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5 14:52

위키백과 정화 작업 - 광개토왕 역사

최근들어 다시 위키백과 정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고국양왕 때까지의 내용들은, 박영규의 흔적들도 일부 보이기는 했지만 워낙에 기본적인 내용들이 부실한 것이 많아 고구려 역사를 다시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즐겁게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광개토왕 항목을 보는 순간 밀려오는 위압감이란...

위키백과 광개토왕


제가 처음 광개토왕 항목을 펼쳐보았을 때의 상태는 참 알흠다웠습니다. 표제어는 광개토대왕... 광개토왕이 맞냐 광개토대왕이 맞냐(여기에 광개토태왕까지...ㅡㅡ;)는 일단 둘째치고, 다른 모든 고구려 왕들의 메인 표제어는 "고구려 ○○왕"으로 되어 있는데, 유독 광개토왕만 당당하게 독립적인 표제어로 광개토대왕... ㅎㄷㄷ

일단, 아예 역사적인 근거 자체가 없는 용어인 "광개토대왕"은 저 멀리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광개토왕을 메인 표제어로 삼았습니다. 물론 고구려 광개토왕으로 해야 정상이지만, 위키백과의 시스템 문제로 인해 제가 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관리자에게 옮겨줄 것을 청하고 일단 광개토왕으로 옮겨놓았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서 아주 많은 링크들이 꼬여버렸습니다. ㅡㅡ; 그거야 나중에 로봇들이 알아서 청소해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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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대체 무슨 근거로 써놓은지 알 수가 없는 놀라운 주장들이었습니다.

 407년에는 5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서쪽, 동쪽(연군으로부터), 북쪽(비려로부터) 세 방향으로 공격하여 후연을 멸망시켰다.408년, 고구려 출신 고운을 왕위에 앉혀 고구려의 제후국 북연이 성립되게 하였다.

410년, 지배권 내에 있던 동부여를 재차 공략하여 64개 성 1400개의 마을을 완전 병합하였으며, 같은 해 동예(東濊) 역시 완전 병합하였다.

무려, 광개토왕이 후연을 멸망시켰다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부터, 제후국 운운하는 헛소리.... 또한, 410년의 기록은 아무리 뒤져봐도 동부여 공략 말고는 아무런 기록도 찾을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튀어나온 동예....

후연 운운하는 부분은 애초에 거론할 가치도 없는 망상이니 제쳐두고서라도, 대체 동예는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요...

찾아본 결과, 저 동예 떡밥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때 정복했던 "동부여"의 정체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더군요. 동부여의 위치를 강원도 동해안에 비정하는 학설부터, 함경도, 연해주 등으로 비정되는 가운데 동부여와 동예를 헷갈렸을 것이라는 주장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즉, 동부여 정복 기사를 써 놓고, 같은 기사를 다른 시각에서 해석한 동예 정복 기사를 따로 다시 쓰는 삽질을 한 겁니다....

그나마 하평양 설이 실려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려나...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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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박영규의 책을 현재 가지고 있지 않은 관계로, 이 떡밥이 박영규의 책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하평양설이 실려있지 않은 것도 그렇고, 박영규의 흔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듯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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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하는 과정에서 <삼국사기>와 <광개토왕릉비>를 찬찬히 비교하며 읽어보니 아주 특이한 점이 있더군요. 이것을 왜 여즉 몰랐는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니놈이 공부를 안한 탓이지!! 퍽!)


참으로 신기하게도, <삼국사기>의 광개토왕대 기사와, <광개토왕릉비>의 정복 기사는 중복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광개토왕릉비의 정복 기사는 대부분이 백제와의 전쟁 기록이며, 추가로 비려(패려?), 식신(숙신), 동부여와의 전쟁 기록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이러한 정복 기사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백제와의 전쟁 기록도 연대상으로도 그렇고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전혀 중복되지 않더군요.

<광개토왕릉비>의 경우, 비문 후반부의 "수묘인 연호"와 관련된 정복기사만 새겨졌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어 참고가 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중복되는 기사가 하나도 없는지 참 신기하더군요.

뭔가, 고구려사의 전승 과정에서 심각한 미싱 링크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환독스러운 망상을 펼치며 이만 포스팅을 접습니다.


덧글

  • 엘레시엘 2008/12/05 15:15 # 답글

    '지배권 내에 있던 동부여를 재차 공격하여...완전히 병합...'
    ...대체 뭔가요 이거 -_-; 지배권 내에 있었으면 공격할 필요도 없었을테고, 병합했다면 병합 이전에는 지배권이 아니었어야 되지 않나요? -_-a;
  • 야스페르츠 2008/12/05 15:18 #

    ㅎㄷㄷ 그것도 문제였군요. 광개토왕릉비에는 "속국이었는데 배신해서 때찌해줬음"이라 나와 있는데 저건 그런거 다 생략... ㅎㄷㄷ
  • Mushroomy 2008/12/05 15:25 # 답글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경주 출신이라 삼국사기도 주로 신라에 편중하여 집필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만(아니면 아닌 거고...)..... 진실은 김부식 본인만이 알겠지요.
  • 야스페르츠 2008/12/05 18:29 #

    저기... 그런건 아니라능... 제 블로그에서 김부식으로 검색해보시길....
  • 小流 2008/12/05 21:37 # 답글

    박영규씨라면 뭐든지 한권으로 볼수 있게 만든다는 그분?!
  • 야스페르츠 2008/12/05 23:23 #

    네. 뭐든지 한권으로 줄여서 자기 마음대로 바꿔버리는 그분입니다.
  • 고려태왕 2014/01/11 11:49 # 삭제 답글

    407년 후연이 고구려에 멸망? 사실 광개토왕비 407년 조는 왜와 백제에 관한 것입니다.

    또, 410년에 동부여를 ‘병합’했다니? 동예는 또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사학계가 얼마나 공부를 안 했는지 가히 알 만하군요. 교과서 지도에도 그렇게 나오질 않나.
  • 마에스트로 2014/01/28 19:59 #

    무슨 근거로 407년을 왜와 백제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지? 후연설도 매우 근거가 있는 학설이며 유사역사학이 아님을 아시길.
  • 고려태왕 2014/01/11 11:56 # 삭제 답글

    박영규 씨는 광개토왕의 생몰년이 375~413년이라는 똥밥을 물고 나오신 분이지요.

    그리고 김부식은 마치 광개토왕비를 보기라도 한 듯 삼국사기에서 광개토왕비 기사는 다 빼먹었네요. 광개토왕비를 본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 네다플 2015/07/16 19:52 # 삭제 답글

    취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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