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8 10:05

오호(五胡)의 쟁패 13 - 북방의 사자 연(燕) 역사

단부의 공격과 모용인의 반란으로 한때 멸망의 위기까기 겪었던 모용황은, 곧 전열을 재정비하고 모용인과 전쟁을 시작한다. 334년 11월에 모용인을 공격한 모용황은 요동의 중심인 양평(襄平)을 함락하여 모용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모용인은 요동반도 안쪽으로 쫒겨가서 수세를 취했으며, 전선은 고착되었다. 이러한 소강 상태는 336년까지 계속되었다.

336년 정월, 모용황은 모용인을 멸망시키기 위한 군대를 다시 일으켰다. 기이하게도, 당시 요동반도 근방의 발해만은 모용인이 반란을 일으킨 이래 3년이나 연속해서 얼어붙는 이상 현상이 있었다. 모용황은 이런 현상을 이용하여 모용인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즉,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서 모용인의 방어선을 우회하려 한 것이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300여 리의 바다 위를 달려 모용황의 군사는 모용인의 근거지 평곽(平郭)에 도달했으며, 모용인은 완패하여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때, 모용인의 부하 가운데 동수와 곽충이 고구려로 망명을 하였다.

※ 모용황 사망 무렵 동북부의 정세

모용인을 멸망시키고 세력을 확대한 모용황은 뒤이어 단부와 치열한 전쟁을 시작하였다. 서로 치열한 일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모용황은 337년 9월에 이르러 마침내 연왕(燕王)을 자칭하였다. 드디어 오호의 쟁패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연이 탄생한 것이다.

연은 단부를 멸망시키기 위해 조의 석호와 동맹을 맺고 협공하였다. 모용황은 협공을 맞아 적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서 크게 승리하고 가축과 민호를 노략질하여 돌아가 버렸다. 결국 협공을 통해 피해를 줄이려던 조는 계획과 달리 단부와 단독으로 맞서게 되었다. 단부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배신을 당했으니 이에 보복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조의 대군이 침공해 들어오자, 연의 서쪽 변경의 방어선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연의 수도인 극성(棘城)이 포위되고, 모용황은 수도를 버리고 피난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제장들의 만류로 그만두고 치열한 농성전을 시작한다. 열흘이 넘도록 계속된 농성전은 결국 조의 군사가 포위를 풀고 퇴각하면서 끝이 났다. 이제 퇴각하는 적을 격파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조의 군사는 결국 산산히 부서지고, 석민(石閔)이 이끄는 부대 하나만이 온전하게 퇴각할 수 있었다. 모용황은 조에게 빼앗겼던 땅을 모조리 되찾고, 오히려 국경을 넓혀 과거 단부의 영역이었던 범성(凡城 : 하북성 평천현)까지 점령하였다.

338년에는 사실상 멸망하여 산 속으로 피신해 있던 단부의 수장 단요(段遼)가 연에 항복하였으며, 모용황은 조의 국경 지역을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괴롭혔다. 석호의 반격도 계속되었으나 대부분 소득 없이 끝이 났으며, 결국 견디다 못한 석호는 요서 지역의 민호를 남쪽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340년에는 석호가 일전에 이야기한 바 있는 50만의 대군을 일으켜 모용황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모용황은 조의 전선이 발해 해안가에 집중된 것을 역이용하여 북방으로 우회, 계(薊)를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이 전쟁을 끝으로 조의 직접적인 위협은 적어진 것 같다. 이에 모용황은 유성(柳城) 인근에 용성(龍城 : 요령성 조양시)을 쌓고 342년에는 용성으로 수도를 옮긴다. 그리고 배후의 안정을 위해 마침내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고구려를 크게 격파하고, 선왕의 시신과 모후까지 포로로 잡아 돌아온 덕분에 연은 배후를 완전히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연과 적대관계에 있던 마지막 선비족 부락인 우문부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우문부는 과거 석륵의 시절에 조에 복속되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독립적인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미 강력한 북방의 사자가 되어 있던 연에게 우문부는 상대도 되지 않는 세력이었다. 결국 우문부도 멸망하고, 모용황의 연은 북방 최강의 국가가 되었다. 모용황은 북방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안정적인 정치를 실시하였으며, 연은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348년, 모용황이 죽고 모용준이 연왕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해, 조의 석호가 죽고, 조가 후계자 분쟁으로 혼란에 빠져 들었다. 북방의 사자가 사냥에 나설 때가 온 것이다.

덧글

  • 푸른별빛 2009/03/08 10:23 # 답글

    익숙한 이름들이 하나둘씩 나오는군요- 이제 부견이 슬슬 등장할 때가 된건가요?
  • 야스페르츠 2009/03/09 00:29 #

    아직... 부견은 꼬꼬마라... 좀 더 있어야 합니다. ㅡㅡ;
  • 2009/03/08 12: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03/09 00:29 #

    아... 제 글을 링크하셨나요?? 흠...
  • 윙후사르 2009/03/08 13:29 # 삭제 답글

    북방의 사자란 별명이 구스타브 아돌프를 연상시키네요.
  • 야스페르츠 2009/03/09 00:30 #

    거기서 그냥 무단 도용했다능... 중국 애들은 그런 멋있는 별명을 붙이질 않아서 재미가 없어요. ㅠ
  • 解鳥語 2009/03/08 14:07 # 답글

    헐 바다를 질주해서 공격하다니!!
  • 야스페르츠 2009/03/09 00:30 #

    얼어붙은 바다 위를 질주한 거죠. ㅋ
  • 한단인 2009/03/08 18:33 # 답글

    헐퀴.. 무슨 모세도 아니고 바다를 건너오다니..

    모용황 판 '엑소더스' 로군요. ㅎㄷㄷ
  • 한단인 2009/03/08 18:33 #

    왠지 악희님 포스팅 모드로 써도 꽤 괜찮은 소재같다능...(응?)
  • 야스페르츠 2009/03/09 00:31 #

    얼음 위로 군사작전이 벌어지는 거야 스탈린그라드나 레닌그라드에서도 있었던 일인걸요. ^^
  • 한단인 2009/03/09 01:44 #

    일단 명색은 바다 위를 '걸어서' 온 작전이니까요.
  • 들꽃향기 2009/03/09 04:43 # 답글

    바다가 얼다...라;; 그러고 보니 저 시기에는 유독 이상기후 현상이 잦았던 듯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09/03/09 15:06 #

    원래 북방민족이 화북까지 내려와서 살았다는 것 자체가 기후의 악화를 뜻하는 것 일지도요. 그러고보면, 이시기 몽골 고원의 북방민족은 그다지 힘을 쓰지 못했었네요.
  • 다복솔군 2010/01/27 13:39 # 답글

    300리 바닷길을 달려서라니... =_=;; 어지간히도 꽁꽁 얼었던 모양입니다. 덜덜.
    뭐 이 시기 게르만족의 대이동의 원인도 기후의 변화 때문이라거 하덥니다만... (약간 이른가?)
  • blue 2010/03/29 02:56 # 답글

    이 시기가 소빙하기였다는 견해도 있더라고요. 출처는 도저히 기억이 안 나지만, 서양에서도 이 시기는 기온이 낮아 수확이 적어 여러 민족의 이동을 야기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0/11/14 10:09 #

    그러고보니 서기 4~5세기 초에 걸쳐 전세계적인 소빙하기였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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