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31 12:41

오호(五胡)의 쟁패 2 - 흉노의 후예 역사

걸출하게 포장된 영웅들이 날고뛰는 《삼국지연의》의 세계. 나관중의 연의에는 기껏해야 남만의 맹획 정도나 조연급으로 등장할 뿐, 그 외 수많은 이민족들은 스쳐 지나가는 단역에 불과하다. 그러한 단역들 중에는 흉노도 있다.

연의에서 등장하는 흉노인이라면, 어부라(於扶羅)나 좌현왕(左賢王) 유표(劉豹)가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호주천(呼廚泉)도 상당한 유명인인 것 같은데 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역시 코에이의 힘은 위대하다. -_-;) 이들 흉노는 연의에서 엑스트라 밖에 못한 한이 맺혔는지 오호십육국시대에는 초장부터 제일 먼저 주연으로 출연해서 설치고 있다.

한때 위대한 선우 묵돌(冒頓 ; 모돈) 시대의 영광은 끝나고 연의의 시대와 그 뒤를 이은 진 왕조에서 흉노는 중국 황제에게 신속하여 북방을 방어하는 번병(番兵)으로 전락해 있었다. 연의 1세대들이 활약하던 시기는 어부라가 선우로 있던 시기로, 어부라는 혼란에 빠진 중국의 정세에 나름대로 비중 있게 개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부라가 사망한 후, 뒤를 이은 동생 호주천은 조조의 부하가 되었으며 조조는 흉노를 5부로 재편하였다. 호주천에 의해 좌현왕이 되었던 유표는 다시 조조에 의해 흉노 5부 중 좌부의 수령이 되었다.



유표의 아내는 호연씨(呼延氏)로, 위 가평(嘉平) 연간(249 ~ 254)에 아들 유연(劉淵)을 낳았다. 유연의 출생에 대해서 《진서》 재기 1권 〈유원해기〉에는 다음과 같은 신비한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호연씨가 용문(龍門)에서 아들을 점지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머리에 뿔 둘 달린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제사를 지내는 곳까지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무당은 “이것은 상서로운 징조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밤, 호연씨는 꿈을 꾸었다. 낮에 보았던 큰 물고기가 갑자기 사람으로 변하더니 다가왔다. 그의 왼손에는 달걀 반 정도 크기의 물건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호연씨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태양의 정기니라. 먹으면 귀한 아들을 얻으리라.”


꿈에서 깨어나 이 사실을 유표에게 말하니, 유표는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그로부터 13개월 후, 아들이 태어났는데 왼손에 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연으로 지었다고 한다.


유연은 어릴 때부터 영특하였다고 한다. 최유(崔游)에게 가르침을 받아 유교 경전과 제자백가에 통달하였으며 문무를 겸비하였다. 생김새나 자태도 준수하고 키는 8척 4촌이나 되었다. 한마디로 엄친아 스타일이었다는 말이다. 특이한 점은, 정수리의 길이(須長 ??)가 3척이나 되었고 가슴에는 3척 6촌 길이의 붉은 털 3가닥이 나 있었다고 한다. 조낸 비범하다. 그런데 왜 나는 이분이 생각나는 걸까... -_-;;

 * 오오.. 구우사마...(퍽!)

아무튼, 이렇게 비범했던 유연은 여러 황제들과 명신들의 입에도 오르내릴 만큼 총명하고 유명했다고 한다. 유표가 사망한 후 유연은 좌부의 수령 자리를 계승하였다. 태강(太康 : 280 ~ 289) 말에 흉노 5부에 도위(都尉)를 설치하였는데 유연은 북부도위가 되었다. 이때 정치를 잘해서 5부 전체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 공로도 있고 해서 혜제의 모후 양씨 정권 시절에 유연은 오부 전체를 통괄하는 오부대도독이 되었다. 원강(元康 : 291 ~ 299) 말년, 팔왕이 본격적으로 쟁패를 시작할 무렵에는 업(鄴)에 세력을 두고 있던 성도왕 사마영에 의해 용병으로 고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중원의 일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팔왕의 난이 한창 벌어지자 유연의 종조부인 좌현왕 유선(劉宣)은 여러 흉노 유력자들과 은밀하게 모의하여 유연을 대선우로 추대하였다. 이 소식을 몰래 전해들은 유연은 사마영을 속이고 업을 빠져나왔다. 유연이 산서로 돌아오니 유연을 따르는 사람이 20일 만에 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유연은 유선 등으로부터 대선우의 칭호를 받고, 이석(離石)에서 거병하였다. 뒤이어 좌군성(左國城)으로 옮겨 한왕(漢王)을 칭하고 건원하여 원희(元熙)라고 하였다. (304년 10월)


한왕이라 칭하게 된 배경에는, 흉노와 한이 서로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는 고대의 사실이 있다. 유연은 한과 흉노가 형제의 맹약을 맺었는데, 형인 한나라가 망했으니 동생이 그것을 이어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형사취수??? -_-) 말은 저렇게 번드르르하게 하지만 어쨌든 명분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을 속셈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결과 옛 한나라와는 혈통도, 전통도 관계가 없는 흉노족이 한나라를 부활시키는 참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착안한 것인지는 몰라도 일본에서는 유연을 유비의 자손으로 설정하여 써진 《후삼국지》가 나오기도 하였으니... 그들의 상상력은 참 대단하기도 하다. 유연이 한왕으로 즉위하면서 했던 연설문만 살펴보자면, 후삼국지의 상상력도 결코 과언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 무려 我太祖高皇帝라는 말씀까지 하신다. ㅎㄷㄷ...


