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15 18:44

문무왕릉비 투후 기사의 실체는... 유사역사학 비판

신라는 흉노의 후예라는 떡밥을 보다 떠오른 망상

위 떡밥을 덥석 문 저는 요 근래 계속해서 떡밥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추측하기를,

"중국에서 최초의 김씨인 투후 김일제를 조상으로 견강부회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죠.


그런데 관련 논문들을 살펴본 결과, 애초에 투후와 관련된 내용들은 "김씨의 조상"이라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대세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秺侯祭天之胤傳七葉은 전한 무제의 총애를 받아 투후가 된 김일제의 고사를 말하니, 그는 곽거병의 흉노대토벌로 포로가 된 祭天金人의 休屠王子로서 인해서 金성을 무제로부터 하사받았다. 이래 그 자손 칠대가 한대의 내시로 혁혁한 번영을 전승한 것을 말하니, 그것은 문무왕의 선대의 칠대전승을 말한다.

문경현, 〈신라건국설화의 연구〉, 《대구사학》, 대구사학회, 1972

(원문의 한자는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전부 발음으로 바꿨음)

이외의 논문들 역시 저 "七代"의 정체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을 뿐, "투후가 선조"라는 생각은 아예 품지도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용비어천가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周國大王이 豳谷애 사라샤 帝業을 여르시니.
우리 始祖ㅣ 慶興에 사라샤 王業을 여르시니.


중국의 고사와 조선 왕조의 업적들이 대구를 이루며 이어지는 이 서사시와 별 차이가 없던 겁니다....


혹시나 싶어서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투후나 김일제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수두룩하게 나오는 검색 결과....

투후 김일제라는 인물은 전근대 시대에는 거의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아주 유명한 고사 속 인물이었던 겁니다....

결국, 투후가 누구인가는 애초부터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죠.


이런 것도 모르고 그들은 마치 잃어버린 조상이라도 찾은 양 "투후의 정체를 밝힌다"고 설치고 있는 꼬라지라니....

답답함은 더해만 갑니다...

핑백

  • 야스페르츠의 墨硯樓 : 2008년 내 이글루 결산 2008-12-31 09:17:55 #

    ... ;초록불의 잡학다식재야사 (58회) / 초록불의 잡학다식가장 많이 읽힌 글은 식민빠들의 비밀 회동기 입니다. 가장 대화가 활발했던 글은 문무왕릉비 투후 기사의 실체는... 입니다. ( 덧글 34개 ) 내이글루에 가장 덧글을 많이 쓴 사람은 초록불 입니다. 허허.... 제가 식민빠임을 인증했던 비밀 회동기를 사람들이& ... more

덧글

  • 을파소 2008/12/15 19:00 # 답글

    사(기)극은 '이건 역사랑 다를 수도 있어요.'라는 자막으로 떼울수라도 있지, 다큐가 삽질이면 답 안나오죠.
  • 야스페르츠 2008/12/15 21:55 #

    근데 사실 다큐도 의도적인 조작이나 사기가 많잖아요. 그나마 이 다큐는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니 다행이려나요... ㅡㅡ;
  • 한단인 2008/12/15 19:31 # 답글

    헑..그런 거였냐능..
  • 야스페르츠 2008/12/15 21:55 #

    저도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능..
  • 윙후사르 2008/12/16 15:45 # 삭제 답글

    헐.... 경악스럽군요.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6 22:48 # 삭제 답글

    생각을 쉽게 해봅시다. 문무왕이 당과 대적해서 싸운 왕인데 일개 오랑캐(당신들 논리라면)의 공을 자신들과 빗대어 것도 묘비에 떡 하니 써올렸겠냐는 생각은 좀 해봅시다;;;;;;;;뭐랄까...것도 대대로 칭손받을 정도로 번영한 것도 아니고 마지막에는 거의 멸족을 당한 집안을 자신들의 칠대전승으로 말한다??? 이건 뭐 찌라시 다큐보다 더 단순한 자기 합리화 아닌가? 답글 부탁.
  • 야스페르츠 2008/12/16 23:55 #

    그럼 용비어천가에는 모두 멸망한 망국의 고사를 들고 있는데 그건 왜임?? 쯧쯧.

