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12 23:29

박영규와 오캄의 면도날 1 유사역사학 비판

오호(五胡)의 쟁패 연재를 위하야 마침내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을 대출해 왔습니다.

펼치는 순간 눈이 썩어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습니다만, 그래도 연재를 하겠다고 공언했으니 읽어야지 별 수 있나요.

이에 더해서, 지난 금요일에 <자치통감>도 배송이 되었던 고로, 요새는 <자치통감>을 탐독하느라 연재가 무한정 늦어지고 있습죠.

아무튼, 연재가 늦어지는 관계로 막간극 삼아 박영규 까기 포스팅을 써 볼까 합니다.

이름하야, 멀쩡한 백제를 대륙에 메다 꽂기 위해 눈물겹도록 사료와 사투를 벌이는 박영규 사마의 삽질을 그린 막간극!

박영규와 오캄의 면도날................



========= 절취선 ==========

박영규 사마의 눈물겨운 사투 첫번째. 낙랑을 황하 하구에 가져다 놓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신파극.

  "백제사에 등장하는 낙랑은 대륙의 낙랑군과 한반도의 낙랑국으로 구분될 수 있다. 대륙의 낙랑군은 한나라 무제 때 설치한 4군의 하나이고 한반도의 낙랑국은 흔히 동예로 불리던 나라이다. 하지만 <삼국사기> 편자들은 대륙의 낙랑군과 한반도의 낙랑국을 혼동하여 서술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의 왜곡된 역사 서술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운을 떼신 박영규 사마께서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가져오십니다.

 1. 백제 기록에는 그냥 낙랑하고 태수가 있는 낙랑이 따로 나온다능. 태수 낙랑은 낙랑군이고 그냥 낙랑은 낙랑국이라능.
 2. 낙랑태수는 위나라 시기에 유주 자사의 명령을 받는다능. 유주는 북경에 잇으니 낙랑군도 북경 근처에 있을 거라능.
 3. 온조왕이 동쪽에 낙랑이 있다고 했다능. 그 낙랑은 낙랑국이라능.
 4. <삼국지>에는 낙랑국이 있다는 위치에 예가 있다고 기록했다능.


그러면서 장황하게 써 갈기는 <삼국지> 동이전 예條

  "예는 남쪽으로 진한과 접해 있고, 북쪽은 고구려 및 옥저와 접해 있으며, 동쪽은 대해에 닿아 있으니 지금의 조선 동쪽이 모두 그들의 땅이다.
(중략)
단단대산령으로부터 서쪽은 낙랑에 속하고, 산령 동쪽의 일곱 현은 도위가 그곳을 주관하는데...
(중략)...
한 말기에 다시 구려에 속하였다.
(중략) ※ 이 생략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박영규가 한 생략임
정시 6년에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궁준이 단단대산령 동쪽의 예가 구려에 복속된다 하여 군대를 일으켜 예를 정벌하니..."

 이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가관입니다.

 1. 앞부분의 예는 온조왕이 말한 낙랑하고 위치가 같다능. 그러니까 이 예는 동예고, = 낙랑국이라능.
 2. 근데 예 위치를 쓰면서 서쪽은 안썼다능. 서쪽 얘기는 한참 뒤에 나오니까 뭔지 껄쩍지근 하다능. 그러니까 이 예는 동예랑 다른 놈들이라능.
 3. 낙랑태수가 때찌한 예는 부여에서 온 놈들이라능. 그니까 동예도 낙랑군이랑 관계가 없다능.
 4. 그니까 진수는 동예랑 예랑 같이 쌈싸먹을라고 일부러 이렇게 왜곡한 거라능.


........................

낙랑하고 예라는 두 가지 국명(종족명)을 가지고 세기도 힘들만큼 많은 굽이를 돌아서 결국 4개의 국가(종족)을 만들어 버립니다...

ㅎㄷㄷ.....

