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9 01:14

숙세가 - 부제 : 나의 소설론 雜想

오늘, 단숨에 초록불님의 역작 <숙세가>를 읽었습니다.

지난주에 미친척하고 굽본좌의 <본격 2차 세계대전 만화>과 <숙세가>를 질렀습죠.

굽본좌의 만화는 아직 덕력(?)이 부족한지라 이해가 부족하여 그냥 즐겁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숙세가>는 출퇴근하는 지하철 속에서, 쏟아지는 졸음조차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단숨에 몰입해서 읽었습죠.

사실, 소설 한편 오가는 길에 읽는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숙세가를 굳이 독후감까지 써가며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나름대로 글쟁이 지망생으로서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소설론'에 뒤떨어지지 않는 글은 참으로 오래간만인지라 이렇게 키보드를 듭니다.


저도 중고등학생 때 글쟁이 한 번 되어 보겠다고 나름 습작도 해보고, 이것 저것 많이도 찔러 봤습니다.

당시 제가 보았던 가장 감동적(?)인 소설론은, 딘 쿤츠가 쓴 <베스트셀러 소설을 쓰는 법>이었습니다.

뭐랄까요... 소위 순문학이라 부르는 글을 쓰는 법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재미있는 글'을 쓰는 법에 대해서 아주 잘 나와 있는 책이었죠.

저 책을 읽은 후, 저 나름대로 마음 속으로 정했던 '소설론'이 있었습니다.

1. 재미없는 것은 소설이 아니다.
2. 소설에 우연은 없다. 모든 사건은 필연이다.
3. 등장인물들의 우정·사랑·원한 등은 언제나 자연스러워야 한다.


첫번째 항목이야 워낙에 당연한 것이지요.

두번째 항목은, 당연한 것이면서도 거의 대부분의 소설이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이 없을 수는 없겠죠. 소설 속에서도 우연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소설 속에서는 우연조차도 필연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도망치는 와중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조차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글쟁이입니다. 하다못해, 그곳에 돌부리가 있다는 것이라도 어떻게든, 어느 부분에서건 언급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작품들 속에서 이 부분은 완벽하게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세번째 항목은, 제가 미즈노 료의 <마계마인전(로도스전기)> 1권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것입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도스전기> 속에서, 두 주인공-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인간 남자와 엘프 여자가 만나 모험을 겪고 사랑에 빠지는, 이 단순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웠었죠. 속되게 표현하자면, '만나서 어이쿠 하니까 사랑하게 되었네'라고나 할까요?? 도대체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어느새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 ㅡㅡ;;

제가 보기에, 흔히 이야기하는 양판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죠. 처음 만난 등장인물들이 무엇인가, 대단히 작위적인 사건 하나 거쳐서 절친한 친구·애틋한 사랑이 되어 버리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고 도식화되어 버리는 것은 제 기준으로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하다못해 밀고 당기고,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할텐데, 이놈의 양판소들은 밀면 그대로 밀리고, 엎치면 그대로 엎어지는 인물들... 읽다 보면 책을 덮어버리고 싶어지죠.


아무튼, 나름대로 마음 속으로 정했던 이 '소설론'은 언제나 제가 읽는 소설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단숨에 읽어내린 <숙세가>, 참으로 오랜만에 저의 소설론에 잘 맞는 소설을 만났습니다.


숨쉴 틈도 주지 않는 재미,

한치의 틈이나 우연을 허용하지 않는 구성,

가슴을 에는 사랑과 원한, 그외 인간관계...


제가 <숙세가> 속에서 발견해 낸 유일한 우연은, 위법사에 있던 지명 법사가 어느새 사비 정림사에 있다는 것 정도일까요... 사실 이 부분은 약간 아쉬운 것이기는 했습니다만, 그 외에는 우연이라는 것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듯한 치밀한 복선이 감탄스러웠습니다. 심지어는 마지막 부분에서 해수가 금지를 인질로 잡았다가 부딪혀서 쓰러지는 부분에서조차 그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사실 따지고 들자면 도저히 말이 안되는 우연들도 있기는 합니다. (누구의 아버지는 누구 아버지의 동료, 그런데 두 자식들은 그것도 모른 채 얼레리 꼴레리 하는 식??) 그러나 그런 것마저 없다면 아예 이야기 자체가 되지 않으니 그런 것은 넘어가야죠.


그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참으로 자연스러웠다는 점입니다.

혜량과 금지가 만나고, 말 그대로 밀고 당기고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어느새 사랑에 빠져 있는 것,

혜량과 효근이 만나고, 서로 싸우고 함께 싸우고 어느새 등 뒤를 맡기고, 어느새 친밀한 사이가 되어 있는 것,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저도 울고 웃고, 놀라고 가슴을 쓸어 내리고...

그냥 그렇게 좋았습니다.


그냥 술 한 잔 마시고, 책 한 권 단숨에 읽고, 그냥 그냥 가슴 따스한 사랑 이야기에 취하고, 그렇네요.


결론은 외롭다는 거?? (퍽!!!!!)

덧글

  • 2008/11/29 09: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8/11/29 21:42 #

    ^,.^ 그저 굽신굽신...
  • 한단인 2008/11/30 20:29 # 답글

    포스팅하고는 관계가 없지만 궁금한게 있어서요.

    제가 오타를 낸 포스팅 말입니다. 구삼국사의 편찬 추측 하한선이 고려 목종 이전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왜 그렇게 추정하는 것인지 궁금하더군요. 저야 불학무식하여 이런 방면으로는 아는 바가 없는데다 사학사 관련은 말짱 황인지라..... 야스페르츠님이 알려주심.. 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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