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5 09:23

오호(五胡)의 쟁패 15 - 새로운 주인공 역사

화북의 패자였던 조(趙)에서 벌어진 대학살과 대혼란. 조를 둘러싼 여러 세력들은 이 혼란을 기회로 조의 영토를 넘보면서 이합집산을 시작했다. 연왕 모용준은 량의 장중화와 동맹을 맺었으며, 저족의 포홍은 동진의 관작을 받았다. 석민의 집권에 반발하여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군들 역시 제각기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강족을 이끌던 요익중은 관중 지역을 점거하기 위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던 저족의 포홍을 습격하였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한편, 조의 옛 수도 양국(襄國)에서 세력을 잡고 있던 석지(石祗)는 석민이 위를 건국하자, 스스로 조의 황제에 즉위하였다. 각지의 할거 세력들은 곧 석지의 조나 석민의 위로 나뉘기 시작했다.

황하 연안에서 할거 중이던 포홍은 성을 부씨(苻氏)로 바꾸고 삼진왕(三秦王)을 자칭하였다. 진(秦)이 성립된 것이다. 부홍은 서쪽으로 진격하여 관중을 점거하려고 하였으나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부홍의 뒤를 이은 부건(苻建)은 삼진왕의 칭호를 버리고 동진의 관작을 따랐으며, 다시 관중을 향해 진격하였다. 장안 지역에서 할거하고 있던 두홍(杜洪)은 방심하고 있다가 부건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였으며, 부건은 관중에서 하남 일대에 걸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한편 연왕 모용준도 남하를 개시했다. 첫번째 목표는 유주의 계(薊)였다. 손쉽게 유주를 접수한 모용준은 아예 계로 수도를 옮기고, 다음 목표로 기주를 넘보기 시작하였다.

석지의 조와 염민(冉閔 : 위를 건국한 후에 성을 고쳤음)의 위는 기묘한 다툼을 시작했다. 위의 수도 업(鄴)과 조의 수도 양국은 직선거리로 겨우 70km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코앞, 자연스럽게 조와 위의 전쟁은 혼전 그 자체였다. 게다가 수도를 서로 코앞에 두고 전쟁을 벌이다 보니 변방을 통솔할 여력도 없었다. 350년 11월 무렵, 염민은 양국을 포위하는데 성공하여 두 나라의 경쟁은 단숨에 위 쪽으로 기울었다.


351년의 해가 밝았다. 새해와 함께 부건은 동진의 관작을 버리고 독립하였다. 천왕(天王)에 즉위하고, 국호를 대진(大秦)으로 정하였으니, 역사상 전진(前秦)이라 부르는 왕조의 시작이다. 한편 염민에게 포위당한지 100여 일 째를 맞은 조의 석지는 연왕 모용준에게 원군을 청하기 위해 황제 칭호까지 버렸고, 원군으로 달려온 연의 군대와 요익중의 군대는 염민을 대파하였다. 이로써 염민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조의 석지도 부하 유현에게 살해당하여 사실상 조 왕조는 소멸되고 말았다. 조가 멸망하고, 염민의 위도 세력이 크게 위축되자 각지의 할거 세력들은 판도를 다시 짜기 시작한다. 하북 일대의 세력들은 모용준에게 항복하였고, 병주는 진의 부건, 하남과 산동 일대는 동진에게 항복하였다. 강족의 요익중도 산동 근방에서 진의 세력과 싸우면서 동진을 향해 진격하였다. 동진의 환온과 은호(殷浩)가 북벌을 준비하는 가운데 한중(漢中)의 사마훈은 진의 관중을 위협하였다.


다시 시간은 흘러 352년, 부건은 황제에 즉위하였고, 모용준은 화북을 석권하면서 염민을 압박하였다. 주요 세력 가운데 아직까지 국가를 이룩하지 못한 것은 강족의 요익중 뿐이었는데, 결국 요익중은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요익중의 아들 요양(姚襄)은 부중을 이끌고 동진의 영역 안으로 이동하여 초성(譙城)에 주둔하였다.

한편 염민은 유현이 주둔하고 있던 양국을 함락하여 마침내 조 왕조의 숨통을 완전히 끊었다. 그러나 이미 크게 약화된 염민은 군량조차 제대로 공급할 수 없어 하북 일대를 전전하며 군량을 구할 정도였다. 모용준은 마침내 모용각을 파견하여 염민을 공격하였다.


