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흉노의 후예라는 떡밥을 보다 떠오른 망상
위 떡밥을 덥석 문 저는 요 근래 계속해서 떡밥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추측하기를,
"중국에서 최초의 김씨인 투후 김일제를 조상으로 견강부회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죠.
그런데 관련 논문들을 살펴본 결과, 애초에 투후와 관련된 내용들은 "김씨의 조상"이라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대세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秺侯祭天之胤傳七葉은 전한 무제의 총애를 받아 투후가 된 김일제의 고사를 말하니, 그는 곽거병의 흉노대토벌로 포로가 된 祭天金人의 休屠王子로서 인해서 金성을 무제로부터 하사받았다. 이래 그 자손 칠대가 한대의 내시로 혁혁한 번영을 전승한 것을 말하니, 그것은 문무왕의 선대의 칠대전승을 말한다.
문경현, 〈신라건국설화의 연구〉, 《대구사학》, 대구사학회, 1972
(원문의 한자는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전부 발음으로 바꿨음)
이외의 논문들 역시 저 "七代"의 정체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을 뿐, "투후가 선조"라는 생각은 아예 품지도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용비어천가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周國大王이 豳谷애 사라샤 帝業을 여르시니.
우리 始祖ㅣ 慶興에 사라샤 王業을 여르시니.
중국의 고사와 조선 왕조의 업적들이 대구를 이루며 이어지는 이 서사시와 별 차이가 없던 겁니다....
혹시나 싶어서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투후나 김일제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수두룩하게 나오는 검색 결과....
투후 김일제라는 인물은 전근대 시대에는 거의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아주 유명한 고사 속 인물이었던 겁니다....
결국, 투후가 누구인가는 애초부터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죠.
이런 것도 모르고 그들은 마치 잃어버린 조상이라도 찾은 양 "투후의 정체를 밝힌다"고 설치고 있는 꼬라지라니....
답답함은 더해만 갑니다...
위 떡밥을 덥석 문 저는 요 근래 계속해서 떡밥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추측하기를,
"중국에서 최초의 김씨인 투후 김일제를 조상으로 견강부회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죠.
그런데 관련 논문들을 살펴본 결과, 애초에 투후와 관련된 내용들은 "김씨의 조상"이라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대세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秺侯祭天之胤傳七葉은 전한 무제의 총애를 받아 투후가 된 김일제의 고사를 말하니, 그는 곽거병의 흉노대토벌로 포로가 된 祭天金人의 休屠王子로서 인해서 金성을 무제로부터 하사받았다. 이래 그 자손 칠대가 한대의 내시로 혁혁한 번영을 전승한 것을 말하니, 그것은 문무왕의 선대의 칠대전승을 말한다.
문경현, 〈신라건국설화의 연구〉, 《대구사학》, 대구사학회, 1972
(원문의 한자는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전부 발음으로 바꿨음)
이외의 논문들 역시 저 "七代"의 정체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을 뿐, "투후가 선조"라는 생각은 아예 품지도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용비어천가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周國大王이 豳谷애 사라샤 帝業을 여르시니.
우리 始祖ㅣ 慶興에 사라샤 王業을 여르시니.
중국의 고사와 조선 왕조의 업적들이 대구를 이루며 이어지는 이 서사시와 별 차이가 없던 겁니다....
혹시나 싶어서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투후나 김일제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수두룩하게 나오는 검색 결과....
투후 김일제라는 인물은 전근대 시대에는 거의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아주 유명한 고사 속 인물이었던 겁니다....
결국, 투후가 누구인가는 애초부터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죠.
이런 것도 모르고 그들은 마치 잃어버린 조상이라도 찾은 양 "투후의 정체를 밝힌다"고 설치고 있는 꼬라지라니....
답답함은 더해만 갑니다...




덧글
이미 이야기했다시피, "투후의 고사"라고 하는 것은 거의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유명한 고사였다는 말이요. 게다가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투후의 고사에는 祭天金人이라는 매력적인 개념이 등장한다오. 즉 불교적 색체가 농후하다는 말. 더불어서 같은 김씨라는 메리트도 있고. 7대를 이어 번영했다는, 아주 중요한 요소도 있는데, 바로 이 7대의 존재는 가깝게는 "지증왕~문무왕"까지의 7대, 또는 "알지~성한"까지의 7대를 나타내는 포인트가 된다오. 그러니 문무왕의 선대와 관련된 고사로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벌써 지겹게 말했지만, 용비어천가에서 나오는 고사 만큼이나 투후의 고사도 상당히 유명했다는 것이 내 말이요. 혼자서 쪽팔리니 어쩌니 하면서 망상이나 펼치려면 그만두시지요. 어차피 합리적인 반박도 못할 거면서 넋두리 하는 건 보기 싫군요.
