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4 22:16

오호(五胡)의 쟁패 10 - 승자의 혼미 역사

329년, 상규(上邽 : 감숙성 천수)를 점령하고 전조의 마지막 숨통을 끊음으로써, 석륵의 후조는 화북의 패권을 놓고 벌어진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전조에 복속되어 있던 저족의 수령 포홍과 강족의 수령 요익중은 후조에 항복했으며, 농서(隴西)의 걸복부는 후조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서쪽으로 도망쳐 버렸다. 화북에 남아있는 독자적인 세력은 사실상 하서의 양 정권 하나 뿐이었다. 새외의 탁발부나 모용부 등은 아직까지 후조에 위협이 될만한 세력은 되지 못했다.

330년 2월, 석륵의 신하들은 석륵에게 황제에 즉위할 것을 청하였다. 석륵은 황제에 즉위하는 것은 거절하였지만, 천왕(天王)이라 자칭하고 사실상 황제나 마찬가지의 지위에 올랐다. 그리고 뒤이어 9월에는 마침내 황제에 즉위하였다. 석륵의 아들 석홍(石弘)이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며, 여러 종실들도 각지의 왕공에 임명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중산왕(中山王) 석호였다.

석호는 석륵의 조카로, 석륵의 자식들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석륵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군사적 재능이 뛰어나 석륵과 함께 많은 전공을 세웠는데, 군사적 재능의 여파라고 해야 할까? 심각한 단점이 있었다. 대단히 포악하고 잔인한 성격이었던 것이다. 석륵을 포함해서 후조의 여러 중신들은 태자 석홍이 석호를 통제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석호를 거세해 버리기에는 석호의 세력 자체가 너무나도 컸다.

333년, 석륵이 몸져 눕게 되자 감춰져 있던 후계자 문제가 단숨에 불거져 나왔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석호는 궁궐을 장악하고 아무도 석륵을 만날 수 없게 하였다. 조서를 마음대로 고쳐 전횡을 부리는 가운데, 석륵은 7월에 세상을 떠났다. 석호는 태자 석홍을 황위에 올려 놓았으나, 사실상 후조를 다스리던 것은 석호였다. 승상과 대선우의 지위에 올랐으며 위왕에 임명되어 13개 군을 다스리는 국왕이 되었다. 석륵의 자손들은 모두 축출되거나 소외되었고, 석호의 아들들과 총신들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종실의 왕으로 임명되어 있던 석륵의 자손들이 무력으로 도전하기도 하였으나, 석호의 강대한 세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석호에 대항해서 일어난 반란(?) 중에서 가장 거대했던 것이 관중 및 낙양을 지키고 있던 석생·석랑의 반란이었다. 석호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진압에 나섰고, 반란을 진압한 후 관중의 저족과 강족 수십만 명을 관동으로 이주시켰다. 이들을 이끌었던 것이 포홍과 요익중이다.

334년, 석홍은 스스로 옥새를 싸들고 석호에게 달려가 황위를 물려주고 은거하겠다고 청한다. 처음에는 석호가 거절하였는데, 이에 조정 대신들이 다시 선위할 것을 청하자 석호는 어떻게보자면 엉뚱하다고 할 수 있는 대답을 한다.

"석홍은 어리석고 아둔하여 상중에도 예의를 차리지 못하였으니 그를 폐위시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찌 선양을 한단 말이오?"

즉, 폐위는 시켜 주겠는데(?) 그렇다고 내가 황제를 해먹지는 않겠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이었다. 아무튼 그 결과 살얼음판 같았던 황제의 지위에서 내려온 석홍은 어찌나 마음이 놓였는지 태연자약하게 할말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후조의 황위는 비게 되었는데, 석호는 끝내 황제가 되는 것은 거부한 채 천왕(天王)의 지위에서 섭정을 하였다. 석홍은 황위에서 물러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족과 함께 석호의 손에 죽고 만다.

그리고 이때부터, 세계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폭군 석호의 치세가 시작된다.

덧글

  • 엘레시엘 2009/02/24 22:29 # 답글

    석호...대체 뭐하자는 짓인지 모르겠군요 -_-;;
  • 야스페르츠 2009/02/24 22:34 #

    뭐랄까, 자기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었나봅니다. ㅡㅡ;
  • 自重自愛 2009/02/24 22:51 # 답글

    석호를 옹호해 주자면(왜? -_-;;;;) 중국 문화의 상징인 황제 호칭을 거부하고 유목 민족의 전통인 천왕 호칭을 고수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겠군요. (틀려!)
  • 야스페르츠 2009/02/25 11:29 #

    꿈보다 해몽이...(응?) 석호가 왜 그랬는지는 하늘만이 아시겠지요. ^^;;
  • FELIX 2009/02/25 01:21 # 답글

    드디어 그분이 나오시는군요!!!
    다음회는 역시 하드고어 피보라의 향연?
  • 야스페르츠 2009/02/25 11:30 #

    피보라!!!!!!! 저는 그런 거 무서워서 못봐염... (퍽!)
  • asianote 2009/02/25 09:52 # 삭제 답글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야생의 젖어 있는 북방 유목민족이 한족의 문화와 결합하면서 야만을 탄생시켰다는데 서진의 유풍이 이 시대에도 남아 있었나 봅니다. 피바다를 도배했으니까.
  • 야스페르츠 2009/02/25 11:32 #

    아무래도 기록자가 중국이다보니 오히려 야만(?)적인 요소들도 너무 희석돼서 기록된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흉노나 갈족 등이 세운 나라에 정통 중국식 관직명이나 통치체계가 왠말입니까. ㅡㅡ;
  • 소시민 2009/02/25 10:32 # 답글

    석호...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 야스페르츠 2009/02/25 11:32 #

    하드고어는.... 노력해 보겠습니다. ㅡㅡ;
  • 戒急庸忍 2009/02/25 10:59 # 삭제 답글

    야스페르츠님 글 너무 잘읽고 있습니다
    5호16국은 책으로도 상세하게 설명된것이 없어서 항상 궁금했는데
    너무 상세하고 이해하기쉽게 잘 적어주셨네요
    어디서 이런 진귀한 자료들을 구하셨는지 대단할 따름입니다

    항상 다음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좋은글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야스페르츠 2009/02/25 11:33 #

    졸문을 이렇게 즐겁게 봐주시다니.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
  • 악희惡戱 2009/02/25 12:00 # 답글

    드디어 귀축석호의 서막이 올랐군요!!!
  • 야스페르츠 2009/02/26 09:39 #

    막은 올렸는데 배우가 실종 상태라능... ㅠㅠ
  • 아야소피아 2009/02/25 14:59 # 답글

    석호 저 친구 희대의 살육자로 유명한데 다음편 ㅎㄷㄷ하겠군요;;
  • 야스페르츠 2009/02/26 09:41 #

    흉노족 전기톱 살인 사건!! (퍽!)
  • 윙후사르 2009/02/25 19:58 # 삭제 답글

    인간백정 석호의 살육극이 시작됬군요.
  • 야스페르츠 2009/02/26 09:41 #

    근데 생각보다 인간백정짓을 안했더군요. 사마광이 잔인한 건 편집해 버린 건지는 몰라도...
  • 한단인 2009/02/26 02:04 # 답글

    드디어 회지 연재분이 시작되는 건가염..
  • 야스페르츠 2009/02/26 09:42 #

    자료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중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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