    이미 이야기했다시피, "투후의 고사"라고 하는 것은 거의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유명한 고사였다는 말이요. 게다가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투후의 고사에는 祭天金人이라는 매력적인 개념이 등장한다오. 즉 불교적 색체가 농후하다는 말. 더불어서 같은 김씨라는 메리트도 있고. 7대를 이어 번영했다는, 아주 중요한 요소도 있는데, 바로 이 7대의 존재는 가깝게는 "지증왕~문무왕"까지의 7대, 또는 "알지~성한"까지의 7대를 나타내는 포인트가 된다오. 그러니 문무왕의 선대와 관련된 고사로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07 # 삭제 답글

    망국의 고사인데 후대까지 칭송을 받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문무왕릉비에 있는것은 뭐야 이건...것도 완전한 왕도 아니 당신 말대로면 듣보잡 오랑캐를 빗대어서 왕묘비에 씁니까? 나같으면 쪽팔려서라도 안씁니다.
  • 야스페르츠 2008/12/17 00:14 #

    그건 댁의 사정이고. 그렇게 쪽팔리면 나중에 댁의 묘비에는 어디 대통령이라도 쓰시구려.

    벌써 지겹게 말했지만, 용비어천가에서 나오는 고사 만큼이나 투후의 고사도 상당히 유명했다는 것이 내 말이요. 혼자서 쪽팔리니 어쩌니 하면서 망상이나 펼치려면 그만두시지요. 어차피 합리적인 반박도 못할 거면서 넋두리 하는 건 보기 싫군요.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15 # 삭제 답글

    김일제를 구지 당신 말대로 걍 빗대어 쓸거라면 김일제로 연결지어 저 흉노의 전성기를 이끈 묵특을 빗대어 당나라를 물리친 문무왕이다. 라고 쓰면 그게 오히려 더 멋지겠죠? 어처구니없이 한나라에 포로로 잡혀 살다간 사람 쪽팔리게 안쓰고요. ok?
  • 야스페르츠 2008/12/17 00:21 #

    역시나 혼자뿐인 망상을 가지고 무슨 OK요? 쯧쯧. 애초에 문무왕을 당나라와 싸운 군주라고 생각하는 것 부터가 에러요. 문무왕릉비에는 당나라의 연호를 기년으로 사용하며, 당나라 황제에 대한 칭송도 수두룩하고, 주무왕, 요, 순, 신농씨 등에 대한 고사 인용도 여럿 나오고 있소. 이게 "당나라를 물리친 문무왕"의 묘비에 쓰일 내용일까?? 피식.

    혼자서 멋지다고 아무리 망상을 펼쳐봤자 뻘짓.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16 # 삭제 답글

    ㅋㅋㅋㅋ 내 생각? 당신도 당신 생각 적는 거 아닌가? 당신은 뭐 어디 논문이라도 냈나보죠? 우습네.....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18 # 삭제 답글

    글고 내 말은 신라가 흉노의 후예다라는 말도 어처구니 없지만 당신 처럼 어설프게 반론을 내밀지 말라는 겁니다. 이게 더 흉노와 신라를 연결짓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떡밥이 되니까.

    참고로 난 경주김씨요. 경악할 흉노 떡밥인데, 당신 글 보니 참 어설프게도 반론을 해놨기에 댓글 남긴것이요. 제발 그런 어설픈 주장은 하지 말아주길.....아니면 아예 반론도 못하게 적던가...
  • 야스페르츠 2008/12/17 00:23 #

    벌써 세번째 말하는 것이지만, 쪽팔리니 부끄럽니 하는 건 댁의 망상일 뿐이고,

    투후의 고사가 용비어천가와 비슷하게 인용된 것이라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니고 학계의 대세요. 내가 발췌 인용해놓은 논문 제목 안보이쇼??