혼자서 멋지다고 아무리 망상을 펼쳐봤자 뻘짓.
참고로 난 경주김씨요. 경악할 흉노 떡밥인데, 당신 글 보니 참 어설프게도 반론을 해놨기에 댓글 남긴것이요. 제발 그런 어설픈 주장은 하지 말아주길.....아니면 아예 반론도 못하게 적던가...
투후의 고사가 용비어천가와 비슷하게 인용된 것이라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니고 학계의 대세요. 내가 발췌 인용해놓은 논문 제목 안보이쇼??
"논문에서 발췌한 학설"과 "쪽팔린데 그런 거 누가 써!" 하는 말, 뭐가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 걸까??
아, 그리고 참고삼아 말하지만, 경주김씨면 문무왕이랑은 혈통상 별로 관계가 없는데... (경주 김씨는 경순왕 후손인 거 알고 있으쇼?)
일부라고 말하려거든, 다른 의견을 개진한 학자나 논문이라도 가져오든가.
ps. 위에 썼지만, 학계에서는 투후라는 인물에는 아예 신경도 안쓰고, 7대전승이 가리키는 7대 선조가 누구인지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소. 이렇게 학계의 동향이 흘러가는데 댁은 논문 한 장 찾아보지 않고서 쓸데없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쯧쯧.
신라의 유물-무덤이 북방민족과 비슷하다는 건 이미 일제시대부터 제기되던 의문점이요. 나는 그러한 의문점을 흉노에 견강부회하려는 작자들을 비판한 것이고. 투후라는 존재 자체가 흉노랑 연결할 근거가 되기 힘들고, 게다가 투후가 등장하는 이유도 알고보니 조상이라는 개념이 아니었다는 말.
물론 댁은 모르겠지만, 신라를 흉노에다가 가져다 붙인 사람은 문정창이라는 친일파 출신 날조사가라고 하더이다. 그 사람은 참 대~~~~단한 분이지.
글이야 어차피 이렇게 읽으면 저렇게 되고 요렇게 읽으면 이렇게 되는 것 이니까.
딱 만들어진 유물이나 무덤은 거짓말을 못하니, 그걸 찾아 증명하던가 하시요.
어설프게 글로 적거나 당신 생각 적지 말고 글고 신라와 흉노 관계 당신이 직접 찾아보시구려.
서점에 가도 책 깔렸고 논문도 수도 없이 많으니...당신도 나보고 찾아보라 해서...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것을 퍼다 나르는지는 모르지만, 스키타이나 사르마트가 흉노와 다른 "종족"이라는 건 역사학의 상식이요. 그런데 그런 건 전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투후가 있으니 "흉노족이다!"라고 설레발치고 있는 게지.
왜 고구려,백제,당 과 전혀 다른 문화인 북방문화와 신라의 문화가 비슷하죠? 그래서 나오는 주장이고 허무맹랭한 주장이 전혀 아닌데?
당신이 위에 열심히 주장한 문무왕릉비 설명한 부분을 보자면 오히려 당과 비슷한 문화여야 맞겠지.
그게 바로 당신이 주장하는 점의 허점이야. 끝/
야스페르츠님/
긍금한 것이 있사온데요.
전한대 혹은 한나라 시대에 식읍 귀족이 봉지에 거성을 수축하고 거했습니까?
아니면 봉지는 중앙 조정이 관리했습니까?
투후라는 후작이 투라는 곳을 식읍으로 책봉 받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영지에 거하지 않고 서울에서 황제를 모시고 수대에 걸쳐 벼슬을 했다면 이미 흉노의 후손은 아니고 한족이 된이 아니온지요?
아니면 투후 김일제의 후손이라는것을 부정하는 것 입니까 ? 만약 전자와후자를 모두 부정한다면 신라 김씨왕족이 유독 북방민족과 연계가 강한것은 무슨 연유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