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중자애님께서 오프 때마다 열중하시는 탑 쌓기는 오늘도 이어졌습니다.


2. 경군님께 드리는 숙제(?)입니다.
캡쳐 화면이 올라와 있는 블로그입니다.
http://blog.naver.com/daumkaja.do
"원래 이곳에 (김일제의 고향인) 휴도성에서 살던 흉노인 5만 명을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사기>에는 5만 명이라 적혀 있고, <한서>에는 3만 명이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후략)"
그런데 생각해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사기>는 김일제가 투후로 봉해지기 이전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아예 5만 명 운운이 나올 수도 없고, 김일제가 포로로 잡혀오게 되는 혼야왕 항복 사건 당시의 기록에도 그 사건으로 잡혀온 흉노인은 4만 명 혹은 10만 명으로 아예 데이터 자체가 맞지 않습니다. <한서>는 제가 줄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되지 못하지만, 제가 읽어본 바로는 적어도 '곽광김일제전' 자체에는 3만 명이라는 데이터가 없고, 김일제가 투후로 봉해질 때는 김일제가 거의 죽기 직전의 일로, 그가 자신의 봉지에 같은 종족을 데려다 놓는 다는 일 자체가 웃기는 일입니다. 물론 기록에도 없습니다.
사실 저 인터뷰 자체도 대단히 웃기는 것이, 투후라는 봉작을 무려 투국이라는 국가 수준의 존재로 보고 있고, 혼야왕 항복 사건에서 등장하는 휴도왕이라는 존재는 들어 보았지만 휴도성이라는 지명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참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상의 인터뷰 내용이 정말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그 내용에 대한 검증을 방송 측에서 시도해 본 적이 있는지를 여쭤보실 수 있으신지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은 이렇게 어려운 숙제로 남겨드렸습니다. ^^;;
3. 왜 떡밥은 항상 이야기할 시간이 지난 이후에나 생각이 나는 걸까요??
회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떡밥 거리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사택지적(智積)과 사택적덕(積德)이 각기 이름에서 지혜를 쌓고 덕을 쌓고 있으니 형제가 아닐까 하는 떡밥을 날리셨던 경군님의 말씀에서 파생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졸업논문을 구상하던 무렵에 생각했던 것이기도 하죠.
고대인의 인명을 보면, 명백하게 순수 우리말(고구려어가 되었든 신라어가 되었든 간에)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쯤 우리나라 고대인의 인명이 한화(漢化)되었을까요??
신라의 경우 진흥왕 이후 일정 기간 동안의 인명이 대단히 불교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점도 있고 해서 과연 그 이름들이 정말 지어졌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기도 합니다. 김춘추의 경우는 명백하게 한화된 이름이므로 그 이전 왕이나 기타 귀족들의 이름이 한화된 흔적을 추적해 보는 것도 한 번 쯤 해볼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고구려나 백제로 확장해 본다면 더 재미있겠지요. 백제의 경우는 왕호가 시호로 바뀌는 시점을 추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버스가 떠나간 뒤에 손을 흔들어 봅니다.
떡밥 양산!


2. 경군님께 드리는 숙제(?)입니다.
캡쳐 화면이 올라와 있는 블로그입니다.
http://blog.naver.com/daumkaja.do
"원래 이곳에 (김일제의 고향인) 휴도성에서 살던 흉노인 5만 명을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사기>에는 5만 명이라 적혀 있고, <한서>에는 3만 명이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후략)"
그런데 생각해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사기>는 김일제가 투후로 봉해지기 이전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아예 5만 명 운운이 나올 수도 없고, 김일제가 포로로 잡혀오게 되는 혼야왕 항복 사건 당시의 기록에도 그 사건으로 잡혀온 흉노인은 4만 명 혹은 10만 명으로 아예 데이터 자체가 맞지 않습니다. <한서>는 제가 줄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되지 못하지만, 제가 읽어본 바로는 적어도 '곽광김일제전' 자체에는 3만 명이라는 데이터가 없고, 김일제가 투후로 봉해질 때는 김일제가 거의 죽기 직전의 일로, 그가 자신의 봉지에 같은 종족을 데려다 놓는 다는 일 자체가 웃기는 일입니다. 물론 기록에도 없습니다.
사실 저 인터뷰 자체도 대단히 웃기는 것이, 투후라는 봉작을 무려 투국이라는 국가 수준의 존재로 보고 있고, 혼야왕 항복 사건에서 등장하는 휴도왕이라는 존재는 들어 보았지만 휴도성이라는 지명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참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상의 인터뷰 내용이 정말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그 내용에 대한 검증을 방송 측에서 시도해 본 적이 있는지를 여쭤보실 수 있으신지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은 이렇게 어려운 숙제로 남겨드렸습니다. ^^;;
3. 왜 떡밥은 항상 이야기할 시간이 지난 이후에나 생각이 나는 걸까요??
회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떡밥 거리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사택지적(智積)과 사택적덕(積德)이 각기 이름에서 지혜를 쌓고 덕을 쌓고 있으니 형제가 아닐까 하는 떡밥을 날리셨던 경군님의 말씀에서 파생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졸업논문을 구상하던 무렵에 생각했던 것이기도 하죠.
고대인의 인명을 보면, 명백하게 순수 우리말(고구려어가 되었든 신라어가 되었든 간에)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쯤 우리나라 고대인의 인명이 한화(漢化)되었을까요??
신라의 경우 진흥왕 이후 일정 기간 동안의 인명이 대단히 불교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점도 있고 해서 과연 그 이름들이 정말 지어졌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기도 합니다. 김춘추의 경우는 명백하게 한화된 이름이므로 그 이전 왕이나 기타 귀족들의 이름이 한화된 흔적을 추적해 보는 것도 한 번 쯤 해볼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고구려나 백제로 확장해 본다면 더 재미있겠지요. 백제의 경우는 왕호가 시호로 바뀌는 시점을 추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버스가 떠나간 뒤에 손을 흔들어 봅니다.
떡밥 양산!




덧글
탑도 잘 쌓으시니 성도 잘 쌓으실 듯하니....
공병 출신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