염민과 모용각의 군대는 하북의 평원에서 열 번이나 맞붙어 싸웠는데, 염민의 처절한 지휘 덕분에 모용각의 공격을 모두 격퇴할 수 있었다. 염민의 군대는 대부분이 보병으로, 기병으로 구성된 모용각의 군대에 비해서 압도적인 열세였다. 10번이나 모용각의 군대를 격퇴하긴 했지만, 워낙에 형세가 불리했기 때문에 염민은 기병에 대항할 수 있도록 숲속으로 이동하였다.

모용각은 경무장 기병으로 염민을 유인하도록 하고 주력군은 쇠사슬로 말을 이어 강력한 방진을 짰다. 평지로 되돌아온 염민은 모용각의 주력군을 향해서 닥치고 돌격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미 쇠사슬까지 동원하여 강력한 진형을 구성한 모용각은 이전과 달랐다. 혼자서 300여 명이나 죽일 정도로 저돌적인 활약을 펼쳤던 염민이지만, 압도적인 세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결국 염민은 포로로 잡히고, 업도 처절한 농성 끝에 무너졌다. 염위가 3년의 짧은 역사를 끝으로 멸망한 것이다.

아직 혼란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각지의 세력 판도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하북의 연, 관중의 진, 강남의 동진으로 3대 세력이 정립된 것이다. 오호의 쟁패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 염위 멸망 무렵의 정세


덧글

  • 한단인 2009/03/15 10:35 # 답글

    어..라? 후진을 세운 요장은 강족을 주축으로 후진을 세웠다길래 요씨 일족이 강족 출신인 줄 알았는데 요익중이 갈족을 이끌었던 거였습니까?

    ..잘못 알고 있었나? OTL
  • 야스페르츠 2009/03/15 16:04 #

    헉... 실수입니다. 강족 맞아요. -,.-;;
  • 푸른별빛 2009/03/15 12:30 # 답글

    염민군의 전투력이 엄청났군요. 그런데 이 시기 양국의 격돌이라면 어느 정도의 군세가 맞붙었을까요? 삼국시대 급격하게 감소된 인구가 채 회복되기도 전에 5호16국에 들어섰으니 동진을 제외한 화북지역 인구는 기껏해야 제자리걸음이었을텐데...
  • 야스페르츠 2009/03/15 16:05 #

    기록 상으로는 수만 단위의 전투가 벌어졌다고 나타나긴 합니다만, 정확하게는 모르겠네요. 그러나 화북이 분열되어 있던 때에도 동진군이 맥을 못추는 것을 보건대, 아직 강남의 인구는 화북에 비해서 많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耿君 2009/03/15 12:47 # 답글

    그런데 왜 성을 염으로 바꾼 것일까요...
  • ghistory 2009/03/15 15:48 #

    제가 알기로는 원래 염씨였다가 양자로 들어가면서 석씨로 바꾸었다가 자립하면서 다시 염씨로 돌아갔다고 합니다만.
  • 야스페르츠 2009/03/15 16:06 #

    원래 염씨였지요. 어릴 때 석호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독립한 후에 원래 성씨인 염씨로 돌아갔습니다.
  • 윙후사르 2009/03/15 19:21 # 삭제 답글

    그런데 동진이 저 강족 패잔병들을 받아들인건가요? 바보나 내부 문제가 심각한 게 아니면 가만 둘 수가 없을텐데...
  • 한단인 2009/03/15 20:44 #

    이이제이하려고 생각을 했겠죠.
  • 야스페르츠 2009/03/15 20:57 #

    안그래도 저 강족 패거리 때문에 동진에 아주 큰 사단이 납니다. ㅡㅡ;
  • 다복솔군 2010/01/27 13:49 # 답글

    역시 시대를 풍미한 제노사이드 계획자 답게 전투력도 어마어마했군요.=_=ㅋ
    흠 근데 전량과 연이 연락할 거리가 됐나요? ㄷㄷ 동맹이라니... 부씨가 관중과 병주를 석권했다는 것도... (북방을 먹었다는 건가요 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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