    "논문에서 발췌한 학설"과 "쪽팔린데 그런 거 누가 써!" 하는 말, 뭐가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 걸까??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24 # 삭제 답글

    ㅋㅋㅋㅋ 어처구니가 없네. 그럼 문무왕은 누구와 싸워서 교과서에도 나오는 삼국통일을 이룩했나? 어디 저 삼세계 나라와 사웠나? 당신도 당신생각을 적는 거 아닌가요? 그래놓고선 누굴 가르치려 드는지?
  • 야스페르츠 2008/12/17 00:28 #

    댁의 망상 속에서는 "문무왕은 당나라를 물리친 왕"이라는 게 핵심이고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고 신라의 전성기를 이끈 왕이라는 건 곁다리인 모양이오만, 정작 문무왕릉비에는 당나라를 물리친 이야기는 하나도 안나온다오. 마멸된 부분에 있으리라 추측하고 싶어도, 그 기본 내용 자체가 아주아두 당나라에 호의적이고, 또한 당나라의 눈치가 많이 보이는 내용인지라 그런 추측도 그다지 타당하지 못하다오.

    아, 그리고 참고삼아 말하지만, 경주김씨면 문무왕이랑은 혈통상 별로 관계가 없는데... (경주 김씨는 경순왕 후손인 거 알고 있으쇼?)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25 # 삭제 답글

    당신도 어차피 당신 생각 즉 당신의 망상을 글로 적는 거 아닙니까? 근데 뭐? 내 망상? 웃기네.....학계의 대세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좀 자료좀 보여주실래요? 뭉둥 그려 학계의 대세요. 라고 적지 말고?
  • 야스페르츠 2008/12/17 00:30 #

    내가 논문 제목에 출처까지 상세하게 적어준 거나 찾아 보시구려. 그외에도 기타 대부분의 논문들이 애초부터 투후의 고사에서 나타나는 7대 전승을 밝히는 데나 주력하고 있지 투후를 신라 김씨의 조상이라고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는다오.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31 # 삭제 답글

    답답하네 경주 김씨 시조가 김알지 인데요? 글고 곁다리가 아니라, 당신 말대로 묘비에 빗대어 쓸거라면 이라는 글을 안보이나요?
  • 야스페르츠 2008/12/17 00:35 #

    그러니까, 묘비에 투후의 고사를 썼다는 말은 나만의 망상이 아니라 "신라사를 연구한 학자들"의 의견이라니까. 곁다리든 빗대어 쓴 거든 뭔가 망상을 펼치려면 학자들의 의견에 대한 합리적인 반박이나 할 일이외다. 혼자서 그건 쪽팔리니까 아닐꺼야 하는 건 참 우스워보이는 거 아쇼??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35 # 삭제 답글

    저게 자료 입니까? 웃겨서 넘어가시겠네. 아싸리 국사편찬위원회에 나 처럼 질문을 던지시요. 지금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그게 더 신빙성있는 대답이 될테니까. 어설프게 자료 찾지 말고 확실한 답을 찾길 바라고 참고로 회답이 오면 올려주리다. 기억난다면..
  • 야스페르츠 2008/12/17 00:38 #

    저게 자료가 아니면 뭐가 자료라는 건지 원... 학계에 정식으로 발표된 논문을 발췌 인용하는 게 자료가 아니면 대체 뭐가 자료라는 말이요?? 정 궁금하면 댁이 찾아서 읽어보시구려.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37 # 삭제 답글

    신라사를 연구한 학자들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그중에 일부라고 말하고 요즘은 특히 경주 김씨들 사이에서도 연구해야되는 일인가 알아보고 있으니까 알겠쇼? 경주 김씨도 지금 자료 찾으면서 조용한 중인데 어디서 어중이 떠중이 들이 설쳐.
  • 야스페르츠 2008/12/17 00:42 #

    누가 어중이 떠중이인지 모르겠군요. 내가 인용한 논문은, 최근의 논문들로부터 계속 근원을 찾아가다가 최종적으로 찾은 것이요. (당연히 근원 추적에 사용한 논문들의 논지는 내가 인용한 논문과 크게 차이가 없소)

