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2 18:39

오호(五胡)의 쟁패 17 - 관중의 패자 역사

    강통의 <사융론(徙戎論)>에서 말한 것처럼, 서진 시기의 화북, 특히 관중 지역은 인구의 절반이 융적(戎狄)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이민족과 한족이 뒤섞여 살고 있던 곳이었다. 대표적인 이민족이라면 역시 저족과 강족이지만, 그 외에도 선비족, 흉노족 등등 많은 이민족들이 말 그대로 잡거(雜居)하고 있었다.

서진 말기의 혼란 속에서 각지의 이민족들은 제각각 뭉쳐서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포홍(蒲洪)이 이끄는 저족, 요익중(姚弋仲)이 이끄는 강족을 비롯해서, 양씨(楊氏) 일족이 이끄는 구지(仇池) 정권, 모용토욕혼(慕容吐谷渾 : 모용외의 이복형)의 후예들이 이끄는 토욕혼(吐谷渾), 선비족 걸복부 등 다양한 세력들이 감숙성에서 섬서성에 걸친 지역에서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

유요의 전조가 관중 지역에서 국가를 일신하자 관중의 여러 세력들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포홍과 요익중은 일찌감치 전조에 복종하였고, 구지 정권은 전조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전조 정권의 패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고, 곧 후조가 관중을 접수하였다. 전조의 멸망을 틈타 여러 세력들이 영역을 확대하고 이합집산을 했지만, 막강한 후조의 세력은 다시 관중의 패권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333년, 희대의 폭군 석호의 등장으로 이들 종족들은 최초로 대규모 집단 이주를 경험하게 된다.

석호는 집권 과정에서 일어난 관중의 반란을 진압하였는데, 이때 항복한 포홍과 요익중을 관동으로 이주시킨다. 포홍이 이끄는 저족이 이주한 곳은 방두(枋頭 : 하남성 준현)이고, 요익중이 이끄는 강족이 이주한 곳은 섭두(灄頭 : 하북성 청하현)로 모두 후조의 수도 인근이었다.

포홍과 요익중은 석호의 휘하에서 무장으로 많은 전공을 세웠는데, 이들을 따르는 독자적인 부족 세력이 있었던 만큼 석호로서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강력한 세력이었다. 게다가 포홍과 요익중은 소위 야만족에 걸맞는 성격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요익중은 천성적으로 아무에게나 "너"라고 호칭하면서 반말이라고 할 수 있는 어투를 구사했는데, 심지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던 석호에게조차도 "너"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349년, 석호의 사후 후조가 혼란에 빠지자 각지에서 여러 세력들이 들고 일어났는데, 단연 두각을 나타내던 세력은 역시 포홍과 요익중이었다. 두 세력 모두 원래 고향이 관중 지역이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고, 그 과정에서 두 세력은 맞붙어 싸우게 되었다. 전투의 결과 요익중의 강족은 3만 여 명의 병력을 잃고 패주하였으며, 경쟁에서 승리한 포홍은 삼진왕(三秦王)을 자칭하면서 입관(入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였다.

이때 포홍은 성을 부씨(苻氏)로 고쳤는데, 이는 당시에 횡행하던 도참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세간에는 "草付應王"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었는데 포홍의 손자였던 견(堅)의 등에도 草付라는 글씨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포홍은 "草(艸)"와 "付"를 합쳐서 "苻"로 성을 삼았다.

350년, 포홍은 부하에게 암살당했고, 그 뒤를 아들 부건(苻健)이 이었다. 당시 관중 지역은 두홍(杜洪)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부건은 두홍을 방심시키기 위해 삼진왕의 칭호를 버리고 동진에게 복속을 표명하였으며, 주둔지에 보리를 파종하여 이동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꾸몄다. 이에 두홍은 부건에 대한 의심을 거두었으며, 부건은 방심을 틈타 두홍을 공격, 10월에 장안을 점령하고 관중 지역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351년, 부건은 진(秦)을 건국하고 천왕에 즉위하였으며, 352년에는 황제에 즉위하였다. 부건은 두홍의 잔당을 소탕하고, 관중으로 쳐들어온 동진의 양주자사 사마훈을 물리치면서 관중을 평정해 나갔다.

한편, 요익중은 후조와 염위의 전쟁에도 참여하고 하남의 부건 세력과 싸우면서 전전하였다. 351년 말에는 동진에 항복하여 관작을 받기도 하였다. 352년, 요익중이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후계자 요양(姚襄)은 요익중의 죽음을 숨기고 동진을 향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때 진의 공격을 받아 요양의 말이 화살에 맞아 죽기까지 하는 등 위기에 빠졌으나 간신히 동진의 영내로 이동하여 초성(譙城)에 주둔하였다.

은호의 북벌이 시작되고, 북벌군이 허창으로 침공해 오자 부건은 승상 부웅(苻雄)을 파견하여 구원하게 하였다. 동진의 사상은 1만5천 명의 사상자를 내는 큰 패배를 당하고 회남(淮南)으로 도주하였으며, 용병으로 종군하고 있던 요양이 뒷수습을 하였다. 요양은 이 전투에서 동진을 계속 의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배반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요양의 힘은 확실히 동진의 북벌군에 비해서 강력했다. 때문에 은호는 요양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번 자객을 보냈는데, 요양의 인품이 뛰어나서 자객들이 모두 심복하고 요양에게 암살의 음모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암살(?)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몰래 군대를 보내 습격하게 하였는데, 요양은 대장을 죽이고 오히려 그 군대를 합병해 버렸다.