한을 건국한 유연은 산서 일대를 평정하고 국가의 기틀을 바로잡는데 여념이 없었다. 사마영은 유연이 떠나간 후 사마등이 끌어들인 선비족의 침입으로 업에서 분사하였고, 병주자사(並州刺史) 동영공(東嬴公) 사마등(司馬騰)은 유연을 수차례 토벌하려 하였으나 모조리 패하였고 유연은 병주 대부분을 아우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가(永嘉) 2년(308), 유연은 황제에 즉위하였다. 다음해에는 평양(平陽)으로 수도를 옮겼다.


 * 발로 그린 중국의 세력 판도(유연 사망 무렵) : 한 서쪽의 ? 지역은 흉노 5부의 영역이라고 하는데 한이 저 지역을 실제로 지배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유연은 아들인 유총(劉聰), 일족인 유요(劉曜) 등에게 낙양을 공격하게 하니 낙양의 동해왕 사마월은 안간힘을 쓰며 이들을 막았다. 이러는 가운데 310년 6월, 유연이 평양에서 병사함으로써 한의 세력 확장은 잠시 멈추게 되었다. 향년 60여 세, 재위 6년, 적국의 기록인 《진서》에서조차 비범하게 기록될 정도로 뛰어났던 영걸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한은 잠시 동안 내부의 분란에 휩쓸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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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호프 박영규 씨는, 대륙백제와 하등 관련이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이 태행산맥 서쪽의 유목 부족들조차도 대륙백제의 증거로 끌어들이는 폭거를 단행하기도 하였다.

《삼국사기》백제본기 책계왕 13년(298)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타난다.

가을 9월에 한(漢)이 맥인(貊人)과 함께 쳐들어오자 왕이 나아가 막았으나 적의 군사에게 해를 입어 죽었다.
秋九月 漢與貊人來侵 王出禦爲敵兵所害薨


박영규는 저 구절을 들먹이면서 이렇게 말한다. 책계왕 13년인 298년은 한나라가 멸망한지 80년도 더 된 시점이다. 저 시점에서 어떻게 한나라가 백제를 침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오호십육국시대 흉노의 유연이 세운 한나라가 중국 대륙 한복판에 있었다. 저 한나라가 백제를 침략한 것이다. 그러므로 백제는 대륙에...... 카악! 퉤!

박영규는 바보가 틀림없다.

유연이 한왕을 자칭한 때는 304년의 일이다. 건국하지도 않은 나라가 있지도 않던 대륙의 백제를 침략한 것이다. 이게 왠 아스트랄월드.... 그나마 유연이 흉노족과 함께 대륙을 웅비하면서 날뛰다가 304년에서야 비로소 나라를 세우는 형태의 스토리라면 얼추 변명거리라도 되는데, 정작 유연은 290년대 후반부터 304년까지 성도왕 사마영의 막하에서 용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즉, 298년이면 한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토대조차 없던 때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ㅡㅡ;


※ 참고자료

《진서》 재기 1권 〈유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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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불 2009/01/31 13:06 # 답글

    책계왕 13년 뒤에 298년이라고 달아주시면 글을 이해하기가 용이할 듯 하옵나이다. (배례)
  • 야스페르츠 2009/01/31 18:15 #

    어잌후. 조언 감사드립니다. (넙죽)
  • 초록불 2009/01/31 13:07 # 답글

    그나저나 박영규 사마께옵선 조선 시대에도 등장하는 당나라는 어찌 설명하실는지...-_-;;

    (노파심 주석 : 한, 당 등은 중국의 대명사로 종종 쓰임돠~)
  • 레드칼리프 2009/01/31 17:42 #

    중국측의 기록에도 고려나 조선을 신라나 고구려로 표기한 일이 꽤 있었지요?
  • 초록불 2009/01/31 17:57 #

    조선을 고려로 표기하는 일은 흔했습니다. 고구려로 표기하는 건 별로 기억에 없네요...^^
  • 야스페르츠 2009/01/31 18:16 #

    고구려야 장수왕 이후로는 아예 고려로 통했으니 없을만도 하죠.
  • 을파소 2009/01/31 13:46 # 답글

    대륙론자들의 논리를 역이용하면 유연의 한이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기록을 근거로 흉노의 한반도 진출설을 만들 수 있겠군요.(그럼 문무왕이 조상이 그렇게 신라로...?)
  • 야스페르츠 2009/01/31 18:18 #

    문무왕 떡밥은 이제 고마하세요. 마이 무따아입니꺼. ㅠㅠ
  • 나인테일 2009/01/31 19:54 # 답글

    박영규씨라면 '한권으로 읽는 실록'시리즈로 대박 터뜨린 그 분입니까?
    그런 사람이 대륙빠라는 것도 참 충격과 공포로군요...(후덜덜덜)
  • 김희대 2009/02/28 01:40 # 삭제 답글

    그런데 유연이 한으로 칭하고 고조를 자신의 선조로 내세우는 게 형식논리상 아주 근거가 없지도 않다고 알고 있는데요. 형식적으로 흉노왕은 한황제의 사위였으니 실제로는 적당한 공녀를 보냈다고는 하나 개중에 한황제와 혈연관계가 있는 공녀가 흉노왕의 왕비로 갔을것이고, 한황제의 후손인 왕자가 흉노왕의 지위를 물려받았을 확률이 정치역학상 상당하니 말입니다. 뻘 댓글이었습니다.
  • 천지화랑 2009/06/07 11:13 # 답글

    김봉한씨라면 '난생설화는 동이족의 전통'이라면서 '것봐라 흉노는 우리와 한 겨레임'이라고 주장하겠군요. -ㅁ-;;
  • 잔디맨 2009/12/27 05:43 # 삭제 답글

    항상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

    앞으로도 재밌게 읽어 나가겠스빈다
  • 야스페르츠 2009/12/28 11:57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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