    일부라고 말하려거든, 다른 의견을 개진한 학자나 논문이라도 가져오든가.

    ps. 위에 썼지만, 학계에서는 투후라는 인물에는 아예 신경도 안쓰고, 7대전승이 가리키는 7대 선조가 누구인지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소. 이렇게 학계의 동향이 흘러가는데 댁은 논문 한 장 찾아보지 않고서 쓸데없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쯧쯧.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40 # 삭제 답글

    한마디 더 하고 가죠. 저게 왜 자료가 아니냐면, 그럼 신라 유물들과 무덤들을 보고 흉노와 연관지어 연구하고 책내고 하고 얼마전에 떡밥 던진 kbs 역사 스페셜도 그렇게 자료라고 쳐우기게 되는 거요? 알겠나요? 그럼 당신은 뭐라 할껀가?
  • 야스페르츠 2008/12/17 00:46 #

    미안하지만, 신라 유물-무덤 등은 애초에 "흉노"가 아니라 "북방민족"과 관련이 있는 거요. 흉노는 수많은 북방민족 중 하나일 뿐이고. 그런데 왜 뜬금없이 흉노가 나왔겠소?? 문무왕릉비에 투후가 나오니까 일부 설레발치기 좋아하는 작자들이 흉노에다 가져다 붙인거요.

    신라의 유물-무덤이 북방민족과 비슷하다는 건 이미 일제시대부터 제기되던 의문점이요. 나는 그러한 의문점을 흉노에 견강부회하려는 작자들을 비판한 것이고. 투후라는 존재 자체가 흉노랑 연결할 근거가 되기 힘들고, 게다가 투후가 등장하는 이유도 알고보니 조상이라는 개념이 아니었다는 말.


    물론 댁은 모르겠지만, 신라를 흉노에다가 가져다 붙인 사람은 문정창이라는 친일파 출신 날조사가라고 하더이다. 그 사람은 참 대~~~~단한 분이지.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0:57 # 삭제 답글

    일부 설레발, 경강부회 그건 당신 생각이고, 그럼 당신이 유물과 무덤 양식이 흉노와는 다르다는 것을 조사 하면 끝나는 것이겠네.

    글이야 어차피 이렇게 읽으면 저렇게 되고 요렇게 읽으면 이렇게 되는 것 이니까.

    딱 만들어진 유물이나 무덤은 거짓말을 못하니, 그걸 찾아 증명하던가 하시요.

    어설프게 글로 적거나 당신 생각 적지 말고 글고 신라와 흉노 관계 당신이 직접 찾아보시구려.

    서점에 가도 책 깔렸고 논문도 수도 없이 많으니...당신도 나보고 찾아보라 해서...
  • 야스페르츠 2008/12/17 01:01 #

    뭐, 난독증이 있는지는 짐작하고 있었소만, 나는 흉노와 다르다는 말은 한적이 없수다. 흉노뿐 아니라 북방민족의 공통적인 계열의 문화라는 말이지. 이건 심지어 신라=흉노 설을 주장하는 작자들이 무비판적으로 퍼다 나르는 내용에도 나타난다오. "스키타이 금관"이니 "사르마트 문화"니 하는 것들 말이요.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것을 퍼다 나르는지는 모르지만, 스키타이나 사르마트가 흉노와 다른 "종족"이라는 건 역사학의 상식이요. 그런데 그런 건 전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투후가 있으니 "흉노족이다!"라고 설레발치고 있는 게지.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1:00 # 삭제 답글

    당신도 아시다 시피 이병도, 신석도 이 두분도 친일파에 속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요.....
  • 초록불 2009/03/29 16:30 #

    신석도 -> 신석호...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1:03 # 삭제 답글

    투후만 있으면 당신 말처럼 멍청하게 그런 주장하지 않죠. 유물이나 무덤이 비슷하니 그런 주장이 나오는 겁니다. 근데 왜 내가 자꾸 이이야기를 해야하지? 난 자러 가야됩니다. 20000
  • 와 어처구니가 없군 2008/12/17 01:09 # 삭제 답글

    나는 흉노와 다르다는 말은 한적이 없수다. 흉노뿐 아니라 북방민족의 공통적인 계열의 문화라는 말이지.

