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18 21:06

오호(五胡)의 쟁패 7 - 두 개의 조(趙)나라 역사

근준의 반란이 한창이던 318년 겨울, 유요는 죽은 유찬을 대신해서 한(漢)의 황제에 즉위하고 석륵을 조공(趙公)에 임명한다. 당시까지 유요와 석륵은 미묘한 협력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유요는 자기 세력 안에서 최대의 세력인 석륵을 적당히 우대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근준이 토벌되고, 토벌되는 과정에서 미묘한 대립각을 세우게 된 양대 세력은 정해진 수순처럼 결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319년 2월, 유요 측에서 먼저 석륵의 사신을 처형하고, 석륵은 사신의 처형을 주도하였던 가신의 일족을 참살함으로써 석륵과 유요는 공식적으로 결별하였다.


유요는 6월에 장안에서 국호를 조(趙)로 바꾸고 흉노의 선대 선우인 난제묵돌(欒提冒頓)을 배향하였다. 유연이 한을 건국할 때는 희한하게도 흉노의 후예를 자처하지 않고 한의 후예를 자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유연은 한고조를 비롯해서 한의 여러 황제들을 제사하였다. 흉노가 세운 국가임에도 흉노의 선조들에 대해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유요는 장안에서 새로이 국가를 일신하면서 유연의 국시(?)를 버리고 흉노의 선조를 모시게 된다. 국호에 대해서도 한나라의 후예를 자청했던 한을 버리고 유요가 처음으로 봉해졌던 중산(中山) 지역의 옛 국명인 조를 택한다. 종묘사직을 중시하였던 동양권의 기준으로 보자면, 엄밀하게 말해서 유연의 한과 유요가 일신한 조는 완전히 다른 국가라고 보아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석륵 역시 11월에 이르러 조왕(趙王)을 자칭하였으니, 이로써 화북에는 동서에 두 개의 조나라가 성립되었다. 역사에서는 유요가 세운 조를 전조(前趙), 석륵이 세운 조를 후조(後趙)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그런데, 서로 결별하기는 하였으되 유요와 석륵은 완전히 적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두 나라가 본격적으로 적대하고 격돌하게 된 것은 324년의 일로, 그 이전까지 두 나라는 각기 주변을 정리하기에 바빴다.


유요는 관중을 정리해 나갔으니, 진 왕조의 마지막 저항군인 사마보가 320년에 죽고, 323년에는 하서의 장무까지 항복시킨 유요는 사실상 관중 일대를 평정하였다. 석륵 역시 북방으로는 모용외를 공격하고, 322년 연주(兗州), 323년 청주(靑州)를 점령하여 화북 일대를 차근차근히 평정해 나갔다.


석륵과 유요가 맞붙게 되는 전장은 두 나라의 접경 지역인 사주(司州), 즉 낙양-하남 일대였다. 그런데 이곳에는 두 나라 말고도 강남에서 다시 일어난 진 왕조의 세력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낙양 근방에서 벌어지는 세 나라의 쟁탈전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유요의 부하들이 석륵에 붙었다가, 다시 진 왕조에 항복하는 일도 벌어졌다.


32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두 조나라의 패권 다툼은 325년 4월에 첫번째 대충돌이 벌어졌다.

후조의 병주자사가 병주를 통째로 점거하고 전조에 항복하는 일이 벌어졌고, 뒤이어 5월에는 낙양 남쪽의 사주자사(진나라)도 전조에 항복하였다. 이에 낙양에 주둔하고 있던 석륵의 장수 석생(石生)은 3면으로 포위당한 상태가 되었는데, 이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석호(石虎)가 전조의 포위군을 격파하고 오히려 역포위하니, 이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어휴 복잡하다...) 유요는 다시 석호군을 격파한다.

그러나 그날 밤, 유요의 군대는 갑자기 혼란에 빠져서 무너져 버리니, 전조는 사주의 세력을 거의 모두 잃고 병주도 다시 상실하게 되었다. 이로써 후조는 관동의 패권을 확실하게 장악하였으며, 진 왕조에 대해서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여 회수(淮水) 이북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전조는 이 패배로 인해서 기나긴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327년에는 양(凉)의 장준(張駿 : 장무의 아들)이 독립하였으며, 양주(梁州 : 한중 일대) 지역의 저족 부락인 구지(仇池)의 저항이 계속되었다. 반면 후조는 화북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마침내는 수춘을 공격하고 동진의 수도인 건강 인근까지 진출하는 등 활발한 군사 활동을 벌인다.

※ 328년, 두 조나라의 결전 직전의 형세

그리고 마침내 328년, 전조와 후조는 하북의 패권을 놓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된다. 이전까지 벌어졌던 일개 지방 군단 사이의 쟁탈전이 아닌, 국가의 존망을 건 결전이다. 화북의 패권, 그 향방을 결정하게 될 대 전투가 드디어 시작되는 것이다.


덧글

  • 카구츠치 2009/02/18 22:04 # 답글

    동진을 쳐서 멸망시킨다...는 선택지에 없었나보군요. 하긴 쪼개어 견제하는마당에 어려운 얘기겠지만....
  • 야스페르츠 2009/02/19 00:08 #

    솔까말, 멸망시키기에는 후조도 상당히 후달렸을 겁니다. 석륵은 십수년 전에 수춘을 넘보다가 죽을 뻔 한 적도 있으니까요.
  • 한단인 2009/02/18 23:52 # 답글

    아..전조의 유래가 그런 것이었군요. 전 왜 뜬금없이 국호를 한에서 조로 바꾸는 건가 의아했는데..
  • 야스페르츠 2009/02/19 00:07 #

    의외로, 중국에서 각국의 국명은 역사와 전통과 핑계가 많더군요.
  • 다복솔군 2010/01/27 13:16 # 답글

    병주와 사주가 넘어갔음에도 지다니.. 전조도 좀 막장이군요 =_=;;ㅋ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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