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7 13:30

위키백과의 정화 작업2 (부제 : 운급헌원기考) 유사역사학 비판

위키백과 치우


위키백과 치우 항목에는 치우가 등장하는 기록에 대한 소주제가 있다. 그곳에 언급되는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산해경>

<사기>

<상서> 여형

<운급헌원기>

<한서> 지리지


이들 목록 가운데 <사기>의 내용은 일전에 고친 일이 있었다. 과거 소하님께서 밝혀주신 <환단고기>에 인용된 <사기>부분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문헌들을 살펴보면서 무엇인가 이상한 부분을 알아챘다. 그리고 하나씩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산해경>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문헌들이 사실은 <환단고기>에 있던 내용을 그대로 베껴다 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기>는 이미 알고 있었고, <상서> 여형편, <운급헌원기>, <한서> 지리지도 모두 <환단고기>의 내용을 그대로 베꼈던 것이다.

심지어, <상서> 여형은 <환단고기>에 나온 내용을 잘못 베끼기까지 했다.

'옛날 훈계(古訓)에 다만 치우가 난을 일으킨다라고만 적은 것은 그의 위엄이 무서워 기(氣)를 빼앗긴 탓이라고 했다.'

.... <환단고기>를 세심히 읽어보면, 여형에 나온 부분은 '옛날에 가르침이 있었으니, 치우(蚩尤)가 처음으로 난을 일으켰다' 까지이며, 나머지 위엄이 무서워 기를 빼앗겼다 어쩌구 하는 것은 <환단고기> 저자의 논평이다. 그런데 이 위키백과를 편집한 작자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이유립의 논평까지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임승국이 잘못 번역해 놓은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겠지. (현재 임승국판 한단고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확인은 못했음)

이뭐병...


아무튼, 나머지 해당 내용도 <환단고기>의 내용과 완전히 동일하다. 물론, <환단고기>는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문헌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모조리 왜곡해서 인용했다.

<사기>는 이미 알려져 있고, <한서> 지리지에도 '치우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壽長縣) 관향성(關鄕城) 가운데 있다.'라는 부분은 없다.

확인해본 결과 <한서> 지리지에는 동군(東郡) 항목에서 소속된 현(縣)을 나열하면서 수량현(壽良縣)에 ‘치우의 사당이 서북쪽 (속)<제> 위에 있다. 蚩尤祠在西北(涑)<泲>上’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동평군과 관향성 부분은 지리지에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 내용은 <한서> 교사지(郊祀志)에 나오는 내용으로, '치우는 동평릉감향에 있다. 蚩尤在東平陸監鄉’고 되어 있다. 그런데... 동평릉은 지리지에서 제남군(齊南郡)에 나타난다. 즉, 제남군의 소속 '현'이다. 그리고, 지리지에 나타난 치우의 사당은 동군 수량현에 있는데... 동군은 무려 연주(兗州) 소속이다. 즉, 하남성이다....

하긴... <한서>에 산동[성](山東)이라는 말이 써 있다는 것부터가 에러였지...

한마디로, 저 정체불명의 문헌은 군과 현도 제대로 구분 못하고, 심지어 릉도 아니고 사당을 가지고 헛소리를 한 게다.



그리고, 오늘 추적에 추적을 거듭한 끝에 <운급헌원기((雲笈軒轅記)>의 정체를 알아냈다.


<운급헌원기>란.... 송나라 때 장군방(張君房)의 <운급칠첨(雲笈七籤)> 권100에 있는 '헌원본기(軒轅本紀)'였던 것이다!


무려 <운급칠첨>이라는 책에서 <운급>을 짤라와서, <헌원본기>에서도 본기(本紀)는 어디다 갖다 버리고 엉뚱한 기(記)를 가져다 붙여 놓은 것이다.....

최대한 에누리해서 <운급>은 <운급칠첨>의 약자라고 치고, 헌원기(記)는 헌원의 기록이라는 뜻이거나, 본기를 줄여 쓰다가 실수한 것이라고 치자.


그런데 우리의 위대하신 임승국 씨께서는 이런 내력 따위는 까맣게 모르고 <운급헌원기>라는 가공의 책을 만들어 낸 것이다....

피식...


임승국의 실력... 알만하다....


덧글

  • 초록불 2008/06/27 14:21 # 답글

    맞습니다. 이유립이 있던 단학회에서 낸 [환단고기] 번역본을 보면,

    상서의 여형에 또한 이르기를 '옛 가르침이 오직 치우만이 난리를 일으켰다' 하였으니 저들이 치우천왕의 위세가 두려워 감히 덤벼볼 생각을 못하고 대대로 그 가르침을 전하여 후세가 경계토록 하였으니 그들의 두려움이 매우 심하였음을 알겠다.

    라고 하여, 상서의 인용부분이 而尙書呂刑, [有古訓 惟蚩尤作亂]...으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8/06/28 19:40 #

    이유립도 실수하지 않은 걸 알아서 틀려주는 센스라니요...결론은.... 승리의 임승국(?)
  • 악질식민빠 2008/06/27 16:29 # 답글

    운급헌원기는 규원사화에서 나왔습니다. (뭐 원래 출처야 말씀하신대로 운급칠첨의 헌원본기, 그것도 주석 한 줄을 가져다 쓴 것이지만.)

    하지만 언제나 틀린걸 베껴주는 한암당 선생 (...) 신시본기는 소하훃 말씀처럼 규원사화 베끼기...


    여담입니다만 예전에 운급칠첨이 어떻게 국내에 유포되었는가를 알아보려다가 그만뒀었지요.
  • 야스페르츠 2008/06/28 19:41 #

    아.... 규원사화에서 베낀 거였군요....

    저도 운급칠첨을 찾다가 보니 조선 중후기 사서에도 여러번 나오더군요.. 인용 구절도 비슷비슷한게 규원사화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구절을 긁어다 단장취의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 2008/06/28 21: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8/06/29 00:42 #

    음... 그렇군요... 약자였군요.....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어쨌든, 임승국은 이런 것을 까맣게 모르고 <운급헌원기>라는 가공의 책을 만들어 버린 것 같습니다. 번역본에도 주석 한줄 안달아놓은 걸 보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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