    왜 고구려,백제,당 과 전혀 다른 문화인 북방문화와 신라의 문화가 비슷하죠? 그래서 나오는 주장이고 허무맹랭한 주장이 전혀 아닌데?

    당신이 위에 열심히 주장한 문무왕릉비 설명한 부분을 보자면 오히려 당과 비슷한 문화여야 맞겠지.

    그게 바로 당신이 주장하는 점의 허점이야. 끝/
  • esperos 2008/12/24 03:24 # 삭제

    실제로 당과 비슷하잖아. 일단 한자 쓰지. 비문도 조낸 친당적이지, 신라는 아예 복식도 당나라 제도를 채용했지?
  • esperos 2008/12/24 03:27 # 삭제

    그러니까 자기는 자료도 하나도 없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면서 한다는 것이라고는 틱틱거리는 것밖에 없다는 거지. 사실 까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는 것은 없어서 조낸 추상적인 것으로 시비거는 것밖에 없잖아? ㄲㄲㄲ 댁이 하는 모습을 보니까 얼마 전에 날 웃겼던 G-Crusader가 생각나.
  • 초록불 2009/03/29 16:38 #

    처음 주장은, 김일제는 쪽팔린 인간인데 그를 조상이라 한 것은 그가 "진짜" 조상이기 때문이라고 시작해서, 중간에는 신라가 흉노의 후예라는 경악할 떡밥을 제대로 방어해야 한다고 했다가, 마지막에는 유물과 무덤이 비슷해서 나온 주장이라는 옹호론으로 끝나는 기묘한 리플...-_-;;
  • 하늘떵침 2008/12/25 00:14 # 삭제 답글

    어처구니가 없군이랑은 대화가 안되네.. 글을 죽읽다보니.. 기본적인 교양/지식/자격도 없는 인간이니 힘뺄필요 없으리라 사료됨...
  • 카멜레온 2009/01/02 18:03 # 삭제 답글

    당에 대해 호의적인 것과 문화가 당과 비슷해야하는 것과 무슨 관계지?(실제 비슷하긴 하다만)
  • 海凡申九 2009/03/08 00:49 # 답글

    소벌공이 蘇=金이란 가설을 적용시키면 꽤나 재밌는 망상들이 양상되는데 왜 환단肉 빠들은 모를까? 낄낄
  • 子聞之曰是禮也 2009/03/29 16:51 # 답글


    야스페르츠님/

    긍금한 것이 있사온데요.
    전한대 혹은 한나라 시대에 식읍 귀족이 봉지에 거성을 수축하고 거했습니까?
    아니면 봉지는 중앙 조정이 관리했습니까?

    투후라는 후작이 투라는 곳을 식읍으로 책봉 받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영지에 거하지 않고 서울에서 황제를 모시고 수대에 걸쳐 벼슬을 했다면 이미 흉노의 후손은 아니고 한족이 된이 아니온지요?
  • 야스페르츠 2009/03/29 19:46 #

    저도 한대 관직 체계나 식읍 체계는 잘 알지 못합니다. 보통 종실왕이 임명되는 군 정도 규모의 왕국은 상국(맞나...?)이 다스렸다고 하지요. 더 작위가 높은 왕도 자신의 봉지를 다스리지 못했는데 기껏 현후가 '투국'이라고 부를 정도의 국체를 유지했다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개솔히'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 子聞之曰是禮也 2009/03/30 12:59 #

    투후가 흉노족을 거느리고 투성에 웅거하면서 수대를 다스리다가 왕망의 난이 일어났을 때 흉노족을 이끌고 한반도로 이주했다는 말고 개솔히로 봐야겠습니다.
  • 지나가는행인 2009/04/26 23:11 # 삭제 답글

