(慕容恪)을 보내 단감을 두들겨 부쉈다. 단감은 표면적으로는 동진에 복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진의 원군이 찾아왔지만, 연군의 위세에 눌려 진군하지 못하고 있다가 356년에 단감이 멸망하자 곧 물러나왔다.

한편, 독립을 선포한 장평은 진을 공격한다. 그러나 우리의 엄친아 부견이 지배하는 진이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장평은 단숨에 발리고 다시 진에 항복하는데, 부견의 자비심이었는지, 아니면 장평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장평은 다시 병주에 주둔하게 되었다. 그러자 바로 이번에는 연군이 장평을 공격하여 장평을 발라 버린다. 순식간에 호구로 전락한 장평은 다시 연에 항복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장평은 361년에 다시 연을 배반하고 병주 남부를 장악하였는데, 진이 쳐들어오자 연에 구원을 청한다. 당연히 이렇게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자를 도와줄리 만무하였고, 결국 장평은 진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그외 관동의 군소 세력들도 대부분 연에 복속되어 연은 막강한 세력을 갖춘다. 모용준은 357년에 수도를 업(鄴)으로 옮겨 화북을 적극적으로 경영하고자 하였다. 산동 지역에서 동진과 대치하는 가운데 하남 일대에 흩어져 있는 군소 세력들과 동진의 세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낙양을 압박하였다.

모용준은 마지막으로 대대적으로 동진을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편성하였다. 360년 정월, 연의 대군이 업에서 열병식을 거행하고 출정을 준비하던 때에, 모용준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제 대업을 이루려던 연에게 있어서는 뼈아픈 손실이었다.


※360년 경 중국 정세

덧글

  • 子聞之曰是禮也 2009/03/24 22:07 # 답글

    잘 읽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3/25 09:04 #

    ^^
  • 카구츠치 2009/03/25 00:45 # 답글

    국경을 맞댄 연나라가 저렇게 강성했다면 고구려 입장에서는 후덜덜했겠네요.
    찾아보니 고국원왕 치세인데, 광개토대왕이 등장하는 391년까지의 정세 변화가 기대되네요 ㅎㅎ
  • 야스페르츠 2009/03/25 09:07 #

    연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기 전에 고구려는 연나라에게 패배해서 고국원왕의 모후가 인질로 잡히고 미천왕의 시신까지 빼앗겼었죠. 저 무렵을 즈음해서 모후를 돌려받았어요. 고구려로서는 연나라는 손도 대지 못할 강대국이었을 겁니다.

    역시 소수림왕이 정비하기 전까지는 고구려도 좀 후달렸겠지요.
  • 푸른별빛 2009/03/25 00:54 # 답글

    모용준의 급사는 부견에게는 운수대통;; 오르도스나 황토고원쪽이 비옥한 시절이긴 했지만 연의 세력권이 진을 능가했던 시절인데, 모용위가 아닌 모용각이 집권했다면 부견은 엄친아가 아니라 조금 뜰뻔했다가 주저앉은 16국 중 1국의 왕에 그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음 부에는 왕맹이 등장하는건가요? 기대됩니다
  • 야스페르츠 2009/03/25 09:09 #

    확실히 모용준이 급사하지 않았다면 전진이 후달렸을 가능성이 크지요. 이제 다음 편부터 라인하르트 부견과 키르히아이스 왕맹의 은하영웅전설이..(퍽!)
  • 한단인 2009/03/25 01:18 # 답글

    음.. 그러면 전진이 오르도스에 진출하는 건 대략 언제쯤인가요?
  • 야스페르츠 2009/03/25 09:10 #

    오르도스 지역에는 흉노 철불부의 유씨 세력이 탁발부와 전진, 전연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요.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는 했지만, 전연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오르도스 지역을 확실하게 제압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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