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1 21:22

연개소문은 없더라... 역사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지만 일천한 저는 얼마 전에 뜻밖에 알게 된 떡밥 하나를 풀어 봅니다.

고구려의 마지막 불꽃을 하얗게 불태웠던 연개소문, 저는 얼마 전까지 연개소문은 당연히 연개소문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연개소문이라는 존재는 적어도 사료 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던 인물이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소문(혹은 개금이라고 한다), 성은 천씨이다....
蓋蘇文(或云蓋金), 姓泉氏.....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개소문의 성은 천씨입니다. 즉, 천개소문입니다. <삼국사기>의 이 기사는 <당서> 및 <신당서>의 고구려전 기록을 참고한 것이며, 당연히 중국 사서에서는 천씨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서>에는 전씨錢氏로 되어있습니다만...) 또한 20세기에 발견된 남생의 묘지명 역시 천남생, 천씨로 기록되어 있죠.

이 황당한(?) 사실을 발견하고 한참 동안 연개소문은 그럼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찾아본 바로는 1차 사료급에서는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은 아예 존재하지 않더군요..... ㅡㅡ;

<삼국유사>에는 "성은 蓋, 이름은 金, 蘇文은 관직명"이라는 참신한 설명도 등장하더이다. 우리의 두계 마왕님께서는 무려 <일본서기>를 참고하시어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라는 인명을 찾아내시고, "伊梨는 泉 또는 淵의 方訓인 ‘於乙(얼)’, 柯(蓋)는 변(邊)의 뜻인 ‘가 혹은 가앗’, 須彌(蘇文)은 ‘쇰(金)’"이라 끼워맞추셨으니.... 결국 연개소문의 성은 얼가(井邊), 이름은 쇰(金)1)...... ㅎㄷㄷ.....(근데 저는 왜 갓쉰동이 생각나는 걸까요...ㅡㅡ;)

아무튼, 이리도 이름들이 다르고 복잡하다니... 전혀 모르던 새로운 떡밥이었습니다.


그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천개소문'이라 알고 있던 이 이름을 연개소문일 것이라고 처음 비정한 이는 바로 순암 안정복인 것 같습니다.2) 안정복은 <동사 고이>에서 연정토의 존재를 통해 이렇게 추측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연개소문은 천개소문으로 기록되었을까요??

<동사 고이>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문의 성은 본래 연(淵)인데 당인(唐人)이 천(泉)으로 고친 것이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느냐 하면, 신라기(新羅記)에 ‘고구려의 귀신(貴臣) 연정토(淵淨土)가 내항(來降)하였다.’ 하였고, 《통고(通攷)》에 ‘정토는 소문의 아우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 성이 연(淵)인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당 고조(唐高祖)의 휘(諱)를 피하여 연(淵)자를 천(泉)자로 썼으니, 도연명(陶淵明)을 천명(泉明)으로 쓴 것 같은 데에서 알 수 있다.
蘇文姓本淵, 而唐書人改泉也. 何以知其然也, 新羅記云, 高句麗貴臣淵淨土來降. 通考云, 淨土蘇文之弟. 然則其姓淵明矣. 唐避高祖諱, 以淵爲泉. 如以陶淵明爲泉明, 可知矣.

두계 마왕은 "연이나 천이나 본음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니 저 주장이 딱히 맞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기는 합니다만.....3) 아무튼 중국의 피휘로 인해서 연개소문의 성씨까지 바뀌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사실 영양왕 이후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기록들이 고유 기록은 거의 없고 중국 정사들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죠. 그러다보니 연개소문이 천개소문이 되어 1000년이 넘도록 전해져 내려오게 되는 비극적(?)인 일도 생겨나게 된 것 같습니다. 흠.....

 


이러한 문제점을 잡아낸 순암 선생의 놀라운 통찰력에 경의를 표하며 이상 뻘글을 마칩니다.


=======각주========
1)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下, 을유문화사, p477 주석 2번
2) 상동
3) 상동

====참고문헌======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下, 을유문화사
일연, <삼국유사>
국사편찬위원회, <중국정사조선전 역주>
안정복, <동사강목>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한치윤, <해동역사>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ps. 오늘의 회동에서 나츠메 님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들어 각주를 달아 보았으나 참 부실하여 벌쭘하군요. ㅡㅡ;


덧글

  • 2008/12/22 00: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眞明行 2008/12/22 08:58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고대사 공부할 적에 한번 본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 새삼 재미있군요. 파헤쳐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이미 강호를 떠난 몸이라..쿨럭.
  • 야스페르츠 2008/12/22 09:24 #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
  • 2009/08/08 17:19 # 답글

    일본 위키에는 카스미가 개소문을 음독한 것이라 나와있네요. 점점 미궁이로다.;

    同じく名の「蓋蘇文」を音読みで「かすみ」と発音したものを、日本側で聞き取ったままを文字化したものである。

    이름[개소문]을 소리대로 읽어 카스미라 발음한 것을 일본측에서 들은 그대로 한자화한 것이다.
  • 야스페르츠 2009/08/12 11:08 #

    두계마왕의 해석도 음독이라는 것은 같습니다. 다만 두계는 음독을 넘어서 그 훈을 찾으려고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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