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3 23:14

오호(五胡)의 쟁패 12 - 성한의 흥망 역사

물산이 풍부하고 천혜의 지형이 지켜주고 있는 촉(蜀) 땅에서 번영하던 성 왕조는 30년에 걸쳐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태평성대의 꿈을 깨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다.

후계자 문제.

성의 황제 이웅(李雄)은 황후에게 자식을 얻지 못했다. 후궁의 소생으로 1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웅은 이렇게 여러 아들들은 내버려둔 채 형인 이탕(李蕩)의 아들 이반(李班)을 총애하여 태자로 삼았다. 이탕은 성의 건국 과정에서 전사하였는데, 이웅은 적통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탕의 아들을 차기 황제로 점찍었던 것이다. 그래서 황후에게 이반을 아들로 삼아 기르게 하였다.

이반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성군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다른 여러가지 미덕들은 제쳐두고서라도, 이반은 효성 하나만은 정말 특출났던 것 같다. 334년 6월, 이웅이 머리에 부스럼이 나고 고름이 흐르는 병에 걸렸다. 여러 아들들은 모두 더럽다고 생각하여 가까이 오지 않았는데, 친자식도 아닌 이반은 밤낮으로 시중을 들면서 고름까지 입으로 빨아냈다고 한다. 이런 간호의 보람도 없이 이웅은 정묘일(25일)에 세상을 떠나고 태자 이반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이반은 명망이 높았던 종실왕인 건녕왕(建寧王) 이수(李壽)에게 모든 정사를 맡기고 자신은 궁중에서 상례만 치렀다고 한다.

황제가 사망하였으니, 각지에 흩어져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여러 아들들이 속속 성도로 귀환하였다. 이들 가운데 이월(李越), 이기(李期) 등은 이반이 자신들의 친형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모반할 것을 모의하였다. 결국 10월 초하루에 이반과 그의 일족을 참살하고 이기가 황제에 즉위하게 된다.

당시 정사를 전담하고 있던 이수는 이 쿠데타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쿠데타 이후에도 한왕(漢王)으로 이봉되고 대도독(大都督)의 직책까지 덧붙여 주었다고 하니 적어도 반대를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이수는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고 모함을 받았으나 이때에도 이기는 참소를 허락하지 않고, 이수를 양주(梁州)의 자사로 삼고 부(涪 : 사천성 금양시)에 주둔하게 하였다.

이기는 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상벌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국가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점차 쇠퇴해 갔다. 또한 신하들을 죽이고 재산을 갈취하는 일이 잦아서 대신들이 모두 불안해 했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한왕 이수는 본래부터 명망이 높았기 때문에 이기와 이월 등이 그를 위험하게 생각하였다. 이에 이수 자신도 불안함을 느껴 변방의 문제를 핑계로 조회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수는 촉의 재야 명사였던 공장(龔壯)을 찾아가 안전할 수 있는 계책을 물었다. 공장은 이수에게 반정을 일으켜 성도를 장악하고 진(晉) 왕조의 번신을 자처할 것을 권하였다. 계책의 뒷부분은 조금 꺼림직한 것일지 몰라도, 반정을 일으키도록 하는 계책이야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마침내 338년 4월, 이수는 성도를 점령하고 이기를 폐위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계책의 뒷부분이었다. 진 왕조의 밑에 들어갈 것을 권하는 파와 황제에 즉위할 것을 권하는 파가 갈렸다. 이수는 결국 점을 치기로 하였다.

"몇 년은 천자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可數年天子。


황제파(?)는 하루만 해먹어도 충분한데 몇 년이나 해먹을 수 있다고 부추겼고, 항복파(?)는 몇 년 동안 황제노릇 하느니 백 년 동안 제후로 잘 사는 게 더 낫다고 권한다. 결국, 이수의 선택은 다음과 같았다.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夕死可矣。


황제에 즉위한 이수는 국호를 자신의 봉국명인 한(漢)으로 바꿨다. 이 때문에 역사 속에서 이 왕조는 먼저의 국호인 성과 합쳐서 흔히 성한 왕조라고 부른다.

국호까지 바꾸면서 나라를 새롭게 이끄려고 했던 이수는 엉뚱하게도 조(趙)의 석호를 벤치마킹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진 왕조에 포로로 잡혔다가 조로 도망쳐 있던 이굉(李閎) 등이 돌아와 조의 수도 업의 화려함을 자랑(?)하자 이에 마음이 동한 것이다. 또한 이굉 등은 석호가 형벌을 잔인하게 하고 목숨을 빼앗는 방법으로 국가를 통제하여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어이없는 부추김까지 아뢴다. 이수는 이러한 부추김을 그대로 따라 사치스러운 토목 공사를 일으키고 형벌과 사형을 엄하게 집행하였다. 이로 인해 한의 국력은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343년에 이수가 죽고 그의 아들 이세(李勢)가 즉위하였다. 이세 역시 이수를 본받아 아첨꾼을 총애하고 폭정을 일삼았다. 게다가 촉의 산악 지방에서 살던 요족(獠族)이 평지로 이주해 오고 기근이 겹치면서 촉 지역은 점차 황폐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동진의 환온(桓溫)이 한을 멸망시키기 위해 출정하게 된다.