상황이 이정도라면 사실상 요양과 은호는 대놓고 싸우는 관계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쨌거나 두 사람은 모두 동진에 소속되어 있던 부하였다. 그리하여 353년, 2차 북벌이 시작되자 요양은 은호의 명을 받들어 선봉을 맡아 출진하였다. 물론 이미 배반할 마음을 품고 있던 요양이 순순히 원정을 떠날 리가 없었다. 요양은 매복을 시켜 놓고 은호를 맞이하여 산산히 부숴버린다.

반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요양은 "은호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동진 조정에 참소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을 사과(?)한다. 물론, 사과하기 전에 회남 일대를 무인지경으로 휩쓸고 다니면서 실력 과시는 확실하게 한 후였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요양의 반란은 진압(?)된 것이지만, 당연히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한편, 진의 부건은 352년에 낙양 일대를 빼앗기고, 뒤이어 병주의 군벌 장평(張平)이 연(燕)에 항복하면서 병주 지역까지 상실하였다. 여기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각지에서 반란군이 준동하였다. 이 반란에 은호가 낚여서 북벌군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실제로 은호의 북벌군이 입관했다면 부건에게는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승상 부웅이 나서서 반란을 차근 차근히 진압하며 간신히 한숨을 돌리려던 찰나, 이번에는 환온의 북벌군이 침공해 왔다.

환온군의 완벽한 양동작전으로 부건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남전(藍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5만 명의 군대가 패배하였으며, 각지에서 패배를 거듭하며 장안 바로 동쪽의 파상(灞上)까지 밀려났다. 장안의 서쪽으로는 사마훈의 별동대와 량 정권의 군대가 마음껏 분탕질을 치고 있는 형편이었다. 다행히 보급 문제로 인해 환온의 본군의 진격은 저지되었으며, 부건은 승상 부웅에게 기병 7천을 주어 사마훈을 막게 하였다. 부웅이 사마훈을 잘 견제했고, 환온군도 보급이 어려워 사기가 저하되었기 때문에 겨우 전세는 호전되었고, 환온은 철군하였다.

354년 8월, 옹(雍)의 교병을 토벌함으로써 드디어 부건은 관중을 평정한다. 350년에 입관한 이후 4년 만에 관중의 패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관중을 평정하고 이루어진 논공행상에서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부웅의 이름은 없었다.2개월 전에 전사하였기 때문이다. 부웅의 전사 소식을 들은 부건은 피를 토하며 곡을 했다고 한다.

"하늘이 내가 사해를 평정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찌하여 나의 원재(元才 : 부웅)를 이렇게 빨리 빼앗아 가는가?"

부웅의 작위는 그의 아들 부견(苻堅)이 이어받았다. 당시 부견의 나이 17세. 훗날 화북을 평정할 패자의 첫 등장이다.


덧글

  • keyne 2009/03/22 18:48 # 답글

    드디어 부견이 등장하는군요. 전진의 화북통일과정이 어떻게 될지 기대됩니다.
    그나저나 요익중은 진정한 용자였네요... 석호에게 "너"라니.. ㅎ
  • 야스페르츠 2009/03/22 19:08 #

    나중에 요익중의 일화를 하나 올려 보겠습니다. 정말 ㅎㄷㄷ한 용자라능.
  • 윙후사르 2009/03/22 18:57 # 삭제 답글

    전진은 일단 최대 위기를 넘긴 것 같네요. 다만 좀 피해가 커 보이는게...
  • 야스페르츠 2009/03/22 19:09 #

    피해는 좀 커도 명군 하나만 있으면 단숨에 회복이라능. ㅡㅡ;
  • 카구츠치 2009/03/22 19:05 # 답글

    음 드디어 아는 이름이 등장했군요.
  • 야스페르츠 2009/03/22 19:09 #

    앞으로 부견의 활약이 시작됩니다. 커밍수운~
  • 악희惡戱 2009/03/22 20:31 # 답글

    음 드디어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군요^^
  • 야스페르츠 2009/03/23 00:02 #

    근데 사실 저 같은 경우에는 부견 말고 다른 이름은 거의 다 몰랐답니다. 대부분 부견 밖에 모르는 사람도 많을 듯...
  • asianote 2009/03/22 20:42 # 삭제 답글

    5호 16국시대 최대의 이변이라고 하는 전진의 등장이군요. 부견의 제갈량님하는 언제 등장해서 활약하는지요?
  • 야스페르츠 2009/03/23 00:02 #

    전편에 등장했답니다. 아직 활약은 안하고 있지만요. ^^
  • 푸른별빛 2009/03/22 20:58 # 답글

    많은 분들이 기다리시던 부견의 등장이군요. 부웅이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부웅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의 인품이라던지 이런 부분은 잘 몰라서...
  • 야스페르츠 2009/03/23 00:03 #

    부웅이라면, 부건의 관중 평정에서 진정으로 1등 공신이었지요. 인품도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사불상 2009/03/22 23:32 # 삭제 답글

    이런 블로그를 이제야 발견했군요. 잘 읽고 갑니다.

    대륙이 5호 16국일때 한반도는 뭘하고 있었을라나.
  • 야스페르츠 2009/03/23 00:04 #

    반갑습니다~ ^^ 한반도는 삼국시대에요. 이 무렵 쯤이면 근초고왕이 한창 활약하고 있을 무렵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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