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3 21:55

오호(五胡)의 쟁패 9 - 북방의 사정 역사

흉노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북흉노가 멸망한 이후 주인이 사라진 몽골 초원을 차지했던 종족이 있다. 선비(鮮卑)가 바로 그들이다.

단석괴(檀石槐) 이후 우문부(宇文部)·모용부(慕容部)·탁발부(拓跋部)·단부(段部)·걸복부(乞伏部)의 5부로 분열되었던 선비는 때로는 중국의 북방을 침범하기도 하고, 중국에 신속하기도 하는 등 복잡한 역사를 걸었다. 그리고 5호가 쟁패를 벌이던 시기, 선비의 5부 가운데 강력하게 성장하는 두 부중이 있었다. 모용부와 탁발부.

탁발부는 탁발의로(拓跋猗盧)를 중심으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특히 315년에 진 왕조를 도운 공로로 대왕(代王)에 봉해짐으로써 선비족 가운데 최초로 국가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탁발의로가 후계자 문제로 인해 살해당하고, 탁발부는 크게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로 인해 탁발부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고, 애써 수립된 국가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마침 화북에는 석륵의 세력이 강력하였고, 탁발부는 석륵의 후조에 밀려 북방으로 이주하여 더욱 세력이 약화되었다. 오랜 내전을 거친 후 탁발부는 329년, 후조에 탁발십익건(拓跋什翼犍)을 인질로 보내고 사실상 후조에 복속되었다.

탁발부가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던 것과 달리, 모용부는 일세의 영걸 모용외(慕容廆)의 영도 아래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요동 및 요서 일대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던 탁발부는 주변의 우문부, 단부와 여러차례 대결하기도 하였다. 상대적으로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석륵의 세력과 마주칠 일이 적었던 모용부와 달리, 우문부, 단부는 석륵과 충돌이 잦았다. 특히 석륵이 후조를 건국하고 주변을 정벌해 나가면서, 우문부는 석륵의 공격을 받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복속하고 말았다. 단부 역시 일파가 후조에 복속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독립적인 세력은 유지하였다.

그러나 모용외는 건강의 진 왕조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석륵의 후조와 정면으로 대적하였다. 후조가 막 건국되었을 무렵에는 아직 국경을 마주대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후조와 모용부는 당면한 적인 우문부·단부와 공동으로 대응이 가능했다. 그러나 모용외는 이러한 이점도 버린 채 석륵과 적대관계를 유지하였다. 323년에 석륵이 우호를 청하며 보낸 사자를 붙잡아서 그대로 건강으로 보내버릴 정도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석륵은 우문부를 복속시킨 후 325년에 이르러 우문부를 시켜 모용외를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모용외는 아들 모용황(慕容皝)을 보내 선제공격에 나섰고, 우문부를 격파하여 크게 세력을 떨쳤다. 이후 단부와는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333년 모용외가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모용외의 뒤를 이어 모용부를 이끌게 된 것은 모용황이었는데, 모용부 안에서 강력한 세력을 갖추고 있던 것은 모용황 뿐 아니라 모용외의 서자였던 모용한(慕容翰), 황의 친동생 모용인(慕容仁) 등이 있었다. 예정된 수순처럼 모용황과 모용한, 모용인은 서로 대립하기 시작하였고, 모용한은 단부로 망명을 택하였다. 반면 모용인은 모용황과 정면으로 승부하여 모용황을 격파하고 요동 일대를 석권하였다. 모용황은 요동을 상실하고 요서의 일부 지역을 유지하고 있게 되었다.

다음 차례는 단부였다. 단부는 모용한과 함께 모용황을 공격하여 유성(柳城 : 요령성 조양)을 포위하였다. 1차 포위는 실패로 돌아갔으나 다시 병력을 더욱 증강한 후 이어진 2차 포위 공격은 유성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모용황은 구원군을 파견하였으나, 구원군을 이끌던 모용한(慕容汗)은 성급하게 진격하다가 크게 패배하였다. 이로써 모용황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봉착하였다.

그러나 이때 단부의 군대를 이끌고 동족을 공격하고 있던 모용한(慕容翰)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모용한은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부족이 멸망해 버릴 것을 걱정하여 단부의 군사를 제지하였고, 그로 인해 모용한과 단부와의 사이가 틀어지고 말았으나, 모용황으로서는 천만 다행이었다.

북방에서 패자가 등장하기까지는 아직도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었다....

덧글

  • 초록불 2009/02/23 22:10 # 답글

    드디어 모용 씨들의 등장이군요.

    그나저나 저 우문부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결국 고구려한테 치이는데까지 이르겠군요.
  • 윙후사르 2009/02/24 00:09 # 삭제

    고구려랑 우문부는 우호관계 아니었나요? 전 적어도 적대까지는 아닌걸로 압니다만..

    그리고 중요한건 이게 아니라.. 책사풍후가 이글루스에 나타났습니다!!!
  • 초록불 2009/02/24 00:20 #

    살수에서 깨진 장수 중 하나가 우문술이라서요...^^
  • 야스페르츠 2009/02/24 09:48 #

    초록불 님// 우문술도 우문부였군요. 그 생각은 못했네요. ^^;

    윙후사르 님// 풍Q는 그냥 무시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ㅡㅡ;
  • 악희惡戱 2009/02/24 00:42 # 답글

    간만에 익숙한 단어들이 보여서 반갑군요^^;;;
  • 야스페르츠 2009/02/24 09:50 #

    이제 곧 주인공이 교체될 겁니다. ㅎㅎ
  • 아롱쿠스 2009/02/24 08:29 # 답글

    한때 고구려를 바른 모용황도 후달릴 때가 있었네요.
  • 야스페르츠 2009/02/24 09:51 #

    이렇게 후달릴 무렵에 고구려가 들이쳤다면... 어땠으려나요...ㅡㅡ;
  • asianote 2009/02/24 11:05 # 삭제 답글

    탁발부는 언제 등장하나요? 북방 최후의 패자가 되는 북위를 건설했는데 아직 멀었나요?
  • 야스페르츠 2009/02/24 12:53 #

    탁발부도 위에 나와 있는데요.... ㅡㅡ; 아직은 탁발부는 찌질한 상태라서..
  • 말코비치 2009/02/24 17:16 # 답글

    선비족이 활동범위가 굉장하죠 흉노가 없어진 자리를 모두 대체하였죠. 그리고 저시절이라고 고구려가 딱히 힘을 발휘했을지는 모르겠네요. 위의 변방 장수 관구검한테도 깨졌는데...
  • 야스페르츠 2009/02/24 22:33 #

    이 무렵의 고구려라면 그래도 선비족하고는 맞장 한 번 떠볼만한 국력이었죠. 관구검한테 발리던 시절보다는 초큼 낫다능. 하긴, 그래봤자 역사에 if는 없는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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