346년 11월 신미일(11일), 환온은 형주에서 촉을 향해 원정을 개시하였다. 이세도 이에 맞서 대군을 동원하여 이복(李福) 등에게 환온을 막게 하였는데, 한의 지휘부는 제장들이 지형을 이용하여 매복·수비하자는 의견을 무시하고 선제 공격을 위해 진격하였다. 반면 촉 땅으로 깊이 진격해온 환온은 결사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3일치의 양식만 가지고 성도를 향해 직진하였다.(347년 3월) 한의 운이 다한 것일까? 환온의 직진 경로와 한군의 반격 경로는 서로 엇갈려 버렸고, 환온은 성도 근방까지 진출하였다. 길이 엇갈린 것을 깨달은 한군은 되돌아오다가 환온군이 성도 근방에 진을 친 것을 보고 전의를 상실하여 붕괴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수도인 성도 코앞에까지 적군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세는 남은 무리를 모조리 끌어모아 이를 막았다. 전투는 한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선봉부대의 참군이 전사하고 환온의 바로 주변까지 화살이 날아와 꽂혔을 정도였다. 이에 환온은 일시 퇴각을 결심하고 퇴각의 북을 울리게 하였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한의 운이 다한 것이 증명(?)되었다.

고수(鼓手)가 퇴각의 북을 울린다는 것을 실수하여 진격하는 북을 친 것이다. 이에 동진군은 전체가 진격을 개시하였으며, 이를 놓치지 않고 환온의 장수 원교(袁喬)가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마침내 이세의 마지막 군세는 어이없게 패배하였으며, 동진군은 성도에까지 육박하여 사방에 불을 놓고 성문까지 불태웠다. 이세는 밤을 틈타 성도에서 탈출하였으며, 결국 환온에게 항복하였다.

이로써 성한(成漢) 왕조는 5대 44년의 짧은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한을 멸망시킴으로써 명성을 떨친 환온은 마침내 북방을 넘보기 시작한다. 5호16국시대의 분수령이 될 첫번째 북벌이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핑백

  • 정신줄 바짝 잡고 있는 악희惡戱님 : 황제 애새끼면 다 황제시켜줘야 되나? 2009-05-17 22:29:36 #

    ... 東晉)은 오랑캐 애들이 마구 깽판치르느라 소란스러운 윗쪽 동네랑 비교하면 그럭저럭 조용했어요. 아니, 꽤 살판 나기도 했죠. 환온(桓溫)이 성한(成漢)도 박살내 버리고, 북벌까지 해서 전진(前秦)과 전연(前燕) 애들 똥줄타게도 만들었으니 말이죠.그런데 문제는... 이 색히도 개후레자식 환온, 이 색 ... more

덧글

  • 카구츠치 2009/03/03 23:24 # 답글

    고수의 실수(?)는 정말로 인상적인 장면이네요. 나중에 참수되지 않았으려나요 ㅎㅎ
  • 야스페르츠 2009/03/03 23:30 #

    그리고 아무도 고수를 보지 못하였답니다. (퍽!)
  • 한단인 2009/03/04 00:22 # 답글

    참.. 운도 지지리도 없는 나라였군요.
  • 야스페르츠 2009/03/04 09:25 #

    아니면 환온이 운을 타고 났으려나요. ^^;
  • 푸른별빛 2009/03/04 01:02 # 답글

    북은 고수가 치고 명성은 환온이 얻었군요. 아직 환온이 북벌에 나서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은것으로 알고 있는데..,
  • 야스페르츠 2009/03/04 09:27 #

    그건... 결과를 모두 알고 있는 후세인의 만용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
  • 耿君 2009/03/04 03:00 # 답글

    아 안되려니 운이 안따라주네요 ㅠㅠ
  • 야스페르츠 2009/03/04 09:27 #

    망할 나라는 뭘 해도 안되다능.
  • asianote 2009/03/04 08:13 # 삭제 답글

    만약 졌다면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바보같이 북을 쳐서 졌다고 했을까요?
  • 야스페르츠 2009/03/04 09:29 #

    환온이 몰락했다면 "보급도 포기하고 밀고 나간 환온 탓"이었을 테고, 환온이 살아서 계속 세력을 키웠다면 "고수의 잘못"이 되겠지요.
  • 아야소피아 2009/03/04 09:08 # 답글

    저런 어의없는 실수를... 성한은 애초에 망할 운명이었나봐요;; 그나저나 이 시대 상황은 머리속에서 정리가 안된 상태였는데 야스페르츠님 덕분에 재미있게 읽고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3/04 09:29 #

