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8 00:24

오호(五胡)의 쟁패 11 - 전설의 폭군 역사

역사상 많은 폭군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산군을 대표로 꼽을만 하고, 전 세계에도 많은 폭군들이 있었다. 누명을 썼던 폭군들도 많았을 것이고, 개혁을 추구한 것이 포악한 정치로 기록된 군주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짜 악덕을 짊어지고 악명을 떨친 폭군들도 있다. 그들 가운데 둘째 가라면 서러울 폭군이 있다. 후조(後趙)의 3대 황제 석호(石虎)가 바로 그이다.

석호가 화북을 다스렸던 334년에서 349년까지 15년 여 동안, 후조는 강력한 철혈의 제국으로 군림하였다. 석호의 치세 동안 후조의 세력은 계속해서 확대되었고, 남으로는 장강까지, 북으로는 막북의 탁발부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군사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석호의 치세는 분명 위대한 시대였다.

그러나 석륵의 시대와 달리 석호가 벌인 군사 활동들은 대부분 강력한 적을 상대로 온갖 고난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었다. 석륵은 무인지경의 화북을 휩쓸었지만, 석호가 활약하던 시대는 각지의 군웅들이 세력을 확고히 갖추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석호의 확장 정책은 어렵고 무리한 것이었다.

기록 속에 나타나는 석호의 각종 악행들을 그대로 믿자면, 석호의 치세 15년 동안 후조라는 국가가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석호의 폭정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과장된 측면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치세가 무리한 원정이 계속되었고, 그만큼 국력은 소모되고 백성들은 살기 힘들었던 시대였다는 점이다. 많은 폭정들은 과장되었겠지만, 그렇다고 모조리 부정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석호는 전설적인 폭군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여기서 석호의 폭정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석호의 잔혹한 폭정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후조가 벌인 무모한 원정과 각국의 반응을 살펴보는데 주목하도록 하자.

즉위 초의 석호는 무리한 군사 원정을 벌이지는 않았다. 다만 군사 원정에 맞먹을 무리한 토목 공사를 일으켜 국력을 엄청나게 소모시켰을 뿐이다. 게다가 337년에는 태자 석수가 반란을 일으키려 했기 때문에 태자와 그 자식들, 즉 석호의 손자들까지 수십 명을 몰살시킨다. 아무튼 갖가지 폭정을 일삼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338년에 이르러 드디어 석호의 무리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첫 타자는 북방의 선비족 단부였다. 이 원정에는 모용황의 연(燕)도 동맹군으로 참여했는데, 모용황은 단부의 군대가 양쪽의 적으로 우왕좌왕하는 사이 백성과 가축들만 약탈하고 원정에서 빠져버린다. 이로 인해 석호는 단부와 단독으로 싸우게 되었으며, 결국 승리하여 단부를 복속시키는데는 성공한다.

연의 배신으로 어려운 전쟁을 치렀으니, 다음 차례가 모용황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1차 원정은 한때 모용황을 궁지에 몰아넣었으나, 결국 극성(棘城 : 요령성 금주)에서 치열한 공성전을 치른 끝에 크게 패배하였다. 석호는 패배를 설욕하고 연을 정복하기 위해서 2차 원정을 준비하였는데, 그 준비라는 것이 참으로 폭군다운 기막힌 것이었다. 집집마다 병사를 징집하는데, 장정이 5명이면 3명을, 4명이면 2명을 징집하여 50만 명이라는 대군을 만들었고, 1만 척의 배를 만들어 군량 1,100만 곡을 운반하였다. 또한 말을 조달하기 위해서 백성들의 말을 모두 징집하여 4만 필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이 기록은 조금 믿기에 애매한 구석이 있다. 50만 명이나 되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도 끝내 연을 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연왕 모용황은 석호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방향으로 기습을 하여 크게 승리하고 민호를 약취해 갔는데, 이런 수모를 당하고 나서도 연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추측해 보자면, 50만이라는 숫자는 과장된 것이고, 연을 공격하려고 하다가 기습을 당해서 패배했을 것이다.

한편, 동진 방향으로의 원정도 계속되었다. 339년에 동진을 공격하여 한수 동쪽 지역을 모두 장악하여 사실상 한수와 장강을 경계로 동진의 수도 건강을 넘보게 되었다. 이후 342년에 진을 공격하기 위해 다시5명에 3명, 4명에 2명을 징집하여 대군을 구성하였다. 갑옷을 만드는 기술자만 50만 명이었다고 하며, 배를 만드는 일꾼이 17만 명이었는데 이들 일꾼들 가운데 죽은 자가 3분의 2였다고 한다. 여기에 더 기가막힌 것은, 병사들에게 군수물자를 지원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병사들에게 물자를 징발하였으니, 이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목을 멘 것이 도로 양옆으로 즐비했다고 한다. 이렇게 징집해서 만든 군대가 100만이라고 하니.... 아무튼, 이렇게 거창하게 준비를 해 놓고, 또 동진으로 쳐들어가지는 않는다. 쳐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더욱 기가막히다.

"흰기러기가 들에 모인 것은 궁궐이 장차 텅 비게 될 것을 상징하는 것이니 남쪽으로 가셔서는 안 됩니다."

한마디로, 오늘 일진이 꽝이니까 싸우지 마셈..... 이걸 그대로 믿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무리 막장을 달리는 폭군이라도 이 정도로 막나가면 나라가 버틸 수 있을까? 이건 해도해도 과장이 너무 심하다.