오캄의 면도날이라고 들어나 보셨는지 몰라요.... ㅡㅡ;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들게 굽이 굽이 넘어 넘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각 굽이마다 오류가 너무 많아서 오캄의 면도날을 굳이 꺼낼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대충 몇 개만 까보면,

(1) 예의 위치
온조왕이 말한 낙랑 위치는 백제의 동쪽 말고는 없다. 말갈은 백제의 북쪽이지 낙랑의 북쪽은 아니다. 게다가 남쪽 이야기는 아예 한적도 없다.
그런데 박영규는 <삼국지>의 예의 위치와 온조의 낙랑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삼국지>의 예는 북쪽이 고구려와 옥저지 말갈이 아니다. (물론 낙랑의 북쪽조차도 말갈은 아니다.) 박영규는 이에 대해서 "북쪽으로 고구려 및 옥저와 접해 있다는 것은 고구려의 속국이었던 말갈과 옥저에 접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라고 또 몇 다리를 건너서 추론해 버린다. 이젠 몇 굽이를 넘었는지 세기도 지친다.
게다가, 박영규는 <삼국지>에 "예의 남쪽은 진한"이라는 기록을 가지고도 또 다리를 건넌다. 진한=신라니 동예는 역시 낙랑국(즉, 평양 일대)라는 결론이다. 그런데, <삼국지>에는 변진과 마한을 명백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박영규 사마는 가볍게 무시해버린다. <삼국지>의 기록대로 따지자면 동예는 죽었다 깨어나도 평양 일대가 될 수 없다.

(2) 예의 위치를 서술한 <삼국지>의 껄쩍지근함.
박영규는 <삼국지>를 인용하면서 아주 깜찍한 사기를 친다. 예條의 시작부터 예의 서쪽 이야기를 하는 부분까지는 전체 분량을 모조리 서술해 놓고, 그 뒤는 깔끔하게 -중략- 처리를 한 후에 낙랑태수가 예를 친 이야기를 서술한다. 이유는 뻔하다.
박영규의 주장을 그대로 읽어보면 <삼국지>는 마치 이렇게 써진 것 같다.
예의 위치(서쪽은 뺀) 설명 - 예 관련 한군현 역사 - 예 풍속 - 예 서쪽 위치 - (중략) - 낙랑태수의 예 정벌
뒷부분의 내용을 생략함으로써 예의 서쪽 위치를 서술한 다음에 바로 낙랑태수의 예 정벌이 서술된 것과 같이 읽히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왠지 설득력있게 들리게 된다.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궁준이 예를 공격하였는데, 이 공격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서술적 장치였던 것이다. (중략) 진수가 기록의 첫 부분에서 예의 서쪽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진수는 한반도 동쪽의 동예와 발해만 연안의 예국을 동일한 국가로 취급하여, 양쪽 모두 낙랑군에 속한 땅으로 인식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 넘어야 하는 산도 참 많지만, 산을 넘으면서 배를 타고 간다고 말하는 꼴이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의 박영규 사마는 산넘고 물건너 낙랑과 예라는 2개 국(족)을 4개 국(족)으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참 잘했어요. 짝짝짝. (뺨 갈기는 소리)

다음 편 예고.

고이왕은 백제에 없다. 더는 없어. 하지만 고이왕은 산동 반도에, 요서에 웅비하며 계속 정복해.
대륙을 정복한다면 요서까지 가리라!
사료에 기록이 없어도! 제왕학적 독법이면 나의 승리다!
날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난 박영규다! 이병도가 아냐!
나는 나다! 소설가 박영규다!


덧글

  • 을파소 2009/02/13 00:54 # 답글

    다음편 제목-요서돌파 백제라간(도주)
  • 야스페르츠 2009/02/13 09:10 #

    웰컴 투 아스트랄 월드~
  • 2009/02/13 01: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02/13 09:11 #

    대무신왕 때의 낙랑이라면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쪽 낙랑은 저 안드로메다에 있는 낙랑보다 100만배쯤 더 간단명료하니까요.
  • ghistory 2009/02/13 03:03 # 답글

    백제에 무슨 실록이 있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2/13 09:12 #

    박영규는 고려왕조실록까지가 딱 좋았습니다. ㅡㅡ;
  • 을파소 2009/02/13 12:57 # 답글

    그러고보면 조선의 독살설 떡밥이나 원균명장론 떡밥, 고려의 천추태후 여걸론이나 황제국 떡밥은 다 피해간 사람이 삼국시대에서는 대륙 떡밥에 걸리셨군요.

    뭐 전공자라면서 고대부터 고려, 조선까지 온갖 떡밥 다 뿌리는 분도 계시긴 하지만...
  • 야스페르츠 2009/02/13 12:59 #

    조선, 고려 편은 지금 보아도 그냥 저냥 무난하게 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일반인이나 학생들이 보기에도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을 정도라고 봅니다.

    다만 삼국시대부터는... 안드로메다로 가버리신지라...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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