    감사합니다. 저도 이렇게 연재를 하면서 새로 공부하는 게 많습니다. ^^
  • 들꽃향기 2009/03/04 09:10 # 답글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말이 저렇게 쓰일 줄이야..OYL

    그런데 한가지 의문인 것은 사천-강남간의 루트는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데(장강 상류루트와 한수 상류 루트 정도이려나요;;) 성한의 공격군과 환온의 서정군이 길이 엇갈려버렸다는게 거의 납득이 안갑니다;;

    아님 초등정찰조차도 서로가 제대로 시행을 안한건지..ㄷㄷ
  • 야스페르츠 2009/03/04 09:33 #

    기록대로라면 장강 방면이 전선이었습니다. 장강을 통과하는 루트가 2개였던 것 같네요. 환온도 군사를 둘로 나눠서 진격하려다가 그만두고 한방 승부에 걸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성한군이 공격해오는 루트를 정찰로 알았거나 추측했을 겁니다. 초등정찰이 부족했던 것은 성한군 쪽이었던 것 같네요.
  • 에드워디안 2010/11/14 09:47 #

    성한군 장수였던 이잠견이 장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장강을 건너 북쪽으로 진격하는 바람에(한수를 통해 쳐들어 올 것이라 예측한 듯), 길이 엇갈려버린 것이지요. 나중에 이를 눈치채고 급히 회군했으나, 환온이 이미 성도 근방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멸해 버렸습니다...-_- 그리고 야스페르츠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환온은 당초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진격할 심산이었으나, 참모인 원교가 적지 깊숙이 들어온 상황에서 군사를 나누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결국 '단판 승부'에 도박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환온 입장에선 다행히 성공하긴 했지만.

    PS. '斷腸'이란 고사성어도 바로 환온의 촉 정벌을 배경으로 한 것이지요.
  • 들꽃향기 2010/11/16 20:32 #

    아하 그렇군요 ㄷㄷ;; 역시 전근대전쟁에서 적과 아군의 진로가 엇갈려버리는(의도적 기만이 아닌) 경우가 상당하던데, 이 경우 역시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군요. ㄷㄷ 그런데 근성없이 수도를 구할 수 있던 주력군이 자멸해버린건 정말...-_-;;

    개인적으로 단장의 일이 환온이 입촉할때 있던 일이란 것은 알았지만, 지적을 통해서 이런 촉 정벌의 정황이 함께 연상하다보니...문득 환온이 원숭이 새끼를 납치한 부하를 결국 배에서 쫓아낸 것은 정복지의 촉지방민들에게 "내가 이렇게 원숭이조차 아끼는데 하물며 사람이야."하는 식의 프로파가다를 의식한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이 드는군요;;
  • 解鳥語 2009/03/04 10:00 # 답글

    연재 잘 보고 있는데요..보고 있자면 5호 16국의 역사는 무슨 판타지 세계 같습니다 ㅡㅡ;
  • 야스페르츠 2009/03/04 11:36 #

    졸문을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판타지는 아직 시작도 안했답니다. ^^;;
  • 함부르거 2009/03/04 13:44 # 답글

    드디어 환온의 등장이군요. 미야자키 선생의 중국중세사를 보고 나서 환온의 등장을 동진에 있어 '중세'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5호16국 역사가 참 아스트랄 한데 서양과 같이 놓고 '중세'라고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군요.
  • 야스페르츠 2009/03/04 16:48 #

    박한제 교수는 5호16국의 등장 자체를 로마 말기의 게르만족의 침입 및 중세 초기와 비교하고 있더군요. 일견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 말코비치 2009/03/06 12:17 #

    개인적으로 5호 16국 시대와 게르만인 이동기를 비교해본 적이 있었는데, 박한제 교수의 논문을 찾아봐야 겠군요. 두 시기가 이런저런 면에서 비슷한 점은 많지만, 그 결과도 많이 다르고, 후세인들의 시각도 많이 다르죠
  • 윙후사르 2009/03/05 17:07 # 삭제 답글

    고수의 실수가 결과적으로는 초대박.... 근데 요족은 무슨 민족인가요?
  • 야스페르츠 2009/03/05 17:46 #

    요족은 서남이에 속하는 남만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산 속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특정한 민족 하나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사천-운남의 산악지대에서 살던 여러 민족을 통칭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다복솔군 2010/01/27 13:35 # 답글

    성한은 뭔가 개그 센스가 충만한데요. ㅎㄷㄷ 울다가 쫓겨난 놈이 있지 않나, 석호를 따라 배우는 놈이 있질 않나... 근데 역시 촉은 항상 수도가 털려서 망하는 군요. 아마 저승에서 유선이 "나보다 더한 놈 있었네" 할 기세...;;
  • 에드워디안 2010/11/14 10:03 #

    정말 유선보다도 못한 놈이 이세였습니다. 다만 그 최후는 비슷했지요.-_-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유사역사학 방지

얼마블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