    궁금한점이 있는데 신라 김씨왕족이 흉노의 후손이라는것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
    아니면 투후 김일제의 후손이라는것을 부정하는 것 입니까 ? 만약 전자와후자를 모두 부정한다면 신라 김씨왕족이 유독 북방민족과 연계가 강한것은 무슨 연유일지요
  • 야스페르츠 2009/04/27 01:59 #

    제 글에 링크를 따라가 보시면 명쾌한 해답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뭐 지나가는 길이시라 그런 것까지 보실 여유는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 sinpascal 2010/01/10 17:41 # 삭제 답글

    우리 고대 신라인 의 유전적 형질이나 각종 유물, 편두전통,기타 자료를 보면 흉노와 너무 관련성이 지나칠정도로 많음을 알수 있습니다. 게다가 구전, 역사서에서 이를 암시하는 자료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흉노라고해서 오랑캐로 보는 시각을 버리고 현재 우리가 이땅에서 원래살던 선주민이 아니고 소위 오랑캐라고 하는 외래민족이 도래하여 문명을 이끌었다고 하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할듯...
  • 혁신한국 2010/11/02 12:14 # 삭제 답글

    지나가다 궁금점이 있어서 잠시 글좀 남겨봅니다. 글을 남기신 것이 2년전이라 지금과는 조금 상황이 다를 것이라 보는데, 글쓴 이께서 혹시 경주 국립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을 직접 내방하여 보신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신라 시기의 유물, 그것도 특히 김씨일족이 다스리던 신라시기의 유물들은 백제나 고구려와는 완전히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일반 사학계에서도 인정하는 내용들이 아닌가요?

    저 역시도 신라 김씨 일족이기 때문에(한국의 김씨는 신라 김씨가 시조죠.천추 태후의 내연남이었던 김치양이 저희 가문의 고시조중 한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많은 자료를 얻기 위해서 돌아다니고 있는상황인데, 발굴된 유물만 놓고 보면 신라 시대는 어떻게 설명이 안되는 그런 국가라고 하지요. 존 코벨이라는 학자도 신라를 두고 북방 기마민족의 후손일 것이라고 하며, 계림로 14호 고분에서 발견된 황금보검의 경우에는 일본의 학자가 로마에서 선물을 받았거나 신라가 로마에서 가지고 온 것일 꺼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사서는 전하지 않는 이런 발굴 유물들은 신라 김씨 일족이 흉노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들의 문화를 그대로 수입해와서 묘제에 사용을 했다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역사를 보는 시각이 대개로 두가지로 나뉘어져 있는거 같은데, 첫번째가 사서, 즉 기록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그 첫번쨰이고, 두번째가 발굴유물을 통해 역사를 맞추어 나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 두번쨰일거 같습니다.

    헌데 기록은 거짓도 전할 수 있고 오류도 전할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습니까?( 사서를 기록한 사람이 그 당시에 자기만 가지고 있는 쾌속자가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면 왕래하는데 몇년씩 걸리는 한반도를 자신이 직접 오가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대부분이 구전이나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서에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발굴된 유물, 그것도 왕조의 무덤이 확실해 보이는 왕가의 무덤에 누가 거짓을 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기록이 중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으나, 유물과 기록의 가치중 무엇을 선에 두어야 할 것인가를 놓고 보면 저같은 경우에는 유물이 당연히, 그리고 압도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만큼 그 시대를 정확하게 규명할수 있는 것도 없다라고 보는 것이고요.

    신라가 흉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나, 신라에 흉노가 이동했다라고 전하는 기록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그 기록이 아예 없다라고 볼수 있느냐라고 생각하면 또 그렇지만도 않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문무왕릉비를 비롯해서 대당김씨묘에서 발견된 내용등을 통해서 투후제천전칠엽이라는 기록물 자체를 저같은 경우에는 "신라 김씨가 한나라에 복속된 흉노가 이동해 왔다"는 뜻으로 이해를 하니까요.