한편, 석호가 맞붙어 싸워야 할 상대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바로 하서의 양 정권이다. 346년에 처음 시작된 양 정벌은 압도적인 세력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석호에게 유리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양왕 장중화(張重華)는 마침 뛰어난 무장 사애(謝艾)를 등용하여 적을 막게 하였고, 이로 인해 양주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석호는 대군을 동원해서 여러차례 양을 공격하였으나 모두 사애에게 격퇴되었고, 결국 원정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 석호 사망 무렵의 정세

군대를 보낼 수 있는 곳으로는 모두 군대를 보냈고, 때로는 성공하여 영토를 확장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석호의 대외 원정은 쓸데없는 국력 낭비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끝도 없이 벌인 무리한 토목공사, 그것도 민생이나 국방에 필요한 것도 아니고 궁궐과 같은 사치향락을 위한 공사로 인해 국력은 미칠듯이 소모되었다. 그 기록을 그대로 믿을수야 없겠지만, 어쨌거나 석호의 치세는 국가의 고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는 기간이었다.

말년의 석호는, 후계자 문제로 신경이 예민했는지 다시 태자와 손자들을 몰살시키고 새로 태자를 세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석호가 총애하던 5살바기 손자가 죽었고, 이로 인해 충격을 받은 석호는 병에 걸려 쇠약해졌다. 349년에 비로소 황제에 즉위한 석호는, 태자 일가를 몰살시킨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대규모 반란으로 인해 궁지에 몰렸다. 다행히 이 반란은 곧 진압되었으나 이미 심약해진 석호는 최후를 준비해야 했다.

후계자 석세(石世)를 위해 여러 아들들을 보위하도록 요직에 임명해 놓았으나, 정작 석세의 도당들은 요직에 올라 있는 종실들이 석세를 위협할까 두려워하여 석호가 몸져 누운 동안 조서를 꾸며 이들을 변방으로 내몰거나 살해하였다. 결국 석호가 왕조를 위해 준비한 최후의 계획마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그리고, 349년 4월 23일, 희대의 폭군 석호가 세상을 떠난다. 이제 후조 왕조의 최후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덧글

  • 초록불 2009/02/28 01:03 # 답글

    잘 보았습니다. 가십에 치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군요...^^
  • 야스페르츠 2009/03/01 13:11 #

    연재가 너무 지지부진해서... 가십거리는 추후로 미뤘습니다. ^^;
  • 악희惡戱 2009/02/28 01:07 # 답글

    백양의 '맨얼굴의 중국사'에도 석호 얘기가 꽤 상세히 나와 있더군요. 그것만 놓고 보면...ㅎㄷㄷ
    그리고 얼마 전 역밸에서 역시 같은 책에서 소개된 개막장 남조 송나라 황제들의 포스팅이 있었더랬죠.
    근데 그 책은 출처에 대한 얘기가 없어서... 뭐, 중국인이 쓴 중국 역사 서적이고 비슷한 내용의 글들도 본 적이 있는 터라 안 믿기도 좀 그렇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3/01 13:13 #

    맨 얼굴의 중국사도 참고로 했습니다. ^^ 대부분 사료에 있는 내용이긴 하더라구요.
  • 한단인 2009/02/28 03:14 # 답글

    아하.. 귀축 석호의 가십거리는 회지로 돌리시는 건가요...
  • 야스페르츠 2009/03/01 13:13 #

    회지에 먼저 공개하고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 들꽃향기 2009/02/28 10:09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국력의 차이를 가지고도 선전하는 모용부의 모습이 주목되네요.
  • 야스페르츠 2009/03/01 13:15 #

    반갑습니다~^^ 이번에 15년치 진도를 단숨에 빼서 주변 정세는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네요. 모용부의 이야기도 다시 살필 겁니다.
  • 소시민 2009/02/28 10:14 # 답글

    집집마다 병사를 징집하는데, 장정이 5명이면 3명을, 4명이면 2명을 징집하여 50만 명이라는 대군을 만들었고,

    - 아무리 석호라도 전부 징병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못하는군요.
  • 야스페르츠 2009/03/01 13:15 #

    ^^ 저 정도 명령이면 가용 인구의 절반을 뽑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 윙후사르 2009/02/28 11:43 # 삭제 답글

    석호의 살육극은 안 나와서 아쉽군요. 다만 저 막장에 가까운 군사원정계획등은 참 할 말이...
  • 야스페르츠 2009/03/01 13:16 #

    살육극은... 나중에 포스팅하겠습니다. 일단 연재 진도 좀 빼고... (퍽!)
  • asianote 2009/02/28 12:30 # 삭제 답글

    피를 보고 싶었는데... 어쨌든 막장인거 변함 없으니까 할 말이 없군요.
  • 야스페르츠 2009/03/01 13:16 #

    피는 끔찍해요 ^^;;
  • 푸른별빛 2009/02/28 13:07 # 답글

    그 유명한 석호군요. 중국에 있을 때 산 책을 찾아보니 <석호가 폭정을 펼치다>라는 제목아래 폭군의 전형으로 저 사람을 적어놨네요. 지금까지 그만한 사람이 없었고 뒤로도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라니 ㄷㄷㄷ 재미있게 봤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3/01 13:18 #

    반가워요~ 폭군계의 레전드!! ㅋ
  • 耿君 2009/02/28 15:57 # 답글

    다른 의미에서도 '위대한(?) 시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3/01 13:17 #

    ^^ 아무튼 전설적인 시대였죠.
  • 함장 2009/02/28 15:59 # 삭제 답글

    성나라가 소리소문도 없이 망했군요
  • 한단인 2009/02/28 20:02 #

    어..? 그러고 보니?
  • 야스페르츠 2009/03/01 13:18 #

    15년치 진도를 단숨에 빼다 보니... 다음 포스팅은 성나라가 주인공입니다. ^^
  • 에드워디안 2010/11/14 09:57 #

    원래 촌놈들은 망해도 별 관심을 못 받는다능.(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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