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7 10:39

놀라우신 선현들의 예지력 - 낙랑군考 유사역사학 비판

<해동역사(海東繹史)> 속집(續集) 지리고(地理考) 4 사군(四郡)



《자치통감》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진나라 건흥 1년에 요동의 장통(張統)이 낙랑군과 대방군에 웅거하여 고구려 왕 을불리(乙弗利) -삼가 살펴보건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미천왕(美川王)의 이름이 을불(乙弗)이라 하였다.- 와 서로 공격하였는데, 몇 해 동안을 계속 싸웠다. 그러자 낙랑왕 준(遵)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모용준(慕容遵)이다.- 이 장통을 달래니, 장통이 백성 1000여 호를 이끌고 모용외(慕容廆)에게 귀순하였다. 모용외는 그를 위하여 낙랑군을 설치하고 -삼가 살펴보건대 유성(柳城)에 교치(僑治)를 설치한 것이다.- 장통을 태수로 삼았다.


(중략)

원위(元魏) 때에 이르러서는 낙랑, 대방 등의 군현을 요서(遼西) 지역에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중략)

중국의 서책에서 혹 요동의 여러 현을 한나라 때의 낙랑 지역이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동사강목(東史綱目)> 부록(附錄) 사군고(四郡考)


“외(廆)가 낙랑군을 두어 통(統)으로 태수(太守)를 삼았다.”
하였으니, 이것은 별도로 요계(遼界)에 두어, 옛이름을 그대로 칭하기를 마치 후세의 요령(遙領)하는 예와 같이 한 것이지 한 나라 때의 옛 군은 아니다.



네이버에서 낙랑군 대륙설과 한바탕 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씀.

덧글

  • 초록불 2008/06/27 10:49 # 답글

    일제는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나중에는 역시 중국사대주의에 쩔은 유학자가 다 그렇지, 하는 말로 변신하는 카멜레온들을 좀 보기도 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8/06/27 13:46 #

    저는 예지력 설을 지지한다는...ㅋ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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