    즉, 북방의 초원에서 한과 대치하던, 조공을 받던 흉노의 일족도 있고, 투후 김일제처럼 한에 복속되어 제후의 자리에 올랐던 흉노도 있었는데, 여기서 신라 김씨는 자신들이 한나라에 복속된 제후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것을 비문에 남긴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기록이 바로 신라 김씨가 한나라에 복속된 흉노 김씨가 이동했다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시간이 더 지나면 해결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어떤 말을 이야기 하건, 다 가설이 되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겠지요. 기록에 없으면 정설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풍토. 발굴된 유물조차도 기록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어떠한 것에 그 원인이 있는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11/03 09:51 #

    죄송합니다만, 역사학과 고고학 양쪽 모두 말씀하신 것과는 전혀 다르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 신라의 적석목곽분이라는 묘제가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묘제와 같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상도 일대에서 적석목곽분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 해당하는 무덤들도 여럿 발견되어 사실상 "신라 자체적으로 발달한 묘제"라는 쪽의 의견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2. 물론 다른 유물도 "신라만 뭔가 다르다"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학문이 일천하여 자세한 사항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세간에 알려진 몇몇 책들은 사실 "역사학/고고학계의 대세"와는 거리가 먼, 음모론에 가까운 내용들입니다. 아마도 실제 고고학계 내부의 목소리를 찾아보신다면 말씀하신 것과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혁신한국 님께서 말씀하신 여러 내용들은 사실은 음모론에 가까운 일부 호사가들의 주장일 뿐이며, 실제 역사학/고고학의 연구 성과는 그러한 음모론과 10만8천리 쯤 떨어져 있습니다.

    3. 안타깝게도, 일반인들은 그러한 연구 성과를 쉽게 접하기 어렵고, 그런 틈바구니를 "뭔가 화려하고 숨겨진 비밀을 밝혀낸다고 설레발을 떠는 책"들이 비집고 들어가 제멋대로의 추측으로 진실을 가려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슬픕니다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에, 그저 한숨만 쉴 뿐입니다.
  • 119 2011/04/27 15:24 # 삭제 답글

    아무리 짓어도 누런피부가 하얘지겟냐 그냥 열등한 동양인일 뿐
  • 오늘은왠지 2018/03/26 12:49 # 삭제 답글

    신라와 북방계와의 연계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북방계 초원역사 전공자인 강인욱교수의 시각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을까요. 이하는 강교수의 "유라시아 역사기행"의 내용들을 일부 인용한 것임. 신라와 북방계 초원민족과의 관계에 있어 민족이동설이나 내재발전론 모두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신라에 북방기마민족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분명하다. 예들들어 시간적인 간극으로 적석목곽분의 신라 자생설을 주장하여왔으나, 북방 초원에서 AD300년 이후에도 적석목곽분이 만들어졌다. 천마도의 말머리 뿔이나 앞다리가 접혀서 그려진 것은 전형적인 북방 초원문화의 특성이다. 중간지역인 고구려 백제보다 한반도 남단의 신라나 가야에서 오히려 북방 초원문화의 흔적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등등
  • 오늘은왠지 2018/03/27 00:33 # 삭제 답글

    덧붙이자면 북방 초원문화와 신라와의 관계에 있어 강인욱교수는 묘한 여운을 남기죠. 예컨데 최근 발표한 기마민족이동설에 관한 글에서 일본학자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지적하면서도 반대로 무리하게 자생설을 고집하기 보다는 이제라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해보자. 묘한 여운이죠. 북방 초원역사를 전공하는 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신라와 가야의 북방 초원문화 영향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도저히 무시를 못할 수준이라는 의미이겠지요. 단순히 문화의 전파 내지는 교류의 결과라고 치부하기에는... 5호16국에 관한 님의 글들에서 나타나듯이 AD3~5세기는 북방을 비롯한 동아시아전역이 혼란의 연속이었던 시기이고, 신라의 왕가가 바뀌고 국명 등 정치체제가 바뀌는 시기죠. 흉노의 일파인 김일제의 후손들이 한반도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전혀없는 그냥 단순히 묘비석의 수사적인 표현일 뿐일까요.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유사역사학 방지

얼마블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